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가정폭력 당사자가 전하는 목소리 (심옥연)

가정폭력 당사자가 전하는 목소리

[주장] 몸이 마이크를 필요로 할 때

심옥연(vvvv77vvv)

등록 2020.10.16 

 

친족성폭력운동을 하는 당사자 운동가와 카카오톡 문자를 주고 받았다. 가정폭력 운동의 여러 지형에서 당사자 운동의 가능성을 틈틈이 확인하게 되는 순간이다. 친족성폭력 분야에서 피해당사자로서 말하기의 가능성을 확대하는 운동에 앞장서고 있는 '푸른나비'를 알게 된 것은 지난해 11월 어느 인권강연장에서 였다. 얼마전엔 푸른나비를 주축으로 몇몇 친족성폭력피해 당사자분들이 관련 이야기를 써 텀블벅 펀딩으로 책 출간을 성공적으로 준비했다는 소식을 전해들을 수 있었다.

여성주의 사유 방법의 출발이 '그들이 말하게 하라'였다는 점을 상기해본다면,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피해자의 말하기가 얼마만큼 힘들며, 사회는 또 이를 얼마나 수용적으로 듣고 있는지 회의감이 밀려온다. 
 

피해사실을 말하는 피해자를 '피해입을 만한 사람'으로 취급하려는 태도에서, 사회가 '피해자상'에 갇혀, 피해자스러움을 기대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피해자로 정체화되는 순간, 처음 극복하고 일어서려고 하던 자기 안의 회복탄력성은 많은 부분 다시 침몰하게 된다. 수치감·무력감 등 2차적인 고통들이 밀려올 때가 있다.

직장 내 성폭력은 '꽃뱀'으로, '남성의 앞길을 망친 여자'로, '조직의 명예를 실추시킨 자'로 내몰리기 일쑤다. 친족성폭력분야 또한 '가족이니깐 용서하라'고, '잊으라'고 덮는 경우가 많다. 남편의 아내폭력 또한 '당연한 남편의 성역할 길들이기'로 이해되곤 한다. 설거지를 안해서, 백숙을 끓여놓으라고 했는데 닭볶음탕을 해놔서 등의 폭력 이유, 원인 그리고 해결방법은 하나같이 폭력적 인식 수준 그대로를 반영한다.

크게는 가정폭력 피해라는 주제 속에 있으면서도, 피해당사자가 사회에 전달하는 구체적 메시지는 조금 다르다. 친족성폭력의 피해를 전하는 피해자는 공소시효폐지운동을 하고 있다. 또한 가정폭력신고 후에 정신이상자로 몰리고, 아동학대로 고발 당하는 등 심각한 2차 범죄피해에 시달리는 '용감한오렌지'의 경우에는 경찰 수사의 공정성 회복에 대한 요구, 이와 덧붙여 1980년대 쉼터 모델에서 지역사회 복지모델로의 전환 등 여성의전화를 향해 대대적인 당사자운동으로의 전환이라는 운동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2005년에 출간된 정희진 선생의 <폐미니즘의도전>이 얼마전에 리커버북으로 새로운 개정서문을 달고 나온 것을 보게 된다. 책은 여성이 인식주체가 되면 노동자가 생산수단을 소유하는 것보다 더 '근본적으로' 세계가 흔들리고 새롭게 재구성되기 시작할 것이라 말해왔다. 책은 밑줄긋기 없이는 읽기가 불가능할 만큼 곳곳에서 통찰적 사고와 언어가 포진해 있다.

필자는 요즘 <수레를미는여성들>과 <페미니즘의도전>을 함께 읽는다. 얼마전 여성가족부가 내놓은 '2019년 통계로 보는 여성의 삶' 통계 수치도 함께 비교해본다. 그리고 달라진 것이 무엇이냐는 물음을 그리고 나는 변화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를 고민하게 된다. 

요즈음에는 정치하는엄마들과 여성의전화를 오고가며 두 기관이 가정폭력이라는 주제로 운동의 시너지를 만들어보는 것은 어떤지 제안하기도 한다. 또한 자기 목소리를 내고자 분투하고 있는 가정폭력 생존자들과 소통한다. 특히, 가정폭력 안에서도 장애여성, 친족성폭력, 장애와친족성폭력의 결합된 피해 등은 가정폭력 피해의 다층적 목소리를 우리 사회가 듣고 있지 못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면서 생각하고, 기도하고, 글을 쓴다. 양심이 발현되는 사회가 될 수 있도록 양심에 관련한 성현들을 어록을 수집한다. 그러다 보면 길고 긴 문제, 안풀리고 안풀리는 문제가 풀릴 것만도 같다.

을지로 인쇄소 한복판, 페미니즘 공론장의 카페를 열어두고 아주 가끔씩 주변
인쇄업에 종사하는 사장님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동물적 대화를 시도하는 이를 마주하게 된다. 여전히 이들의 반응은 친족성폭력의 피해는 '듣지도 보지도 못하다' '놀랍다' 수준이며, 논란이 되는 성폭력 사건에 관해서는 '여자들도 즐겼다' '(남자가) 외롭다' '요즘엔 여성 상위시대' '여성을 뽑지 말아야 한다' 등의 궤변으로, 어디선가 백래시의 언어들만 배워와서는 사태를 부정한다. 

화룡점정은, 자신은 그래도 양심이 있어서 노래방에 가면 딸 같은 젊은애들은 내보내고 나이 많은 여자를 부른단다. 이 사람들의 이야기를 어떻게 다 들어주고 있어야 하는지 참지 못한 채 60대에게, 그들보다 큰 목소리로, 그들보다 강경한 어조로 말한다. 양심과 지성 그리고 배움이 없는 말은 타인의 세계를 더욱 고통스럽게 한다고.

여전히 많은 변화하지 않은 인식수준이 세계를 고통과 비탄에 빠지게 한다.
여전히 남성으로 과대 대표되는 국회는 여성의 삶을 헤아리지 못한다.
여전히 어머니 모성은 성스럽게 여기고, 여성은 폭력한다.

여성들의 무임금 가사노동으로 사회복지비용을 아껴온 국가는 이제 성스러운 어머니의 역할을 기꺼이 자기 책임으로 인식해야 한다. 자기 권리를 외치는 여성을 사회가 얼마나 싫어하는지 알지만, 당사자들은 서서히 말할 준비를 마치고 있고, 당사자들은 이제 몸이 마이크를 필요로 한다는 것을 알아가고 있다.

상처받은 몸이 목소리를 필요로 한다는 이 놀라운 진실은, 우리 사회가 그동안 없다고 덮어둔 바로 그 목소리다. 가정폭력과 성매매여성의 말하기가 미투운동의 끝, 여성운동의 최후 프로젝트라 했던가. 그렇다면 이제 마이크와 바턴을 당사자에게 넘겨라. 피날레 무대가 머지 않았다.

덧붙이는 글 전) 정치하는엄마들 운영위원
현) 가정폭력당사자네트워크시작 대표
<2020 가정폭력을말해요> 독립출판,
<수레를미는여성들>복간 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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