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엄마 아빠는 환경파괴 주범" 이라는 아이, 그래 네 말이 맞다
“엄마 아빠는 환경파괴 주범”이라는 아이, 그래 네 말이 맞다
- 칼럼니스트 윤정인
[엄마 과학자 생존기] 화학자 부모는 그래도 좀 억울하다
아이는 무럭무럭 자라 만 6세가 됐다. 우리 아이는 지금 유치원에 다닌다. 작년까진 유치원에서 놀기만 했던 것 같은데, 요즘 아이는 삶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여러 가지를 유치원에서 배워오고 있다.
그중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환경’, ‘기후위기’ 이슈다. 굉장히 중요한 문제라 우리 부부도 아이가 유치원에서 듣고 말하는 내용에 집중하는데, 최근 그것 때문에 아이와 부딪혔다.
아이는 우리를 환경파괴의 주범이라고 지목했다. 이유? 엄마 아빠가 화학자라서 그렇단다. 선생님께 화학자들 때문에 지구가 망가진다고 배웠단다.
이뿐만이 아니다. 우리 부부는 성향상 일회용품 없는 삶을 살 수가 없다. 거기다가 코로나19 때문에 모든 제품의 구매를 온라인 주문으로 대신하고 있다. 그러니, 집 쓰레기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하지만 아이는 유치원에서 일회용품을 줄이고 분리수거를 잘 해야 한다고 배운다. 그러다 보니, 이런 환경 문제로 아이와 부딪히고, 아이가 우리를 구박하는 일이 요새 잦아지고 있다.
◇ 연구실에선 필수였던 일회용품 사용, 집에서도 당연해진 것뿐인데…
연구직 출신인 내가 가장 싫어하는 게 세균이다. 나는 화학자라 그래도 세균을 직접 배양하거나, 세균으로 실험하는 사람은 아니었으나, 세균 연구하는 친구들을 자주 봐서일까? 참 세균이 싫다. 세균도 싫고 곰팡이도 싫다.
그런 이유로 집에 세균이나 곰팡이가 번식할 ‘기회’조차 만들지 않는다. 어쩌면 직업병일지도 모르겠다. 실험을 마친 뒤 항상 물, 아세톤, 에탄올로 테이블을 꼼꼼히 닦아내던 습관이 만든 직업병. 그 직업병이 집에서도 발현한 것일지도.
특히 세균이나 곰팡이가 번식할 확률이 아주 높은 수세미나 행주는 일회용을 사용한다. 매일 청소를 해도 싱크대 주변이 청결할 것이라는 보장이 없다. 다회용 행주나 수세미를 깨끗하게 사용할 방법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일 마치고 퇴근해 집에 돌아오면 녹초가 되기 일쑤라 품을 들일 여유가 없다.
그러한 이유로, 우리 집 행주는 하루 주기로, 수세미는 2주 간격으로 교체한다. 언젠가 아이가 “엄마를 위해 준비했어”라며 친환경 수세미를 만들어 들고 온 적 있었다. 그 수세미 역시 엄마의 ‘습관적 교체’에 따라 2주 후 쓰레기통에 입장했다. 그 사실을 안 아이는 대성통곡하며 이렇게 말했다.
“엄마가 지구를 죽였어!”
아이에게 미안하지만, 여전히 나는 부엌 수세미를 못 믿는다.
연구자들은 다양한 실험기구를 쓴다. 그중 절반 정도는 일회용이고, 절반 정도는 다회용이다. 일회용 실험기구가 있는 이유는 시료가 오염되는 것을 막기 위함이다.
또, 실험실에서 이용하는 라텍스 장갑이나 마스크도 한번 쓰고 버리는데, 이 역시 시약의 교차오염을 막기 위함이고, 장갑이나 마스크에 혹시라도 묻었을지 모르는 시약이 다른 장소에 묻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실험실에서 몸에 밴 이런 습관 때문에 나는, 집에서도 습관적으로 비닐장갑이나 라텍스 장갑을 자주 교체한다. 마스크도 당연히 한번 쓰고 버린다. 아이는 그게 혼란스러웠던 모양이다. 지구를 위해선 쓰레기를 많이 버리면 안 된다고 했는데, 엄마 아빠는 무조건 버려야 한다며 버리는 모습에, 아무래도 밖에서 배워온 것과 집안 환경의 괴리가 컸을 것이다.
