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돌봄교실 지자체 이관? 아이들을 쫓아낼 생각입니까 (김정덕)
돌봄교실 지자체 이관? 아이들을 쫓아낼 생각입니까
[온종일돌봄특별법안, 이렇게 본다] 초등돌봄의 민영화일 뿐... 학생들만 피해 본다
▲ 지난 1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권칠승, 강민정 의원이 발의한 온종일돌봄 특별법 철회 촉구 기자회견에서 "정치하는 엄마들" 등 참석자들이 법안 철회를 촉구하고 있는 모습. | |
ⓒ 연합뉴스 |
지난 9월 14일 국회 앞. 시민단체 정치하는엄마들은 온종일돌봄특별법안 입법 철회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생존을 위해 일터를 떠날 수 없었던 양육자들을 전화로 연결해 비참한 심정을 세상에 알렸다. 이들은 입법자인 국회의원들에게 돌봄 운영 주체를 학교가 아닌 지방자치단체로 이관 가능하도록 한 법안이 간과한 점이 무엇인지 일갈했다. 돌봄교실을 직접 이용하면서 느꼈던 서글픔을 전하는 당사자의 절규였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한 첫날, 그 누구도 돌봄교실에 대한 안내를 해주지 않았습니다. 담임 선생님을 찾아가 여쭤봤더니 '모른다'고 하셨습니다. 1학년 교무부장 선생님을 찾아가 여쭤봤더니 또 '모른다'고 하셨습니다." (학부모 A씨)
내 아이가 가난한 부모를 만나 사적 돌봄을 이용할 수 없고, 돌봐줄 보조 양육자가 없는 우리 존재가 마치 이 사회에 필요악처럼 느껴져 좌절감마저 듭니다. 학교에서 내 아이를 떠받들어 달라고, 요구를 들어달라고 떼쓰는 것으로 보이십니까? 떼쓸 여유도 여력도 없습니다. 그저 이렇게라도 삶을 이어갈 수 있게, 이 나라에서 성인이 될 때까지만 안전하게 자랄 수 있는 환경이 되길 바랄 뿐입니다." (학부모 B씨)
유례없는 감염병 위험은 어린이집·유치원·학교 모두 신체 건강과 사회성을 높일 수 있는 곳으로서 그 공적 역할을 다시 되새기게 했다. 학교만큼 방역에서 안전하고 물리적으로 안정된 공간은 지역에서 찾기 어렵다. 휴업·온라인수업·등교 중지 등 정규 교과 수업이 갈피를 못 잡을 때도 긴급돌봄이 멈추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물리적 안전과 보살피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교육은 학교를 떠났지만, 돌봄은 학교를 떠난 적이 없었다.
'워킹맘들의 무덤', 저학년 돌봄 공백
▲ 지난 5월 경남 김해 관동초등학교에서 1학년 학생들이 마스크를 낀 채 거리를 두고 앉아 돌봄교실 수업을 듣고 있는 모습. | |
ⓒ 연합뉴스 |
초등 저학년 돌봄 공백은 여성 양육자의 고용 단절 주원인이다. 한마디로 '워킹맘들의 무덤'이다. 비공무원인 노동자들에게는 교사들이 누리는 3년의 육아휴직도 없고, 1일 2시간의 유급 육아시간도 없기 때문이다. '사회적 타살'이나 마찬가지다. 이건 마치 국가가 관을 짜고 거기에 들어가라고 하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나는 생각한다.
'아이를 돌보려면 네 노동과 커리어는 여기서 끝내라' '낳을 때 부여한 애국자라는 환호는 출생신고서에 잉크가 마르기 전까지만이다', 이렇게 말하며 아이를 키우는 것은 철저히 개인이 감당해야 할 몫으로 내몬다. '네가 좋아서 결혼하고 아이 낳았으면서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는 식이다. 이 끔찍한 현실에 당연히 여성은 출산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 상황이 이런데 학교에서의 돌봄을 지자체로 이관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저출산을 촉진시키는 셈밖에 안 된다고 본다.
절박했던 공적 돌봄 필요성은 코로나19로 인해 안전하고 효율적인 교육 공간에 대한 갈급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방과후학교 및 초등돌봄교실 등은 '교과 과정 이외 활동'이라는 이유로, 법적 근거도 없이 '학교장 재량'에 맡겨져 천덕꾸러기 신세였다. 이미 진행하는 학교의 공적돌봄을 체계화하는 데 있어 초중등교육법 개정은 더 늦기 전에 꼭 필요했다.
