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식판전쟁] 슈퍼푸드요? 아이들에게 줄 때 신중해야 합니다. (수경)

프로젝트

[식판전쟁] 슈퍼푸드요? 아이들에게 줄 때 신중해야 합니다

  •  정치하는엄마들 (수경 활동가)

'삐뽀삐뽀 119 소아과' 책에 나온 영유아 견과류 절대 금지
어린이집 영아반 급식 지침엔 견과류 위험성 고지조차 없어

3세 이하 어린이의 기도 내에 이물질이 들어가면 감기, 폐렴, 천식 등과 구분하여 발견하기 힘들어지고, 늦게 진단이 될 경우 합병증이 발생하며, 합병증에 의한 사망도 발생할 수 있다. 1996년 1월부터 2006년 2월까지 10년간 삼성서울병원 응급실에 서 기도 내 이물 흡인으로 진단, 치료 받은 108명의 환아 중 60% 이상을 차지하는 이물질이 견과류였다.
(출처: 손진아 외(2007), 기도 내 이물 흡인 108례의 진단 및 임상경과, 소아알레르기 호흡기 : 17(2), 117~126)

‘육아의 바이블’이라 일컬어지는
‘육아의 바이블’이라 일컬어지는 "삐뽀삐뽀 119 소아과" 책에서도 역시나 견과류는 절대 금지란다. ⓒpixabay

신혼 시절 대학병원 이비인후과에 근무할 때의 일이다. 이비인후과에 근무한다고는 하지만 재활과 관련된 일을 하고 있어서 의료적인 일과는 거리가 멀었다. 어느 날 친한 전공의 선생님이 나를 조용히 진료실로 데려가더니 무슨 표본상자 같은 것을 보여준다. 거기에는 동전, 장난감, 자석, 조그만 부품 등 온갖 물건들이 들어 있었다.

"이게 뭔가요?"
"이게 아이들이 삼킨 물건들이에요."
"헉"

아이들이 코나 입으로 물건을 삼키면 응급실에 오게 된다. 아이들이 삼킨 이물질이 금방 나오지 않으면 이비인후과 전공의 선생님들이 투입되어 시술을 해서 꺼낸다는 것이다. 내시경과 이비인후과용 수술 도구 (집게 같이 생긴 것) 등을 이용해서 꺼낸다는 이야기까지 들을 수 있었다.

그런데 그 전공의 선생님이 나에게 강조해서 한 말이 하나 있다. 
"선생님은 나중에 아기 낳으면, 절대로 땅콩은 일찍 주지 마세요. 미끄러워서 너~무 꺼내기 힘들어요. 안 잡혀요. 다른 것들은 도구로 잡아서 꺼내면 되는데, 땅콩은 포기하고 수술해야 될 때도 있어요."

기혼이었지만 아이가 없던 나를 굳이 불러다가 설명을 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 뒤에 물어보지 않아서 모르겠다. 하지만 그 선생님이 땅콩 흡인 치료에 힘들었던 기억이 있고 너무 걱정이 돼서 그랬던 것 같다.

그렇게까지 얘기하니 나도 기억에 너무 남았는데, 임신 후에 구입하게 된 ‘육아의 바이블’이라 일컬어지는 "삐뽀삐뽀 119 소아과" 책에서도 역시나 영유아에게 견과류는 절대 금지란다. 그래서 아이를 키우면서 처음 콩과 견과류를 먹인 것이, 그것도 잘게 부셔 먹인 것이 만 5세 다 되어서였다. 남편도 전공의 선생님과의 대화를 전해 듣고 콩, 견과류를 조심하자는 것을 잘 지켜주었다. 지인이나 친척들이 아이에게 견과류를 주지 않는지 잘 살펴보기도 했다. 그렇게 우리 아이는 잘 자라서 초등학생이 되었고, 이제는 씹고 삼키는 능력이 우리 부부보다 더 좋은 나이가 되었다.

