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인] 폭로가 멎어도 '스쿨 미투'가 끝나지 않는 이유
폭로가 멎어도 '스쿨 미투'가 끝나지 않는 이유
폭로가 멎어도 스쿨 미투 국면이 끝나지 않는 까닭은 성범죄자 규탄보다 훨씬 무거운 질문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떤 말부터 어떤 행동까지, 무슨 과정을 거쳐 어떻게 금지할 것인가?
미투(#me too) 운동의 적은 성범죄자들만이 아니었다. 이 운동을 야유해온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미투 운동이 폭로하는 성폭력 대다수가 기실 ‘실패한 유혹’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유명인이 가해자인 사건에서 이런 목소리는 특히 힘이 실린다. 가해자의 언행을 감내했던 까닭은 순전히 그의 지위 때문이라는 피해자의 말을, 이들은 받아들이지 않는다. 정치적 의도가 있는 미투는 ‘기획’이고, 그렇지 않다면 ‘변심’이라고 말한다. 성인지 감수성을 비롯한 사법체제의 변화는 무죄추정의 원칙에 대한 도전이라고 여긴다. 미투 운동이 ‘떼법’을 불렀다는 것이다.
초·중·고등학생이 주축인 이른바 ‘스쿨 미투’는 이런 풍파에서 조금 비껴 있다. 아동이 피해자인 사건 특성상 가해자 비난에 무게가 실리기 쉽다. 보통의 미투 사건과 달리, 미성년자 학생과 성인 교사 사이 사건을 ‘남녀 간 있을 수 있는 일’쯤으로 치부하기도 어렵다.
하지만 현장을 들여다보면 논란거리는 있다. 학생은 교사의 말과 행동으로 성적 수치심을 느꼈다고 말하는데, 교사는 ‘훈육’이나 ‘친밀감 조성’을 위해서였을 뿐 성적 목적이 없었다고 주장한다. 학생들은 ‘성희롱 교사’들이 여전히 제대로 적발되지 않으며, 솜방망이 징계만 받은 뒤 교단으로 돌아온다고 말한다. 교사들은 말과 행동을 왜곡해 받아들이는 학생이 있어 교단에서 일하기 어려워졌다고 말한다. 스쿨 미투가 본격화된 후 4년여간 양측은 저마다 불만을 쌓아왔다.
시민단체 ‘정치하는엄마들’이 5월31일 공개한 ‘2018~2020 학교 성폭력 처리 현황’은 오늘날 학교에서 벌어지고 있는 기묘한 일들을 보여준다. 이 자료는 투쟁의 산물이다. 서울시교육청은 가해 교사의 사생활과 학생들에 대한 2차 가해를 이유로 정보공개를 최소화했다. 정보공개청구와 행정소송을 수차례 거듭하고서야 학교 이름과 징계 내용, 수사 현황 등이 담긴 자료를 얻을 수 있었다. 이유를 묻자 이 단체 김정덕 활동가는 “놀라고 미안했다”라고 말했다. SNS에서 접한 사건이 “십수년 전 우리가 겪었던 폐해”와 같았다는 것이다. 과거 비슷한 피해를 마주했던 선배이자, 이런 학교에 아이를 보내야 할 부모로서 정보공개청구 소송에 임했다.
“바바리맨이 나타난 건 너희가 자극해서다”
우선 2019년 초 집계한 서울 지역 23개 중·고등학교의 다양한 피해 사례가 있다. 가슴이나 엉덩이를 만지는 ‘전통적’ 추행범들이 있고, 성범죄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주입하는 언동(“바바리맨이 나타난 이유는 너희가 자극해서다” “옷을 야하게 입은 성폭행 피해자들은 할 말이 없다”)도 나왔다. 학생에게 “열 달 동안 생리 안 하게 해준다” “고등학교에 가면 성관계를 맺자” 등의 발언을 한 교사도 있다. “여학생은 커피 타는 위치까지만 올라가야 한다” “예체능 하는 여자애들은 닭대가리고 미개하다” 따위 여성에 대한 비틀린 인식을 드러내는 경우도 나왔다.