5월 교육부 법안, 학부모들의 기쁨은 잠시
그렇게 지난 5월 19일 교육부가 예고했던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이 유은혜 교육부 장관 이름으로 법제처에 제출됐다. 개정안은 제23조 2항(방과후학교)을 신설해 방과후학교 프로그램 및 초등돌봄교실 운영에 대한 법적 근거를 마련하여 안정적이고 효율적인 방과후학교 운영을 도모하고자 추진됐다. 학부모들은 기뻐했다. 이제껏 법적 근거도 없이 내버려진 돌봄에 드디어 한 가닥 희망이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교원단체들의 강력한 반발로, 교육부는 단 사흘 만에 법률개정안의 입법예고를 철회했다. 교육 당사자인 학생과 학부모들은 교육 주체로서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법안 결정 과정에 선택권은커녕 발언권조차 없었다. 교육 당국의 원칙 없는 일방적 철회로 학생·학부모들을 그림자 취급하는 데서 느끼는 모멸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설상가상 국회의원들 역시 교사들 눈치 보기 바쁜 모양새였다. 지난 6월 10일 더불어민주당 권칠승 의원, 8월 4일 열린민주당 강민정 의원이 돌봄 운영을 지자체에 위탁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으로 각각 대표 발의한 '온종일 돌봄체계 운영·지원에 관한 특별법안'(온종일돌봄특별법)을 발의했다. 그러나 이들이 발의한 온종일돌봄특별법은 교육의 주인, 학교의 주인인 학생은 안중에 없고 오직 교사를 위한 법안에 불과하다.
결국 민간위탁으로 흘러갈 것이다
▲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지난 8월 3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교육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는 모습. | |
ⓒ 공동취재사진 |
권칠승 의원이 제출한 법안의 주요 내용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에 초등 아동의 온종일 돌봄에 대한 책임을 명시하고, '교육부장관'이 온종일 돌봄 기본계획을 수립하게 했다. 지자체장은 교육감과 협의해 지역의 온종일 돌봄 시행계획을 수립하고, 지원센터를 설립할 수 있으며 온종일 돌봄시설의 설치 기준, 인력 운영에 필요한 사항은 조례로 정한다고 했다.
교사 출신인 강민정 의원이 제출한 법안은 한술 더 떴다. 돌봄교실과 관련해 학교는 공간만 제공하고 운영은 '지자체'가 책임진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개정안 제16조를 보면 '온종일 돌봄 시설 운영자는 보호자에게 돌봄에 필요한 비용의 일부를 부담하게 할 수 있음'을 명시했다.
이것은 민간 초등돌봄 사업의 합법화다. 이게 어떻게 공적 돌봄 시스템의 법제화인가. 지자체에 하루아침에 초등 돌봄에 대한 예산과 프로그램이 생길 수 있나? 공무원 총정원제에 묶여 담당 공무원조차 늘릴 수 없다.
결국 지자체는 위탁 형식이란 방법을 택할 것이다. 민간의 위탁운영은 수익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엄연한 '비즈니스'란 이야기다. 돌봄의 질과 아이들 안전을 위해 결코 해서는 안 되는 일에 왜 손을 대는가? 강민정 의원에게 묻고 싶다. 교육자 출신 의원이 아이들을 이렇게 내몰아도 되는가?
초중등교육법 개정안 철회 후 교육당국은 돌봄의 지자체 이관을 기정사실화 하는 모양새다. 교육부 장관인 유은혜 부총리는, 오는 2022년까지 53만 명에 대해 초등돌봄서비스를 확대한다는 '온종일 돌봄 정책'에 따라 그동안 지자체가 돌봄 기반을 구축하도록 장려해왔다. 2019년 6월 '온종일 돌봄 생태계 구출 선도사업' 1차년도 성과보고회에서 우수 사례로 '서울 중구 흥인초'를 들었다.
여기선 학교가 활용 가능 교실 공간을 빌려주고 지자체인 중구청이 돌봄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데, 이는 의원들이 발의하려는 법안 내용의 실제 모델이다. 교육부도 각종 언론에서도 좋은 사례로만 알려졌는데, 그럼 과연 돌봄 관할 시설 주체와 운영 주체의 이원화에 문제점은 없을까?
