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와 혁신] 지금 여기, 우리 '민주주의 학교'는?

지금 여기, 우리 ‘민주주의 학교’는?

  •  이동희 기자

“좋은 일 하니까 후원해주세요 하는 시대는 끝났다”
변화하는 시민, 더 많은 참여 끌어내는 건 시민단체의 몫

커버스토리③ ‘민주주의 학교’의 현실은?

1조합원 1시민단체를 상상하다

노동자들은 일터에서 목소리를 갖기 위해 노동조합을 만든다. 함께 목소리를 높여 ‘직장 내 민주주의'를 실현한다. 눈에 보이는 성과들을 확인한 조합원들은 목소리가 없던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된다.

한편 노동조합의 목소리는 일터 안에서만 맴돌아 ‘집단 이기주의'라는 손가락질을 받기도 한다. 시민이자 노동자이기도 한 조합원들의 목소리가 일터 밖 민주주의를 향해 뻗어나갈 순 없을까? 성평등, 복지, 평화, 환경 등 다양하고 삶에 밀착된 사회 영역에서 시민의 자발적 참여를 이끌어내고 있는 ‘참여민주주의의 학교' 시민단체에서 그 힌트를 찾아보려 한다.

앞에서 민주주의 학교로서 시민단체의 의미를 짚고, 시민단체가 일상에서 민주주의를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현실은 어떠한가? 현실은 ‘민주주의 학교’라는 이상론만 존재하지 않았다.

사회 변화로 이어지는 시민의 관심과 참여가 아직은 부족하며, 참여하려는 시민에게 더 많은 기회를 제공해야 하는 시민단체의 역할과 고민은 여전히 무겁다. 안팎으로 잘 굴러갈 수 있도록 내실을 다져야 하는 건 물론이고, 변화하는 시대에 적응하고 대응해야 하는 과제도 있다. <참여와혁신>은 각 분야에서 시민운동을 하고 있는 활동가 9명을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 녹색연합
ⓒ 녹색연합

학생 없는 민주주의 학교?

시민단체는 시민 한 명 한 명의 목소리에서 힘을 얻는다. 하지만 주위를 둘러보면 시민단체 혹은 시민운동에 참여는커녕 관심조차 없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하물며 환경, 여성, 교육, 안전 등 우리 사회 다양한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이들조차 이러한 관심이 곧바로 시민단체 가입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시민단체를 ‘민주주의 학교’라고 정의 내렸을 때, 학교 입학설명회에 참석하거나 학교에 입학하는 학생이 많지 않은 셈이다.

하지만 <참여와혁신>이 만난 시민단체 활동가들은 ‘시민은 시민단체(시민운동)에 관심이 없다’는 명제에 고개를 저었다. 시민단체에 대한 관심이 저조하다는 것에는 일부 동의하면서도 시민운동에 관심이 없는 건 아니라고 반박했다.

이승훈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사무처장은 “관심이 없는 게 아니라 관심이 정교해지고 섬세해졌다는 게 맞는 표현”이라고 말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시민들은 “관심이 있을 때도, 없을 때도” 있는데, 이는 “시민들이 사회 문제에 개별적으로 접근하고 판단할 수 있는 정보가 다양해졌기 때문”이다.

보고 들을 수 있는 정보가 한정적이었던 과거와 달리 이제 온라인 매체를 통해 어디서나 손쉽게 정보를 구할 수 있다. 정보만 주어진다면 판단은 시민 개인의 몫이다. 거기다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 등의 등장으로 개인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통로도 생겼다. 사회 문제에 목소리를 내기 위해 ‘반드시’ 시민단체를 택하지 않아도 된다는 이야기다.

정보가 다양해진 만큼 시민들의 관심사는 더욱 세분화됐다. 가령 환경문제에 관심이 있다고 해서 동물권, 기후위기, 에너지 전환 등 모든 환경 이슈를 쫓아다니는 건 아니다. 이중에서 관심이 가는 주제만 골라 ‘좋아요’를 누르고, 그때그때 달라지는 관심과 이슈에 맞춰 지지를 보내거나 모금을 한다. 최근 눈에 띄는 네이버 해피빈, 카카오같이가치 등 온라인 기부포털의 활성화는 이러한 방식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이승훈 사무처장은 “이제 시민단체가 디테일을 가지고 싸우는 시대가 왔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이러한 관심이 시민 개인의 표출에 머물러서는 큰 사회 변화를 만들 수 없다. 윤소영 녹색연합 협동사무처장은 “그러한 표출이 트렌드를 낳을 수는 있지만 우리 사회의 근본적인 변화를 만드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며 “사회의 근본적인 변화를 만드는 데는 시민단체가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리고 그 시작은 시민들이 사회 문제를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을 경험할 수 있도록 시민단체가 시민운동 참여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될 수 있다. 윤소영 협동사무처장은 “시민들에게 더 많은 경험의 기회를 제공하고 더 많은 정보를 제공하면서 스스로 참여를 할 수 있게끔 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승훈 사무처장은 “시민단체에서 좋은 일 하니까 후원하라고 해서 시민들이 후원하는 시대는 끝났고, 그런 방법으로 후원 회원이 남는 시대도 아니”라며 “이제 시민이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확인하고, 어디까지를 시민으로 볼 것인지를 고민해야 하는 때가 왔다”고 밝혔다.

