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포순이가 바지를 입는 시대건만... 송파구는 여전했다
[김소희·최지선의 아주 가까운 곳의 정치] '우리동네 캐릭터,' 성평등 한가요?
▲ 성중립적인 모습으로 바뀐 포돌이, 포순이. | |
ⓒ 경찰청 |
'포돌이 포순이'가 태어난 1999년, 나는 초등학생이었다. 어느 때부터 학교 복도며 교실 벽에 '포돌이 포순이' 스티커가 붙었는데, '경찰 아저씨'라는 다소 무섭고 딱딱한 이미지가 '포돌이 포순이'로 친근하게 느껴지며 신선한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다. 이들만큼 정부 기관에서 만든 캐릭터가 대중에게 널리 인식되고 오랫동안 사랑받은(?) 경우는 없는 것 같다.
지난해, 그런 '포돌이 포순이'의 모습이 바뀐다는 기사를 접했다. 여자 경찰관을 상징하는 포순이의 치마를 바지로 바꾸고, 길게 말아 올린 속눈썹을 없앴다. 귀를 덮고 있는 단발머리를 귀 뒤로 넘겼다. 기존 포순이의 모습이 성별 고정관념을 부추길 수 있다는 문제 제기에 대한 대처였다고 한다.
이런 변화가 반가웠다. 그런데, 다른 공공기관 캐릭터들은 어떨까?
역시 지난해 7월, 내가 사는 송파구는 '송송 파파'라는 이름의 캐릭터를 새로 선보였다. 구정 홍보지에, 길거리 표지판에, 구청 홍보 현수막에 새겨지고, 심지어 조형물까지 만들어진 이들을 보면서 불편한 마음이 올라왔다. 송파구의 초성 'ㅅ' 'ㅍ'을 따서 만든 '송송 파파'는 성역할 구분이 확실하다. 분홍색의 송송 캐릭터는 빨간색 입술, 여성으로 간주되는 목소리를 해 '여성'을 상징했다. 파란색의 파파 캐릭터는 검은색 입술, 남성으로 간주되는 목소리로 '남성'임을 드러내고 있다.
'송송 파파'가 따른 진부한 공식
▲ 구정소식지, 가로등, 심지어 보도블럭에도 볼 수 있는 송파구 자치구 캐릭터 "송송, 파파" | |
ⓒ 최지선 |
일단 이 캐릭터의 색깔부터 '여자는 분홍, 남자는 파랑'이라는 진부한 공식을 따랐다. 지난해 정치하는엄마들이 유아용품에서 '여아용'은 분홍색으로, '남아용'은 파란색으로 구분하여 판매하는 행태를 지적하며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에 제소한 바 있다.
"분홍색 아이폰을 여성용, 파랑이나 까만색 아이폰을 남성용으로 구분해서 판다면 누가 납득을 하겠어요? 아이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분홍·파랑 물건을 팔지 말라는 게 아니라 여아용, 남아용으로 구분 지어서 파는 것을 그만하라는 겁니다.
아이들이 글을 읽을 수 있는 나이가 돼서 그런 색깔별 성별구분을 접하고, 소꿉놀이가 아니라 엄마놀이라고 쓰여 있는 제품을 보게 되면 자신도 모르게 성역할에 대한 고정관념을 내재화하게 됩니다. 성별에 따라 아동들의 몸가짐이나 직업 등에 대한 상상범위가 달라져요. 이게 아동인권 침해가 아니면 뭐겠어요." - 장하나 정치하는엄마들 활동가, 2020.1.3. 내일신문 보도 내용 중
인권위는 이에 대해 '영유아 상품 성별 구분은 성역할 고정관념을 강화하기 때문에 개선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하지만 같은 해 탄생한 송송은 '여자여서' 분홍색이고, 파파는 '남자여서' 파란색이 됐다.