구청의 보건을 담당하는 곳에서는 어린 영유아들에게 견과류를 아무런 지침 없이 그대로 제공하고 있다. ⓒ어린이급식관리지원센터
구청의 보건을 담당하는 곳에서는 어린 영유아들에게 견과류를 아무런 지침 없이 그대로 제공하고 있다. ⓒ어린이급식관리지원센터

그런데 아이한테 음식을 주는 곳은 가정뿐만 아니라 어린이집도 있다. 기본적으로 콩장 등 딱딱한 콩·견과류를 이용하는 반찬부터 해서, 얼마 전부터는 ‘슈퍼푸드’니 뭐니 해서 브라질넛, 병아리콩, 렌틸콩 등 이름도 어려운 딱딱하고 미끌미끌한 음식들이 어린이집 식단에 자주 출현한다. 아마 두뇌와 건강에 좋다는 이유 탓일 것이다.

큰 아이가 15개월부터 어린이집을 다니기 시작했는데, 처음 구립 어린이집 식단표를 받았을 때 떡하니 견과류가 간식 리스트에 올라 있었다. 내가 어린이집을 들어가 볼 수 없으니 견과를 쪼개 주는지 통째로 주는지 알 수 없고, 아이는 어려서 말을 못하니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고민 끝에 어린이집에 여쭈어보니, 구청 보건소에서 나오는 식단표를 그대로 사용하는 것이란다. 충격이었다. 이미 수년 전에 연구가 끝나고 의사들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을, 구청의 보건을 담당하는 곳에서는 어린 영유아들에게 견과류를 아무런 지침 없이 그대로 제공하고 있다니.

이 사실을 알고 난 후, 구청에 신문고 민원도 하고 보건소와 통화도 했지만 '학부모'라는 타이틀의 사람의 말엔 아무런 권위가 없었다. ‘식단표 수정은 불가하고, 원에서는 구청 식단표 꼭 그대로 할 필요가 없다’는 공무원 특유의 가르치는 말투, 앵무새 답변만 장시간 들어야 했다. 

결국 나는 포기했다. 그래서 식단표를 확인하고 우리 아이만 빼 주십사 하는 '각자도생'의 만행을 저지르기로 한 것이다. 그때는 정치와 행정에 대해 아는 것도 없고 하마 정신(정치하는엄마들에서는 회원들 특유의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태도를 하마정신으로 표현한다) 도 좀 부족했다는 생각이 든다.

시간이 흘러 다른 구립 어린이집으로 옮기고, 나는 충격적인 장면을 목격했다. 어린이집 적응 기간에 역시 15개월 된 둘째 아이와 함께 교실에 들어가 있는데, 요거트에 견과류를 비벼먹다가 다른 아이가 목에 간식이 몽땅 걸린 것이다. 다행히 담임 교사가 모두 뱉어내게 해서 아이는 아무런 일이 없었다.

이런 일까지 겪고 나니 더는 참을 수가 없어서 구청은 포기하고 원장 선생님께 직접 말씀을 드렸다. 아이들을 아끼시고 학부모를 존중하시는 원장님은 그 얘기를 들으시자마자 바로 영아반 식단에서 견과류를 빼버리셨다. 우리 둘째는 안전하게 어린이집을 다닐 수 있었다. 10여 년 전 전공의 선생님의 말 한 마디로, 둘째의 친구들에게 일어났을지도 모를 사고가 여러 건 방지 되었을 지도 모른다. 

수년이 지난 지금도, 삐뽀삐뽀119 책에도 있는 견과류에 대한 위험성 고지가 어린이집 영아반 급식 지침에 없다고 한다. 우리 집에 사는 아이들은 다 자랐지만, 이 땅에 함께 사는 어린이들도 역시 '우리' 아이들이고, 이들을 지키는 것 역시 하마정신이다. 이 글이 어린이집 영아반에서 콩류, 견과류 제공 금지 지침이 생겨나는 기폭제가 되길 기대한다.

 

댓글 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