“후원도 엄연한 참여”
재원 마련 수단으로만 격하해선 안돼

민주주의 학교는 더 많은 학생들이 필요하다. ‘어떻게 하면 시민의 참여를 끌어낼 수 있을까’는 시민단체 활동가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고민이기도 하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소장은 “활동가는 시민이 참여할 수 있는 조건과 기회를 만들어줘야 하는데 당장 처리해야 할 사업이 급해 이를 놓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시민단체 참여에 대한 시민의식도 부족하다. 박래군 소장은 “시민단체의 문제도 크지만 시민도 자신이 시민단체에 참여해서 세상을 바꾸겠다는 의식이 사실상 부족하다”고 진단했다.

시민의 참여는 오르락내리락 편차를 보이며 시민 입장에서는 생업이 따로 있기 때문에 시민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뜻 있는 시민이 선택할 수 있는 가장 간편한 방법은 ‘후원’이다. 그러나 이 같은 후원에 대해 “시민은 사실상 참여보다는 배경처럼 후원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 여기에 활동가들은 저마다의 답을 내놓았지만, 공통적으로 “후원은 참여의 시작”이라고 입을 모았다.

민만기 녹색교통운동 공동대표는 “후원은 단체 활동에 지지를 보내는 적극적인 의사 표현”이라고 말했다. 민만기 공동대표는 “현장에서 피켓 들고 활동하는 것만이 참여가 아니”라며 “단체 활동에 대해 지지를 보내는 등 피드백도 시민의 참여”라고 설명했다. 윤소영 협동사무처장 역시 “후원도 다양한 참여 방식 중 하나”라고 강조했다. 이어서 “공익을 위해 많은 사람들이 모였을 때는 다양성과 자율성이 보장돼야 하는데, 후원은 그 다양성과 자율성을 존중하는 참여 방식”이라며 “후원을 단체의 재원 마련이라는 좁은 의미로 보지 않고 확장해서 바라보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물론 활동가 입장에서 가장 이상적인 참여는 후원을 넘어 시민 개인이 문제 해결의 주체로까지 성장하는 것이지만, 활동가가 이를 규정하고 강제하기 어렵다. 권순영 서울겨레하나 활동가는 “(시민의) 참여 영역을 활동가가 규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권순영 활동가는 “시민단체 활동을 통해 시민이 자기 힘으로 해내는 과정을 겪어야 한다”며 “이를 통해 사회를 바꾸는 힘이 나에게 있고, 이걸 변화시킬 의무도 나한테 있다는 걸 확인해나가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럼에도 참여의 기회를 넓히고 참여하려는 시민들의 요구에 답하는 것은 시민단체의 영역이다.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싶어 몸과 마음이 근질거리는 시민은 어디에나 있다. 그들을 위한 ‘참여의 장’을 만드는 것이 시민단체의 역할과 책임이기도 하다. 이미현 참여연대 시민참여팀장은 “스마트폰 보급률이 높아지고 SNS, 유튜브를 활용하는 회원이 늘면서 온라인으로 참여할 수 있는 참여 프로그램을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안’에서부터 기반 쌓아야

그렇다면 시민의 참여만 보장된다면 시민단체는 ‘민주주의 학교’로서 모든 준비를 마친 것일까? 안타깝게도 그렇지 않다. ‘밖’도 살펴야 하지만, ‘안’도 들여다봐야 한다. 시민단체가 제 기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그에 맞는 내실(內實)을 기해야 하는데, 이 내실은 시민단체의 지속가능성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한다. 그리고 잘 알려져 있다시피 시민단체는 지속가능성이라는 측면에서 그리 자유롭지 못하다.

앞서 후원을 둘러싼 활동가들의 목소리를 짚었지만, 후원만으로 모든 운영비와 사업비, 활동비를 마련하는 시민단체는 극히 일부다. 대부분 부족한 사업비와 활동비를 모금 행사, 각종 공모 등을 통해 마련한다. 한석호 전태일재단 사무총장 직무대행은 “사업비가 풍족하면 우리 사회 밑바닥 노동자 조직화부터 노동조합 사각지대에 있는 노동자의 처우 개선까지 전태일 정신을 넓힐 수 있는 사업을 다양하게 할 수 있을 텐데 그게 아쉽다”고 토로했다. 조금이나마 처우를 개선하자며 노사협의회를 개최하자는 이수호 전태일재단 이사장에게 “무슨 임금교섭이냐”, “임금동결하자”, “조금이라도 아껴서 우리 손길이 필요한 곳에 쓰자”고 도리어 활동가들이 만류했다는 마냥 웃을 수 없는 이야기도 있다.

