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육아전쟁 비상사태! '전우'가 사라졌다 (윤정인활동가)
육아전쟁 비상사태! '전우'가 사라졌다
- 칼럼니스트 윤정인
[엄마 과학자 생존기] 3주간의 돌봄노동이 과학자에게 미치는 영향
육아 동지가 3주간 사라졌다. 7일 중 5일은 타 지역 출장지로 출근을 하고 주말에 돌아오는 일정이었다. 그리고 그 일정은 3주간 지속됐다. 즉, 우리는 의도하지 않게 주말부부를 하게 됐다. 다시 말해 프리랜서가 된 지 얼마 되지 않아 강제 주중 돌봄노동에 나를 갈아넣어야 했다.
사실 나는 그간 흔히 말하는 독박육아, 전일제 돌봄노동에 투입이 된 적이 거의 없다. 신랑과 살면서 주말부부를 해본 기억은, 산후조리 기간뿐이었기 때문이다.
산후조리 기간 친정에 기거하는 나를 보기 위해 신랑은 매주 주말마다 부모님 댁에 왔는데, 당시 나는 백수 동생 두 명과 직장인 동생 한 명, 그리고 우리 부모님과 함께 아이를 양육했으므로 독박육아를 해본 역사가 전혀 없었다.
우리 부부는 늘 함께했다. 사실 나는 주말부부를 하고 싶었으나, 신랑은 자신이 두 번째 사랑을 찾을 생각이 없다며 주말부부를 거절했다. 게다가 아이가 생긴 이후로 신랑은 가족은 한몸이라는 슬로건을 외치며 아이와 함께 나의 껌딱지가 돼 들러 붙어 있다.
그래서 포닥(박사 후 연구원)도 '안녕'이 된 거고, 그렇게 우리는 늘 같은 지역에 직장을 구하며 지내왔다. 요약하면 우리 부부는 육아라는 전쟁터에서 끈끈한 우정을 나눈 동지로써, 이 전쟁터에서 각자 '토낀' 적이 없었다.
그런데 비상이 걸렸다. 장기출장에 육아 동지께서 당첨이 된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육아전쟁 발발 6년 만에 헤어져 나홀로 최전방 전투 5일을 맡게 됐다. 아이도 컸고, 호기롭게 괜찮을 것이라고 했지만 전혀 괜찮지 않았던 이야기를 기록해두려고 한다.(아들놈 다 크면 꼭 보여줄 거다.)
◇ 육아전쟁 발발 6년 만에 나홀로 최전방 전투를…
연구주제 : 주 5일 무교대 전일제 돌봄노동에 투입된 양육자의 감정변화에 대한 고찰
연구기간 : 20. 06. 15. ~ 20. 07. 03.
연구대상 : 만 5세 남아의 주양육자인 30대 여성 1인과 30대 남성 1인
▲1주 차 마음의 변화
30대 여성 : 만 5세 아이의 등하원을 책임짐. 아이가 좀 시끄럽긴 하지만, "낫 배드(Not Bad)"임. 오후에 피로도가 높아짐. 자신만의 시간이 부족함을 서서히 느끼고 있음.
30대 남성 :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높아짐. 높아진 그리움을 안고 귀가함. 그러나 귀가 후 철썩 들러붙어 쉬지 않고 떠드는 아이의 목소리에 순간 다시 나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고 고백함. 5일 동안 홀로 있던 생활에 익숙해져 아이의 목소리에 적응을 못한 것으로 보임. 극도의 피곤함을 느낀 후 휴식을 취하지 못하고 다시 일터로 귀가함.
▲2주 차 마음의 변화
30대 여성 : 업무가 늘어남에 따라 집에서도 추가로 작업해야 하는 일들이 발생함. 아이의 방해가 시작됨. 노트북으로 일을 진행하거나, 스마트폰으로 업무를 진행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 심지어 아이의 방해로 인해 평소에 진행하던 가사노동이 불가능해짐. 청소기 사용 시 아이는 TV 소리를 높임. 이로 인해 아이와 마찰이 발생함. 가장 집중도 있게 작업을 할 수 있는 시간은 아이가 잠을 잔 11시 이후였음. 수면이 부족해짐.
30대 남성 :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높아지는 2차 시기가 도래함. 매일매일 아이와 영상통화를 하기 위해 노력했으나 아이가 착신된 영상통화를 거절하는 사태가 발생함. 만 5세 아동이 스마트폰을 다루는 숙련도가 생각보다 빠르게 증가했음을 알게 됨. 어렵게 연결된 통화 역시 아이가 대충 인사하고 도망가는 사태가 발생함. 자신에게 관심이 없는듯한 가족의 태도에 약간의 서운함을 느꼈으나, 역시 집에 귀가 후 귀가 따가워서 다시 나가고픈 충동에 시달림.
▲3주 차 마음의 변화
30대 여성 : 인내심의 한계치를 경험했음. 아이의 사소한 잘못에도 서서히 목소리가 높아짐. 아이는 그런 엄마가 무서워졌다며 또 징징거림. 아이의 까불거림을 보며 아이가 자신을 무시하는 것 같다는 생각에 불쾌함을 느낌. 아이와 함께 있는 것이 피곤하게 되자, 점점 스마트폰에 집착하기 시작함. 현실도피를 하는 사람처럼 스마트폰을 통해 이유 없이 SNS를 쳐다보고, 로맨스소설 구독에 돈을 쓰기 시작함. 이 이상 아이를 혼자 보다간 복용 중인 약물을 늘려야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살짝 함.
