[단비뉴스] 애타는 기후 시민, 정부를 법정에 세웠다
[기후위기시대] 54 기후재판 현황과 의미 (하)
기후위기를 막기 위해 활동하다 법정에서 싸우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탄소감축에 소극적인 정부와 기업을 상대로 소송을 내거나, 그린워싱(위장환경주의)에 항의하다 기소된 활동가들이 그 예다. 활동가들을 비롯한 시민사회는 인간이 지구를 파괴하는 행위를 정당화하는 현행법에 이의를 제기하고, 탄소중립을 위한 사법부의 전향적 자세를 요구하고 있다. <단비뉴스>는 기후재판의 현주소와 의미를 짚는 심층기사를 3회에 걸쳐 연재한다. (편집자)
“기후 위기가 심각해진 미래에 어른들은 없고, 바로 우리가 고통스럽게 살아갈 것입니다. 저도 지구 환경을 위해서 노력하지만, 그걸로는 부족합니다. 우리가 크면 너무 늦습니다. 우리한테 떠넘기지 마세요. 바로 지금, 탄소배출을 훨씬 많이 줄여야 합니다. 꼭 부탁합니다.”
지난해 6월 13일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앞에서 한제아(10) 어린이가 마이크를 들고 휴대전화에 적힌 메모를 보며 이렇게 말했다. 그를 포함한 10세 이하 아동 62명이 정부를 상대로 헌법소원을 내면서 기자회견을 연 자리였다. 청구인 중에는 엄마 뱃속의 태아 1명도 포함됐다. ‘아기기후소송단’이라 불리는 이들은 2030년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2018년 대비 40%’로 정한 탄소중립기본법 시행령이 위헌이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정부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가 지구 온도를 ‘산업화 이전 대비 1.5도 이내 상승’으로 제한하기에 불충분해, 아이들의 생명권과 행복추구권 등 기본권을 침해한다는 주장이었다. 이들은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55% 이상’으로 설정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기성세대의 책임’ 각성 요구한 어린이들
<단비뉴스>는 지난달 22일 서울 동작구 대방동 ‘정치하는엄마들’ 사무실에서 아기기후소송단 어린이들을 지원하는 오은선(35·주부) 씨와 남궁수진(42·주부) 씨를 만났다. 오 씨는 5살, 남궁수진 씨는 8살과 10살의 자녀를 도와 헌법소원에 관여하고 있다. 남궁 씨는 행동에 나서게 된 동기를 이렇게 설명했다.
“기성세대들은 너무 많은 걸 누려왔습니다. 에어컨도 펑펑 쓰고, 차도 막 타고 다니고, 저가 항공 타고 제주도 여행도 다녀오고요. 그런데 아이들은 우리가 했던 걸 누리지 못할 겁니다. 탄소 감축을 위해 아이들에게만 더 많이 노력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부당하며, 아이들의 평등권을 침해하는 것이라 생각했어요.”
오 씨는 “정부는 기후위기 문제를 ‘우리 세대는 아니고 미래세대의 일이니까 상관이 없다’는 식으로 말을 하는데 사실 미래세대가 아니다”며 “지금 현재 살아 있는 아이들이 피해 당사자가 되는 거고 그 아이들이 고스란히 더 감당해야 될 문제”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헌법소원을 낸 아이들과 부모들은 그러나 온라인 등에서 많은 비난과 냉소를 마주해야 했다. 관련 기사에는 ‘아이들이 뭘 알겠냐 엄마가 시켜서 나간 거지’ ‘아이를 정치에 이용하지 말라’ 등의 댓글이 달렸다. 하지만 남궁 씨는 ‘정작 뭘 모르는 건 아이들이 아니라 어른들’이라고 반박했다.
“저희들보다 아이들이 훨씬 기후위기에 대해서 심각성을 많이 느껴요. 미디어 노출이 많을 뿐만 아니라 어린이집, 유치원 그리고 학교에서까지 기후위기나 환경에 대한 교육을 많이 받기 때문에 지식도 많고 위기감도 굉장히 높은 거죠. 기후위기를 자신의 생존과 관련된 문제로 받아들이고 있는 거예요. 근데 문제는 어른들이 그걸 모른다는 거죠. 어른들이 ‘아이들은 모를 것이다’라고 생각하는 게 제일 큰 문제라고 생각해요.”
