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 정치하는엄마들 서성민 활동가] 새벽에 아이가 응급상황이라면... 대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주장] 정부·지자체 역할 방기 속 '응급실 뺑뺑이' 소아·청소년 응급체계 미작동 상황
'응급실 뺑뺑이', 소아·청소년 의료환자가 발생한 위급한 상황에서도 응급실을 찾지 못해 구급차를 탄 상태로 여기 저기 지역을 넘나들며 병원을 찾아다니는 상황을 뜻합니다.
우리나라는 오래전부터 응급치료에관한법률(아래 응급의료법) 등 법률로서 응급환자에 대해 국가와 지자체가 어떠한 대비를 하고, 대처를 해야 하는지를 정해 두고 있습니다. 그러나 최근까지 소아·청소년응급환자가 각 응급의료기관에서 적절한 조치를 받지 못해 사망에 이르는 상황이 발생하면서 국민들은 소아·청소년 응급의료체계 붕괴를 우려하고 있습니다.
어디로 가야 할지, 어떻게 진료받아야 할지 모르는 상황
▲ 응급실(자료사진). | |
ⓒ pexels |
언론에 보도된 사례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지난 3월께 대구광역시의 한 건물에서 추락한 17세 여학생이 응급실을 찾아다니다가 구급차에서 숨진 이른바 '대구 응급실 뺑뺑이' 사건이 있었습니다.
지난 24일 SBS '그것이 알고싶다'는 정욱이의 사례를 조명했습니다. 정욱이는 2023년 5월께 우리나라의 가장 큰 의료 인프라를 갖춘 서울에서 9곳 이상의 병원에서 진료 및 입원거절을 당한 뒤 사망에 이르게 됐습니다. 급성 폐쇄성 후두염으로 인한 질식사인데, 일각에선 조기 의료 조치를 하면 치료가 가능하다는 의견이 있습니다. 안타까움이 더해지는 상황입니다.
특정 개인의 유별난 상황이 아닙니다. SBS '그것이 알고싶다'에 나온 많은 부모와 아동들은 지역을 오가며 응급실을 찾아 진료를 받기 위해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2023년 대한민국의 현실이 맞는지 두 눈을 의심케 했습니다.
'소아청소년과 의료대란' '응급실 뺑뺑이' 등으로 표현되는 소아응급의료체계 미작동 상황은 우리 주변에서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아동을 양육하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소아청소년과 진료를 위해 어떻게 병원 대기를 해야 하는지, 새벽에 아동이 아플 경우 어떻게 해야하는지 계속 고민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당장 만약 우리의 아이가 새벽에 고열이 나서 소아경련증상이 생긴 응급상황이 되면, 어디로 가서 어떻게 진료를 받을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것입니다.
앞이 안 보이는 현실에서 갈등은 커져갑니다. '의사가 아이를 돌보지 않는다' '소아환자의 부모가 너무 예민하게 군다' '소아청소년과 의사의 지원자가 부족해 수급이 어렵다' '소아청소년과 수가가 낮다' 등의 주장이 오가며 서로에게 화살을 돌리는 모양새입니다.
지역응급의료기관이 있으면 무엇 하나...
▲ 한 소아병원의 모습(자료사진). | |
ⓒ 연합뉴스 |
이런 일이 왜 발생하는지를 고민하기 위해선, '왜 사회가 피해자를 충분히 보호하지 못하는 것인가'를 짚어보고, 책임 소재를 가려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해법이 도출될 수 있습니다. 최근 '응급실 뺑뺑이' 사건의 본질적 책임은 정부(보건복지부)와 각 지자체에 있다고 봐야 합니다.
지면의 한계가 있으니, 제가 살고 있는 시흥시에 대해서만 살펴보겠습니다. 다만 지금부터 다룰 내용은 시흥시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절대다수의 시·군·구에 해당함을 미리 말씀드립니다.
우리나라 응급의료기관들에 대해 권역응급의료센터와 전문응급의료센터는 보건복지부가, 지역응급의료센터는 시·도지사가, 지역응급의료기관은 시·군·구청장이 지정하도록 돼 있습니다. 이에 따라 시흥시는 지역응급의료기관으로서 시화병원, 센트럴병원, 신천연합병원을 지역응급의료기관으로 지정해뒀습니다.
그런데 시흥시민들은 늦은 밤 시간이나 새벽에 원인 모르게 아픈 아이를 업고 위 병원을 찾아가도 응급실엔 소아응급의료를 담당하는 의사가 없기 때문에 타 지역으로 '응급실 뺑뺑이'를 시작할 수밖에 없습니다.
다른 시·군·구의 지역응급의료기관처럼 위 병원은 외래진료를 보는 소아청소년과 전문의가 1명, 2명인 상황입니다. 27일 <한겨레>의 보도에 따르면, '전공의 수련병원의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연차별 수련 현황'상 전국 1~4년차 소아청소년과 전공의는 2018년 850명에서 2023년 304명으로 546명이나 줄었다고 합니다. 전공의의 감소는 전문의의 감소로 귀결될 수밖에 없습니다.
응급의료법은 '지방자치단체가 지정한 응급의료기관에 재정을 지원할 수 있도록 하고, 지방재정법은 법률에서 정한 경우, 지방자치단체가 개인 또는 법인·단체에 기부·보조, 그 밖의 공금 지출을 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시흥시는 그동안 시흥시민 소아응급의료환자가 인천의 가천대 길병원으로, 고려대 안산병원으로 가서 오랜 대기 끝에 치료받는 것을 당연하게 여길 게 아니라(지금은 이마저도 어려운 상황입니다),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을 진작에 해야 했습니다.
시흥시가 지정한 응급의료기관에 대해서는 지정 및 재지정, 행정처분, 업무검사와 보고를 받도록 돼 있으므로 이 상황을 몰랐다고 할 수 없는 겁니다. 10년 전에도, 20년 전에도 전국 각지에서 유사한 사례가 발생했기 때문에 잘 알고 있었다고 보는 게 합당합니다.
시흥시 인구는 50만 명이 넘었습니다. 이것을 기념하는 것보다 시흥시의 많은 아동들에게 응급상황이 발생했을 때, 아동이 안전하고 행복한 '아동친화도시'를 만들 구체적 방안을 고민하고 제시하는 게 중요한 시점이라 생각합니다.
저는 궁금합니다. 만약 내일 새벽 우리 아이에게 응급상황이 발생하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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