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비뉴스] “‘정인이’들 앞에 떳떳한 대책을 만들자” 특별법 제정 촉구
“‘정인이’들 앞에 떳떳한 대책을 만들자” 특별법 제정 촉구
- 권현경 기자
‘아동학대 사망사건 진상조사 특별법’ 제정 촉구 간담회
【베이비뉴스 권현경 기자】
“지난 2일 ‘양천사건’이 방송을 타고 정치권이 분주하다. 늘 같은 방식으로 대처하면서 다른 결과를 기대할 순 없다. ‘양천 아동학대 사망사건 진상조사 특별법’을 제안한다. 일주일 만에 만드는 말장난 같은 대책 말고, 전문가들에게 욕먹는 대책 말고, ‘정인이’들 앞에 떳떳한 대책을 만들자.” (장하나 정치하는엄마들 사무국장)
국회 부의장인 김상희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경기 부천병)이 지난달 29일 온라인생중계(ZOOM과 유튜브 ‘김상희TV’)를 통해 ‘정부의 1·19 아동학대 대응대책을 진단한다-아동보호를 위한 공적 책무 강화 및 아동학대 사망사건 진상조사특별법 제정 촉구 간담회’를 개최했다.
이날 간담회는 양천구에서 생후 16개월 된 아동이 양부모의 학대로 사망한 사건(양천사건) 재발 방지를 위해 지난 19일 정부가 발표한 대책과 관련해, 정부의 아동학대 대응시스템에 대한 당사자와 현장 전문가들의 의견을 듣기 위해 마련됐다.
김상희 부의장은 축사를 통해 “아동학대 사망사건에서 자꾸 허탕만 치고 막을 수 있었던 아동의 죽음을 막지 못한 건 그동안 근본적인 문제 진단을 회피했기 때문”이라면서 영국의 ‘클림비 보고서’ 사례를 소개했다.
영국에서는 2001년 빅토리아 클림비라는 소녀가 심각한 아동학대로 사망한 사건 발생 후 2년여간의 조사 끝에 2003년 400페이지가량의 ‘클림비 보고서’를 작성했다. 이 보고서 내용을 토대로 ‘2004년 아동법’이 제정됐고 영국의 아동학대 대응시스템이 크게 변화하는 계기가 됐다.
김 부의장은 “이번 ‘양천사건’을 포함해 중대한 아동학대 사망사건에 대한 국가차원의 진상조사와 아동학대 근절대책 마련을 위한 특별법을 마련했다”면서 “2월 첫 주에 발의해 2월 임시국회 통과를 목표로 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날 열린 온라인 간담회에는 같은 당 강선우 의원(서울 강서갑)·신현영 의원(비례대표)·최혜영 의원(비례대표)도 함께했다. 반복되는 아동학대 사망사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힘을 보태겠다고 말했다.
이날 토론은 황필규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변호사의 사회로 진행됐다. 토론자로는 ▲훈이 움직이는 청소년센터 EXIT 활동가 ▲임윤령 전 경북북부 아동보호전문기관장 ▲이설아 건강한입양가정지원센터 대표 ▲전영순 한국한부모연합 대표 ▲김진석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신수경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아동인권위원회 변호사 ▲장하나 정치하는엄마들 사무국장 등이 참여했다.
◇ 학대피해자가 경험한 경찰·아동보호전문기관·그룹홈은…
첫 발언자로 나선 훈이 움직이는 청소년센터 EXIT 활동가는 학대피해자로서 ‘내가 살아 있는 건 말이 안 된다’며 경험을 털어놨다.
훈이 활동가는 “두 살 때 동생과 함께 양부모가 운영하는 어린이집에 맡겨졌다. 양부모는 나와 동생을 차별했다. 동생은 깔끔한데 나는 꾀죄죄했다. 식탁에 앉지도 못했고 바닥에서 잔반을 먹었다. 여덟 살 때 이상하게 여긴 주변인이 경찰에 신고했다. 그러나 미리 알려주고 나온 가정방문 조사는 부모의 준비된 각본대로 진행돼 일상은 원점으로 돌아갔다”고 말했다.
경찰로부터 전화를 받고 부모는 갑자기 훈이 활동가를 씻기고 옷을 갈아입혔다. 책을 주면서 읽고 있으라고 한 기억이 어린 시절 가장 선명한 첫 기억이라는 것이다. 아동보호전문기관에서 두 명이 집으로 왔고 한 명은 거실 한쪽에서 부모님을, 다른 한 명은 훈이 씨를 만났다. 서로 대화하는 게 들리는 거리에서 ‘엄마가 때렸어?’라고 물었다고 했다. 멍 자국은 엄마가 시킨 대로 놀다 다쳤다고 했고 그걸로 조사는 끝났다.
부모가 학교를 보내지 않아 학교에 다닌 기간이 한 달도 채 안 된다. 훈이 활동가는 학교도 경찰도 자신을 왜 찾지 않았는지 의아하다. 열네 살이 되던 해, 부모는 훈이 활동가를 지적장애인으로 등록해 장애인 혜택을 받는가 하면 열일곱 살 때 가출해 경찰에 잡혔을 때 부모에게 폭력을 당하고 있다고 말했지만 경찰은 믿지 않고 귀가시켰다. 부모는 나중엔 훈이 활동가를 음식점에서 일을 하게 하고 번 돈을 모두 가져가기도 했다.
