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뒤통수 따가웠지만, 나는 다섯 시 반에 퇴근하기로 했다 (윤정인)
대학원생 엄마로 사는 것은 그럭저럭해볼 만한 일이었다. 왜냐. 아이가 어렸다. 내가 복직하고 졸업을 향해 달리던 시기는 아직 아이가 막 100일이 지났을 시기였다. 먹고-자고-싸고의 패턴이 일정했다. 나의 ‘클라이언트’인 우리 땡그리의 요구 사항도 무척 단순했다. 밥 아니면 잠, 아니면 기저귀였다.
그리고 아이가 늘 누워 있다는 것도 큰 장점이었다. 아이가 이동할 자유가 오롯이 엄마인 내게 달려 있었기 때문이다. 엄마가 아이와 어디를 가고자 한다면, 아이는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아기띠나 유아차를 타고 다녀야 했다.
정말이지 비교적 행복한 시기였다. 일정한 시간에 어린이집에 보내고, 데려오면 됐다. 아이가 누워서 손만 휘적거리며 꿈틀대던 때이기에, 아이를 눕혀놓고 자동으로 노래가 나오며 돌아가는 최첨단 모빌 하나만 켜 놓으면 엄마가 논문을 쓰든, 보든 땡그리는 엄마를 절대 방해할 수 없었다.
게다가 이 시기를 통해 나는 유기합성 연구자로서 ‘만렙’(한자 찰 만(滿)과 영어 레벨(Level)의 합성어. 게임 캐릭터나 기술이 최대치로 성장한 것을 일컫는 신조어-편집자 주)을 찍었다. 정확성과 스피드를 동시에 트레이닝했다고나 할까?
◇ 다섯 시 반에 퇴근할 수 없었다면, 나는 아이를 키울 수 없었을 것이다
출산휴가 후 복귀한 나는 같은 팀 박사님들의 배려로 출퇴근 시간 또한 조절할 수 있게 됐다. 물론, 출산휴가 때처럼 나는 쓸 수 없었던 제도를 또 쓰게 된 것이다. 당시 내가 적을 두고 있던 연구소에서는 일-가정 양립 정책을 시범 운영하고 있었다. 그중 하나가 유연근무제도였는데, 언제 출근하든 하루에 8시간만 일하면 되는 시스템이었다.
그래서 자녀가 초등학생인 박사님들은 꼭두새벽에 출근해서 오후 3시쯤 퇴근하시기도 했다. 우리 팀 박사님들은 “이런 제도가 연구소에 있는데 네가 학생이라고 못 쓸 이유가 무엇이냐”며 제도 활용을 적극 권장했다. 그 말을 받들어 제도 신청을 위해 연구원 포탈에 접속했지만, 나는 학연생이라 해당하지 않는다며 신청할 수 없었다. 이 내용을 보고하니 또 친정아버지로 빙의한 지도 박사님께서는 “그냥 쓰라”고 하셨다.
다만, 다른 사람들이 놀랄 수도 있으니 나의 출퇴근 시간만 알리고 제도를 활용하라고 승인해 주셨다. 하지만 이미 출산휴가만으로도 나는 아주 멋쩍었다. 쉽게 대답을 못 하고 쭈뼛거리자 지도 박사님은 “아이가 어린이집에 늦게까지 있으면 안 된다. 우리가 이 정도도 이해 못 할 사람들이니?”라고 말씀하셨다. 이렇게, 팀의 배려로 나는 아침 8시 30분 출근해 오후 5시 30분에 퇴근할 수 있게 됐다. 그리고 예상한 대로 수많은 말을 들었다. 이때 들은 뒷말만으로도 나는 내가 무병장수할 것이라 자신한다.
