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엄마 과학자 창업 도전기] 1화. 나에겐 선택지가 없었다. (윤정인)

[엄마 과학자 창업 도전기] 1화. 나에겐 선택지가 없었다.
종합 땡그리엄마 (2020-09-09)
1화. 나에겐 선택지가 없었다.

창업을 했다. 꼭 그러려고 했던 것은 절대로 아니었지만, 아무튼 창업을 해야 했다. 나에겐 선택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학생 때 엄마가 되었다. 어마어마하게 커리어를 쌓아서 앞으로 달려 나가야 했던 박사 4년차, 나는 엄마가 되었다. 나를 보며 방긋방긋 웃는 아이를 내 손으로 키우고 싶어, 커리어를 변경했었다. 그렇게 나는 뜻하지 않게 남들과는 다른 길을 걷게 되었다.

처음 선택지는 포닥이었다. 박사 3년차 임신, 그리고 4년차 출산 후 졸업….남들은 해외포닥을 가네 마네 하던 시절, 나에게는 이제 막 이유식을 시작한 아기가 있었다. 아이를 키울 수 있는 조건을 충족시키기 위해 나는 취업을 선택했다. 아니 취업을 했다. 나에게는 대신 육아를 해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두 번째 선택지는 회사였다. 내 동기들이 모두 자신의 연구환경을 고려하고, 본인의 연구방향을 고려하여 취업을 선택할 때, 나에게는 그런 것을 고민할 여유가 존재하지 않았다. 나에게 중요한 취업 조건은, 엄마인 내가 9 to 6 로 정확하게 근무를 할 수 있고, 야근 없고, 특근 없고,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이 보장되면 장땡이었다. 그저 룰을 지키는 회사, 우리 집에서 가까운 회사, 아이 어린이집을 보내는 환경에서 멀지 않은 곳에만 존재하면 그만인 곳으로 이력서를 넣었다. 그래, 이때도 나는 선택지가 없었다. 나의 모든 커리어는 엄마란 직업에 좀 더 집중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첫 번째 회사도, 두 번째 회사도 나에겐 모두 아이 엄마, 그리고 과학자의 경력을 간신히 이어붙일 수 있는 기본적인 요건만 갖추면 되었었다. 그리고 이런 나의 선택 아닌 선택은 현재의 나를 만드는데 많은 보탬이 되었다.

첫 회사에서 나는 스타트업이 중소기업으로 성장하는 시점을 경험하였다. 덕분에 투자를 받아 회사가 성장하는 방식, 그리고 실험실을 셋팅하는 경험, 회사 이전을 준비하는 경험을 하며 일을 배울 수 있었다. 나에겐 창업에 필요한 경험이 된 셈이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경험이 있었다. 나는 이 회사에서 관리자가 해야 하는 일에 대해 배웠다. 대표가 해야 하는 일도 배웠다 대표도, 관리자도 그들은 직원을 희생시키기 위해 있는 사람이 아닌, 직원들을 보호해야 하는 사람들이란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러지 않는 상사 밑에서 일 하는 게 얼마나 힘든지도 경험할 수 있었다. 아! 일 가정 양립이 되지 않는 회사에서 어떻게 밀려나게 되는지도 경험할 수 있었다. 살아 생전 두번은 겪고 싶지 않았으나, 창업자라는 입장에서 볼 때 꽤나 진귀한 경험이었다.

첫 회사에서 몸소 체험하게 된 것은 양육의 유무에 의해 파생되는 노동시간에 대한 문제였다. 뭐 사실 근로계약서에 9 to 6로 계약을 했고, 나에겐 법적으로 보장된 연차라는 것이 존재하였다. 그러나 실험 노동자라는 특수한 환경으로 인해 노동시간을 오버할 때가 많았다. 사실 양육을 하지 않았던 그냥 과학자였던 시절에는 시간을 넘겨서 연구를 하는 것이 문제가 되었던 적이 없었다. 나에게 실험은 늘 즐거운 일이었고, 연구로 인해 야근을 하는 것은 귀찮기는 했지만, 고생 끝에 재밌는 결과를 얻게 되는 경우, 꽤나 뿌듯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내가 양육자라는 새로은 직업군을 부캐로 얻게 되면서였다. 아이의 어린이집 등하원 시간은 정해져 있었다. 정부에서 말하는 어린이집은 오전 7시 반부터 저녁 7시 반까지였으나, 만 4세 이하의 어린아이들을 케어하는 어린이집에서 그렇게 아이를 케어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어린이집이 정상적으로 운영하지 않으니 신고하면 된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음.... 신고를 하는 것이 능사일까?