30대 남성 : 최선을 다해 일을 하고 귀가함. 역시 귀가 따가움. 아이를 피해 살짝 밖에서 쉬고 싶으나 와이프가 노려보고 있어서 나가지 못하고 있음. 아이를 피해 방으로 도망가서 핸드폰으로 현실도피를 하는 시간이 증가함. 물론 그 현실도피 역시 아이가 10~15분 간격으로 계속 방해함.
▲Summary
하루종일 아이와 이야기하는 것은 어려움. 아이의 욕구는 어른의 욕구와는 달리, 지극히 본능에 기반된 욕구이므로 타인에 대한 배려가 '1'도 담겨져 있지 않음. 자신이 먹고 싶을 때 먹고, 놀고 싶을 때 놀아야 하고, 자신의 욕구를 들어줘야 하는 이는 당연히 보호자라고 믿어 의심치 않음. 그리고 그 요구를 엄청 당당하게 함. 이러한 일이 반복되면 퇴근하지 못하는 '꼰대' 상사를 만난 기분에 사로잡힘. 자신을 위한 소소한 시간은 가질 수 없고, 계속 아이의 욕구에만 충실한 삶이 지속됨. 이러한 무교대 돌봄노동은 사람의 정신을 피폐하게 만듦. 본 노동에 시달린 30대 여성과 남성은 모두 일을 하고 있을 때는 집착하지 않았던 스마트폰에 과도하게 몰입하는 모습을 보였으며, 두 사람 모두 스스로 현실도피를 하는 느낌을 받았다고 이야기함. 결국 장시간 돌봄노동에 교대 없이 투입되는 것은 정신건강에 유익하지는 않을 것으로 판단됨.
이번 독박육아 체험을 통해 깨달은 사실이 있다. 역시 전쟁터에서는 전우가 있어야 한다. 전우가 없으니 사람의 정신이 피폐해져감을 느꼈다. 어른에겐 '어른사람'이 필요하다는 새삼스러운 깨달음을 얻은 시간이었다.
정신적으로 코너에 몰리는 기분이었다. 교대 없는 육아라는 것 말이다. 아이는 엄마의 감정은 이해해주지 않았고, 고려도 해주지 않았다. 오롯이 자신의 욕구만 내세우며 매달렸다.
나는 아이에게 나의 피로함에 대해 설명했으나 '씹혔다'. '씹힘'이 반복되자 아이에게 언성이 높아짐을 느꼈다. 아이가 "엄마 바보"를 외치며 자신의 엉덩이를 팡팡 치며 약 올릴 땐, 울컥해서 '저놈시키 확 걷어차버려!'라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난 이성적인 엄마이므로 머릿속에서만 생각했다.
◇ 내 감정에 공감해주는 '어른사람'이 필요해
울컥울컥 약이 오르는 일은 많았고, 이런 상황에서 내 어깨를 토닥이며 참으라고 말해줄 남편이 없다는 것이 힘들었다. 그래서 동지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 많은 이들이 독박육아가 힘든 이유는 옆에서 내 감정에 공감해주는 '어른사람'이 부족하기 때문 아닐까.
물론 많은 이들이 그렇게 말한다. 옛날엔 다 그렇게 키웠다고. 저렇게 까불면 때려서 버릇을 고치면 되고, 그렇게 엄하게 길러야 아이가 차분해지며 결론적으로 부모가 편하다고 했다. 우리는 어릴 때 맞고 컸다. 어른들의 기준에 맞춰, 거기에 부합되지 않으면 맞고 큰 세대가 우리다.
그리고 지금 어른이 된 우리는 우리가 맞았던 것이 부당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여, 지금 부모세대는 아이를 존중하고, 훈육을 과거처럼 때리지 않고 하기 위해 무던히 노력한다. '잘못하면 맞는다'고 배운 우리가, 우리가 배운 것과 다르게 때리지 않고 아이를 키우기 위해 노력하는 셈이다.
과거처럼 말 안 들으면 손이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되도록 대화로 아이를 존중해주기 위해 무던히 노력을 하고 있다. 대화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와의 대화를 위해 노력한다. 우리는 과거에 우리가 배우지 못한 방법으로 지금 새롭게 아이들을 키우려 한다.
무조건 맞는 게 아니라, 아이의 기준에서 설명해주고, 또 설명해주면서 어떠한 경우에도 폭력은 용납하면 안 된다고 가르치는 중이다.
그래서 지금 우리 세대가 좀 더 힘들다고 생각한다. 과거와 달리 자신의 부정적인 감정을 아이에게 풀지 않고, 오롯이 우리가 부정적인 감정을 감내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 우리는 지금 겪어본 적 없는 경험을 바탕으로 아무도 가지 않았던 길을 개척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지금의 부모세대를 좀 가엽게 여겨, 지쳐 커피 한잔하는 육아인들에게 따뜻한 시선을 좀 보내주길 바란다. '집에서 하는 게 뭐 있냐'고 헛소리 하지 마라. 회사에 있는 '개꼰대' 상사보다 더 '진상 떠는' 아이를 종일 수발들었는데 얼마나 하루가 고되겠는가. 옆에서 '오늘도 고생했다'며 어깨를 토닥여주길 바란다.
그나저나 집에 가야 하는데, 정말 집에 가기 싫어서 큰일이다.
*칼럼니스트 윤정인은 대학원생엄마, 취준생엄마, 백수엄마, 직장맘 등을 전전하며 엄마 과학자로 살기 위해 '정치하는엄마들'이 되었고, ESC(변화를 꿈꾸는 과학기술인 네트워크)에서 젠더다양성특별위원회의 위원장이 되어 프로불만러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실은 회사 다니는 유기화학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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