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 '일타강사' 따라하는 교사였던 저를 반성합니다 (박은선)

전대원 시민기자의 기사 '한국 교육은 늘 틀리고, 유럽 교육은 늘 옳은가(http://omn.kr/1o57r)'에 대한 반박 글이 들어와 싣습니다. 오마이뉴스는 한국 교육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환영합니다. <편집자말>

'한글떼기', '수떼기' 선행학습하는 한국의 초등교육
'유엔아동인권선언'과 '초등학생시위'가 있는 유럽의 초등교육
 
전대원 시민기자는, '외국에서 자식 교육 하나 시킨 것 가지고 그 부모가 책 등을 통해 전문가 대접도 받는 것'을 비판하셨습니다. 그런데 벌써 몇 년 전 얘기지만 그래도 한때 교사였음에도 제겐 '외국에서 자식 교육 하나 시킨' 이들의 얘기가 오히려 좋은 참고가 됩니다. (관련 기사 : 한국 교육은 늘 틀리고, 유럽 교육은 늘 옳은가)
 
"오늘 00이가 벌섰어요."
 
코로나19 때문에 뒤늦은 초등학교 입학을 한 남매둥이. 하교하자마자 한 아이가 다른 아이가 벌을 섰다고 말했습니다. 대체 무얼 잘못했기에 입학한 지 한 달도 안 돼 벌을 섰을까. '숙제를 안 해가서'라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숙제. 숙제라... 며칠 뒤 또 벌섰단 얘기가 나왔습니다. 역시 숙제가 문제였습니다. 담임선생님께 편지를 썼습니다.
 
우리 부부는 아이의 학습속도를 존중한다, 온통 그림 그리기에 빠진 아이의 창의력을 해칠까 일부러 입학 전 한글도 수도 가르치지 않기 위해 애썼다. 그래서 00나라, 00수학 같은 학습지 등으로 선행학습이 되어 있는 다른 아이들에 비해 뒤처지는 듯 보이겠지만 기다려달라, 혼내지 말아달라, 숙제는 안 하는 것이 아니라 못하는 거다, 입학한 지 얼마 안 된 이 아이에겐 쓰고 셈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 그렇게 썼습니다.
 
다행히 그 뒤 아이는 벌을 서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날 이후 고민에 빠졌습니다. 남매둥이를 우리나라의 초등학교에 계속 보내야 하는가 그 자체가 고민이 되었습니다. 최근 여러 방송이나 저서 <우리의 불행은 당연하지 않습니다> 등에서 김누리 교수는 독일의 숙제에 관한 규정을 언급한 것도 떠올랐습니다. 아예 학년당 '최대 숙제 시간'까지 제한해놓은 그 규정의 존재는 놀라웠습니다. 특히 금요일 오후 주말에 할 받아쓰기 숙제가 쓰인 알림장을 발견했을 때는, '주말에는 숙제를 내지 않는다'고 쓰인 독일의 규정이 부럽기만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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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일은 학생의 휴식권 보장을 위해 숙제의 분량과 수준을 규정해두고 있다. 사진은 JTBC <차이나는 클라스 : 새로운 독일을 만든 독일의 교육>편에서 김누리 교수가 소개한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의 학교법 숙제 관련 규정.

ⓒ JTBC

아동학에서는 아동기의 3R(읽기, 쓰기, 셈하기)을 금합니다. 창의력 등 다른 발달을 저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나라 어린이집과 유치원 중엔 한글쓰기와 연산에 대한 반복적 훈련을 시키는 곳이 적지 않습니다. '엄마들이 원해서'라는 설명과 함께.

그런데 다수가 프랑스인이지만 다른 나라 아이들도 많이 다니는 프랑스국제학교에 자녀들을 보낸 어느 엄마가 쓴 책을 보면, 그 학교의 여러 나라 아이들 중 모국어나 프랑스어 쓰기를 미리 배우고 학교에 들어오는 아이는 없다고 합니다. 본래 그걸 배우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초등 1학년 과정인 만큼 아이들은 알파벳부터, 숫자부터 천천히 배운다고 합니다.
 
