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비뉴스] 세월호 6주기...노란 리본 만들기, 아직 끝낼 수 없는 이유
2015년 1주기를 추모하며, 천 개의 타일로 팽목항 기억의 벽을 채운다는 얘기를 들었다. 더불어숲작은도서관에서 아이들과 함께 기억의 벽에 보낼 타일 그림을 그렸다. 아이들은 글과 그림으로 잊지 않겠다는 마음을 표현했다. 이듬해 팽목항을 찾았다가 아이들이 그렸던 타일 그림을 보고 도서관 밴드에 누가 사진을 올려주셔서 놀라고 먹먹했던 기억이 난다.
1주기를 추모하며 도서관에서 「금요일엔 돌아오렴」 책을 함께 읽고, 유가족 예은이 아버님 유경근 님을 모셨다. 내 아이만 잘 키우는 교육만 할 게 아니라 우리 아이들 모두를 함께 잘 키우는 교육을 해야 한다고 말씀하시는데, 다들 눈시울이 붉어졌다.
우리는 기억하기 위한 관심과 행동, 실천을 계속하겠다고 말씀드렸다. 목공을 배우는 회원이 정성 들여 만든 노란 리본 조각품을 선물로 드리며, 멀리 울산까지 와주신 데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했다.
◇ "잊지않겠습니다, 기억하겠습니다"
가입된 부모교육 커뮤니티에 세월호 리본 만들기 모임 글이 올라왔다. 매주 자발적으로 모여서 세월호 스티커와 가방에 다는 노란 리본을 만들어서 나눔 하는 분들이다. 그동안 도서관에도 나눔을 받아서 필요한 분들께 나눠드렸다.
'고마운 분들이구나' 생각만 했는데, 함께할 손이 필요하다는 글귀가 계속 마음에 남았다. 만들기에는 자신이 없었지만 자르고 붙이는 단순 작업이고 의미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가보고 싶었다. 2015년 11월 처음 참여해서 2주에 한 번 또는 한 달에 한 번 정도 출산 전까지 노란 리본 만들기를 했다. 올해 다섯 살인 셋째의 출산예정일이 2016년 4월 16일이었다.
4년 전 2016년 4월 13일은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였다. 혹시나 아이가 일찍 나올까봐 사전투표일에 투표를 하고 왔다. 10개월 만삭이라 몸도 무겁고 다리도 붓고 힘들었는데 이상하게 투표를 하고 나온 그 날은 몸이 너무 가벼웠다. 그렇게 며칠 만에 아기를 만나고 두 달 만에 다시 도서관에 나갔다. 일은 그만뒀지만 여전히 운영위원이었고, 사람이 만나고 싶었고, 함께하는 모임, 함께 먹는 밥이 사무치게 그리웠다
◇ 작은도서관에서 노란 리본을 다시 만들다
하루는 작은도서관에서도 세월호 노란 리본을 만들어보자는 얘기가 나왔다. 운영회의에서 논의한 후, 한 달에 한 번 오후 1시부터 4시까지 만들기로 했다. 시내에서 하고 계시는 노란 리본 울산모임 지기분이 오셔서 재료도 준비해주시고 만들기도 함께하기로 했다.
더불어숲 세월호 리본 만들기는 추석이 끝난 2016년 9월 20일(화) 첫 모임을 했다. 울산에서는 일주일 전 있었던 경주지진(진도 5.8)의 혼란이 가시지 않은 상황이었다. 지진을 겪으니 살아 있다는 것. 하루하루를 의미 있게 보내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았다. 우리가 지진으로 대피해 지내며 힘들었던 하룻밤을, 세월호 가족들은 2014년부터 지금까지 지속하고 있다.
리본 만들기 공지를 올리고 만들기도 참여하는 동안 아기띠에 업혀 있던 젖먹이가 걷고 뛰게 됐다. 자연스럽게 만들기에 집중하기가 어려웠다. 초기부터 노란 리본 만들기에 열심히 나왔던 한 분께 말씀드렸더니 흔쾌히 모임지기를 맡아주셨다.
2018년 11월부터 노란 리본 만들기 모임 지기로, 작은도서관 활동가로 함께하고 있다. 사람이 재산인 작은도서관에 너무나 고마운 일이다. 일을 나누고 힘을 보태며 빈자리를 채워가면서 우리는 더불어 함께 사는 삶을 배운다.
◇ 노란 리본을 만들며 나를 만나고 이웃을 만나는 시간
매월 셋째 주 목요일 오후 1시부터 4시, 도서관에서 노란 리본을 만든다. 리본을 만드는 시간엔 왠지 세월호 희생자들을 엄숙하게 추모해야 할 것 같아서 분위기가 부담스럽지 않을까 걱정했다.
