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 17번의 사회적 참사에 기름 부은 언론 보도들

프로젝트

- 오보와 사건 축소로 혼선 일으키고 정부·기업 주장 검증 안해…"문제적 보도, 참사 반복적으로 발생하게 해"

[미디어스=윤수현 기자] 17번의 사회적 재난·산재 참사를 다룬 언론 보도의 문제점은 적지 않았다. 정부·기업의 보도자료를 검증 없이 인용해 혼선을 일으켰으며 책임을 피해자에게 돌리는 경우도 있었다.

‘생명안전 시민넷’은 13일 세월호 참사 7주기를 맞아 <재난·산재 참사 유가족·피해자들의 기록과 증언회>를 열었다. 유가족과 활동가들은 참사의 원인과 언론 보도 문제점 등을 상세히 증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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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올림은 2016년 1월 반올림 농성장 앞에서 <삼성전자 백혈병 등 직업병 문제에 대한 반올림 공식 입장 발표 및 사과와 보상 문제 해결촉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반올림)

이종란 반올림 활동가는 언론이 삼성 반도체 문제를 적극적으로 보도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 활동가는 “삼성의 보도자료 베끼기에 급급한 보도가 많았고 노동자 측에 유리한 것은 보도가 축소되거나 안 되기도 했다”며 “이는 투쟁의 가장 큰 걸림돌 중 하나였다. 언론은 삼성 백혈병 등 직업병 문제의 보상, 사과 등이 다 마무리되었다고 거짓 보도를 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용산참사의 경우 언론이 정부와 함께 사건을 축소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2009년 2월 청와대 홍보기획관 산하 국민소통비서관실은 경찰에 “용산사태를 통해 촛불시위를 확산하려고 하는 반정부단체에 대응하기 위해 '군포 연쇄살인 사건'의 수사내용을 더 적극적으로 홍보하기 바란다”는 공문을 보냈다. 논란이 일자 청와대는 ‘행정관 개인이 저지른 일’이라고 해명했다. 박형준 부산시장이 당시 청와대 홍보기획관이었다. 

이원호 용산참사 진상규명 및 재개발제도개선위원회 사무국장은 “언론은 청와대발 여론조작 지침과 철거민들의 폭력성을 강조한 경찰 자료를 그대로 받아쓰는 보도 양태를 보였다”며 “일선 현장 기자들은 유가족 이야기를 취재했지만 ‘데스크에서 잘린다’며 죄송하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 사무국장은 “언론은 세입자들이 망루에 오를 수밖에 없었던 근본 원인을 취재하지 않았다”며 “외부세력 개입 프레임을 덧씌웠다. 시공사인 삼성물산 문제를 다루는 보도는 거의 없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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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1일 오전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스텔라데이지호 침몰사고 4년째를 맞아 열린 기자회견 (사진=연합뉴스)

언론의 오보로 침몰한 스텔라데이지호 수색이 종료되기도 했다. 허영주 스텔라데이지호 대책위원회 공동대표는 “미국 해상초계기가 구명벌을 발견했지만 언론은 ‘구명벌 추정물체는 기름띠로 확인되었다’고 보도했다”며 “이 보도는 구명벌 수색 종료의 근거가 됐다. 보도 후 3일 만에 실질적인 수색이 종료됐다”고 했다. 당시 언론의 취재원은 선박회사 폴라리스 쉬핑의 전략기획팀 직원이었다.

2019년 발생한 건설노동자 고 김태규 씨 사망사고 당시 일부 언론은 경찰 증언을 바탕으로 “피해자 과실로 인한 실족사”라고 보도했다. 실제 원인은 화물용 엘리베이터 불법 운용, 안전 장비 미지급 등이었지만 이를 상세히 보도한 언론은 드물었다. 김도현 씨는(김태규 씨 누나) “흔한 건설현장 산업재해 사망사고였고 시공 발주기업이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곳이었다”며 “주요 언론은 관심조차 가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2019년 인천 송도에서 축구클럽 차량 교통사고가 발생했을 때 “아이들이 안전띠를 매고 있지 않아 밖으로 튀어나왔다”는 오보가 나왔다. 기사에 “안전교육 미비로 아이들이 사망했다”는 악성댓글이 달렸다. 김장회 정치하는엄마들 활동가(유가족)는 “유가족은 말 그대로 생지옥을 경험했다”며 “이 사고를 계기로 2점식 안전띠가 탑승자의 안전을 보장하지 못한다는 문제가 인식됐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4월 남이천 물류창고 화재 당시 언론은 사건의 원인을 파악하기보다 “담배가 발화의 원인이었다”는 추측성 기사를 쏟아냈다. 이에 유족들은 기자회견에서 “오보나 추측성 보도는 절대 있어서는 안 된다”며 “설계와 착공, 공사 기간, 투입인력, 파견구조, 안전상태 등의 보도가 나와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렇지 않아 유족들은 현 상황에 대해 매우 불만스럽게 생각하고 있다”고 밝혔다. 

박래군 인권재단 '사람' 소장은 문제적 언론보도에 대해 “혐오와 차별을 통해 유가족·피해자를 표적으로 삼고, 사회적으로 고립시키는 행위”라며 “사회적 참사를 묻히게 만들고, 같은 유형의 참사가 반복적으로 발생하게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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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열린 <재난·산재 참사 유가족·피해자들의 기록과 증언회>

박 소장은 사회적 참사 재발을 막기 위해 생명안전기본법이 제정되고 ‘안전권’이라는 개념이 확립돼야 한다고 제안했다.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 국회의원 29인은 지난해 11월 안전에 대한 기본권을 보장한 생명안전기본법을 발의했다. 생명안전기본법은 ‘안전권’을 “모든 사람은 성별·종교·국적·인종·세대·지역·사회적 신분·경제적 지위 등에 관계없이 일상생활과 노동 현장에서 안전사고와 위험으로부터 생명·신체·재산을 보호하고 안전하게 살 권리”라고 규정하고 있다.

박 소장은 “안전권을 확보하는 게 중요한 과제”라며 “모든 사람은 안전사고에 대해 안전할 권리가 있다. 안전권이 확보된다면 국가는 안전 보장에 대한 책임을 지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 소장은 “생명안전기본법은 안전권 대상을 ‘모든 사람’이라고 규정했다”며 “헌법의 기본권은 대상을 ‘국민’으로 하고 있어 이주노동자는 제외된다. 안전권이 확보되면 안전 문제와 관련해 모든 사람의 권리를 보장할 수 있다”고 밝혔다.

오민애 변호사(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는 중대재해처벌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했다. 오 변호사는 “중대재해처벌법은 5인 미만 사업장 적용제외, 50인 미만 사업장 적용유예, 공무원 책임 조항의 삭제 등으로 명확한 한계를 갖고 있다”며 “법 제정의 의의가 큰 만큼 한계를 시정하고 보완해야 할 필요성도 크다. 대통령령이 어떤 내용을 담을 것인지도 매우 중요한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윤수현 기자 [email protected]

▼기사출처

http://m.mediau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1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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