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신문] 스쿨미투 후 무너진 일상...그래도 희망을 놓지 않겠다
[내 이름은 생존자입니다]
서울 용화여고·청주 충북여중·경남 함양고
스쿨미투 생존자 3인의 이야기
친구들은 진학·구직 활동에 바쁠 때
성폭력 고발과 공론화에 일상 바쳐
2차 피해에 학교 자퇴...‘번아웃’ 겪기도
“그래도 다른 생존자에게
혼자가 아니라고 알려주는 사람 되고 싶다”
용화여고 스쿨미투 당사자 강한나 씨가 학교 내 성폭력 고발을 고민하는 다른 학생들에게 전하는 메시지다. ⓒ여성신문
10대 후반~20대 초반에 성폭력 고발에 나섰다. 동년배들은 진학·구직 활동에 한창 바쁠 때, 발로 뛰어 증거를 모으고 글을 쓰고 지지를 요청했다. 기자회견과 시위, 인터뷰도 마다하지 않고 참여했다.
2018년 학교 내 성폭력을 고발한 여성들의 이야기다. 후유증으로 학교를 자퇴하거나 ‘번아웃’을 호소한 이도 있다. 3년이 흐른 지금도 여성단체, 지역 시민단체 등의 지원을 받아 어렵게 형사 재판을 이어가는 당사자들도 있다. 그러면서도 희망과 연대의 메시지를 전했다.
충북여중 스쿨미투 당사자 A씨는 고등학교에 진학했다가 1년 만에 자퇴했다. 한동안 청소년인권단체 활동가가 돼 스쿨미투 아카이빙, 충북 지역 학교들의 인권침해적 교칙 조사와 고발 등에 참여했다.
“저는 잘못한 게 없는데, 제가 스쿨미투에 동참했다는 이유만으로 선입견을 갖는 사람들이 있어요. 좁은 지역사회에서 목소리를 내다보니 아무리 조심해도 제 신상이 노출돼 입방아에 오르는 걸 피할 수 없었죠. 가해자가 저를 찾아내 허위 비방 편지를 보낸 후로 가족들이 몹시 걱정하고 불안해해요. 저희 집에서 스쿨미투는 금기가 됐어요.”
용화여고 스쿨미투 당사자 강한나 씨는 지난 3년간 “가족에게 지지받지 못한다는 고립감, 스쿨미투 활동에 힘쓰느라 취업 경쟁에서 뒤처졌다는 불안감이 컸다”고 했다.
“기자회견, 인터뷰, 재판 얘기를 할 때마다 ‘너 그거(스쿨미투) 아직도 안 끝났니’라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취업 활동을 하며) 번아웃이 왔어요. 나름대로 열심히 싸웠고,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뒤처지고 사회적으로 무능한 사람이 된 게 아닌가.... 지금 회사에 잘 다니고 있지만 제 활동을 후회한 적도 있었어요.”
사람들이 자신의 스쿨미투 운동 이력을 알고 섣부른 낙인을 찍을까 봐 걱정이다. “얼굴과 실명을 공개한 미투가 정당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랬더니 마음대로 지울 수 없는 기록이 남았어요. 온라인 검색하면 다 나오잖아요. 제 인터뷰 영상을 보고 외모 평가만 하는 사람들도 있었고요. 제 이력만 보고는 ‘되게 래디컬하다’며 선을 그을 수도 있죠. 입사 면접, 소개팅을 앞두고 항상 전전긍긍하게 되는 게 싫어요.
강씨와 A씨는 학교 내 성폭력 고발을 고민하는 학생들에게 조언했다. “가능하면 익명으로, 얼굴을 드러내지 말고 고발하세요. 절대로 혼자 싸움을 시작하지 마세요. 조력자들과 팀을 꾸리세요.”
“혼자가 아니라고 알려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
생존자들은 아픈 기억을 말하면서도, 미래에 대한 낙관과 다른 학교 내 성폭력 생존자들을 향한 지지와 연대도 강조했다.
함양고 스쿨미투 당사자 양씨는 대학에서 미디어커뮤니케이션을 전공하며 페미니즘 동아리 활동도 하고 있다. 글을 쓰고 사람들에게 전할 수 있도록 1인 미디어 런칭도 구상하고 있다. “혼자가 아니라고 알려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다.
“(스쿨미투 당시) 다른 경남 지역 여고생들이 저희에게 편지를 보냈던 걸 뒤늦게 알았어요. ‘잘 지내니, 너희가 힘이 됐다’고... 우리는 혼자가 아니었구나, 바깥을 볼 여유가 없어서 몰랐구나, 우리가 한 게 아무것도 아닌 게 아니었구나. 내가 손해만 본 게 아니었구나.”
강씨도 “제가 지금의 저를 알았다면 똑같이 행동하지 못할지도 모른다”면서도 “내가 여기 살아있음을 적극 피력하기 위해 죽음과 같은 고립감에 도전하실 분들이 원한다면 자문을 드리거나 소통하고 싶다”고 밝혔다. 그는 6월22일 충북여중 스쿨미투 당사자 A씨 측과 조력자들이 연 ‘검사·판사의 2차 가해 고발’ 기자회견에도 지지의 글을 보냈다.
A씨는 지금은 수능시험 준비에 열중하고 있다. “수험생활을 시작하면서 더 괴로워졌어요. 이럴 줄 알았으면 정말 스쿨미투 하지 말걸. 나만 너무 힘들게 사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고... 그래도 이 의제를 놓고 가지는 않을 것 같아요. 대학에 가서 다시 청소년 인권운동을 하게 된다면 어떻게 기여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어요.”
스쿨미투 이전에도 학교 내 성폭력과 인권침해를 고발하고 바꾸기 위해 싸운 여학생들이 있었다. 용감한 여성들의 역사는 계속될 것이다. ⓒ여성신문
ⓒShutterstock
여성신문은 <내 이름은 생존자입니다> 기획 보도를 통해, 조명받지 못한 젠더폭력 ‘생존자’의 목소리를 보도함으로써 인권 증진에 기여하고자 합니다.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기사원문보기
http://www.wome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134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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