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비뉴스] 어린이집 부실급식 해법..."CCTV로는 안 된다"
【베이비뉴스 권현경 기자】
지난 22일 제주평등보육노동조합이 제주 지역 일부 어린이집에서 부실급식이 제공되고 있다는 것을 사진과 함께 폭로했다. 이어 제주도가 그 대책으로 '조리실 CCTV 설치' 방안을 내놓으면서 논란이 확산됐다.
원희룡 제주지사는 지난 23일 오전 긴급회의를 열고 “자치경찰단과 위생부서, 보육부서가 모두 참여하는 합동점검반을 편성해 강력한 특별점검을 실시하라”고 지시했다.
같은 날 뉴시스 보도에 따르면, 제주도는 ▲급식관리지원센터의 컨트롤타워 역할 제도화 ▲어린이집 수시·불시 점검 ▲주방 CCTV 설치를 통한 식단표와 실제 배급 식단 일치 여부 확인 ▲어린이집 급식 공개 앱 개발 및 사용 의무화 등의 대책을 추진하기로 했다.
하지만 '주방 CCTV 설치'를 두고 인권 침해 논란이 일자, 24일 제주도는 “영유아의 안심 급식과 식품 위생 확보를 위한 사각지대 해소 차원”이라면서 “식단표와 실제 배급식단 및 배식과정 등을 확인함으로써 학부모가 안심할 수 있는 급식을 시행하기 위한 수단”이라고 설명했다.
제주도청 관계자는 28일 베이비뉴스와 한 전화통화에서도 “CCTV 설치는 조리실이 아닌 배식 및 식사공간에 설치하는 것”이라고 설명했지만 논란의 불씨는 여전히 남아 있다. CCTV 설치를 통해 부실급식을 막겠다는 생각은 과연 실효성이 있을까. 지난 27일, 28일 이틀간 보육 현장과 시민사회의 목소리를 들어봤다.
◇ "식자재 공동구매·어린이급식지원센터 활성화 필요"
최순미 공공연대노조 보육교직원노조 위원장은 “(조리실이든 배식공간이든) 그 어디에 CCTV를 설치해놔도 부정은 못 잡는다. CCTV가 있다고 해서 원장들 부정이 잡히거나 아동학대가 줄어드는 게 아니지 않느냐”면서 “인권을 침해하는 일밖에 안 된다. 근본적인 대안이 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장하나 정치하는엄마들 활동가는 “현장 상황을 너무 모르고 내놓은 대안”이라고 일축했다. “CCTV를 설치하면 유사시에 증거확보 원인 규명에는 참고가 될지 몰라도 예방효과는 기대하기 힘들다”는 것.
장 활동가는 “근본적으로 어린이집 내부에서 급식비리와 같은 것을 고발할 수 있게 해야 하는데 교사는 원장과 고용관계에 있으니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매일 식판 하나를 촬영해 부모들에게 식단을 알려주는데, 사진 촬영 식판만 따로 특별히 더 신경 썼다고 생각할 수 있다"며, "배식이 다 된 다음에 아이들 식판을 여러 개 모아 촬영하면 돈 안 들이고도 당장 급식이 어떻게 나갔는지 다 알 수 있지 않느냐”고 덧붙였다.
경기 남양주시에서 민간어린이집을 운영하는 윤일순 원장은 학부모들의 동의를 받아 어린이집 내 CCTV 자체를 설치하지 않았다. 윤 원장은 “모든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려면 식자재 구매를 원장이 하지 않으면 된다. 식자재 주문을 조리사가 하면 해결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식자재를 어디서 주문하고, 누가 주문하고, 어떤 사람이 조리를 하는가, 세 가지를 해결하면 건강한 급식이 이루어질 수 있다”고 제안했다. “식자재를 친환경급식지원센터를 이용해 조리사가 주문하고, 80인에 한 명의 조리사가 조리하게 돼 있는데 이를 50인에 한 명으로 축소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서울 구로구에서 민간어린이집을 운영하는 이인혜 원장은 “(식자재) 공동구매와 같은 게 더 필요하지 않겠느냐”고 제안하면서, “구로구의 경우 어린이급식지원센터가 식단 관리, 대상별 위생·영양 교육, 점검 등 다 하고 있어 센터 활성화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 "유치원 3법과 같이 어린이집 처벌 및 행정처분 강화해야"
16년 차 어린이집 교사로 일하고 있는 문경자 씨는 “급식관리 점검 차원에서 매일 보존식을 보관하고 있는데 매일 냉동실 넣기 전 사진을 찍어 급식지원센터로 보내는 방안과 식자재공동구매, 부모 모니터링단을 통한 불시점검” 등의 대안을 제안했다.
문 교사는 “식자재 검수 일지(식재료, 양)를 적는데 일지를 확인하는 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일지를 점검하지 않으니 아예 작성 안 하는 곳도 많다. 단순히 식단표대로 지출했는지 영수증만 본다면 집으로 가져가는지 어떤지 알 수 없다”고 말했다.
끝으로 문 교사는 “특히 원장과 조리사가 구분된 곳이 아닌 작은 어린이집에선 원장이 장보고, 서류 작성하고, 음식 만드는데 어떻게 감사하느냐”면서 “사실 이런 곳이 가장 큰 문제가 아니겠느냐”고 꼬집었다.
원장 처벌 강화에 대한 목소리도 나왔다. 함미영 공공운수노조 보육지부 지부장은 “조리사가 아무리 열심히 음식을 만들어도 원장이 집으로 가져가는 것은 막을 수 없다. 원장 인식 개선이 급선무”라면서 “부실한 급식을 제공한 원장이 경찰조사를 받더라도 솜방망이 처벌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경민 참여연대 사회경제2팀 팀장은 어린이집 운영 회계 투명성 제고를 언급했다.
이 팀장은 “유치원 3법과 같이 어린이집 운영자나 원장이 어린이집 재산·수입을 보육 목적 이외의 용도로 사용한 경우 형사처벌 및 행정처분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영유아보육법 일부개정법률안’이 통과돼서 어린이집 운영이 투명화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법안은 지난 2019년 10월 2일 정부안으로 국회에 제출됐으나 20대 국회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지난 지난달 23일 국무회의에서 의결된 법률개정안은 지난달 26일 정부 입법안으로 제출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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