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오늘도 무해하게

프로젝트

 

늦은 밤, 텔레비전 채널을 돌리다가 <오늘도 무해하게>(KBS 2TV 매주 목요일 저녁 10시 방송)라는 프로그램을 우연히 보았다. 지난 14일 방송을 시작해서 이제 두 회를 지났다. 수십 개 채널에서 각종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방영하지만, ‘환경예능’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 환경이 예능 장르와 결합한 게 신기했고, 뭔가 달라지겠다는 마음도 들었다.

 

한윤정 전환연구자

한윤정 전환연구자

 

약칭 <오늘 무해>는 <공책>이란 환경에세이를 내기도 했던 ‘공블리’ 공효진이 가까운 친구인 배우 이천희·전혜진 부부와 함께 일주일간의 ‘탄소제로’ 캠핑에 도전하는 설정이다. 장소는 충남 홍성군 서부면의 에너지 자립 섬 죽도이다. 20여가구가 사는 죽도는 전력을 대부분 태양광과 풍력으로 생산한다. 세 사람은 죽도에서 쓰레기를 안 만들고, 페달을 돌려 전기를 생산하고, 채소와 해산물을 거두고, 콩고기 바비큐를 즐긴다. 이런 감각과 라이프 스타일은 윤리적이기보다 정말 ‘힙’해 보인다.

출연자들의 진정성 역시 마음에 와 닿는다. “책을 냈지만 나는 환경운동가가 아니다. 상업적 일들을 해야만 내 영향력이 유지되고 커질 수 있는 직업인데 모순적이라고 욕할까봐 ….”(공효진) “환경이라는 단어를 쓴다는 게 위험할 것 같은 느낌? 나도 완벽하게 하지 않는데, 심지어 내가 하는 브랜드에서 플라스틱 박스도 만드는데….”(이천희) 나 역시 날마다 많은 쓰레기를 버리고 오래된 가솔린차를 몰면서 “내가 돌을 던질 만큼 죄 없는 사람인지” 자격지심이 든다.

사실 무해하게 살려는 개인들이 빠르게 늘고 있다. 지난 7월 유로바로미터(유럽연합 여론조사)에 따르면, 기후변화를 심각하게 여기는 사람이 93%이며 이 중 96%는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활동(쓰레기 줄이기, 분리배출, 일회용품 안 쓰기)에 참여한다고 답변했다. 우리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특히 코로나19 이후 엄청나게 늘어난 쓰레기 때문에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오늘도 무해하게’ 살려는 이들의 선의와 노력이 과연 보상받을 수 있을지 따져보면 안타깝다.

환경부 산하 한국환경공단의 폐기물 집계(2019년)를 보면, 가장 양이 많은 쓰레기는 건설폐기물(44.5%)로 하루 22만t이 넘게 나온다. 그다음은 배출시설계 폐기물, 즉 산업공정상 배출시설을 거쳐 버리는 폐기물(40.1%, 하루 20만2000t)이다. 건설현장과 공장의 쓰레기가 85%이고, 막상 개인들이 버리는 생활폐기물의 비중은 높지 않다. 단 생활폐기물 가운데 플라스틱은 2014년부터 2019년 사이 1.8배가 늘었다.

 

그래도 개인들이 생각을 바꾸고 소비를 줄인다면 기업을 변화시킬 수 있다. 값싼 물건을 많이 파는 대신, 자연과 동물과 동료 인간들에게 정당한 비용을 치르면서 좋은 물건을 만들고 제값을 받아 오래 쓰도록 압력을 가하는 방식이다. 물론 싸고 좋은 물건은 소비의 민주화에 기여했으므로 계층 간 소득불균형이 해소돼야 한다.

기업이 쉽게 변할 리 없으므로 생산과 소비를 위축시키지 않는 기업의 친환경기술에 기대를 걸기도 한다. 그러나 기술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 지난 21일 전북 전주에서 열린 행복의 경제학 국제회의에 참가한 스웨덴 룬드대학의 알프 호른보리 교수는 “친환경기술은 환경문제를 해결한다기보다 대신한다. 유럽에서 자동차 연료로 쓰이는 바이오 연료는 지속 가능하게 보이지만, 사탕수수를 생산하는 브라질의 생물다양성을 희생시킨다”고 설명했다. 기술은 인간의 독창성이 아니라 글로벌 시장에서 노동과 자원의 가격 차이로 인해 생긴 비대칭적 자원 흐름을 반영한다는 것이다.

탄소중립과 생물다양성 문제를 해결하는 데 정작 중요한 것은 기술이 아니라 자원배분 권한을 가진 정치이다. “최후의 기후위기 실천은 정치 참여”(<한 배를 탄 지구인을 위한 가이드>)라는 말도 있다. 하나의 사례로 ‘정치하는 엄마들’의 환경정치를 보자. 이들은 전국 지방자치단체의 신년맞이 풍선 날리기 행사에 항의함으로써 변화를 끌어냈다. 장하나 사무국장(전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은 “정치의 효능을 한번 맛보면 정치를 포기하기 어렵다”고 했다.

정치의 계절이다. 대선은 권력게임이 아니라 시급한 의제를 드러내고 목표를 정하는 장이다. 어떤 후보가 오늘도 무해하려는 우리의 노력에 응답할지, 어떻게 정치를 압박하고 변화를 끌어낼지 고민해보자. 거기에 우리의 2020년대, 아니 미래가 달려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2050 탄소중립선언을 했고, 미흡하나마 2030년까지 2018년 대비 40%의 탄소배출량을 줄이겠다는 목표를 발표했다. 누가 이 정책을 계승하고 진전시킬 것인가.

 

🟣 [경향신문/한윤정전환연구자] 원문보기
https://www.khan.co.kr/opinion/column/article/202110230300035#csidx8f71ab005bbc49fa7e6d83b4ec2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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