아니다. 그렇지 않다.

신고를 하는 순간 우리 아이는 어린이집 선생님들 커뮤니티에서 이름이 오르내릴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사실 영유아기에는 사고가 날 확률이 높아 어린이집에서도 기피한다. 밥을 일일이 먹여야 하고, 기저귀를 하는 경우도 있으며, 낮잠을 자는 아이다. 말을 할 수 없어 의사소통이 어려우며, 걷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이런 아이를 받아주겠다고 말하는 어린이집을 찾는 것이 어려운 마당에 부당하다고 신고를 하라는 건, 슈퍼 을의 입장인 엄마로썬 어려운 일이었다. 몇 시에 끝나건, 나는 받아만 주면 감사한 상황이었다.

대게 아이의 어린이집 하원 시간은 대한민국에서 8시간 근무를 하는 정규직 엄마의 노동시간과는 맞지 않았다. 아이 하원은 늦어야 5시인데 내 퇴근 시간은 빨라야 6시이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돌봄 공백을 막기 위해 베이비시터 이모님을 고용했던 적도 있었고, 아예 야간반을 운영하는 희귀한 어린이집을 찾아 헤매기도 했다. 대한민국에서 육아를 하는 양육자가 직장을 다니기 위해서는 별수 없는 선택지인 셈이다.

간신이 적합한 돌봄 도우미를 구한다 해도, 두 번째 미션이 양육자를 기다린다. 아이는 자주 아프다. 이렇게 되면 문제가 크게 발생을 한다. 아이는 자주 아프고, 언제 컨디션이 회복될지 모르는 반면, 내 실험은 아직 결과를 보지 못했고, 나의 연차는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다양한 이벤트로 인해 자주 연차를 쓰고, 자주 지각을 하고, 자주 조퇴를 하게 되는 상황을 겪고 나면, 나의 인사고과는 형편없어지기 마련이다.

이런 이벤트로 밀려난 첫 직장. 그리고 이러한 문제를 없애기 위해 선택한 두 번째 직장도 좋은 선택지는 아니었다. 정확히 언급하자면 좋은 선택지를 고를 수 없었다. 온갖 이벤트로 고생한 턱에 다음 취업 조건이 무조건 유연한 근무환경이었기 때문이다. 유연한 근무를 위해 이직한 소규모 회사는 아주 큰 문제가 있었다. 경영자가 빌런이었다.

빌런 경영자는 불로소득을 추구했다. 다시 말해 회사에 나오지 않아도 직원들이 알아서 일해서 알아서 돈을 벌어다 주길 바랬다. 덕분에 또 나는 능력치를 레벨업 할 수 있었다. 빌런 대표 덕에 온갖 사업 계획서 쓰는 법을 배우게 되었고, 팀의 리더가 어떤 자세를 추구해야 하는지를 배웠으며, 법인 자본 관리하는 법, 자산관리하는 법, 채용 신고 퇴사 시 신고 등등등.....그런 잡무를 배울 수 있었다.

아주 희귀하지만 진귀한 경험이었다. 창업을 고민하게 된 시점은 이 회사를 통해서였다. 그전에는 벤치 사이언스에만 집중해서 살았는데, 이곳에서 겪은 3년 덕에 온갖 일을 배운 것이 계기였다. 연구만 하는 것이 아니라, 온갖 일을 배워야 했었다. 과제 신청을 위해 온갖 서류를 다루다 보니 발생된 능력이었다. 재무제표가 중요한 것도 알았고, 자본과 자산이 무엇인지, 자본잠식이 무엇인지도 알게 되었다. 비투비, 비투씨부터 OEM, ODM 기획이며, 발주며.....;;;;;;

대체 이걸 왜 배워야 하는지 잘 모르겠는데 하여간에 과제 신청해보겠다고 별걸 다 했다. 대한민국에서 대학원을 나온 이들이라면 자주 썼던 연구 과제 신청서와 달리, 사업을 위한 중기청 과제는 난이도가 높았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어쩌면 우리는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그런 전문지식을 비 전문가들에게 설명하고, 이런 것들이 기술력이라는 것을 어필해야 했다. 참 어려운 일이었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 있었다. 자기 논문 연구에만 관심 있고 직원들 월급 줄 생각을 안 하며 미안하단 말만 하는 대표를 설득하는 일이었다.

