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사설/칼럼] 이준석 제명부터

프로젝트

 

언어는 발화자와 수신자에 따라 움직인다. 누가 그 말을 언제 어디에서 왜 했는지를 소거하면 해당 언어의 의미를 왜곡하는 건 아주 간단하다. 특히 성폭력처럼 사회적 규범과의 관계에서 계속 의미가 급진적으로 변화해가고 있는 문제일 경우 정확한 언어로 상황을 묘사하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이다. 역사학자로서 성폭력에서 수치라는 감정을 연구한 조애나 버크는 많은 문화권에서 피해자들이 직접적으로 성폭력을 언급하기보다는 “나의 존엄”처럼 완곡어법을 사용했으며, 가해자들은 잔혹한 가해행위 자체를 구체적으로 떠벌린다면 피해자는 “사악한” 같은 감정적 묘사를 하는 경향을 발견했다. 일본에서 성폭력과 관련된 단어들이 “레이프”(rape)처럼 굳이 영어식 표현의 음가를 그대로 발음하는 것도 간접화법의 사례다.

1994년 르완다 집단 학살 때 여성을 강간한다는 단어로 쓰였던 “쿠부호자”라는 말은 르완다 공용어인 키냐르완다어(Kinyarwanda)로 ‘해방되도록 도와주다’라는 뜻이었다. 철저하게 가해자 시각의 말이다. 반면 피해자들은 강간을 뜻하는 표현을 직접적으로 사용하지 않았다. 이들은 간접적인 언어와 비유로 설명했다. 재판에서는 이러한 간접표현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피해자들은 보다 직접적으로 상황을 묘사해야만 했다. 당시 재판에 참여한 익명의 법정 통역은 “우리 문화에서는 성기를 뜻하는 단어를 말하면 안 됩니다. 하지만 법정에서는 해야 하지요. 그러면 증인들은 물론이고 통역들도 충격을 받습니다. 강간을 생생하게 묘사하라는 요구는 여성에게 너무 고통스럽습니다. 통역이 여성인 경우도 있고요”라고 말했다. 피해자들이 피해 경험을 구체적이고 직접적으로 묘사하는 경우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이런 경우는 대부분 무엇인가를 무릅쓰고 한발 더 나아간 용기였다.

지난 5월27일, 대통령 선거 후보자 3차 토론회에서 이준석 당시 개혁신당 후보는 내가 생각하기에 명백하게 언어 성폭력에 해당하는 표현을 사용했다. 그가 직접적으로 묘사한 표현만큼이나 그 말을 하면서 지은 표정이 많은 것을 말해준다. 더러운 것을 입에 올릴 때 그런 표정이 나온다. 그 발언으로 많은 사람이 충격을 받았다. 이준석 의원직 제명에 관한 청원이 시작되었다. 자신의 개인정보를 직접 입력해야 하는 국민청원은 한달 안에 5만명을 채워야 국회 소위원회로 간다.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이준석 의원직 제명에 관한 청원은 이틀 만에 10만명을 모았고 6월26일 현재 59만5천여명에 이르렀다. 당시 생방송으로 송출된 문제의 발언은 방송사에서 이후 묵음 처리가 되었다. 선거방송심의위원회에서는 지난 6월4일 향후 재발 방지 대책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시민단체 정치하는엄마들에서는 정보통신망법 44조 위반, 아동복지법 17조 위반 혐의로 집단 고발에 나선 상태다.

많은 시민이 직접 나서서 해당 발언의 문제를 비판했지만 정작 발언의 당사자는 자신의 진의가 왜곡되었다고 항변한다. 지난 5월29일 기자회견에서 이준석 의원은 자신의 발언을 한동훈과 홍준표 사이에 오갔던 ‘춘향전’ 공방에 비유하며 “수위를 넘는 음담패설”을 대통령 후보의 아들이 했다는 것이 확인되어 그것을 인용한 것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해당 발언은 수위를 넘는 음담패설이 아니라 ‘직접’ 인용하면 할수록 해당 발언의 폭력성이 확산되는 언어 성폭력이었다. 만약 이준석 의원이 평소에 온라인상의 여성 혐오와 성폭력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하고 해당 발언을 그러한 맥락에서 제기한 것이라면 얘기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동안 이준석 의원은 여성이 겪는 폭력 문제에 대한 입장이 정반대였다. 딥페이크 사태 때는 피해 규모를 축소했고, 성범죄 무고죄 강화를 주장했으며, 자신의 지역구인 경기도 동탄에서 일어난 교제폭력 피해 여성이 경찰에 600쪽에 달하는 처벌의견서를 냈음에도 결국 살해당한 사건이 발생했음에도 아무런 입장을 표하지 않았다. 그는 오직 정치적 이해관계를 위해 성폭력을 도구화했고 확대 재생산했다.

정치적 이해관계를 따져 이준석 의원직 제명의 실익을 따지는 이들이 있다. 이들 역시 이 문제를 정쟁화한다는 점에서는 다르지 않다. 그를 제명하는 것만으로 이 문제가 해결될 리 없지만, 만약 이준석 의원이 제명된다면 이는 다 무너진 한국의 공론장에서 중요한 기준을 세우는 일이 될 것이다. 이준석을 제명하자. 그리고 그다음을 얘기하자.

 

[권김현영 여성현실연구소장] 전문보기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120492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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