부모의 폭력에 집을 나와 일하던 음식점 사장의 도움으로 경찰에 신고를 했다. 그때도 경찰은 부모의 주장을 믿었다. 청소년쉼터로 보내졌고, 이어 그룹홈에서 지내게 됐다. 그조차도 만 열여덟 살이 되면 무조건 퇴소해야 해서 결국 고시원 생활을 시작했다. 그룹홈 입소 전후로 어떤 지원을 받을 수 있는지 설명받은 적이 없었다.
훈이 활동가는 2018년 1월 아동학대를 신고했고 그다음 해인 2019년 5월 가해자인 양부모는 1심 판결에서 징역 8월에 2년 집행유예, 사회봉사 400시간, 아동학대 재범 예방강의 수강 40시간, 취업제한 명령을 받았다. 이후 2심 판결은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으로 끝났다. 양부모의 폭력은 증거불충분으로 다루지지 않았고 학교를 보내지 않은 것만 인정된 판결이다.
훈이 활동가는 “1월 신고하고 비공개 그룹홈 입소를 일주일 남겨둔 상태에서 아동보호전문기관 담당자를 두세 차례 만났으나 만나면 안부만 묻고 끝이었다”면서 “만 18세 이후 6개월은 사후관리 기관이라고 했지만 한 번도 연락 온 적 없다. 오히려 전화를 먼저 해도 바쁘다며 다른 사람이 전화를 받았고 다시 연락은 없었다. 무슨 역할을 하는 곳인지 존재 자체를 모르겠다”고 말했다.
피해자다움을 요구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훈이 활동가는 “경찰, 검찰, 주변인들이 ‘피해자인데 왜 이렇게 멀쩡해요? 너무 밝은 거 아니에요? 라는 말을 들었다”면서 “피해자는 이렇게 해야지, 가해자는 이렇게 해야지 하는 이야기를 접한다. 굳이 어두울 필요가 있는지, 도대체 그런 건 누가 정하는지 궁금하다”고 반문했다.
훈이 활동가는 “저와 같은 사람들은 잘 보이지 않는 곳에 있다. 그 사람들은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곳을 모르니 숨어있게 된다. 숨어있는 사람들을 찾는 건 기관들이 해야 할 직무이고 책임이다. 이 사람들이 잘 볼 수 있는 여러 곳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곳들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피해자가 증거를 증명하지 못해도 지원해 줄 수 있어야 한다. 아동학대 대응시스템이나 보호종료아동을 보호하는 시스템을 좀 더 체계적이고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했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 “아동 중심으로 복지체계를 새로 써야…정치적 결단해야 할 때"
장하나 정치하는엄마들 사무국장은 ‘아동학대 진상조사 특별법’ 제정 필요성에 대해 말했다.
장 사무국장은 “아동 중심으로 복지체계를 새로 써야 한다. 정치적 결단해야 할 때”라면서 “탈토건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전 상임위 위원도 #정인아 미안해, 해시태그 한 정치인들 한마음으로 해내라”고 촉구했다. 결국 예산이 투입되지 않으면 해결할 수 없는 일이라는 의미로 해석됐다.
장 사무국장은 “정부 대책이 빨리 나올수록 불안감과 허탈감은 더 크다. 훈이님이 첫 발제하면서 본인이 겪은 일을 말해주지 않았나. 어떻게 바꿔야 할까? 시급하게 조속하게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질러갈 수 있는 게 아니”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특별법은 시급하다. ‘정인이 사건’이 10월에 났지만 1월에 <그것이 알고싶다> 방송에 나오고 나니 국회나 정부도 나섰다”면서 “사건에 대한 진상조사를 뛰어넘어서 아동보호체계 전반을 바꿔야 한다. 같은 대책으로는 막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장 사무국장은 “우리 사회가 왜 아동학대를 방조하고 막지 못하냐. 정밀한 조사가 필요하고 예산을 반영하겠다고 하지 않으면 소용없다. 정인이 묘소에 조문하는 국민들이 안심할 대책은 진단이 필요하다. 진단도 안 하고 이 약 저 약 주니까 효과가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장 사무국장은 “우리가 2013년 서현이 때 진상조사부터 했더라면 ‘정인이 사건’ 같은 건 없지 않았을까. 정인이를 위해 무엇인가 하고 싶다면, 정부에 진득하게 조사하라고 요청하라”면서 “아동보호전문기관, 경찰, 복지부 등 업무를 맡은 사람들과 피해당사자들, 입양단체, 한부모가정 등 당사자 목소리를 충실히 반영한 대책이 나와야 한다. 특별법이 통과될 수 있도록 관심과 지지를 이어주시길 간곡히 요청 드린다”고 호소했다.
그밖에 ▲임윤령 (전)경북북부아동보호전문기관장의 ‘현장에서 바라보는 정부 대책’ ▲이설아 건강한입양가정지원센터 대표의 ‘입양부모가 바라보는 정부 대책’ ▲전영순 한부모가족연합의 ‘한부모가 바라보는 정부 대책’ ▲김진석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의 ‘예산과 인력 측면에서 바라본 정부 대책’ ▲신수경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아동인권위원회 위원의 ‘1·19 아동학대 대응 강화방안’의 검토와 문제점에 대한 발표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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