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과학자의 설거지와 엄마의 설거지는 다르지 않다 (윤정인)

과학자의 설거지와 엄마의 설거지는 다르지 않다

 

 칼럼니스트 윤정인

 

[엄마 과학자 생존기] 왜 어떤 설거지는 위대한 노동이고 어떤 설거지는 허드렛일인가

나는 집안일에 부담을 느끼지 않는 편이다. 종일 “엄마!”를 외쳐대는 아이 돌보는 일이 세상에서 제일 힘들지, 그 외 요리를 하거나, 빨래하거나, 청소하는 일이 크게 부담스럽지 않다.

남편 역시 가사노동을 해야 하는 타이밍에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진지한 태도로 임하는 사람이기에 더욱 그렇다. 오히려 우리는 가사노동이 아이 돌보는 일보다 편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이유는 단순하다. 과학자 부부인 우리에게 실험실에 나가 일하는 것과 집에서 집안일 하는 것이 딱히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실험실에서 하는 일과 가사노동은 위치만 다를 뿐 내용이 같다.

일반적인 화학자의 연구를 생각해 본 적 있는가? 미국 드라마에 나오는 것처럼 깨끗한 가운을 휘날리며 실험에 매진하는 모습? 결론부터 말하자면 내겐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연구 과정은 대충 이렇다.

출근→실험복 착용→메인 실험→실험 테이블 정리→실험 후 정제→실험 테이블 정리→연구 노트 정리→사용한 실험도구 세척→퇴근

용어 때문에 그럴듯해 보이겠지만, 이 내용을 다시 정리하면 이렇다.

출근→실험→청소→실험→청소→설거지→퇴근

우리 직종의 연구자들은 매일 회사에서 청소와 설거지를 하고 집에 온다(하지만 집에선 ‘실험’하고 왔다고 말한다). 

◇ 실험실 노동과 가사노동의 공통점… 청소·정리·설거지가 기본!

유기화학 실험 모습. 유기화학 연구는 요리와 비슷하다. ⓒ윤정인
유기화학 실험 모습. 유기화학 연구는 요리와 비슷하다. ⓒ윤정인

유기화학 연구는 요리와 비슷하다. 우선 나의 실험 목표와 유사한 관련 논문을 먼저 읽고, 논문을 기반으로 실험하기 위해 연구 노트를 펼친다. 이 연구 노트에는 실험을 진행할 때 넣을 시약의 무게를 미리 계산해서 적고, 대략의 실험 방법도 적어둔다.

이 과정은 사람들이 요리하기 전 레시피를 확인하고, 요리 재료를 준비하고, 요리에 앞서 레시피를 복기하는 것과 비슷하다. 요리해야 할 음식의 양을 생각하고 냄비를 고르듯, 화학자들도 실험할 양을 먼저 파악하고 거기에 맞는 초자(실험 기구)를 준비한다.

요리사가 냄비에 재료를 넣고 섞어 끓이는 것처럼, 화학자도 준비한 초자에 실험 재료를 넣고, 섞어 끓인다. 그리고 결과가 나올 때까지 기다린다.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사용한 물건을 정리하고 청소한다. 

일정한 시간이 흐르고, 요리사가 음식의 간을 보는 것처럼, 우리는 TLC(얇은 막 크로마토그래피) 분석법으로 처음 넣은 물질이 없어지고 새로운 물질이 생겼는지 시간별로 관찰한다. 싱거우면 소금을 더 넣듯, 우리도 관찰하다가 부족한 시약을 더 넣기도 하고, 음식에 불 조절을 하듯 온도를 올려 데우기도 한다.

얇은 막 크로마토그래피 분석 실험 모습. 요리 하다가 간 보고, 싱겁다 싶으면 소금을 치듯, 이 과정에서도 간 보듯이 관찰하고, 시약을 더 넣기도 한다. ⓒ윤정인
얇은 막 크로마토그래피 분석 실험 모습. 요리 하다가 간 보고, 싱겁다 싶으면 소금을 치듯, 이 과정에서도 간 보듯이 관찰하고, 시약을 더 넣기도 한다. ⓒ윤정인

이렇게 간단한 분석법으로 원하는 물질이 생겼을 것이라는 판단이 들면 반응을 끊고 다음 단계로 불순물 제거를 위한 실험을 진행한다. 요리로 치면 가스레인지를 끄는 과정이다.