서울 중구 모델, 확산 가능할까?
▲ 유은혜 교육부장관이 서울시 중구 흥인초를 방문한 모습. | |
ⓒ 중구 유튜브 화면갈무리 |
2020년 서울 중구 돌봄 예산은 약 70억에 달한다. 이 지자체는 2019년 흥인초·봉래초를 시작으로 올해 광희초·남산초·청구초 등 모두 다섯 학교에서 돌봄교실을 운영하고 있다. 돌봄 공간을 학교에서 빌려 유일하게 교육청 예산 없이 중구청에서 재정을 뒷받침해 운영을 총괄하며, 돌봄 인력은 중구 시설관리공단이 관리하고 있다.
서울시 여성가족정책실 관계자는 정치하는엄마들과 한 전화통화에서 '서울 중구는 초등학교 돌봄교실 운영을 전부 지자체에서 맡아 교육부 예산은 받고 있지 않으며, 모든 재정을 지자체에서 충당하는 아주 특별한 사례'라며 다른 지자체에 확대 적용하기에는 무리라고 봤다.
▲ 중구돌봄사업소요예산 서울시 중구 돌봄 사업 소요예산안 | |
ⓒ 대구대학교 산학협력단 |
중구는 서울 중구 흥인초에 3개의 돌봄 공간을 빌려 돌봄센터장 1명, 돌봄전담사 전일제로 1명, 시간제로 3명을 고용했다. 이는 1~3학년 212명의 학생 중 76명이 이용하고 있다. 10명 중 3.5명꼴에 불과한 셈이다.
그렇게 많은 예산을 쓰고도 학생을 전부 수용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지자체마다 재정 여건이 다른 상황에서, 무작정 돌봄을 맡게 될 경우 돌봄의 질이 천차만별일 것은 불 보듯 뻔하다. 24일 <충북인뉴스>에 따르면 충북도 관계자는 돌봄교실 지자체 이관에 대해 전혀 아는 바가 없었고, 청주시 관계자는 "개인적 생각이지만 돌봄 교실이 지자체로 이관된다면, 직영으로 (운영)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대다수 지자체가 민간위탁 형식으로 운영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국회에 발의된 '온종일돌봄특별법안'이 통과된다면, 한정된 예산으로 아이들이 많은 동네일 경우 지자체가 학교로부터 유용 가능한 공간을 빌려 쓰는 방식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또한 어린이집이나 요양기관 등처럼, 지자체가 위탁운영에 맡기면서 민영화될 가능성이 크다. 이는 돌봄노동자의 고용 안정성 및 낮은 처우로 이어져, 결국 아이들만 그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게 될 것이다.
또 중구 돌봄교실의 경우, 학생들이 정규 교과 시간 이후 돌봄 교실을 이용할 때 자유로이 출입이 불가능하고 정해진 통학로로만 다녀야 한다거나, 운동장 등 학교시설 이용 제약이 있어 운영상 한계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다. 운동장도 마음껏 쓰지 못하는 돌봄이 얼마나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할 수 있겠는가? 정해진 '돌봄 화장실'만 써야 하는 돌봄이 질적으로 얼마나 향상될 것인가?
두렵다, 핑퐁게임
운영 주체가 지자체라도 결국 학교 시설을 이용하므로, 이해관계가 얽혀 관계자들의 책임 논란이 예상된다.
이는 학부모들이 가장 우려했던 바다. 돌봄교실의 주체를 학생으로 보고, 학생의 시선으로 법을 만들고자 했다면 과연 돌봄을 지자체가 책임지도록 하는 법안은 나올 수 없다. 학생들은 학교 안에서는 학생이어야 한다. 돌봄이 지자체로 넘어갈 경우 지금도 학교에서 책임을 회피하는 돌봄반 학생들은 지금보다 더 나 몰라라 내팽개쳐질까 우려된다.
한 사례가 있다. D학교가 A조와 B조로 나눠서 등교하던 시기, D학교 돌봄반 학생들은 등교 날이 되면 연속으로 똑같은 급식을 먹어야 했다. 1~2학년 등교 날이 A조 B조 나누어 월·화라고 하면 월·화 똑같은 급식을 먹고 3~4학년이 A조 B조 나누어 수·목 등교 날이라고 하면 수·목 똑같은 급식을 먹어야 했다. 이유인즉슨, A조와 B조 간의 형평성 때문에 급식 또한 똑같아야 한다는 이유에서였다.
