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신문] 스쿨미투 후 ‘마녀사냥’...‘공부 방해된다’는 친구가 더 무서웠다
[내 이름은 생존자입니다]
서울 용화여고·청주 충북여중·경남 함양고
스쿨미투 생존자 3인의 이야기
학교·가해 교사의 압력뿐 아니라
학생들의 냉대·비난에 고통받아
대부분 조력자 없이 홀로 싸워
스쿨미투 당사자들은 고발에 나선 순간부터 학내에서 가혹한 공격을 받았다. 피해 경험을 떠올리고 말하는 것도 힘든데, 쏟아지는 비판과 조롱은 더 큰 상처가 됐다. ⓒFreepik
2018년 시작된 스쿨미투는 전국 100여 개교로 번졌다. 세계가 주목했다. 잭 도시 트위터 CEO는 스쿨미투를 트위터의 순기능을 보여준 사례로 뽑았고, UN아동권리위원회에서도 한국의 스쿨미투를 주요 의제로 다루며 경종을 울렸다.
그런데 학생들은 고발에 나선 순간부터 학내에서 가혹한 공격을 받았다. 학교 측과 교사들의 압력보다, ‘학교 망신’, ‘입시에 방해된다’는 다른 학생들의 냉대와 비난이 더 견디기 힘들었다. 피해 경험을 떠올리고 말하는 것도 힘든데, 쏟아지는 비판과 조롱은 더 큰 상처가 됐다.
“교무실에 가는 것보다 애들이 스쿨미투 참여자를 색출하려 하는 게 더 무서웠어요. ‘학교 망신’, ‘당당하게 밝히고 미투하지 왜 숨냐’는 말도 들었고요. 학생들 간 사이버불링 대처 방안을 요구했더니 학교는 ‘그런 거 하지 말라’고만 했어요. 당사자가 누구인지 알려지자 교사, 재학생, 졸업생들까지 연락해서 회유하거나 압박했죠.” (충북여중 스쿨미투 당사자 A씨)
“선생님들이 수업 중 ‘스쿨미투는 음해 세력의 방해공작이다’, ‘너희 고3이다, 미투에 신경 쓰지 말고 공부에 집중해라’라고 했어요. 스쿨미투 운동이 마치 공부하기 싫은 애들이 딴청 피우는 것인 양 폄훼했죠.” (용화여고 스쿨미투 당사자 강한나 씨)
“교감 선생님이 식사 시간에 전교생을 체육관에 불러서 ‘지금 학교가 시끄럽다. 이유는 알지?’라고 말씀하셨어요. 학내 분위기는 험악했죠. ‘얘네는 왜 이런 걸(스쿨미투) 해서 시끄럽게 하고 우리 밥도 못 먹게 하냐’는 말이 돌았어요.” (함양고 스쿨미투 운동에 참여했던 양모씨)
스쿨미투 당사자들은 사건 처리 절차에 대한 충분한 안내도 못 받은 채 학교, 교육청, 경찰, 검찰 등에 피해를 거듭 진술해야 했다. ‘마녀사냥’이 계속되면서 당사자들을 공개적으로 지지하거나 진술하겠다고 나서는 학교 관계자도 드물었다. 스쿨미투 가해자가 기소된 사례가 극히 드문 이유 중 하나다. 고발이 쏟아져도, 진술할 사람이 없거나 부족하다는 이유로 불기소 처분되는 경우가 많았다.
시민단체 정치하는엄마들이 14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 앞에서 ‘스쿨미투 처리현황 공개를 위한 행정소송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조력자 없이 홀로 싸워야 했던 학생들
어렵게 소송을 결심한 피해자들 대부분은 조력자 없이 홀로 싸워야 했다. 재판 동행, 법률구조공단 연계 등 내용이 담긴 교육부의 피해 지원 가이드라인이 있지만, “관할 교육청은 제대로 지원하지 않았다”고 했다. 용화여고, 충북여중 피해자들도 직접 발로 뛰어 증거를 모았다. 지금은 여성단체, 지역 시민단체 등의 지원을 받아 어렵게 형사 재판을 이어가고 있다.
“학교는 학내 성폭력 전수조사를 하고도 자발적으로 신고하지 않았고, 경찰도 충분히 수사하지 않았어요. 가해 교사에 대한 첫 수사는 불기소 처분으로 끝났죠. 왜 그랬는지, 누구 책임인지 아직도 정확히 몰라요. 다들 ‘우리 소관이 아니다’, ‘기록이 없다’고만 했죠. 학생들이 전문가도 아닌데 그런 것까지 찾아내고 따진다는 게 말이 안 되잖아요.” (용화여고 스쿨미투 당사자 강한나 씨)
“가해 교사가 형사처벌 받기를 원한다고 했더니 ‘부모 동의를 받았냐’는 질문을 받은 적 있어요. 2018년 미투운동에 나섰는데, 고등학교에 진학한 2019년 갑자기 증인소환장이 날아왔어요. 모의고사 날 증인신문을 요구받기도 했어요. 열심히 수소문해 증거를 모아서 재판에 임하면서도, 왜 이런 것까지 내가 책임져야 하나 고민했어요. 다행히도 조력자를 만나지 않았다면 지금의 저는 어떻게 됐을지 모르겠어요.” (충북여중 스쿨미투 당사자 A씨)
입시경쟁 교육체제 안 바뀌면 학교도 안 바뀐다
학교 현장의 변화는 아직 멀어 보인다. 전경원 하나고 교사는 “과도한 입시 경쟁 하에서 학생인권, 학교 안의 민주주의는 개념으로만 존재할 뿐 실제로는 방치됐다”며 “스쿨미투는 교과서로 배운 민주주의와 실제 학교 생활 간 괴리감이 빚은 하나의 현상”이라고 지적했다. 또 “스쿨미투 후 3년이 지났지만 학내 평등, 학생인권 관련 문제제기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학교를 바라보는 사회적 시각이 달라지고, 학교 안 민주주의가 정착될 때까지 계속될 것”이라고 했다.
김현 신현고 교사도 “‘대학만 잘 가면 된다’, ‘인간은 수모를 견뎌야 한다, 사회에 나가면 더 힘든 일이 많다’며 학생들을 몰아붙이는 게 현 교육 체제다. (스쿨미투 3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부당한 인권침해에 목소리를 내려면 엄청난 용기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여성신문은 <내 이름은 생존자입니다> 기획 보도를 통해, 조명받지 못한 젠더폭력 ‘생존자’의 목소리를 보도함으로써 인권 증진에 기여하고자 합니다.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기사원문보기
http://www.wome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134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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