그러나 요리였다면, 이제 먹기 좋게 차리면 끝날 일이지만, 실험은 그렇지 않다. 원하는 물질이 TLC에 나타난 반응 중 어떤 것인지 특정하기 위해 추가 실험을 진행한다. 원하는 물질만을 얻기 위한 작업은 평균 두 번, 많으면 될 때까지라는 목표로 진행한다.

이런 과정을 할 때마다 청소하고 정리해야 한다. 연구가 잘 돼서 물질도 잘 얻었고, 실험도 성공했다 치자. 그다음 단계는? 모든 연구의 마무리는 생물이건 화학이건 같다. 바로 설거지다.

유리 초자가 아주 반짝반짝할 때까지 닦아서 오븐에 말려야 한다. 실험 과정 중 제일 번거로운 일이 바로 이 설거지인데, 단계가 좀 복잡하다.

세제와 수세미를 이용해 구석구석 닦는다→이 과정에서 얼룩이 제거되지 않은 초자는 따로 빼서 분류한다(이런 애들은 강염기나 강산으로 따로 목욕시킨다)→1차 비누칠 후 물로 헹궈낸 실험 도구는 아세톤(100%)으로 헹군 뒤 물기를 제거한다→물기를 잘 제거한 도구들은 오븐에서 말린다. 

오븐에 말려놓고, 고무장갑 정리하고, 마지막으로 실험실 휴지통까지 비워놔야 비로소 우리의 연구 일과를 마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실험실의 일상적 노동이란 게 가사노동과 딱히 다르지 않다. 좀 다른 것이라곤, 일반적인 그릇보다 각이 많아서 닦기 힘들다는 것과(삼각플라스크 같은 것) 설거지를 하는 사람들이 고글 끼고, 마스크 쓰고, 실험복을 입고 있다는 정도?

실험실 청소에는 가사노동처럼 인간의 힘이 많이 필요하다. 쓸고, 닦고, 정리하고, 설거지하고, 초자 말리고, 마른 초자는 빼서 정리하고…, 가사노동을 편히 하려고 로봇청소기, 핸디청소기, 식기 세척기, 전자레인지가 존재하는 것처럼, 실험실 노동의 수고를 덜기 위해 우리도 청소기 쓰고, 초자 세척기 쓰고, 마이크로웨이브라는 기계도 쓴다. 

그러니 내게 집안일은, 연구실에서 늘 하던 일이기에, 그저 연구실 생활의 연장선일 뿐, 더 힘들지도, 더 쉽지도 않은 일이었다.

그런데 연구실 노동이 가사노동과 가장 비슷한 부분은 따로 있다. 바로, 아무도 내 노동을 알아봐 주지 않는다는 것, 열심히 한 사람 혼자만 뿌듯하다는 것, 그런데 조금이라도 게으름을 부리면 금방 지저분해지고, 주변에서 더럽다는 소리를 듣게 된다는 것, 즉, 해도 티가 안 나는데, 안 하면 티가 너무 난다는 것!

또, 연구도 집안일처럼 ‘장비빨’이 있어야 한다는 점도 같다. 돈이 많으면 더 많은 기계를 사들여 노동의 수고를 좀 덜 수 있다는 점이 다르지 않다. 돈이 없는 연구실은 장비빨을 세울 수 없어서 더 많은 학생이 필요해진다. 