결국 돌봄반 학생들이 연속으로 똑같은 급식을 먹든 말든, 학생들 고려 없이 짜인 식단이 제공됐다. 이렇듯 지금도 학교에서 돌봄반 학생들은 찬밥 신세인데 법적으로 학교 책임이 없다고 명시되면 어떻게 되겠는가. 이후 학교에서 돌봄반 학생들의 처우가 어떨지는 불 보듯 뻔하다.
돌봄교실이 학교에서 공간만 차지할 뿐 운영 책임이 지자체에 있을 때 아이들에게 어떤 문제가 있을지는 당사자라면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돌봄교실에서 학생들 간에 폭력이 발생했을 때 중재는 어디서 해야 할까. 이를 학교폭력 자치위원회에 회부할 수 있을까. 돌봄교실 운영의 전반적 사항은 학교운영위원회에 보고하도록 하는데, 운영을 지자체에 이관한다면 돌봄교실 운영위원회를 별도로 구성할 것인가. 돌봄교실 이용 학생이 사고로 다치거나 갑작스러운 통증을 호소하면 이 학생은 보건실을 사용할 수 있는가. 학교에서 학생이 왜 눈칫밥으로 마음대로 운동장도 못 가나? 학생이 그렇게 비참하게 학교에 다녀야 하나?
학교의 책임과 권한으로 돌봄을 안정되게 운영할 수 있는 지원법안을 만드는 게 우선이다. 돌봄의 질은 돌보는 사람을 뛰어넘을 수 없다. 교육의 질도 마찬가지다. 교사들에게 돌봄교실에 대한 행정적 부담을 덜 수 있도록 돌봄교실에 필요한 인원을 확충하고 근무 조건을 안정시켜야 한다. 또한 안전한 기관에서 돌봄을 받을 수 있도록 사회적 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어야 한다.
'포용국가'라고 했습니까
▲ 수도권 등교 재개 첫날이었던 9월 21일 오전 서울 강동구 한산초등학교에서 2학년 학생들이 수업을 듣고 있는 모습. | |
ⓒ 연합뉴스 |
지난 14일 인천에서 초등학생 두 형제가 어른 없이 끼니를 해결하려다 화재로 큰 화상을 입고 의식을 잃은 사건이 발생했다. 해당 양육자는 두 형제가 다니던 초등학교에 긴급돌봄교실을 신청하지 않았다. 확인 결과 이 초등학교는 초등돌봄교실 신청문을 발행한 당일, 오후 3시까지 돌봄 신청을 마감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돌봄 신청을 당일 고지해놓고 같은 날 오후 3시까지 마감한다니. 양육자의 노동 형편에 따라 바로 신청하지 못할 확률이 너무나 높은 조건이다.
학교가 학생이나 학부모 입장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행정 편의적으로 돌봄 업무를 수행하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돌봄이 학교 주체로 명시되지 않으면, 이렇게 공백이 생길 수밖에 없다. 공적 돌봄 공백이 아동의 생존을 좌우한다는 걸 알면서도 그 양육자만 탓할 일은 결코 아니다. 방임에 대한 1차 책임은 양육자에게 있지만, 학교 역시 아동을 보호할 의무가 있는 공적 기관으로서 사회적 방임의 책임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저인구화를 우려하면서도, 살아있는 아이들조차 제대로 보살피지 못해 생명을 잃거나 다치는 일이 많았던 2020년 대한민국이다. 마냥 안타까워만하기도 부끄럽다. '포용국가'를 외치면서도 생명을 살리고 돌보는 일을 깔보는 사회 밑바닥 의식을, '돌봄은 학교의 일이 아니다'라고 외치는 교육자들의 민낯으로 나는 마주하고 있다. 공교육이 무너졌다고 자조하는 참담한 세계에, 혹 교사들도 일조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학생들을 보살필 의지 없이 외치는 '교육'처럼 공허하고 무용한 것이 또 없다. 학교의 주인은 학생이지, 교사가 아니라는 걸 기억해주셨으면 한다.
- 4 vi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