하지만, 아이 말이 맞다. 유치원 교육에 따르면 화학자 엄마, 일회용품을 너무 쉽게 쓰는 엄마, 경유차를 쓰는 엄마는 환경오염의 주범이 맞다. 그리고 이런 내 모습이 아이에게 잘못된 모습으로 보일 것이라는 생각도 당연히 든다.
다만, 일회용품 사용은 쓰레기 배출이란 문제를 놓고 봤을 때 심각한 이슈임엔 틀림없지만, 위생을 생각했을 땐 꼭 필요한 사용이란 생각이 든다. 또, 경유차를 무조건 전기차로 바꾸는 것 보다, 차 한 대를 오래 소비하고 차를 자주 바꾸지 않는 것 또한 중요한 일이라고도 본다.
참고로 나는 경유차에 배기가스 저감장치를 장착했다. 배출가스 검사를 꾸준히 받으며 오래 잘 탄 후에, 정말 문제가 된다면 차를 바꿀 계획이다.
◇ 화학의 발전이 환경을 망쳤다? 이걸 어떻게 아이에게 설명할까
환경교육 참 중요하지만, 이건 나쁘고, 저건 좋다는 흑백논리로 이야기하기엔 환경과 과학은 단지 ‘맞다’, ‘틀리다’로만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아이에게 이런 지점을 설명하기 참 어렵다. 그리고 그런 얘기를 과학자인 내가, 만 6세 어린이를 붙잡고 설명하기엔 아직은 힘든 미션이란 생각도 든다.
하지만, 화학자들도 환경을 해치지 않는 연구를 하기 위해 큰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후드마다 헤파필터를 연결해 실험 시 나오는 유해 가스가 유출되지 않게 하고 있고, 썩는 플라스틱도 개발하고, 환경에 해가 되는 것들을 무해한 것들로 대체하려는 노력 역시 화학자들이 하고 있다.
그런데도, “엄마 아빠는 환경오염의 주범이야”라며 우리를 혼내는 아이에게 이런 이야기를 일일이 설명하지 않고, 그냥 혼만 나고 있는 이유는, 내가 이런 이야기를 아이에게 설명하는 게 아이가 배운 교육을 반박하는 것 같아, 그리고 거기서 아이가 느낄 혼란을 수습할 수 없을 것 같기 때문이다.
다만…. 일부러 환경 오염되라고 화학이 발전한 게 아닌데, 또 내가 한 일도 아닌데 “엄마 아빠 때문이야”라는 말을 듣는 게 참 억울하다. 그래도 그냥 우선은 혼나고 있다. 아들한테 “엄마 아빠 그런 사람 아니야”라고 말하는 것도 한두 번이라….
아이가 하도 ‘환경보호’를 외쳐대는 통에, 아이의 소원을 들어주고자 우선 택배 줄이기를 선언했다. 택배 포장으로 발생하는 쓰레기를 줄이며 아이의 유치원 생활을 돕고자 했다. 하지만, 코로나 상황이 계속 이어지며 택배가 아니면 장을 보기 어려워졌다.
지금은 분리수거라도 잘하려고 노력 중이다. 그리고, 언젠가 그럴 날이 올 것이라 기다리고 있다. 나중에 아이가 조금 더 크면 ‘지구파괴의 주범’으로 찍힌 화학자 엄마 아빠의 억울함을 차분하게 아이에게 설명할 날을.
*칼럼니스트 윤정인은 대학원생엄마, 취준생엄마, 백수엄마, 직장맘 등을 전전하며 엄마 과학자로 살기 위해 '정치하는엄마들'이 되었고, ESC(변화를 꿈꾸는 과학기술인 네트워크)에서 젠더다양성특별위원회의 위원장이 되어 프로불만러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실은 회사 다니는 유기화학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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