그러면서 깨달았다. 아 이해력 후달리는 사람을 데리고 일을 할 바엔 그냥 내가 창업을 해서 결판을 보는 게 더 빠르겠다는 현실을 말이다. 그래서 창업을 준비했다. 대표가 하던 것의 반대로 일단 하다 보면 수명연장은 가능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보다 더 중요한 사실이 있었다. 아이가 7살 이란 사실이었다. 회사 폐업을 결정한 시기는 올 1월이었다. 코로나 팬데믹이 오기 전이었으나 아무튼 이직을 결정하기엔 아이가 걸렸다. 어느 회사에 들어가건 나는 내년에 초등학생 아이의 부모가 된다. 그 유명한 초등 돌봄 위기에 직면한 상태인 셈이다. 내가 어디에 이직을 하건, 입사한지 1년된 중간 관리자가 아이의 케어를 위해 육아휴직을 낼 수 있을까? 한달 돌봄 휴가를 내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제도는 가능할 것이다. 아마도 내가 신청을 하면 이를 받아줄 회사도 분명 있을 것이다. 문제는 나다. 내가 그 휴가를 마음 놓고 쓸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일 욕심이 많은 사람이다. 일에 대한 평가를 잘 받고 싶어 하는 욕심이 많다. 그런 내가 고작 1년 새로운 연구를 하고 2년 차, 한참 연구에 스피드가 붙을 시점에 휴식을 쓰고 싶어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럼 간단하게 나는 아이를 다른 곳에 맡기면 된다. 이모님을 구하여 아이 케어를 부탁할 수도 있고, 다른 선배 과학자들의 조언대로 아이를 친정 부모님께 맡기는 방법도 있다. 어차피 아이 교육도 해야 하니, 교육을 높은 친정 부모님댁에 아이를 보내고, 주말마다 내가 아이를 보러 가는 방법도 있었다. 그러나 그러고 싶지 않았다. 나는 과학자인 것도 맞지만, 엄마이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까지 아이를 직접 케어해왔다. 중간중간 이모님의 도움을 받기도 하였으나, 주 양육자는 나와 아이 아빠 두 사람이었다. 육아와 연구를 병행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모르고 선택한 어리석은 선택이었으나, 어찌하다 보니 꾸역꾸역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 그래서 아이를 품에서 떼어놓는 것을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다. 물론 가끔 아이 떼어놓고 출장 가는 게 아주 씐나긴 하였으나, 매일 아이와 눈을 뜨고 눈을 감는 생활이 없어진다는 것을 상상할 수 없었다. 그리고 아이는 항상 일하는 엄마를 그리워했다. 매일매일 함께 있어도, 아이는 엄마와 낮부터 함께 할 수 없음에 서운해했다. 그런 아이를 어찌 품에서 떼어놓겠는가...
 

나에겐 초등돌봄에 대응이 가능한 유동성 있는 직장이 필요했다. 그렇게 생각한 선택지가 바로 창업인 것이었다. 창업을 하면, 최소한 연구를 하건 뭐를 하건 아이가 나를 필요로 할 때 시간을 유동성 있게 사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것이 창업의 첫 계기가 되었다. 여성 연구원이 분명 많았는데 관리직으로 갈수록 참 줄어든다고 하는 의약화학 분야의 회사를 만들고, 그 회사에 나와 같은 양육자들이 늘어나고, 함께 육아와 연구하는 줄타기를 하게 되면 느리더라도, 우린 달려갈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인 셈이다. 

그래서 아무튼 3년을 개겨야 한다 ㅋㅋㅋㅋㅋ 아이를 좀 덜 걱정하기 위해선 아이가 초등학교 3학년은 되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결국 창업에 손을 대고 말았다. 어쩔 수 없이 선택한 과학자의 창업.... 이 창업의 늪에서 나는 과연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 무사히 회사를 살려내어 7살이 중학교에 가기 전까지 과연 버틸 수 있을 것인가 싶긴 하지만, 사실 그냥 버텨야 하는 입장이라 버티려고 한다. 역시나 나는 다른 선택지가 없기 때문이다. 

출처: [BRIC Bio통신원] [엄마 과학자 창업 도전기] 1화. 나에겐 선택지가 없었다. ( https://www.ibric.org/myboard/read.php?Board=news&id=321153&SOURCE=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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