하지만 지도 박사님의 말씀은 잘못된 것이 없었다. 어린 아기가 기관에 오래 머무는 것, 그렇게 좋은 상황이 아닌 것은 맞다. 이제 100일 지난 아기 아닌가…. 게다가 학연생의 출퇴근, 근무시간, 휴가는 전적으로 지도 박사의 재량이다. 지도 박사님이 결정하신 사항을 뒤에서 누가 이러쿵저러쿵하든 말든, 나도 지도 박사님도 굳이 신경 쓸 이유가 없다. 다만 다른 팀 박사님들을 찾아뵙고 출퇴근 시간을 조정했음을 알리며 양해를 구했다. “진짜 그렇게 하기로 했어!?”라고 묻는 한 박사님의 질문에 우리 지도 박사님은 능글맞게 웃으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어~내가 그러라고 했어~.”
‘뻔뻔’한 지도 박사님 덕에 그렇게 나는 ‘강제 배려’를 받을 수 있게 됐다. 이 배려가 없었다면 나는 아이를 돌볼 수 없었을 것이다. 같은 유기합성 연구자인 신랑은 이 동네에서 ‘출근은 있으나 퇴근은 없는 곳’으로 유명한 회사에 다니고 있었다. 나에겐 선택지가 없었고, 지도 박사님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 나를 강하고, 빠르고, 정확하게 단련시킨 ‘칼퇴근’ 압박
임신 전에는 출근은 오전 8시 30분 전, 퇴근은 대충 저녁 8시로 잡고 실험을 진행했다. 이렇게 했던 이유는… 아무도 퇴근하지 않아서? 그리고 처음 석사과정 시작할 때 들은 이야기가 있었다. 유기합성은 ‘9 to 9’가 기본이라고. 처음엔 잘 이해가 안 됐는데, 실험실 생활을 하다 보니 그게 무슨 뜻인지 알게 됐다. 모두 의도해서 남는 것이 아니었다. 정말 실험이 밤 9시 이전에 안 끝나서 못 나가는 것이었다.
석사 초기에는 실험 시작과 종료가 일정하지 않아서 자연스레 저녁 8시를 넘기기 일쑤였다. 일이 손에 안 익어서 정리하는 것만으로도 늦어졌다. 실험실 생활이 익숙해지면 자신의 체력에 맞게 일을 배분해서 하는 요령이 생긴다. 여유롭게 마무리하면 8시 정도에 일을 마치고, 9시까지 다음날 실험까지 준비한다. 그 정도면 눈치 덜 보고 퇴근할 수 있었다. 당시 저녁 8시에 퇴근하기 위한 나의 업무 프로세스는 이랬다.
자신이 벌여놓은 모든 실험의 종료 시각을 5시 반으로 맞춘다. 종료할 실험은 정리하고, 다음날까지 지켜볼 실험은 밤새 잘 돌아갈 수 있도록 세팅해주는 것으로 마무리한다. 그리고 일단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돌아와서 바로 사용한 실험 도구를 각 실험자의 개별 스타일에 맞춰 정리하고 쌓인 설거지를 끝내면 7시 정도에 끝난다. 그리고 실험 결과를 노트에 정리하고, 다음날 실험할 내용을 미리 체크하고 나면 7시 50분. 짐을 챙겨서 8시가 됨과 동시에 내 주변에 앉은 모든 박사님들께 한분 한분 나의 퇴근을 알리는 인사를 함과 동시에 나가는 것이 그간의 일상이었다.
이런 생활을 해오던 내가 모든 일을 5시 반에 마쳐야 한다는 것은 엄청난 도전이었다. 평소 보다 마감 시간을 모두 두 시간씩 앞으로 당겨야 했다. 그러면서도 임신 전에 하던 실험의 양을 모두 소화해야 했다.
처음엔 정말 못 할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사람이 극한에 처하니 능력이 200% 발휘됐다. 결론만 말하자면 나는 1년 동안 그 생활을 해냈다. 그리고 이렇게 살다 보니 실험에 대한 집중력도 높아지면서 해야 할 일을 체계화하는 것이 가능해졌고, 시간도 분 단위까지 세세하게 쪼개서 쓸 수 있게 됐다. 실험 상황을 판단하는 능력도 올랐다. 시간은 정해져있고, 그 안에서 데이터화가 가능한 것과 불가능한 것을 분류하고 버릴 거면 빨리 버려야 했기에 그 능력치가 올라간 것이다.
