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학생인권 VS 교권’ 프레임, 10년 전도 지금도 “입증 안 돼”
학생인권발전과 청소년인권을 위한 청소년-시민 전국행동 회원들이 지난달 26일 서울시의회 앞에서 본회의에 상정된 학생인권조례 폐지안을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이준헌 기자
학생인권조례 시행 지역에서 학생인권 존중 정도가 커질수록 학생들이 교권을 존중하는 수준도 높아진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학생인권조례에 대한 효용을 높게 느끼는 학생일수록 교권을 더 존중한다는 분석 결과도 제시됐다. 이같은 연구 결과는 최근 정부와 지방의회가 학생인권조례 폐지를 추진하면서 가정한 ‘학생인권은 교권과 상충한다’는 입장과 배치된다.
6일 국회입법조사처가 지난달 말 발간한 학술지 <입법과 정책>에 실린 논문 ‘적극적 학생인권의 달성과 전문적 교권 존중의 관계에서 학생인권조례 효용의 조절효과’를 보면 학생인권과 교권은 대립되는 관계가 아닌 상호보완적 성격인 것으로 실증분석 결과 확인된다. 저자인 김범주 국회입법조사처 조사관은 학생인권조례를 시행 중인 경기도 초·중·고교 1만9061명 대상 설문조사 결과(2022년)를 활용해 이같은 연관성을 실증분석했다.
논문은 학교가 규칙 등을 만들거나 고칠 때 학생들의 의견을 반영하는지, 학생과 관련된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 학생의 의견을 듣고 학생이 참여할 권리가 있는지, 학생의 다양성을 고려한 교육과 상담이 이뤄지고 있는지 등의 9개 문항에 대한 응답 평균값을 ‘적극적 학생인권 달성’이라는 독립변수로, 교원의 지적·기술적 권위에 대해 학생이 존중하는 정도를 ‘전문적 교권 존중’의 종속변수로 상정했다. 여기에 학생인권조례에 대한 효용을 조절변수로 활용해 분석했다.
분석 결과 학생인권조례 실시 지역에서 학생인권이 달성될수록 학생들의 교권 존중 정도도 증가하는 경향이 확인됐다. 김 조사관은 “학생인권조례 실시 지역에서 적극적 학생인권이 일정 수준(1단위)만큼 증가할 때 전문적 교권 존중 정도는 약 13.7%가량 늘어날 것으로 기대할 수 있다”고 했다. 이는 학생이 학교에서 자신의 인권을 존중받는다고 체감하는 정도가 커질수록, 교사의 권위도 인정하는 경향을 보이는 결과로 해석할 수 있다.
김 조사관은 학생들이 느끼는 학생인권조례 효용에 따른 교권 존중 수준의 차이도 분석했다. 김 조사관은 “학생인권조례 효용이 높은 학생 집단은 그렇지 않은 학생들에 비해 전문적 교권 존중 정도가 약 22.1% 높을 것으로 기대할 수 있다”고 했다. 학생인권조례가 학생 인권을 보장해준다고 느끼는 학생일수록 교권 존중 수준 또한 높았다는 의미다. 현재 시행중인 학생인권조례는 모두 총칙에 학생의 책무로서 교직원 등 타인의 인권을 존중하여야 한다는 규정을 두고 있다.
서울시의회에서 지난달 26일 열린 제323회 서울특별시의회 임시회 3차 본회의에서 학생인권조례 폐지안이 통과되고 있다. | 한수빈 기자
김 조사관은 또 학생인권조례의 효용을 상대적으로 낮게 체감하는 학생이더라도 자신의 인권이 존중 받는다고 느낄수록 “전문적 교권 존중이 증가하는 정도가 약 6.2% 강화된다”고 분석했다. 그는 연구결과를 토대로 “학생인권과 교권은 결코 긴장관계가 아니라 상호 인격적 보완관계를 가진다고 봐야한다”고 했다.
지난해 나온 연구 논문 ‘학생 인권과 교권 관계에 관한 학생의 인식’도 경기도 학생 대상 설문조사를 이용해 “학생들이 가정과 학교에서 본인의 인권이 존중받는다고 느낄수록, 학내 구성원 간 서로의 인권을 존중한다고 인식할수록 교권 존중 수준도 높았다”고 분석했다.
2014년 논문 ‘학생의 인권보장 정도와 교권 존중과의 관련성’은 인권보장 수준이 높고 인권교육을 많이 받은 학생일수록 그렇지 않은 학생보다 교사의 교육권 존중에 적극적이었다는 결론을 내놨다.
‘학생인권과 교권이 상충한다’는 주장을 입증할 근거는 부족하지만, 학생인권조례 폐지는 줄곧 교권 침해의 손쉬운 해결책으로 지목받았다. 교권 침해 문제가 발생하면 근본 원인과 대책을 찾기보다 학생인권조례로 책임을 돌려 비판을 피해갔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지난해 서울 서초구 한 초등학교의 교사가 학부모 민원 등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 발생한 뒤 정부가 비판한 대상도 학생인권조례였다. 사건 직후 윤석열 대통령과 이주호 교육부장관이 차례로 나서서 조례 개정을 거론했다. 조례에 담긴 성별정체성에 따른 차별 금지 조항을 공격하는 보수 종교단체 등이 정부 기조에 편승하면서 정치 쟁점화 경향이 확산됐다. 김 조사관은 “자신의 권리를 충분히 보장받고 적극적으로 실현할 수 있다고 여기게 된 학습자일수록 타자의 지위와 권위를 존중할 수 있다는 사실이 연구 결과 확인됐다”고 밝혔다.
📰[경향신문 | 기자 김원진] 자세히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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