그런데 참 이상했다. 도서관에서 하는 모임 중에 제일 시끄럽고, 말이 많고, 웃음이 넘치는 모임이다. 손으로 세월호를 기억하며 나의 얘기를 하고, 다른 이의 얘기를 듣는다. 서로의 안부를 묻고, 고민과 걱정거리를 나누고, 즐겁고 재미난 얘기로 웃음꽃이 핀다.
세 시간 동안 600개의 노란 리본이 만들어졌다. 작지만 꾸준한 실천이 가져오는 선한 파동이 조금씩 느껴진다. 방학이 되면 아이들과 함께 오시는 분도 계시고, 청소년 아이들이 봉사활동으로 참여하기도 한다. 얼마 전부터 장애인단체 모임에서 3∼6명 정도 꾸준히 와주신다.
작년 8월 4.16가족협의회 세월호 유가족 중 한 분께 연락을 받았다. 울산에서 세월호 기억행동을 하고 있는 곳과 함께 이야기 나누고 싶다고 하셨다. 그렇게 8월 리본 만들기는 유가족과 생존자분 그리고 도서관 이용자 분들과 1300개의 리본을 만들었다. 우리는 이렇게 연결돼 있다. 노란 리본을 만들며, 나를 만나고 이웃을 만나는 소중한 시간이다.
◇ 진짜 어른을 만나면 우리 아이들의 삶이 바뀔 수 있을까?
작년 여름, 중2 큰아들이 여름휴가에 제주도로 여행을 가자고 했다. 배를 타고 가고 싶다고. 움직이고 나가는 걸 너무 싫어하는 아들인데 먼저 여행을 가고 싶다고 하니 잘됐다 싶었다. 금방 마음이 바뀌어서 안 간다 할지 몰라서, 그날 저녁 차를 싣고 갈 수 있는 목포 출발 제주행 배를 예약했다.
여행 날, 목포에 가면 꼭 가보고 싶었던 세월호 선체를 보러 목포신항에 들렀다. 낡고 부식된 배를 보며 마음이 먹먹해졌다. 도서관에서 만든 세월호 리본을 하나 걸어두고 오고 싶었는데 못 챙겨가서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목포에서 배를 타고 가면서 아이들은 돌아다니기 바빴다. 식당부터 커피숍, 오락실, 편의점 등 배에는 없는 게 없었다. 나도 이렇게 큰 여객선을 처음 타봐서 모든 게 신기했다. 그리고 이렇게 큰 배가 뒤집힐 수 있다니 상상이 안 됐다. 선실 안에서 보이는 바닷물결도, 갑판 위에서 보이는 파란 하늘과 높은 파도를 보며 그날의 기억이 떠올라서 마음이 아팠다.
몇 달 전에 ‘블랙독’이라는 드라마를 봤다. 기간제 교사가 된 사회 초년생 '고하늘쌤'이 우리 삶의 축소판인 '학교'에서 꿈을 지키며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다. 첫 회에서 수학여행을 가는 버스가 전복사고로 폭발하며 버스에서 미처 나오지 못한 한 명의 아이를 구하고 기간제 선생님이 목숨을 잃는다.
세월호 아이들이 생각났다. 그리고 궁금해졌다. ‘가만히 있으라’고 했던 물음에 대해 이 드라마는 우리 교육은, 어떤 대답을 할 수 있을까? 학교라는 공간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너무나 현실적으로 표현해서, 몰입과 감동의 연속이었다. 세상은 쉽게 바뀌지 않지만 내가 바뀌면 할 수 있는 많은 일들. 그렇게 희망의 씨앗을 봤다.
차를 타고 지나가다 우리 아이를 봤다며 아는 아이 엄마한테 카톡을 받은 적이 있다. 반가워서 우리 아이한테 알은척을 했더니 꾸벅 인사를 하고 친구들과 가더라는. 그때는 휴대폰이 없을 때라, 늦은 시간인데 안 들어와서 걱정이 되던 참이었다. 마을에서 부모가 아닌 누군가가 아이의 안부를 묻고 그 아이를 지켜봐 준다는 울타리.
어제는 21대 국회의원 선거였고, 오늘은 4.16을 맞으며, 내일 우리는 어떤 어른이 돼야 할지 생각한다. 작은도서관에서 앞으로도 계속 세월호 노란 리본(re-born)을 만들며 희생자들이 태어난 곳으로 잘 돌아가길 바라고, 우리 사회가 생명 존중의 사회로 돌아가기를 염원해본다.
*칼럼니스트 노미정은 중학생 둘에 늦둥이 다섯 살까지 세 아이를 키우는 엄마다. 울산 동구의 더불어숲작은도서관에서 친구들과 공동육아·마을공동체를 고민하며, 함께 읽고, 쓰고, 밥도 먹는다. 아이들을 함께 키우는 마을, 우리가 오래도록 살고 싶은 마을을 위해 지금 나부터 ‘꿈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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