이번에 얻어낸 자료에 따르면 이는 빙산의 일각일 가능성이 높다. 서울시교육청이 2018~2020년 스쿨 미투 가해자로 보고를 받은 교사는 188명이다. 사건이 발생한 학교는 94개다. 고등학교 55곳(교사 134명), 중학교 31곳(46명), 초등학교 5곳(5명), 특수학교 3곳(3명)이다. 서울외국어고등학교와 용화여자고등학교, 잠실여자고등학교는 각각 교사 14명이 가해자로 보고됐다. 명지고등학교, 일신여자상업고등학교 교사도 학교마다 12명이 지목됐다.
이 자료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스쿨 미투 초창기부터 이 문제를 지켜봐온 권인숙 의원(더불어민주당)에 따르면, 가해 교사 수가 많다고 반드시 ‘나쁜 학교’라고 보긴 어렵다. 다른 학교보다 문제 교사가 많고 성차별적 분위기가 조성되어 있는 곳일 수도 있지만, 적극적으로 조사에 임했던 학교일 가능성도 없지 않다. 권 의원은 이렇게 말했다. “질 좋은 상담센터나 인력이 들어서면 갑자기 성폭력 피해자가 급증하는 일이 있다. 침묵하던 피해자들이 상담원에게 믿음을 갖게 돼 생긴 일인데, 정반대로 이런 학교가 문제 학교로 몰린다. 성범죄 특성상 이런 가능성도 배제하기는 어렵다.”
가해자의 수보다 주목할 것은 추후 조치다. 가해 교사 12명이 보고된 명지고등학교에서 징계는 경징계(경고 4명, 주의 8명)에 그쳤다. 학생들의 SNS 폭로에 따르면, 이 학교에서는 다양한 유형의 가해가 벌어졌다. 신체 접촉, 시각적 성희롱, 성적 모욕, 성차별적 발언, 여성 비하, 미투 운동 폄훼 따위였다. 한 학생은 SNS에 “졸업생이 미투 지지 대자보를 붙이자 아침에 선생님들이 다 떼어버렸다. 뭐가 그리 떳떳하지 못한가”라는 글을 올렸다. 조사 과정에서 피해자·가해자를 분리하지도 않았다. 서울시교육청 자료에는 그 이유가 “피해 학생을 특정하기 어려움”이라고 적혀 있다.
서울시교육청 자료를 보면 스쿨 미투 폭로 건수는 2018년 정점을 찍은 뒤 2019년, 2020년 수직 낙하했다. 김정덕 활동가는 “학교가 1~2년 만에 건전하고 평등한 공간이 되었다는 뜻일까? 아니다. 믿음을 잃은 것이다. 폭로해봤자 해결되지 않는다는 생각이 퍼져 운동 자체가 위축됐다”라고 주장한다. 이번에 공개된 자료에서 가해 교사 187명 중 44%인 82명은 아무런 처분도 받지 않았다. 해임과 파면은 합쳐서 11%(21명)에 불과하다. 경험을 통해 학생들은 스쿨 미투가 승산 낮은 수단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시간과 비용, 평판을 희생해 가해자를 규탄한 피해자는, 약 90% 확률로 그 교사를 도로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
어디가 문제일까. 스쿨 미투 사례 다수는 ‘언어적 성희롱’인데, 이 문제는 신체 접촉이나 시각을 이용한 추행에 비해 가볍게 다뤄진다. 언어 성희롱으로 분류되는 폭로 97건 중 59건(61%)에 대해, 학교는 아무 조치도 하지 않았다. 폭력에 가까운 말을 쏟아낸 이들 중 해임된 교사는 단 한 명이었다.
제도가 성희롱에 그리 엄격하지 않다. 교육부의 ‘학교 내 성희롱·성폭력 사안 처리 대응 매뉴얼(2020)’에 따르면, 학생의 성폭력 피해 사실을 알게 된 교사는 반드시 교육청에 보고하고 수사기관에 신고해야 한다. 문제는 학생들이 스쿨 미투를 통해 토로한 사례 상당수가 법이 정한 ‘성폭력’의 범위 밖에 있다는 점이다.
강간이나 강제추행처럼 폭력을 사용하거나 피해자 몰래 불법촬영을 시도하는 등의 범죄는 형법, 성폭력처벌법 등에 따라 처벌한다. ‘성희롱 일반’을 처벌하는 법은 따로 없다. 다만 직장 내 성희롱은 남녀고용평등법에서 금하고, 아동이 대상인 성희롱은 아동복지법으로 처벌한다. 아동복지법상 아동이란 18세 미만인 사람이다. 이 법은 ‘아동에게 성적 수치심을 주는 성희롱 등의 성적 학대행위’를 금지한다(제17조 2호).