“소극적 온실가스 감축 목표는 국민 기본권 침해”
2021년 10월에는 기후위기비상행동과 녹색당 등의 주도로 시민 123명이 비슷한 소송을 제기했다. 청구인으로 참여한 황인철 기후위기비상행동 공동집행위원장은 지난달 16일 <단비뉴스> 전자우편 인터뷰에서 “2021년 9월 공포된 탄소중립·녹색성장기본법으로는 기후위기를 해결할 수 없기에 해당 법이 국민의 건강권, 생명권, 환경권을 보호할 국가의 의무를 규정한 헌법 10조에 위배되는 법률이라고 보고 소송을 제기했다”고 밝혔다. 그는 “특히 법에서 규정한 2030 온실가스 감축목표가 문제라고 보았다”며 “이후 시행령에서 목표가 강화되었지만 여전히 국제적인 기준에 미치지 못하며 과학적인 근거도 없다”고 지적했다. 소송단은 아기기후소송단과 마찬가지로 2030년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8년 대비 최소 55% 감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재 국내에서는 이와 함께 2020년 3월 청소년기후행동 활동가 19명이 제기한 소송과, 같은 해 11월 청소년 2명 등이 제기한 소송 등 총 4건이 헌법재판소에 계류되어 있다. 모두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규정한 ‘탄소중립 녹색성장기본법’의 위헌성을 다투는 내용이다.
이처럼 정부의 미흡한 대응이나 기업의 온실가스 배출로 인해 기후변화가 가속화함으로써 입게되는 피해를 구제하도록 요구하는 재판을 기후소송이라고 한다. 기후변화 관련 국가목표 상향 조정이나 정책 변경 등을 요구하는 소송, 기업을 상대로 피해배상을 요구하는 소송이 세계적으로 늘고 있다. 지난달 카리브해의 섬나라 푸에르토리코 지방자치단체 16곳이 미국의 석유 대기업 엑손모빌 등을 상대로 기후변화 피해를 배상하라며 낸 소송, 2018년 국제 환경단체 ‘지구의 벗’이 네덜란드의 석유회사 로열더치쉘에 탄소저감을 요구하며 제기한 소송 등이 대표적이다.
런던정경대(LSE) 그랜덤기후변화연구소에 따르면 2005년부터 지난해 7월까지 각국 정부를 상대로 진행 중인 기후소송은 80여 건이다. 한국, 미국, 캐나다, 호주, 유럽연합 등 주요 탄소배출국뿐 아니라 멕시코, 콜롬비아, 파키스탄, 페루 등 개발도상국에서도 기후소송이 증가하고 있다.
네덜란드 대법원 등 ‘기후변화 위험과 피해’ 인정
기후환경단체 플랜1.5의 윤세종 변호사가 쓴 <기후위기에서 사법부의 역할> 등 관련 논문과 판결문 등을 종합하면 정부의 책임을 묻는 기후소송에는 두 가지 주요한 법리적 쟁점이 있다. 먼저 ‘정부의 기후변화 정책이 실제로 청구인의 기본권을 침해하는지’다. 이를 판단하기 위해 법원은 과학적 사실들에 근거해 기후변화로 인한 위협이 존재하는지, 그러한 위협이 청구인의 기본권을 침해하는지를 심사하게 된다. 또 다른 쟁점은 ‘정부와 국회가 설정한 기후변화 대응 방안에 관해 사법부가 어디까지 개입할 수 있는가’의 문제다. 선출된 권력인 행정부와 입법부가 정치적 논의 과정을 거쳐 내놓은 목표를 사법적으로 심사하는 것이 삼권분립의 원칙을 침해한다는 관점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선진국의 최고 법원들은 최근 잇달아 원고 승소, 즉 기후 시민의 승리를 인정하는 판결을 내리고 있다. 이런 진보적 판결의 시작점은 네덜란드의 ‘우르헨다(Urgenda) 판결’이다. 네덜란드의 환경단체 우르헨다는 2013년 네덜란드 정부가 제시한 ‘1990년 대비 2020년까지 14~17% 온실가스 감축’이라는 목표가 불충분하니 ‘25~40% 감축’으로 상향 조정해야 한다며 시민 900여 명과 함께 소송을 제기했다. 6년을 끈 소송 끝에 네덜란드 대법원은 우르헨다의 손을 들어줬다. 정부가 국민의 기본권이 침해당하지 않도록 하는 유럽인권협약(ECHR)을 위반했으니, 온실가스 배출량을 2020년까지 1990년 대비 최소 25% 감축하라고 명령한 것이다. 이 기념비적 판결 후 각국 정부를 대상으로 한 소송이 급격하게 증가했다.
우르헨다 사건 최종 판결문에 따르면 네덜란드 대법원은 지구 온도가 산업화 이전에 비해 1.5도 이상 상승하면 극한의 기후, 식량 공급을 위태롭게 할 수 있는 생태계 붕괴, 해수면 상승과 같은 심각한 결과가 발생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네덜란드 국민들이 생명을 잃거나 가정생활이 파괴될 수도 있고, 네덜란드를 포함한 전 세계 다수의 생명과 복지, 생활 환경이 위태로워질 것이라고 인정했다. 판결의 근거는 유엔(UN) 산하 기후변화에관한정부간협의체(IPCC) 보고서와 2015년 체결된 파리기후협약이었다. 네덜란드 대법원은 기후변화의 위험이 수십 년 후에 현실화하고, 특정인이 아닌 인구 다수에 영향을 미친다고 하더라도 국가는 여전히 그러한 위험으로부터 청구인들을 보호할 의무가 있다고 판시했다.
