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성명] "졸속 추진 AI 디지털교과서 강행" 최상목 권한대행의 거부권 행사를 강력히 규탄하며, 국회에 시급한 입법을 촉구한다
1.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은 2025. 1. 21. AI 디지털교과서의 지위를 교과서가 아닌 교육자료로 하는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이하 ‘개정안’)에 대해서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하였다. 정부가 제출한 재의요구서를 보면, 정부는 ① 개정안은 인공지능을 활용한 교과서 개발을 허용하지 않음으로써 학생들의 학습권 등을 침해하고, 지역 간 또는 학교 간 교육격차를 심화시켜 균등하게 교육을 받을 권리를 침해하는 점, ② AI 디지털교과서의 교과서 지위를 박탈하면, 검정심사에 합격한 AI 디지털교과서가 교과용 도서로 사용될 것으로 신뢰한 교과서 개발업체의 신뢰를 훼손하는 점, ③ 정부가 AI 디지털교과서에 대한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한 다각적인 조치를 추진하고 있는 상황에서 개정안은 사회에서의 혼란을 가중시키는 점을 거부권 행사의 이유로 밝히고 있다. 그러나 다음에서 살펴보는 바와 같이, 위 사유들은 정부가 AI 디지털교과서 추진을 강행하기 위한 형식논리에 불과한 것으로서 전혀 납득하기 어렵다.
2. 대한민국 헌법 제31조 제6항은 “학교교육 및 평생교육을 포함한 교육제도와 그 운영, 교육재정 및 교원의 지위에 관한 기본적인 사항은 법률로 정한다.”라고 정하여, 입법자가 교육에 관한 본질적 사항에 대해서 스스로 결정하라고 규정하고 있다. 헌법재판소도 “헌법은 교육제도 법률주의를 명시하고 있기 때문에 교육제도의 일환인 교과서제도에 대하여서도 법률주의의 원칙에 따를 수밖에 없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라고 판시(헌법재판소 1992. 11. 12. 선고 89헌마88 결정)한 바 있다. 그런데, AI 디지털교과서를 교과서로 채택하는 것은, 교육의 주체를 교사에서 AI로, 매체를 종이문서에서 디지털문서로 각 전환하여 교육의 상대방에게 직접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서 교육의 본질적인 사항에 해당하므로 이는 헌법에 따라 법률로 정하여야 하는 것이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윤석열 정부는 초∙중등교육법이 아닌 ‘교과용도서에 관한 규정’ 시행령 제2조 제2호 규정을 통해 AI 디지털교과서 도입을 추진하여 왔는바, 이는 위 법률유보원칙에 위배되는 것이다. 즉, 정부가 ‘시행령 정치’의 일환으로, 시행령을 통해 위법하게 AI 디지털교과서의 교과서 도입을 추진하여 놓고, 개정안으로 인해 학생들의 AI기술을 활용한 교과서를 통해 학습받을 권리가 침해되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그 자체로 타당하지 않다.
3. 또한 개정안에서는 AI 디지털교과서를 ‘교육자료’로 인정하고 있기 때문에, 그 활용이 전면적으로 금지된 것도 아니므로, AI기술에 기반한 학생들의 학습권이 침해된다고 보기도 어렵다. 더욱이, 교육 현장은 학교의 위치, 학생 구성, 교사의 교육 철학, 디지털 기기 접근성 등에 따라 매우 다양한 특성을 가지고 있고, 실제로 학교에서는 학교운영위원회의 심의 등 민주적 절차를 거쳐 교육자료 도입, 교과서 선택 등을 자율적으로 결정할 수 있으므로, 각 학교별 교육환경을 고려하지 아니하고 천편일률적으로 AI 디지털교과서 도입을 강제하는 것이 오히려 학생들의 학습권을 침해하는 것이다.