아동이 성적 수치심을 느꼈다고 주장한다면 어떤 발언이든 ‘성적 학대행위’로 인정되고, 곧 성폭력이라는 의미일까? 교육부 관계자의 말은 다르다. “(아동복지법상 처벌되는) 성희롱은 아동·청소년이 성적 수치심, 굴욕감, 혐오감을 느끼거나 그들의 인격 발달을 현저히 저해하는 행위다. 아동에 대한 성폭력은 (인지한 교사에게) 신고 의무가 있지만 성희롱 혐의도 반드시 그렇게 보기는 어렵다.” 스쿨 미투가 문제시하는 발언 중, 아동복지법에서는 처벌되지 않는 게 적지 않다는 이야기다.
설령 언어 성희롱으로 처벌을 받더라도 교원소청심사위원회가 징계를 낮추는 일이 잦다. 경기도 성남의 한 고등학교 교사는 2015년 어느 날 복도의 여학생들을 “먹을 것”이라고 지칭했다. 수업 중 학생의 이름을 남성 성기에 빗대고, 영어 단어를 설명하며 “옷 단추를 다 풀어헤치는 것이 좋다”라고 발언했다. 2017년 경기도 교육공무원 일반징계위원회는 해임 처분을 내렸다. 하지만 교원소청심사위원회는 정직 3개월로 이를 경감한다. ‘정상 참작’이었다. “언행이 우발적으로 발생하였고, 처음부터 학생에게 성적 수치심을 주는 언어적 성희롱으로 그 정서적 발달을 저해할 목적이 있었던 것은 아니며, 교사로 30년 이상 성실히 근무해왔던 점”을 이유로 삼았다.
교사들도 할 말은 있다. 절대다수의 교사는 성비위에 둔감했던 학교가 변화해야 한다는 데 동의한다. 성폭력 교사를 퇴출해야 한다는 주장도 지지를 얻는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한국교총) 김동석 교권본부장은 한국교총이 성비위 예방 캠페인 자료를 일선 학교에 주기적으로 발송한다고 했다. 다만 김 본부장은 “옥석을 가려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가짜 미투’, 억울한 사례가 스쿨 미투의 본정신을 약화한다. 수개월, 수년간 재판을 거쳐 무죄를 받아도 실추된 교사의 명예는 보상받을 수 없다.”
김동석 본부장은 교육부가 주최한 토론회에서 ‘가짜 미투’라는 표현을 썼다가 방청객에게 강한 항의를 받은 적이 있다고 했다. “피해자 중심주의에 따라, (교사의) 작은 표현 하나도 피해를 부른다고 보는 입장에서 ‘가짜 미투는 없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법원이 무죄판결을 내린 사안을 두고서도 ‘스쿨 미투의 가해자’라는 데에 동의할 수 없다.”
일반적 미투 운동에서 피해자와 가해자의 논박은 진실 게임으로 흐른다. 양자가 다툰다면 둘 중 한 명은 거짓말쟁이다. 사실관계가 완벽히 규명되면, 예컨대 문제 행동이 발생한 날을 찍어놓은 영상이 있다면 어느 쪽이 옳은지 판별할 수 있다. 아동이 피해자인 스쿨 미투는 그렇게 간단치 않다. ‘성범죄 은폐’와 ‘기획 미투’ 사이에는 넓은 영역이 있다. 상호 오인이다. 고령의 교사는 변화하는 상식에 적응이 늦고, 아동은 성인의 말을 온전히 해석하지 못한다. 아동이 개입되어 있다는 사실 때문에 객관적 실체가 드러나도 제3자의 생각이 갈린다.
스쿨 미투의 가해자로 지목된 광주의 중학교 도덕 교사 배이상헌씨는 ‘성적 학대’로 고발당한 자기 수업을 재현했다. 수업 중 발언과 자료를 그대로 보여주면 문제가 해결되리라 생각한 것이다. 실제 검찰 조사 결과 그는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그럼에도 온라인상 일각에는 ‘미숙한 학생들에게는 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는 반응도 나왔다(〈시사IN〉 제695호 ‘배이상헌 교사 사건은 무슨 교훈을 줄 것인가’ 기사 참조).