네덜란드 정부가 ‘온실가스 배출량 감축 방법을 결정하는 것은 정부와 국회의 재량’이라고 주장한 것에 관해 네덜란드 대법원은 “정부와 국회가 이러한 재량을 이용할 때 이들이 구속을 받는 법의 한도 내에서 했는지를 판단하는 것은 법원에 달려 있다”며 사법적 개입의 정당성을 인정했다. 대법원은 또 기후변화가 전 세계적으로 해결되어야 할 문제일지라도 개별 국가 정부는 ‘자신의 몫’을 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명시했다.
행정부·국회가 제 역할 못할 때 사법부 개입 가능
우르헨다를 대변하는 사라 미드 변호사는 지난해 11월 29일 <단비뉴스> 화상 인터뷰에서 “기후소송은 근본적으로 정부가 법체계 안에서 합당하게 행동하고 있는지에 대한 판단을 법원에 요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법원은 국가의 다른 권력 기관들이 기본적 자유(fundamental freedoms)와 인권 보호를 명시하고 있는 헌법에 따라 행동하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기관이기 때문에, 오히려 이러한 법원의 역할이 권력 기관들 사이의 균형을 맞춰 준다”고 설명했다. 미드 변호사는 “특히 모든 국가가 기후변화를 막기 위해 제 몫을 다할 의무가 있다고 명시한 이 판결은 독일 등 다른 나라 법원들도 이미 받아들인 주장”이라며 “우르헨다 판결에서 가장 중요하고 의미 있는 부분 중 하나”라고 강조했다.
우리나라와 사법 구조가 비슷한 독일에서도 이와 같은 판례가 있었다. 2020년 2월 독일 시민들은 2030년까지 1990년 대비 온실가스 배출을 55% 감축하도록 규정한 독일 ‘연방기후보호법’이 기본권을 침해한다며 독일 정부를 상대로 헌법소송을 냈다. 소송 청구인이자 환경운동가인 루이자 노이바우어의 이름을 따 ‘노이바우어 사건’이라 불리는 소송이다.
2021년 4월 독일 연방헌법재판소는 “연방기후보호법의 온실가스 감축 계획이 미흡하고, 2030년 이후로는 구체적 감축 목표를 제시하고 있지 않아 미래세대의 자유권을 잠재적으로 침해할 수 있다”며 관련 규정에 대해 일부 위헌 결정을 내렸다. 이에 더해 독일 정부에 감축 목표를 개정할 것을 명령했다. 올라프 숄츠 당시 재무장관은 헌법재판소 판결이 나온 지 일주일 만에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1990년 대비 65% 줄이는 개정안을 발표했다.
기후위기 막으려면 확장된 사법적 관점 필요
환경단체와 법률 대리인들은 유럽의 사례처럼 우리 사법부도 기후위기에 관해 확장된 관점을 갖고 전향적 판결을 내려 줄 것을 기대하고 있다. 청소년기후행동의 헌법소원을 대리하고 있는 윤세종 변호사는 지난해 11월 14일 <단비뉴스> 화상 인터뷰에서 “지금까지 과학적으로 증명된 기후변화로 인한 피해들, 그리고 앞으로 예상되는 피해들을 다 종합해 보면 국민의 기본권 침해가 성립한다는 점이 충분히 인정될 수 있다”고 말했다. 기후소송이 ‘보여주기’를 위한 퍼포먼스성 소송이 아니라, 법리적 정당성을 충분히 인정받을 수 있는 현실적 소송이라는 뜻이다.
윤세종 변호사가 기후위기 시대 법원의 역할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김은송 기자
“사실 국회와 정부가 기후변화에 대해서 제대로 대응하지 않는 것이 현재 국민 다수의 뜻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결과로 21세기 후반을 살아가야 하는 다음 세대의 삶이 감내할 수 없는 수준으로 나빠진다면 그것은 다수의 소수에 대한 억압이기도 한 것이죠. 이렇듯 다수의 뜻이 소수를 과도하게 억압할 때 ‘이건 아니다’라고 말해주는 것이 헌법재판소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현재 우리 정부는 기후소송 청구인들의 주장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정부는 지난해 3월 청소년기후소송과 기후위기비상행동의 헌법소원에 관해 환경부 장관 이름으로 정부 입장을 담은 의견서를 헌법재판소에 제출했다. 의견서에서 정부는 “청구인들이 위헌이라고 주장한 탄소중립기본법이 청구인들의 기본권을 침해하지 않기 때문에 해당 헌법소원은 심판대상이 되지 못하며, 설사 헌법소원 심판청구가 적법한 것이라고 보더라도 청구인들의 환경권, 생명권, 행복추구권, 평등권 등 기본권은 침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서면으로 진행되는 헌법소원의 특성 상 청구인들은 청구 취지를 보강하는 내용을 담은 보충 의견서를 제출하며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다.
📰[단비뉴스 | 기자 김은송· 유지인· 목은수] 기사 전문
http://www.danbi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2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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