또 프랑스학교 1학년 과정에서 중시하는 것 중 하나가 '유엔아동권리선언'이라고 합니다. 그 선언엔 "모든 아이는 평등합니다", "모든 어린이는 올바르게 양육되어야 합니다", "모든 어린이는 학교에 가야하며 쉴 권리가 있습니다"와 같은 내용들이 담겨있는데, 아이들은 입학 초기부터 이에 대해 자세히 배우며 자신이 얼마나 존엄한 존재이고 자신의 권리가 무엇인지, 또 나의 권리만큼 타인의 권리도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등을 느끼며 성장한다고 합니다.
 
독일 역시 비슷해 보입니다. 김누리 교수는 독일의 시위하는 초등학생들의 사진을 소개했습니다. '어른들은 스마트폰을 멈추고 우리 어린이들과 놀아달라'며 귀엽지만 당당하게 피켓시위를 하는 어린이들의 모습은 충격적이기만 합니다.
 
이런 나라들에서도 과연 학습속도가 늦은 것이, 몰라서 숙제를 못한 것이, 벌서는 이유가 될 수 있을까요? 아마 아니지 않을까요?
 
'프랑스뽕', '북유럽뽕' 그리고 '독일뽕'?
우리가 유럽과 북유럽의 교육에 주목하는 이유
 
김누리 교수는 독일에서 당신의 아이를 양육하고 독일어를 기반으로 독일사회를 연구한 것을 토대로 위와 같이 우리와 상당히 다른 독일 등 (북)유럽 교육의 면면을 보여주었습니다. 이것이 현장의 일부 선생님들께는 다소 불편할 수도 있습니다.
 
'당신이 우리나라 학교에서 수업을 한 번이라도 해봤어? 지금 입시제도가 예비고사나 학력고사 같은 게 아니라 수능과 학종으로 이뤄지고 것은 알고 말하는 거야? 혁신학교, 과정중심교육과정, 고교학점선택제 이런 것들은 알기나 해?' 이런 마음이 들 수도 있습니다. 더군다나 독일은 반경쟁교육을 하는 참교육 현장이고 이에 비해 우리 교육은 '반교육'이라고 단언해버리다니, 그럼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교육다운 교육을 해나가는 교사들은 무엇이 되느냐 자괴감과 분노가 차오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김누리 교수의 비판의 화살은 일선 교사들이 아닌 우리의 교육제도와 사회구조 그 자체를 향하고 있음을 선생님들께서 간과하지 않아주셨으면 합니다.
 
최근 '교육이민'이 늘고 있습니다. IVY 입학 등 '성공교육'을 위해 미국으로 향하는 게 아니라 경쟁보다 협력을 중시한다는 '행복교육'을 위해 핀란드 등 북유럽과 유럽으로 향하는 중산층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또 관련한 책들도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 김누리 교수의 '새로운 나라를 만든 독일교육'에 대한 소개는 폭발적인 인기를 끌게 됐습니다.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 걸까요? 저는 무엇보다 김누리 교수가 "대학입시 폐지, 대학서열 폐지, 대학등록금 폐지, 특권학교 폐지를 위한 교육혁명이 필요하다"는 파격적인 발언을 하고, 그러면서도 이상론만 펼치는 게 아니라 '고교졸업자격시험화와 국공립대학통합네트워크를 시작으로 한 한국대학설립'과 구체적 대안들을 제시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교사였던 저는, 교단에서 교육다운 교육을 할 수 없는 한계들을 수없이 마주쳤습니다. 초임시절엔 멋도 모르고 토론수업도 하고 사회참여교육도 해보려 했습니다. "나는 뭐 그런 교사가 되고 싶지 않았는지 알아? 그런데 그러지 마. 그렇게 아이들이 비판적으로 사고하고 깨어나도록 하지 마. 그러면 애들이 고민을 시작하고 고민하기 시작하면 그 아이만 다쳐. 어떻게든 명문대학 가고 취업하고 그렇게 살게 도와주는 게 우리가 할 일이야." 이런 선배교사의 말에 분노하기도 했습니다.