2017년에 만들어져 비교적 신생 시민단체인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한사성)도 같은 고민을 안고 있다. 이효린 한사성 사무국장은 “활동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초기에는 경제활동이라고 할 수 없을 만큼 어려웠다”고 말했다. 이효린 사무국장은 “4년차에 접어들면서 후원 회원이 늘어났지만, 여전히 공모사업을 여러 개 돌려야 인건비를 확보할 수 있다”며 “공모사업이 너무 많을 때는 활동가들의 헌신 내지는 희생을 통해 조직을 운영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지속가능성에는 재정적인 문제 외에도 내부 체계 및 의사결정 구조를 탄탄히 갖춰야 하는 문제도 있다. 올해는 정의기억연대의 회계 부실 및 불투명한 후원금 운용 논란이 터지면서 시민운동 전반이 도마 위에 오르기도 했다. 박래군 소장은 “정의연 사태로 시민사회운동 전체에 대한 불신이 커지는 등 부정적인 영향이 미쳤다”며 “시민단체가 투명하게 운영돼야 우리사회 시민사회운동이 신뢰와 지지를 받아 쑥쑥 커갈 수 있다”고 진단했다.

시민단체가 얼마나 평등하고 민주적으로 운영되는가도 중요한 문제다. 장하나 정치하는엄마들 활동가는 “그래야 시민단체에 활력이 생기고 시민들이 운동할 맛이 난다”고 말했다. 장하나 활동가는 “사람 채우기에만 동원되고 하라는 것만 하면 활동이 재미없다”며 “시민 안에 있는 적극성과 자발성을 끌어내는 조건이 수평적이고 민주적인 조직”이라고 강조했다.

평등이라는 측면에서 정치하는엄마들은 자랑할 게 많은 조직이다. 정치하는엄마들에서는 상대방을 부를 때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언니’라는 호칭을 사용한다. 서로를 존중하기 위해 말도 함부로 놓지 않는다. 나이, 직업 등으로 인한 위계질서를 지우고 평등한 소통을 이끌어내기 위한 노력이다. 장하나 활동가는 “정치하는엄마들은 고학력자나 판사, 변호사, 교사 등 이른바 ‘사짜 직업’을 가진 소수의 엘리트가 정책 세팅을 하고 ‘후원해라’, ‘믿고 따라라’ 이런 조직이 아니”라며 “성명서 하나도 회원들의 한마디 한마디를 모아 갈무리한다”고 밝혔다.

이제는 디지털 시대
단체도, 운동도 변화해야 할 시간

시간이 흘러 시민운동도 변화의 시기를 맞이했다. 활동가들은 집회에서 좌판 하나 깔아놓고 서명해주세요, 회원으로 함께해주세요 하면 회원이 늘어났던 과거와는 세상이 달라졌다고 입을 모았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온라인 매체의 영향력이 커지고, SNS 등 개인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스피커가 다양해졌다. 거기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오프라인 비중이 확 줄어들었다. 이제 ‘온라인에서 모든 게 이루어지는 세상’이 온 것이다.

시민단체는 디지털 시민과 어떻게 소통할 것인가라는 과제가 생겼다. 디지털 시민의 등장은 시민운동의 세대교체를 뜻하기도 한다. 87년 이후 30년 넘는 시간이 흐르면서 시민단체 활동가와 시민운동의 주체인 시민들의 세대가 교체됐다. 이들 대부분 노동운동이나 학생운동을 경험하지 못했으며 디지털 사회가 더욱더 익숙하다.

권소영 협동사무처장은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디지털과 온라인은 우리 삶 깊숙이 들어왔다”며 “시민운동은 디지털 시민과 어떻게 소통할 것인가, 디지털이 익숙하지 않은 세대가 디지털 시대에서 소외되지 않도록 어떻게 할 것인가 등 고민에 직면하면서 과도기를 거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시민운동 방식에서 온라인 비중이 높아진 것이 부정적으로만 작용하는 건 아니다. 온라인이라는 거대한 연결망을 잘만 활용하면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할 기회로 만들 수 있다. 이전의 시민운동과 오프라인에서의 활동은 단체 규모, 회원 수, 단체가 동원할 수 있는 자원 등에 큰 영향을 받았다. 규모가 클수록 목소리도 커졌다. 그러나 온라인에서는 그렇지 않다. 이승훈 사무처장은 “온라인에서는 단체 간의 위계나 서열이 없어지기 때문에 작지만 강한 단체가 생길 수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평등한 디지털 시민사회를 어떻게 만들어낼 것인가는 시민단체의 고민으로 남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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