되든 안 되든 나는 오후 5시 30분엔 나가야 6시에 아이를 픽업할 수 있었다. 그래서 반드시 나가야 했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늦어지면 어린이집 선생님도 퇴근을 못 하는 악순환이 생기므로 타인의 퇴근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나의 퇴근 시간을 지켜야 했다.
이때의 생활은 지금 내 생활에 많은 도움이 됐다. 나는 자칭 타칭 ‘손이 빠른’ 사람이다. 그리고 손이 빠른 만큼 실험도 정확하게 진행한다. 이런 면에서 칼퇴근은 나처럼 실험하는 과학자들에게 더 필요한 제도가 아닐까? 오히려 퇴근 시간에 대한 압박은 실험 스케쥴을 빈틈없게 하고, 제시간에 실험을 마무리할 수 있도록 손을 빠르게 만든다. 안 되는 것은 과감히 버리는 안목도 키울 수 있고 말이다.
◇ 말 많고 탈 많은 연구직 노동환경… 이젠 좀 바뀌어야하지 않을까
물론 나의 분야에 한정된 이야기다. 과학기술계의 실험이란 워낙 종류가 많아서 나의 경험을 모든 연구원들에게 적용시킬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칼퇴근이 나에게 준 ‘하드 트레이닝’의 경험을 적어도 함께 일하는 연구원들과 함께 공유하기 위해 그들을 늘 ‘달달’ 볶아대곤 했다.
“빨리해. 나 집에 가야 해. 우리 애가 기다려. 그러니까 5시 30분까지 끝내.”
우리 팀의 연구원들은 그래서 많이 힘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이렇게 하는 데엔 이유가 있다. 학위 과정 중 뼈에 새긴 말이 있었다. 바로 ‘책임자가 가장 마지막에 퇴근한다’는 말이다.
팀의 박사님들이 늦게 가는 이유 중 하나는 물론 일이 많아서였겠지만, 박사급이 가장 늦게 퇴근하면서 최종 점검을 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테다. 나는 지금도 연구실의 총 책임자가 마지막에 퇴근하며 위험한 것은 없는지 최종 점검하고 집에 가는 것이 실험실의 사고 예방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지금도 나는 저녁 6시 이후엔 실험 벌이지 말고 정리한 후 늦지 않게 퇴근할 것이라는 원칙도 그대로 지키고 있다. 이건 내가 트레이닝 받은 대로 하는 일이다. 나의 지도 박사님은 늘 말씀하셨다.
“다 먹고살자고 하는 짓이다. 돈이라도 받아야 일할 맛이 난다. 죽도록 일하면 진짜 죽는다.”
연구직의 노동환경은 참 말도 많고 탈도 많다. 분야별로 차이도 크다. 주당 근무 시간이 짧다고 타박하는 분들도 계신다. 본인이 남고 싶어서 남는다면 뭐라 하겠는가. 개인의 자유인 것을. 하지만 그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노동환경까지 침해한다면, 그 부분은 고민해봐야 하지 않을까? 나의 지도 박사님이 해준 이야기를 노동 정책을 후퇴시킨 분들께서 기억해주시길 바란다. “죽어라 일하면 진짜 죽을 수 있다.”
*칼럼니스트 윤정인은 대학원생엄마, 취준생엄마, 백수엄마, 직장맘 등을 전전하며 엄마 과학자로 살기 위해 '정치하는엄마들'이 되었고, ESC(변화를 꿈꾸는 과학기술인 네트워크)에서 젠더다양성특별위원회의 위원장이 되어 프로불만러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실은 회사 다니는 유기화학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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