내 눈앞의 아이들만 높은 곳에 오르도록 돕는 것이 어떻게 교사의 사명의 전부일까. 어차피 누군가는 오르고 누군가는 떨어지는데 대한민국 전체의 교사로서 이 시스템 자체를 깨주어 과도한 경쟁에서 아이들을 구하는 게 진짜 교사의 본분이 아니겠나.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얼마 안 가 선배교사의 말에 수긍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당장의 입시를 코앞에 둔 아이들에게 죄짓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구조가 바뀌지 않거늘 저 혼자 참교사되겠다며 토론수업을 하면 아이들은 따로 인강으로 수능공부를 해야할 터, 저는 곧 퇴근후 일타강사 강의를 듣고 암기비법을 배워 아이들에게 전하는 수능적합형, 입시적합형 교사가 되어갔습니다. 내 눈앞의 아이들만이라도 더 점수를 잘 받고 조금이라도 더 서열 높은 대학에 진학하는 것. 그것만이 제 사명이었습니다.
 
그런 제게 김누리 교수의 '교육혁명'은 저의 교사시절을 돌아보며 반성하게 하고, 우리 교육의 근본문제 해결을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다시금 고민해보게 하는 큰 계기가 되었습니다. 더욱이 저의 아이들이 학교라는 제도 속으로 들어가자마자 '선행학습'이라는 벽을 만나자 도무지 그 혁명이 가능하지 않다면 이 나라에서 아이들을 계속 자라게 해도 될까 싶기까지 했습니다. 서태지의 '이제 그런 가르침은 됐어', '왜 바꾸지 않고 남이 바꾸길 바라고만 있는가' 하는 <교실이데아>를 듣고 자라며 명문대학, 명문학과만을 위한 배틀로얄 경쟁을 장려하는 이 나라 교육은 미쳤다고 생각하던 제가, 앞으로 제 아이들에게 똑같이 명문대학, 명문학과만을 위한 훈련을 교육이라고 포장해 역시 경쟁을 장려하는 것이 과연 맞는가 싶어졌습니다.
 
'김누리 신드롬'의 의미는 바로 여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시민들은, 김누리 교수가 드러낸 독일교육의 몇몇 장점들에 혹해 우리도 당장 독일식으로 하자, 독일로 이민가자 하며 어리석음을 보이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저와 같은 시민들은 '못살겠다 갈아보자'와 같은 심정인 겁니다.
 
'하드웨어 혁명' 없는 '소프트웨어 개발'은 이제 그만

저의 책장에는 전대원 시민기자가 쓰신 책이 꼽혀 있습니다. 전대원 선생님께서 살아 있는 사회과 교육을 하기 위해 현장에서 얼마나 많은 실천을 해오셨는지 모르지 않습니다. 선생님과 같은 분들이 우리의 교육을 보다 나은 것으로 만들어오신 점 인정하고 또 감사드립니다.
 
하지만 소프트웨어만 교체한다고 될까요? 하드웨어 자체가 문제라면 소프트웨어를 암만 새 것으로 바꿔 넣은들 그 좋은 내용이 뒤틀려버리는 문제가 있거늘 대체 우리는 언제까지 근본적인 문제를 외면해야 하나요?
 
아이들이 활발히 토론하는 살아있는 교실.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그 토론의 과정과 결과가 아이들의 신분과 계급을 나눌 점수로 변형되는 시스템 앞에서 그것이 진정 교육적인 토론이 될까요? 수행평가란 본래 절대평가가 적합하다는 교육학 이론에도 불구하고 그 과정조차 단 0.1점의 격차라도 내어 아이들을 줄세워야만 하는 우리 교육의 한계를 진정 모른 척 해도 되는 걸까요?
 
표준화된 5지선다 답 찍기보다 학교에서 교사의 수업에 충실하면 좋은 성과를 얻는 것. 얼마나 이상적인가요. 그러나 역시 단 0.1점의 격차라도 내기 위해 교과서의 지문을 통째로 암기해 기계적으로 답을 고르거나 쓰게 하는 내신시험 준비가 진정 성실함에 대한 평가로 포장되어도 되는 걸까요? '11개의 단어로 영작하시오'와 같은 경악할 만한 영어 내신시험문제는 왜 탄생하는 걸까요? 어떻게든 줄세워야만 하기에, 어떻게든 정답시비가 없도록 해야 하기에, 발산적 사고를 최소화하는 시험문제를 만들어내기 위함임을 현장을 경험한 교사라면, 학생이라면, 또 학부모라면 누구나 알지 않나요. 이런 진실을 진정 모른 척해도 되는 걸까요?