반대로 아동과 성인의 판단 능력 차이로 인해 생겨나는 더 큰 문제가 있다. 실제로는 피해를 입었는데 아동이기에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이다. 가령 초등학교 저학년 학생에게 성행위 장면을 보여주거나, 중학생에게 성범죄 판례를 세세히 묘사하는 일은 아동 자신이 어떻게 생각하든 부적절하다.
‘당사자가 느끼는 피해’에만 매달릴 것인가
2017년 11월 국가인권위원회는 ‘초중고 교사에 의한 학생 성희롱 실태조사’에서 고등학생 1014명을 온라인 조사했다. 고등학교 입학 이후 성희롱을 경험했다는 응답자 가운데 37.9%가 사건 당시 ‘모르는 척하고 가만히 있었다’고 했다. 1순위 이유는 ‘별일이 아니라고 생각해서(41.0%)’다. 신체 발달이 성인에 가까워진 고등학생마저, 성희롱 피해는 뒤늦게야 알아차리는 경우가 많다는 이야기다. 스쿨 미투는 단순히 억눌린 목소리가 아니라 당사자에게 일러줘야 할 피해다. 성추문보다 아동학대 성격이 짙다.
‘당사자가 느끼지 못하는 피해’를 막기 위해 아동 성희롱 판별 기준을 새로 만들자는 제안도 법학계 일각에서 나온다. 김슬기 교수(대전대 법학과)는 논문 ‘아동학대범죄의 구성요건 정비 방안(2021)’에서 아동이 성적 굴욕감이나 혐오감을 느꼈는지에 의존하지 말자고 주장한다. ‘아동의 성적 발달을 저해할 수 있는 객관적 성적 언행 여부’를 핵심 요건으로 삼자는 것이다. 이 제안은 스쿨 미투를 더 폭넓게 보호하기 위한 방편이지만, ‘피해자 중심주의’와는 조금 다르다. 피해 당사자인 아동의 판단 능력이 불완전하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아동이 성적 수치심을 느끼지 않아도 (제3자가 보기에 문제가 있다면) 가해자를 처벌할 수 있다’는 말은, ‘아동이 피해를 호소하는 사건도 실제로는 성적 가해가 아닐 수 있다’는 의미도 된다. 예컨대 ‘성적 발달’ 단계에 적합하다고 인정받은 성교육 수업은, 아동 당사자가 불편함을 느끼더라도 아동복지법상 성희롱으로 처벌할 수 없다.
이런 제안에 회의적인 시각도 있다. 성균관대 법학연구소의 송승현 박사는 현행법이 부실한 게 아니라, 애초 성희롱이라는 개념 자체가 구체적으로 규정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본다. 송 박사의 말이다. “‘이 말을 했으니 성희롱이다’는 건 없다. 상황과 방식, 의도, 반응을 모두 따져서 판단할 따름이다. ‘8세 아동에게 어떤 말을 하는 건 성희롱이다’ 같은 법이 나오는 순간 바로 반박이 들어올 것이다. 8세는 안 되고 9세는 되는 이유가 있냐는 식이다.”
송 박사는 아동보호를 위해 법으로 기계적 합의를 만들어두는 것보다, 개별 피해 아동의 발언권을 온전히 보장하는 게 먼저라고 본다. 예컨대 성폭력처벌법상 아동성범죄 피해자의 영상 진술 규정을 그는 지지했다. 피고인과 마주하지 않도록 촬영물로 법정 출석을 대체하는 규정인데, 피고인 방어권을 지나치게 제한한다는 이유로 지난해 헌법재판소가 위헌 결정을 내렸다. 그는 “아동은 ‘진술 역량’이 떨어진다는 점을 법원이 감안해야 한다. 성인을 기준으로 봐서 증언을 배척해서는 안 된다”라고 말했다.
아동·청소년 대상 범죄는 의분을 부른다. 모두가 범죄자를 엄벌하자고 소리 높이지만 사실 이렇게 외치는 데 큰 힘이 드는 건 아니다. 폭로가 멎어도 스쿨 미투 국면은 끝나지 않는 까닭은 성범죄자 규탄보다 훨씬 무거운 질문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떤 말부터 어떤 행동까지 금지할 것인가? 무슨 과정을 거쳐 이런 조치에 이를 것인가? 누구의 말을 듣고 누구의 말을 흘리는 게 옳을까? 아동을 보호하는 것과 존중하는 것 중 무엇이 우선인가?
🟣 [시사인/ 기자 이상원] 기사 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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