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식판전쟁]'금식판 vs 흙식판' "내 아이는 1745원짜리 급식을 먹었다" (이요)
[식판전쟁] '금식판 vs 흙식판' "내 아이는 1745원짜리 급식을 먹었다"
- 정치하는엄마들 (이요 활동가)
“6391원 금식판 VS 1745원 흙식판 정부는 어린이집 급식차별”
애절한 외침에 돌아온 의원의 답변 "스팸 넣지 마세요"
아이들은 좋은 먹거리를 차별 없이 제공 받을 권리가 있다
이야기를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 기억을 거슬러 2019년 어린이날을 앞 둔 5월 2일로 돌아가 본다. 아이들의 부모이자 나의 동지들인 정치하는엄마들 활동가 언니들이 또 거리에 있다. 어린이집 급간식의 현실을 성토하기 위해 김밥 반줄을 들고 섰다. 김밥 반줄의 가격은 1745원, 아이들의 점심 급식 한 끼와 오전·오후 두 번의 간식을 먹여야 할 지원비가 김밥 반줄짜리와 같다.
이런 현실 속에서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던 중, 전국 공공기관의 직장어린이집을 대상으로 급간식비 정보공개 청구를 하는데 기꺼이 팔을 걷어붙였다.
설마가 사람을 잡았다. 기 조사된 일반 어린이집 급간식비(1,745원~2,900원대)와는 사뭇 다른 결과를 마주하며 하루하루 분노와 절망을 오갔다. 공공기관의 직장어린이집 급간식비는 평균 3,439원, 서울특별시청 직장어린이집은 무려 6,391원이었다. 나의 아이가 누리지 못하는 혜택이라는 생각에 화가 먼저 났다. 대체 왜, 무엇이 다른 걸까?
분노와 절망을 잠재우기 위해서는 그들의 설명에 설득되고 싶었다. 어떤 연유로 그 아이들이 상대적으로 고단가의 급간식을 제공받을 수 있었는지 이해시켜주기를 바랐고, 성장기 아이들은 마땅히 이 정도의 고단가 급간식을 제공받아야 하지 않느냐고 오히려 나를 나무라주기를 바랐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 누구도 나를 설득시키지 못했다.
실제로 어느 공공기관 직장어린이집 담당자는 ‘학부모들의 급간식 만족도가 아주 높다’며 자랑스럽게 말하였고, 어느 직장어린이집 담당자는 ‘종일반 아이들의 석식비가 포함된 단가다, 인근 초등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의 돌봄 간식비가 포함된 단가다’ 등의 납득할 수 없는 말들을 늘어놓으며 고단가 급간식을 제공하는 어린이집이라는 타이틀을 적극적으로 거부했다.
평균 3,439원짜리 급간식은 주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만족도가 높다는데 왜 우리는 여전히 1,745원을 식판 위에 올려놓고 얼굴을 붉혀야 하는가. 만족도 높은 급간식을 제공하면서 보람을 느끼지는 못할망정 왜 손사래를 치며 극구 왕관을 거부하는가.
결단코 이것은 고단가 급간식을 제공받는 아이들, 만족하는 부모, 제공하는 선생님들의 잘못이 아니다. 2016년 서울시 여성가족재단 연구 결과, 어린이집 적정 급식 단가는 영유아 1인당 하루 평균 2,320원으로, 2,961원이면 친환경 급식도 가능하다고 보고된 바 있다. 1,745원이 현실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면 하루라도 빨리 고쳐야 했던 것이다. 고쳐야 하는 책임이 있는 사람이 그 책임을 다하지 않은 채 22년간 방치한 것이 유일한 큰 잘못이다.
그렇게 정치하는엄마들은 20대 국회 내에 급간식비 인상을 관철시키고자 2019년 8월 26일 급간식비 인상을 촉구하는 국민청원을 시작했다. 그 후 몇 차례의 기자회견을 열며 아이들의 차별 없는 밥상을 위해 목소리를 냈다.
같은 해 9월 5일, 제20회 사회복지의 날 기념식에서는 기습시위도 했다. 박능후 장관이 기념사를 하려고 이동하는 사이, “6391원 금식판 VS 1745원 흙식판 정부는 어린이집 급식차별 해소하라!” 현수막을 펼치며 단상 앞으로 뛰어 들었다. 하지만 대형 현수막은 주최 측의 제지에 의해 펼쳐지지 못했다. 기습시위 이후에 박능후 장관과의 대화를 기대했지만 이마저도 이뤄지지 못했다.
2020년 예산안 의결이 얼마 남지 않은 2019년 12월 4일, 우리는 급간식비 예산 증액을 위한 문자행동을 했다. 무려 22년째 동결된 급간식비를 현실화 해달라는 요구에 정부가 1745원에서 1805원으로, 겨우 60원 인상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어린이집 급간식비 예산 912억 증액해주세요! 무려 22년째 동결된 기준입니다. 복지부 직원 급여를 22년 동안 동결하면 참으실 겁니까? SOC 사업 예산에는 9천억, 9조원 이상 쓰면서 아이들 밥값이 없다는 게 말이 됩니까? 우리 아이들 밥 좀 잘 먹입시다!”
우리의 애절한 문자에 한 국회의원이 답했다.
“스팸 넣지 마세요. 계속하면 더 삭감하겠습니다.”
국회 예결위원장 김재원 의원이었다. 우리는 ‘스팸’이라는 말에 혐오했고, ‘삭감’이라는 말에 분노했다. 그들에게 아이들 밥 좀 차별 없이 잘 먹여달라는 우리의 호소는 고작 스팸일 뿐이었고, 예산이란 국회의원의 기분에 따라 삭감하거나 증액할 수 있는 것이었다.
어린이날을 앞두고 거리로 나간 동지들을 태우고, 분노로 점철된 <금식판 vs. 흙식판> 깃발까지 동여맨 배가 항해 7개월여 만에 22년 동안 바다 속에서 썩어가던 고철 덩어리를 들어 올렸다. 0~2세 하루 1,745원에서 1,900원으로, 3~5세 2,000원에서 2,559원으로 각각 155원, 559원 오르는데 강산이 두 번 변했다. 기쁨도 잠시 허무함이 밀려온다. 이게 뭐라고 이렇게 어려웠던 걸까? 2020년 10월 지금도 여전히 그 답을 찾지 못했다.
공공기관 직장어린이집이든 아니든 우리 아이들은 좋은 먹거리를 차별 없이 제공 받을 권리가 있다. 달라서는 안 될 것이 다르다면, 그것은 다른 것이 아니고 틀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