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대통령님, '학원 뺑뺑이'는 학교 떄문입니다 (박민아활동가)
대통령님, '학원 뺑뺑이'는 학교 때문입니다
[대통령이 알아야 할 학교 이야기 ①] 박민아 정치하는엄마들 활동가
▲ 오늘 등교 시작 신학기 첫 등교가 시작된 2일 오전 부산 동래구 내성초등학교에서 학생들이 교실로 들어가고 있다. | |
ⓒ 연합뉴스 |
'띵동'
개학을 앞둔 며칠 전 e알리미(학교 가정통신문 전달 어플)에 새로운 알림 메시지가 왔습니다.
'3월 2일 개학식에는 급식이 제공되지 않습니다. 돌봄 교실을 이용하는 학생들은 도시락을 지참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현재 학교 수업이 끝난 후 저학년 아이들을 중심으로 아이들이 안전하게 학교에 있을 수 있도록 '돌봄 교실'을 운영하고 있다는 것은 알고 계시리라 생각됩니다. 하지만 같은 학교에 있어도 수업이 끝나고 돌봄 교실에 가는 순간 우리 아이는 학교의 재학생이 아닌 돌봄 교실 이용자가 되어 버리는 것 같은 기분은 저 혼자만 느끼는 걸까요?
2020년 코로나19와 함께 1학년을 시작했던 저희 아이는 1학년 5반으로 가는 날보다 돌봄 교실 2반으로 가는 날이 더 많았습니다. 학교에서 교육은 멈추었지만 돌봄 교실은 긴급 돌봄이란 이름으로 학급 수를 더 늘려 돌봄 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한 노력을 해왔습니다. 지난 1년, 아이들과 함께 있었던 것은 담임 선생님이 아니라 돌봄 선생님이었습니다. 아이들이 등교를 하지 않는 동안 안부 전화 한 통 없는 학교 선생님들과 달리, 사정이 있어 돌봄 교실에 가지 못한 날 아이에게 무슨 문제가 있냐며 아이의 안부를 걱정해 주신 것도 돌봄 선생님뿐이었습니다.
대통령님, 공적 돌봄을 약속하셨습니다. 낳기만 하면 키워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학교는 공적 돌봄에는 관심이 없어 보입니다. 아이들을 성장시키고 아이들에게 전인적 교육을 해야 하는 학교는 말합니다. 학교는 '교육'만 하는 기관이니 '돌봄'은 학교에서 자꾸 나가달라고 말입니다. 학교는 돌봄 교실에 대한 책임이 없으며 돌봄 교실을 이용하는 아이들에게 교실만 빌려주겠다고 말합니다.
우리 아이들이 학교에서까지 이렇게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으면 도대체 어디서 제대로 된 대우를 받을 수 있을까요? 저처럼 학교 안 돌봄 교실이 절실한 양육자들은 학교가 책임지지 않는다고 말하는 돌봄 교실에 어떻게 아이들을 믿고 맡길 수 있을까요?
소위 학원 뺑뺑이가 왜 초등학교 1학년부터 시작되는지 아이가 입학하고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학원 뺑뺑이는 엄마의 교육열이 아니라 기관 돌봄이 필요하기 때문에, 돌봄 공백을 메우기 위해 생긴 것임을요.
'돌봄'은 학교의 역할입니다
▲ 학원 뺑뺑이를 돌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을 형상화 한 강미정 활동가의 그림 | |
ⓒ 정치하는엄마들 강미정 활동가 |
대통령님, 양육자에게 돌봄의 끝은 없습니다. 돌봄의 영역을 양육자의 몫으로만 남겨두지 않기를 바랍니다. 저는 단지 아이들이 안전한 곳에서 안전하게 돌봄을 받길 바랍니다. 아이가 7세에서 초등학생이 된다고 해서 갑자기 돌봄이 필요 없는 아이가 되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초등학생 아이들에게 가장 안전한 곳은 어디일까요? 저는 그곳이 학교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저학년 아이들은 보호자 없이 혼자서 학교 밖의 다른 장소로 이동한다는 것 자체가 위험한 일입니다. 아이들이 양육자들을 만날 때까지 학교에서 즐겁게 있을 수는 없는 것일까요?
