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신문 |국가가 외면한 아이들②] 출생통보제·보호출산제 도입 ‘부작용’ 없나
법적 문제 발생·양육 포기 우려…“제도 도입 서두르기 전 출생신고 않는 원인과 양육 시스템 살펴야”
[일요신문] 정부와 여당이 출생통보제와 보호출산제 동시 도입을 추진키로 했다. 태어난 기록은 있지만 출생신고 기록이 없는 아동 2236명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영아가 살해·유기된 사건이 발생한 것으로 파악돼 대책 마련에 나선 것이다. 하지만 입법적·행정적 보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많다.
당정은 지난 28일 ‘아동보호체계 개선대책’ 협의회를 개최하고 출생통보제와 보호출산제 동시 도입을 추진하기로 결정했다. 출생통보제는 부모의 출생신고 의무를 아이가 태어난 의료기관에 두는 것을 말한다. 보호출산제는 임신부의 익명 출산을 보장하고 출생신고를 할 수 있도록 정부가 지원하겠다는 제도다.
출생통보제와 보호출산제 동시 도입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특히 한부모 지원 단체·복지 단체 등은 출생통보제는 찬성하지만 보호출산제는 반대하는 입장을 보인다. 임신부의 양육 포기를 부추기고 아이의 알 권리를 침해한다는 이유에서다. 보호출산으로 태어난 아이는 친부모의 신원을 알 수 없으며 자신이 왜 익명으로 출생신고 됐는지도 모르게 된다.
보호출산제가 현장과 괴리감이 있다는 비판도 거세다. 유미숙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 대외협력국장은 “‘출산을 숨기려 한다’는 건 현장을 모르고 하는 말”이라며 “상담을 해보면 출산 사실을 숨기고 싶어 하는 여성보다 임신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출산하거나 복잡한 혼인관계로 출생신고를 하지 못하는 여성이 더 많다”고 말했다. 청소년 미혼모나 인지 장애 등 정신질환을 겪는 여성들이 대표적이다.
유미숙 국장은 “A 남자와 혼인신고 했다가 안 맞아서 갈라졌는데 이혼하지 않은 채 B 남자와 만나 B 남자의 아이를 임신하고 낳은 뒤 ‘A 남자와 이혼하고 출생신고 하면 아이 호적이 B 남자로 가겠지’라고 착각하는 청소년 미혼모 사례가 많다”며 “이들은(청소년 미혼모들) 익명 출산을 원하는 게 아니라 출생신고 제도 자체를 자세히 모르는 것”이라고 말했다. 유미숙 국장은 “익명 출산을 원할 만큼 출산 사실을 숨기고 싶었으면 아이를 (베이비박스에) 이미 놓고 갔을 것”이라면서 “보호출산제가 현장에서 실효성이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다시 말해, 보호출산제가 없어서 아이들이 버려진다는 게 아니라는 설명이다. 박민아 정치하는 엄마들 공동대표는 “키우기 힘들다고 익명으로 출산해 양육을 포기하도록 만들게 아니라 국가 지원을 통해 어떤 가정에서도 아이를 양육할 수 있는 시스템을 먼저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출생통보제 도입에 대해서도 성급하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의료업계에선 의료기관의 과도한 정보 수집이 개인정보보호법에 어긋날 수 있다고 말한다. 김동석 대한개원의협의회 회장은 “현재 산부인과에선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에 분만 기록을 보낸다”며 “분만 기록과 함께 행정기관에서 추가적인 출생 자료를 원하면 병원 측에서 제공하는 것까진 가능하다”고 말했다.
의료업계에 따르면 현재 심평원은 각 의료기관이 분만 진료비를 청구할 때 제출하는 신생아 정보를 가지고 있다. 질병관리청에서도 병원에서 태어난 아기의 임시 신생아 번호 등이 담긴 결핵예방접종 자료를 갖고 있다. 출생한 아이는 의무적으로 결핵예방 접종을 맞아야 하므로, 의료기관 측에서 질병관리청에 출생 사실을 통보한다.
의료현장에선 출생통보제로 업무 부담이 가중될 수 있다고도 말한다. 김동석 회장은 “산부인과 의사 수 감소로 현장 업무가 쉽지 않은 상황에서 행정업무까지 맡기면 (산부인과) 의사들에게 무리”라고 호소했다. 또 “추후 출생신고와 관련해 문제가 발생하면 그 책임을 의사들이 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법률사무소 승소의 정훈태 대표변호사는 “의사는 공무원이 아니다”라며 “법적인 효력을 발생시키는 서류 작업을 사적기관인 의료기관에 맡겨도 되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출생통보제와 관련해선 또 다른 문제도 있다.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외국인 국적 부부의 자녀 출생신고다. 대한민국 국적법 제2조 1항에는 ‘출생 당시에 부 또는 모가 대한민국의 국민인 자는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대한민국은 속인주의(부모양계혈통주의) 원칙으로 인해 국적을 취득하기 위해선 부모 중 한 명이 대한민국 국민이어야 한다. 즉, 다른 국가 국적을 가진 외국인 산모가 국내에서 출산할 경우 친부로 추정되는 남성이 외국인이면 출생신고를 할 수 없다. 대한민국 국적 취득이 불가능해서다.
지난 22일 감사원에서 배포한 보도자료에 따르면 2015~2022년의 출생 등록이 안 된 임시신생아번호는 6000여 개다. 이 중에서 국내 미등록 아동 수는 2236명이다. 나머지 4000여 명은 외국인 미등록 아동이다. 지난 5월 법무부에선 지난해 말 기준 국내에 체류 중인 19세 이하 미등록 이주 아동의 수가 5078명이라고 발표했다.
이런 상황에서 출생통보제를 도입하면 외국인 신생아 출생신고에 대한 혼란이 커질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내다본다. 다른 나라 국적을 가진 부모가 국내에서 외국인 신생아를 출산해 의료기관에서 출생신고할 경우 훗날 복잡한 법률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훈태 변호사는 “속지주의를 택한 미국처럼 ‘미국 땅에서 태어나면 부모의 국적 상관없이 미국인이다’라고 하면 출생통보제를 수월하게 진행할 수 있지만 속인주의인 대한민국에선 출생통보제를 도입하면 나중에 잡음이 발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출생통보제와 보호출산제 도입을 서두르기 전 어떤 가정 형태에서도 양육을 잘 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돼 있는지 살펴봐야 한다고 조언한다. 김동석 회장은 “미신고 영유아 수를 파악했으면 ‘왜 출생신고가 이뤄지지 않았는지’ 원인을 찾아 해결해야 한다”며 “‘출생신고 안 됐으니까 출생신고 바로 될 수 있도록 하자’는 식으로 나가면 또 다른 문제가 터진다”고 꼬집었다. 유미숙 국장은 “국가는 산모가 출산 사실을 숨기도록 만들지 말고 어떤 상황에서 출산해도 아이를 잘 키울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소영·김정아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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