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경향][오늘을 생각한다]문제는 경쟁이다 - 장하나 활동가

 

경쟁은 공정해야 한다. 당연한 소리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는 불공정하다는 주장이 있다. 반면 출발선이 다 다른데 그런 경쟁이 뭐가 공정하냐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묻고 싶다. 공정한 경쟁에 참여하면, 공정한 경쟁에서 이기면 행복한가?
 

 

경쟁이 불공정하면 또 다른 불행을 가져올 테니까 공정은 중요하다. 하지만 공정은 기본값일 뿐이다. 공정 그 자체로 내 삶이 향상되지도 않고 우리 공동체가 발전하지도 않는다. 경쟁이 공정하다고 해서 참여자들 간의 관계가 돈독해지는 건 아니지 않은가? 공정 담론은 승자의 권력과 권위를 강화하는 이념이다. 소수의 승자가 누리는 보상이 크면 클수록 다수의 패자가 보기엔 특권으로 비칠 수 있다. 이럴 때 공정 담론은 보상체계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양극화를 정당화한다. 예컨대 공무원의 육아휴직은 3년이고 이와 별도로 2년 동안 1일 2시간의 유급 육아시간을 쓸 수 있다. 반면 민간 기업에 다니는 노동자의 육아휴직은 1년이고 이마저도 쓰기 힘들다. 공정 담론이 강화될수록, 공무원의 꿈의 직장이 될수록 이러한 불평등은 정당한 보상으로 받아들여지고 불평등은 고착된다. 공정은 좋은 거지만 공정 담론은 그렇지 않다.
 

 

경쟁이 공정한지 보지만 말고 이 경쟁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행복한지 들여다보자. 그렇지 않다. 불행한 이유가 불공정하기 때문인가? 그렇지 않다. 보상에 비해 과도한 경쟁을 하기 때문에 불행하다. 대학에 가기 위해 정규직이 되기 위해 공무원이 되기 위해 ‘0세 사교육’이 시작된다. 놀고먹고 자기만 할 나이에 뭘 배우고 뭘 잘해야 한다. 해질녘까지 뛰놀 친구는 없다. 역설적으로 친구를 사귀려면 학원에 가야 하는데 누가 더 잘하는지 비교 평가당하는 자리에서 경쟁자들과 친구가 되는 것이다. 나 같은 옛날 사람이 알던 ‘우정’은 멸종했다.
 

 

 마치 밥 한그릇을 먹기 위해 8시간을 일해야 하는 형국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허기가 가시지 않는 부조리한 체제다. 고용보장을 위해 0세부터 경쟁이라니. 어떠한 보상도 청년들이 감수한 희생에 미치지 못한다. 영유아들은 태어나자마자 획일화된 경쟁 속으로 떠밀린다. 놀이, 재미, 창조, 발견, 우정…. 성장의 기쁨을 누리지 못하고, 아동의 삶은 ‘나’와 ‘꿈’을 찾아가는 모험의 여정이 아니라 대학과 직장을 찾아가는 과정으로 전락했다. 승자든 아니든 마찬가지다. 엄청난 희생이 정당화되려면 그것은 매우 배타적이고 큰 보상을 위한 희생이어야 한다. 나라도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는 불공정하다고 느꼈을 것이다. 그걸 수용하는 순간 내 평생의 노력과 희생은 삽질처럼 보일 테니까. 내 삶을 부정해야 하니까.
 

 

공정이 아니라 경쟁이 문제다. 승자에게 꿈을 이뤘는지 물어보라. 한국사회에 꿈은 사라진 지 오래다. 우리가 아동들에게 꿈을 꾸라고 말한 적이 있던가? 꿈도 없고, 친구도 없고, 재미도 없고 나도 없다. 진정한 승자는 메가스터디, 에듀윌, 해커스다. 지금 공정을 두고 싸울 때가 아니다. 공정을 넘어서서 이 미친 경쟁체제와 싸우자. 모든 아동의 삶을 구하자.

 

▼ 원문보기
http://m.weekly.khan.co.kr/view.html?med_id=weekly&artid=202106041541481&code=124#csidxeb6fa694e229a07871b6de4afb366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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