외모뿐만 아니라 이 캐릭터들의 행동 양식도 성역할 고정관념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묘사되는 경우가 자주 눈에 띈다. 여자인 송송은 주로 보조적이고 연약한 모습으로, 파파는 씩씩하고 주도적인 역할로 그려진다. '송송 파파'가 '우리동네 캐릭터 대상'이라는 한 캐릭터 공모전에 출전함을 알리는 포스터에서 파파는 링 위에 올라 글러브를 끼고 다른 캐릭터와 대결을 하는 역할, 송송은 뒤에서 응원하는 '라운드 걸'의 모습을 하고 있다.
▲ "캐릭터 대상"에서 "송송파파" 지지를 호소하는 포스터. 링 위에 선 "남성"역할인 파파는 다른 캐릭터와 싸움을 준비하고 있고, "여성 역할"인 송송은 "라운드 걸" 모습으로 파파를 응원하고 있다. | |
ⓒ 송파구청 |
이들이 출전한 '우리동네 캐릭터 대상'에서 수상한 캐릭터들은 어떨까? 궁금해서 홈페이지에 가봤다. 역대 수상작들을 보니, 캐릭터가 남녀 한 쌍일 때 여자 캐릭터는 대부분 분홍색으로, 남자 캐릭터는 파란색 계열로 표현됐다. 여자 캐릭터는 귀엽고 왜소한 모습으로, 남자 캐릭터는 늠름하고 힘 있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인권위에서도 정부 홍보물의 이미지가 '시민의 인식, 태도, 행동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지적하며 '고정관념과 편견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송송 파파' 역시 송파구에서 존재감은 독보적이다. 구정 소식지에 고정적으로 송송 파파 그리기 코너도 있어서 아이들은 송송의 분홍색을, 파파의 파란색을 따라 그린다. 송파구에서는 심지어 '송송파파 서포터즈'까지 모집한다.
'OO니까 OO해야 해'라는 편견
이런 점들을 개선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서울시에서 제시한 '홍보물 성별영향분석평가 가이드라인'이라는 것이 있다. '성역할 고정관념 및 편견' '성차별적 표현/비하/외모지상주의' '폭력에 대한 왜곡된 시각' '성비/연령구성/가족에 대한 고정관념 등'의 네 가지 큰 영역, 세부적으로는 약 40가지 영역에서 홍보물 발행 시 성평등 관점에서 검토할 부분을 정리해놨다. 캐릭터를 포함한 모든 홍보물에 대한 성별영향평가, 담당자들에 대한 교육도 필요할 것이다.
여기에 더해 '서울시 젠더 거버넌스'라고, 시민들이 직접 참여해서 자치구 홍보물과 정책을 성평등의 관점에서 모니터링하고 개선점을 제시하는 활동도 있다. 25개 자치구에서 수십 명의 시민활동가들이 참가하고 있다. 이러한 노력이 모여 자치구나 공공기관이 좀 더 '감수성 있는' 조직으로 변화하길 기대해 본다.
끝으로, 나는 성평등한 사회가 여성뿐만 아니라 모두에게 자유로운 사회일 것이라 믿는다. 한 친구가 '남자이기 때문에' 무거운 것을 들 것을 강요받고, 군대에 가야 하는 것에 대한 불만을 토로한 적 있다. 무거운 짐을 드는 것과 군대 사이에 괴리가 있어 보이지만, 둘 다 'OO니까 OO해야 해'라는 편견에 기인한 것이 아닐까.
이처럼 '우리동네 캐릭터'나 구정홍보물에 드러나는 일상 속 편견과 불평등을 없애나가다 보면 결국 군대나 임금불평등 같은 구조적인 모순 역시 해결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오는 9월 17일 '우리동네 캐릭터 대상' 시상식이 있다. 이날 수상하는 캐릭터는 어떤 모습일지 지켜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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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글쓴이 최지선은 2021년 송파라 보궐선거에서 미래당 구의원 후보로 출마하였고, 현재 송파에서 환경과 성평등 관련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오마이뉴스] 기사 전문 보기▶ http://omn.kr/1v6z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