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신문] 신학기 준비, 아직도 ‘딸은 분홍 아들은 파랑’?
아동용품 속 성역할 고정관념 여전
소비자들 개선 요구에도 시장 변화 더뎌
“성별 표기·성차별 문구 삭제·개선”
기업들 약속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아
아동용품 색상에 따라 성별 구분 관행은 언제까지 반복될까. 2023년에도 ‘신학기 필수템’ 대부분은 성별에 따라 분홍색 또는 파란색으로 나뉜다. ⓒ이은정 디자이너
‘분홍색은 여아, 파란색은 남아’. 아동용품의 색깔로 성별을 구분하는 관행은 언제까지 반복될까. 성 역할 고정관념을 심어 줄 수 있으니 개선하자는 소비자들의 목소리가 높고, 국가인권위원회의 개선 권고도 나왔다. 시장의 변화는 더디다.
새 학기를 앞둔 지난 2월28일 서울 시내 곳곳의 아동용품 매장을 둘러봤다. 필기구 등 문구류, 실내화, 학습 보조자료 등 ‘신학기 필수템’ 대부분은 성별에 따라 분홍색 또는 파란색으로 나뉘어 있었다. 완구류는 더 뚜렷했다. 화장놀이, 소꿉놀이, 인형 등은 분홍색 계열, 로봇, 자동차, 장난감 무기 등은 파란색 계열이었다.
새 학기를 앞둔 지난 2월28일 서울 동대문구 창신동 문구·완구거리에서 가족들이 물건을 고르고 있다. 매대의 여아용품은 분홍 일색이었다. ⓒ이세아 기자
지난 2월28일 서울 중구 롯데마트 서울역점 아동 완구류 판매대. 여아용품은 대부분 분홍색이다. ⓒ이세아 기자
아이들 실내화도 성별에 따라 분홍과 파랑으로 나뉜다. ⓒ이세아 기자
아이들 놀이용품도 성별에 따라 색상을 나눈 제품이 많았다. ⓒ이세아 기자
일부 완구류는 아예 남아 캐릭터가 그려진 파란 포장지에 ‘사나이’, ‘남자다운 남자’ 같은 광고 문구가 붙어 있었다. 2021년 시민단체와 인권위의 개선 권고를 받아들여 자사 제품에서 성별 표기나 성차별적 문구를 삭제하겠다던 8개 기업(유한킴벌리, 중동텍스타일, BYC, 아모레퍼시픽, 모나미, 모닝글로리, 다다, 영실업) 중 일부 기업 제품도 포함돼 있었다.
온라인 쇼핑몰도 마찬가지다. 1일 주요 온라인 쇼핑몰에서 ‘개학’, ‘신학기’, ‘입학’ 등 키워드 검색 결과, ‘여아’ 관련 제품은 분홍색, ‘남아’ 관련 제품은 파란색으로 등록된 경우가 많았다.
아이와 함께 물건을 사러 온 보호자들은 성차별적 성별 구분을 지적했다. 이날 서울 동대문구 창신동 문구·완구거리에서 딸과 함께 신학기 용품을 고르던 김혜영(35)씨는 “여아용품은 분홍색이 압도적으로 많다. 우리 딸이 분홍색만 좋아하는 건 아닌데 어느새 ‘핑크공주’가 돼 있다”고 말했다. 김씨의 장바구니엔 정말 분홍색 물건이 가득했다.
롯데마트 서울역점을 찾은 두 딸 아빠 신상진(42)씨는 “여아 문구·완구류는 사랑스럽고 아기자기한 느낌의 분홍색 물건이 대다수다. 아이가 좋아해서가 아니라 선택의 폭이 좁아서 계속 그런 물건을 사게 된다”고 말했다. 초등학생 딸·아들 물건을 사러 온 황영호(40) 씨는 “중고등학생만 해도 훨씬 다양한데 어린아이 물건은 여전히 성별에 따른 색상 구분이 뚜렷하다. 기업들이 조금 더 다양한 선호와 취향을 반영해서 물건을 만들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 온라인 유통업체 관계자는 여성신문에 “성차별 의도는 없는데 소비자들이 아이 성별에 맞는 제품을 구매하고 싶어한다. 애초에 아이들 물건은 성별로 색상을 달리해 나온 제품이 많다”고 답변했다.
온라인 쇼핑몰에서는 아이 성별에 따라 분홍색이나 파란색으로 제품을 구분해 판매하는 업체가 많다. ⓒ온라인 쇼핑몰 화면 캡처
‘여아는 분홍, 남아는 파랑’ 이분법은 기업 마케팅과 사회화의 산물이다. 윤정미 사진작가의 ‘핑크 & 블루 프로젝트’가 잘 보여준다. 분홍색을 좋아하는 여아, 파란색을 좋아하는 남아를 찾아 촬영하고, 이들이 성장하며 선호하는 색상이 변화하는 모습을 재촬영했다. 성별에 따라 분홍색과 파란색 물건에 둘러싸였던 아이들의 세계가 점차 개성·취향대로 바뀌는 모습을 보여준다.
여성·시민단체들도 꾸준히 문제를 제기해왔다. 한국여성민우회는 2019년 5월 ‘#장난감을_바꾸자’ 캠페인을 통해 “여아는 핑크. 남아는 블루로 색상을 고정하지 말아주세요” 등 시민들의 의견을 모아 작성한 ‘성평등한 장난감을 위한 제안서’를 주요 완구회사 5곳에 전달했다. ‘정치하는엄마들’은 지난 2020년 1월 일부 제품 사례를 들어 인권위에 “영유아용품의 성차별적인 성별 구분을 즉각 시정해달라”고 진정했다.
인권위는 2021년 5월 해당 제품을 만든 기업들에 개선을 권고했다. “아이들은 여성은 연약하고 소극적이고, 남성은 강인하고 진취적이라는 성역할 고정관념을 학습하게 되고, 가사노동이나 돌봄노동은 여성의 역할이라는 인식을 무의식중에 갖게 된다”고 설명했다. “우리 사회가 성별에 따라 색깔을 구분하는 방식을 탈피, 성별을 구분하지 않고 사람 자체로 접근하는 ‘성중립적인(gender-neutral)’ 방향으로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도 지적했다.
📰[여성신문 | 기자 이세아] 기사 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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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파일] 국가인권위의 영유아 상품의 성별에 따른 색깔 구분 및 표기 관행 개선을 위한 의견표명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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