◇ 일곱 살 땡그리는 그래서 오늘도 설거지를 한다

설거지하는 일곱 살 아들 땡그리. 우리는 지금 삶의 기본을 조기교육 하는 중이다. ⓒ윤정인
설거지하는 일곱 살 아들 땡그리. 우리는 지금 삶의 기본을 조기교육 하는 중이다. ⓒ윤정인

어느 실험실이건 처음 연구할 때, 청소와 설거지를 가장 먼저 배운다. 실험실을 깨끗이 해야 실험 시 발생할 수 있는 외부 요인을 최소화할 수 있고, 데이터를 깨끗하게 얻을 수 있다. 그래서 실험실 막내들은 설거지에 시달린다. 설거지와 청소가 실험의 기본이기 때문에, 처음 연구실에 온 학생들에게 주는 ‘업무’임에도, 막상 배우는 친구들은 자신이 ‘허드렛일’을 한다고 착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실험실에서 청소와 정리, 설거지는 절대로 허드렛일이 아니다. 실험의 시작이고, 기본이자 개념이며, 마무리다. 깨끗한 실험실에서 깨끗한 테이블 위에서, 깨끗한 초자를 사용해야 실험의 오차를 줄일 수 있고, 데이터가 오염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집안일도 마찬가지다. 집에서 일상을 편안하게 영위하기 위해서 가사노동은 필수다. 우리는 일상을 이어나가기 위해 청소하고, 집안을 정리하고, 요리하고, 설거지를 한다. 혼자 산다면, 대부분 직접 하겠지만, 대부분은 엄마의 ‘희생’, 혹은 돈으로 구매한 기계로 그 노동을 대체하고 내가 쉬는 시간을 번다.

연구의 오차를 줄이고, 좋은 데이터를 만들 수 있게 돕는 실험실 정리 노동과, 매일 우리가 편안한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집을 정리하는 가사노동을 과연 다르다 볼 수 있겠는가. 실험실에서 하는 노동과 큰 차이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단지 ‘집에서 하는 노동’이란 이유로 가사노동이 홀대받는 게 정말 옳은 일인가?

직업이 직업인지라, 간혹 과학자의 길을 어떻게 해야 갈 수 있냐는 질문을 받는다. 다른 과학자들이 어떻게 사는진 모르고, 내가 아는 과학자의 삶이란 그저 유기합성학자라는 점에 비춰봤을 때, 과학자의 삶을 즐기기에 적합한 사람은 가사노동을 군말 없이 하는 사람이다.

무언가 오래 앉아서 집중하는 것을 잘한다면 연구직은 타고났다고 볼 수 있다. ‘덕질’해본 적 있다면 특히 그렇다. 자고로 연구라는 건 당장 결과가 보이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엉덩이 오래 붙인 사람이 마지막에 웃는다.

또, 가사노동 잘하는 사람을 내가 높게 평가하는 이유는, 평소에 청소 잘하고, 설거지 잘하고, 정리 잘하는 친구들이 실험 수행할 때 오차가 적고, 오차가 적은 이들이 좋은 데이터(일관성을 보이는)를 얻는다는 개인적인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아이를 혹시 과학자로 키우고 싶다면 꼭 설거지를 시키시길. 또, 평소에 청소도 자주 시키고, 본인 책상만큼은 스스로 깔끔하게 정리할 수 있게. 앞에서 말했듯 실험실 노동의 기본은 청소와 정리, 설거지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느 회사에 들어가든 본인 자리는 잘 정리하고 살아야 하기에, 이런 노동은 삶의 기본이라 볼 수 있다.

그래서 나도 요즘 일곱 살 우리 땡그리에게 삶의 기본을 알려주는 중이다. 물론 너무 어지럽혀서 엄마 아빠를 정말 ‘환장’하게 만들지만, 그래도 이런 걸 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어딜 가든 가장 기본임을 믿어 의심치 않기 때문에. 이런 조기교육이라면, 부모로서 할 만큼 하는 것 아니겠나?

*칼럼니스트 윤정인은 대학원생엄마, 취준생엄마, 백수엄마, 직장맘 등을 전전하며 엄마 과학자로 살기 위해 '정치하는엄마들'이 되었고, ESC(변화를 꿈꾸는 과학기술인 네트워크)에서 젠더다양성특별위원회의 위원장이 되어 프로불만러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실은 회사 다니는 유기화학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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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s://www.ibaby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88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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