대통령님, 초등학교 저학년이 몇 시에 하교하는지 알고 계십니까? 그리고 양육자들은 몇 시에 퇴근하는지 알고 계십니까? 아이들과 일하는 양육자가 만날 때까지 몇 시간의 간극이 발생하는지 알고 계십니까? 모르지 않을 거라 생각됩니다.
초등학교 저학년은 점심 급식을 먹고 낮 12~1시에 정규수업이 끝이 납니다. 그리고 저같이 맞벌이 부모를 둔 아이들은 돌봄 교실로 이동했다가, 오후 4~5시에 돌봄교실이 끝나면 부모가 퇴근할 때까지 몇 개의 학원을 거쳐 학원 뺑뺑이를 돌게 됩니다.
대통령님, 저는 바랍니다. 학교에서 아이들을 위해 책임감 있는 모습을 보여주기 바랍니다.
낮 12~1시에 정규수업을 마치는 것이 정말 아이들을 위한 것인지 묻고 싶습니다. 현재 아이들이 7세까지 다니는 어린이집의 하원시간은 오후 4시입니다. 맞벌이 가정을 위한 연장반의 경우 오전 7시 30분부터 오후 7시 30분까지 운영되고 있습니다.
수년간 그렇게 생활하던 아이들이 초등학교 입학하니 학교 적응을 위해 낮 12~1시에 하교를 해야 한다는 생각은 시대착오적 생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제는 학교가 시대의 흐름에 따라 학교의 책임을 확대해야 할 때입니다.
OECD 대부분의 국가들이 1~6학년 하교시간을 따로 두지 않고 동일한 시간에 하교를 합니다. 미국·캐나다 등은 초등학교 수업시간이 하루 평균 4.9시간으로 모든 학년이 동일한데, 한국은 1·2학년 2.93시간, 5·6학년 3.87시간으로 다른 국가들에 비해 교육시간이 매우 짧습니다.
그런데 학교는 '교육'만 하는 곳이라고, '돌봄'은 학교의 역할이 아니라고 주장하던 교원단체들이 이제 하교시간 연장도 반대하고 있습니다. '돌봄도 안 하겠다. 교육도 안 하겠다'면 대체 교사들은 뭘 하겠다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학교가 교육에 대한 책임 있는 모습이라도 보여주었으면 합니다.
대통령님께 정말 묻고 싶습니다. 초등학교 전 학년 4시 하교가 어려운 일일까요? 양육자들은 학원 뺑뺑이보다 학교가 안전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양육자들이 바라는 학교의 역할에 대해 학교와 정부는 알아야 합니다. 양육자들이 바라는 학교는 늘 열려 있는 학교입니다. 아이들이 수업만 받는 학교가 아닌, 아이들이 양육자들과 만날 때까지 안전하게 있을 수 있는 공간이기를 바랍니다.
현재 돌봄 교실은 오후 4~5시에 문을 닫습니다. 맞벌이 가정을 위한 돌봄 교실이라 내세우면서 양육자들의 퇴근시간과 동떨어지게 돌봄 교실을 운영하는 것입니다. 학교가 학원 뺑뺑이를 하도록 만들고 있습니다. 학교도 어린이집과 마찬가지로 오전 7시 30분부터 오후 7시 30분까지 아이들이 안전하게 머물 수 있는 돌봄 교실을 운영해야 합니다.
대통령님, 혹시 아시나요? 돌봄 교실 아이들이 학교 급식을 먹지 못한다는 사실을요. 방학 때는 학교 급식실이 있는데도 도시락을 싸거나 외부 매식으로 해야 합니다. 돌봄 교실 아이들은 학교에 있으면서도 학교 급식을 먹지 못합니다. 돌봄 교실에도 차별 없는 급식 제공이 필요합니다.
저는 단지 초등학교 2학년 아이를 키우고 있는 평범한 양육자일 뿐입니다. 하지만 지금 제가 느끼는 이 불편한 감정들이 비단 저 혼자만의 것이 아닌 것 같아 이렇게 몇 글자를 적어보는 것입니다. 부디 평범한 엄마들의 생각을 귀담아 들어 주시기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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