4. 한편 교과서 개발업체들의 신뢰보호를 거부권 행사의 근거로 삼은 것에 대해서도 경악을 금할 수 없다. 그동안 학계, 시민단체, 일선 교사들이 AI 디지털교과서 도입과 관련된 많은 우려를 표한 바 있다. AI 디지털 교과서는 기기를 이용하는 학생, 학부모 및 교사들의 민감한 개인정보, 학습데이터 등을 민간 에듀테크 업체 등에게 제공하도록 설계되어 있기 때문에, 위 개인정보 등은 민간 업체에 집적되므로 개인정보 유출 및 오남용의 위험성이 존재하게 된다. 또한, AI 디지털교과서를 강제로 도입하게 되면, 현실적으로 교사와 학생은 개인정보를 수집∙이용에 대해서 동의하지 않을 수 없게 되고, 이는 헌법으로 보장된 개인정보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무엇보다 AI 디지털교과서의 효과가 검증되지 않았다는 점이 가장 우려스러운 부분이다. 오히려 스웨덴 정부에서는 문해력 저하 등의 문제로 AI 디지털교과서 도입을 중단하는 조치를 취한 바 있으며, 프랑스, 네덜란드, 핀란드, 이탈리아 등 여러 유럽국가에서는 디지털기기가 학생들의 집중력과 학습능력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초등학생들의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사용을 금지하는 추세이다.
그러나 교육부는 2024. 1.부터 2024. 11.까지 1년이 되지 않는 기간 동안 AI 디지털교과서 개발, 검정심사 작업을 마무리하는 등 국가의 백년대계라고 할 수 있는 교육정책의 핵심인 교과서 도입을 졸속으로 강행추진하였다. 그리고 정부는 민간업체가 수집하는 개인정보를 어떻게 보호·관리할지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을 하지 않았고 이에 대한 규범적·제도적 기반을 마련하지도 않았으며, 개인정보자기결정권 침해 문제에 대해서도 침묵하였고, AI 디지털교과서의 편향성과 프로파일링이 학생들에게 미칠 수 있는 부정적인 영향에 대해서도 별다른 대비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
위와 같이 AI 디지털교과서가 도입됨으로써 침해되는 학생들의 정보인권, 학습권의 문제는 매우 심각하고 중대하다고 할 것인데, 정부는 이에 대한 아무런 대책을 마련하지 않은 채 개정안으로 인해서 교과서 개발업체들의 신뢰가 훼손되는 것만을 걱정하고 이를 거부권행사의 이유로 삼고 있는 바, 이와 같은 정부의 주객전도식 문제인식은 매우 처참하다고 할 것이다. 이는 정부가 에듀테크 산업을 육성할 목적으로 AI 디지털교과서를 도입하고 막대한 재정을 민간 개발사에 투입하고, 결국 공교육이 사교육화 되는 것을 방관하는 것이 아니냐는 일각의 비판이 사실일지도 모른다는 의구심마저 들게 한다.
5. 금번 개정안은 정부가 법률적 근거도 없는 상태에서, 그 효과도 검증되지 않은 AI 디지털교과서를 졸속으로 강행도입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국회에서 가결된 법률안이다. 정부는 그럴듯한 형식논리로 포장하여 거부권을 행사하기 이전에, 시행령으로 AI 디지털교과서 도입을 하는 것이 가능한 것인지, AI 디지털교과서 도입이 정말로 필요한 것인지, AI 디지털교과서 도입으로 인해서 발생할 여러가지 기본권 침해 문제에 대해서 구체적인 대비책이 마련되어 있는지 먼저 성찰해보아야 할 것이다.
6. 여당에게 엄중하게 경고한다. 기업의 이익을 위해 우리사회의 교육을 붕괴시키는 과오를 범하지 말라. 만약 금번 개정안의 재표결에 협조하지 않는다면, 이에 대한 엄중한 책임을 지게될 것이다.
2025년 2월 5일
교육정책디자인연구소,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디지털정보위원회, 정보인권연구소, 진보네트워크센터, 정의당 청소년위원회, 정치하는엄마들, 진보당청소년특별위원회, 참교육을위한전국학부모회, 참여연대,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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