강준만 교수의 <대한민국 입시잔혹사>를 보면 해방 이후 우리 교육은 수없이 입시제도 등을 바꾸며 교육개혁을 해왔습니다. 하지만 단 한번도 줄세우기 교육, 과도한 사교육비 지출, 과도한 입시경쟁에 의한 청소년 문제 등을 해결한 일이 없습니다. 네. 대학입시의 존재 자체는, 대학의 서열 자체는 언제나 굳건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독일과 프랑스 등의 유럽, 그리고 북유럽의 수많은 나라들에 시민들이 관심을 갖고 김누리 교수의 광팬들이 등장하는 이유는, 바로 그 입시 자체가 없고 대학서열 자체가 없는 나라들에서 가능한 진정한 교육, 교육다운 교육에 대한 부러움과 우리도 그와 같이 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상상과 희망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지난 조국 사건 당시 전대원 시민기자와 같은 분들이 긍정적으로 평가하시는 학종 등의 '사람을 보고 선발하는 입시제도'마저 줄세우기라는 본질적 문제 앞에서 왜곡되며 그 비교육성을 온몸으로 드러냈음을 목격하며 시민들은 이제 그 무엇으로 입시제도를 바꾼들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음을 깨닫게 된 듯합니다. 저는 그것이 바로 시민들이 김누리 교수의 "교육혁명하라"는 말에 지지를 보내는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청소년들이 시작하는 교육혁명. 비청소년들의 연대가 필요합니다!
 
"기자의 글은 비판만 있고 대안이 없네요. 김누리 교수의 이야기는 그나마 현실적 대안입니다. 모두가 판타지를 말할 때, 그나마 실현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죠. 야수자본주의에 대한 책임은 우리 모두의 것입니다. 야수자본주의가 경제는 물론이고 교육, 정치까지 삼키고 있는데, 비난만 하면서 책임을 회피하려고 하지 마세요. 68혁명 수준의 혁명밖엔 답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다들 기득권을 놓칠까 두려워 회피하고 애써 외면하는 모습이 우리 모두의 자화상입니다."
 
전대원 시민기자의 기사에 달린 한 댓글입니다. '혁명밖엔 답이 없다'. 공감합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교육혁명입니다. 교육촛불입니다.

이에 글을 마치며 얼마 전 우연히 알게된, 이제 막 태동 중인 한 청소년 단체의 포스터를 소개합니다. 단체가 움직임을 시작한 뒤 기사화하는 것이 더 나을 수도 있어 망설여지지만, 전대원 시민기자의 글이 공론장을 여는 듯해 그 공론장에서 시민 여러분이 저의 '김누리 교수의 교육혁명에 대한 지지' 글과 함께 평범한 청소년들의 움직임도 인식해주셨으면 하는 마음 때문입니다.
 
코로나19로 프랑스의 바칼로레아는 취소되었고 유럽의 많은 나라들이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의 사회성 발달에 문제가 생길까 우려할 때, 우리나라에선 고3들의 수능시험을 걱정하고 6월 모의고사가 문제없이 치러졌습니다. 교육이 없어도 시험만 있으면 되는 아무렇지도 않은 대한민국. 그 놀라운 대한민국의 교육현장 속에서 지금 이 순간 평범한 청소년들이 단결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흑인혁명은 흑인이 했고 여성혁명은 여성이 했듯 청소년혁명은 청소년들이 이렇게 시작하는 것이 맞습니다. 그리고 흑인혁명은 백인이 연대했고 여성혁명은 남성이 연대했기에 성공했듯 청소년혁명에도 비청소년들의 연대가 절실합니다. 저는 위 청소년들이 정식으로 단체를 시작하면 어떤 모습으로든 연대할 생각입니다. 그리고 위 기사를 쓰신 전대원 시민기자를 비롯한 수많은 비청소년분들에게도 호소합니다.
 
"교육혁명에 동참해주십시오. 지금이 바로 교육을 위해 촛불을 들 때입니다!"
 

출처: http://naver.me/F3IMAaY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