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대/행동하는보통남자들][취재요청서] ‘이렇게 된 이상 페미니즘으로 간다’ 기자회견
수신 |
각 언론사 기자 분들 |
발신 |
‘행동하는 보통 남자들’ (담당 : 현준 (010-5570-5493), 연웅 (010-2968-6922) |
제목 |
‘이렇게 된 이상 페미니즘으로 간다’ 기자회견-진행 |
날짜 |
2022. 03. 05. (토) 오전10시반~12시` |
장소 |
세종문화회관 중앙계단 앞 인도 |
붙임 |
하단 참조 |
취 재 요 청
1. 귀 언론사의 발전을 기원합니다.
2. 지난 2월 9일 저희는 '우리는 이대남이 아니란 말입니까?' 기자회견을 통해 혐오와 차별이 아닌, 성평등과 공존을 외치는 청년 남성들의 목소리를 전달하며 이대남 표심을 대변한다며 반복되는 여성혐오 정치에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3. 그럼에도 불구하고 윤석열 후보는 여전히 여성가족부 폐지를 핵심 공약으로 내세우고, 구조적 성차별이 없다는 발언을 고수하며, 청년본부 양성평등특위를 통해 '성인지 교육을 아시나요?라며 성인지 교육을 공격하는 등 수준 이하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4. 이에 '행동하는 보통 남자들'은 <이렇게 된 이상 페미니즘으로 간다> 기자회견을 통해 페미니즘이 군대, 일터, 가족, 교육, 건강에서 만들어갈 변화를 제시하고 더 많은 남성들이 페미니즘에 함께하기를 촉구하고자 합니다.
7. 귀 언론사의 많은 관심과 취재 및 보도를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붙임 1) 포스터-이렇게 된 이상 페미니즘으로 간다/ 부제: 페미니즘은 이런 세상을 만들 것이다.
붙임 2) 행동하는 보통 남자들 발언 (선공개 일부)
붙임 3) 연대자 발언 (선공개 일부)
붙임 4) 기자회견 타임테이블
붙임1
붙임2-1
< 군대와 함께 하는 페미니즘 >
안녕하세요. ‘행동하는 보통 남자들’의 김연웅입니다. 반갑습니다. 저는 오늘 ‘군대’ 이야기를 하고자 이 자리에 섰습니다. 군대와 군인 그리고 페미니즘에 대해 이야기 해보고자 합니다. 어렵고 민감한 주제입니다. 그래서 긴장도 많이 됩니다. 하지만 누군가는 언젠가는 해야 할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여성을 차별하고 청년을 갈라치기 하는 어떤 정치인에게, ‘군대’ 정책을 물으니 페미니즘 탓을 합니다. 그에게 다시, ‘페미니즘’ 정책을 물으니 그땐 군대 이야기를 꺼냅니다. 군인이 존중 받지 못하는 것이 페미니즘 때문입니까? 아닙니다. “군대는 갔다 왔냐?”라고 무시하던 이들에 의해 반복되어 온 조롱과 함께, 군인에게 적절한 보상과 여건을 제공하지 않는 환경 때문입니다. 여성이 군대를 가면 군대가 저절로 좋아진답니까? 아닙니다. 여성징병제를 꺼내기 이전에 먼저 여성 군인에 대한 차별과 폭력을 어떻게 해결할지 이야기해주십시오. 더 이상 이런 얄팍한 수 싸움에 놀아 날 청년은 없습니다. 페미니즘은 군대와 대척점에 있는 생각이 절대 아닙니다. 오히려 저는, 지금의 대한민국 국군을 더 일하기 좋은 군대, 더 건강한 군대로 만들 최선의 ‘비단주머니’가 바로 페미니즘 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대한민국 육군 중위로 만기 전역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학군장교로 임관하여 군 실무자로 복무했습니다. 제가 장교를 선택한 이유는 두 가지였습니다. 하나는 군 실무자로서 국방의 의무를 수행한다는 ‘자긍심’ 이었고, 하나는 현재 국군이 가진 문제와 모순들을 내가 직접 보고 겪으며 할 수 있는 일들을 해보자는 ‘도전’ 이었습니다. 우리나라는 역사적으로, 외교적으로 그리고 지정학적으로도, 국방과 안보의 안정이 무엇보다 중요할 수밖에 없는 국가입니다. 특히 급변하는 작금의 세계 정세 속에서, 억제력을 위한 국군은 한반도의 평화를 담보하는 중요한 기둥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국군을 지탱하는 기둥은, 첨단 군사장비도, 고도의 무기체계도 아닌 사람입니다. 바로 군인입니다. 군인 없이는 국방도, 안보도 온전히 존재할 수 없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저의 옛 동료들이 경계태세로 철책 앞에, 작전 앞에, 동료 옆에 비장하게 서있습니다. 하지만 이들 옆에는 누가 서있습니까. 그간 ‘강한 안보’를 외쳐오던 여러분은 이들과 함께 서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이들이 전선에 나설 때 국민을 위해 희생할 용기와 명예를 우리는 감히 말할 수가 있습니까? 안타깝게도, 정말 안타깝게도, 저는 감히 입에 올리지 못 하겠습니다. 지난 27일은 고 변희수 하사님의 1주기 추모제가 있었습니다. 한때 대한민국 국군의 일원으로서 저는 단 한마디 변명조차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공군에서 일어난 성추행 피해자 중사님의 죽음 그리고 군대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폭력과 피해, 죽음들 앞에서 저는 감히 원통하고 분한 마음에 군인으로서의 명예나 희생 같은 것들을 입에 담을 용기가 도저히 나질 않습니다. 이들 옆에는 대체 누가 서있었습니까!
선진병영을 만들겠다는 이 나라에서, 군인들이 마주하는 건 ‘군인에 대한 조롱과 무시’, ‘부족한 보상과 여건’, ‘상관의 갑질과 폭력, 폭언,욕설’ 그리고 ‘성차별과 성폭력’ 입니다. 이런 환경에서 어떻게 뒤돌아보지 않고 적과 싸울 수 있다고 말할 것이며, 어떻게 명예롭고 자랑스럽다 느낄 수 있겠습니까? 여성들이 군대에 간다고 이러한 문제들이 해결됩니까? 여성가족부가 폐지된다고 이러한 문제들이 해결되느냔 말입니다! 아니질 않습니까. 절대 아니지 않습니까. 이것이 해결책이라 말하는 정치인은 누구보다 앞장서서 군인을 조롱하고 무시하는 정치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선진병영을 만들고자 하는 정치인이라면, 군인들을 위하고자 하는 정치인이라면, 군대를 위한 페미니즘을 외칠 것입니다. 성평등을 말할 것입니다. 선진 무기체계와 연합훈련 이전에 군인이 존중 받는 군대를 만들겠다고 외칠 것입니다.
미필이냐 군필이냐에 따라 조롱받거나 차별받지 않는 세상.
복무하는 청춘의 시간이 소중한 만큼, 경제적ㆍ교육적ㆍ직업적으로 적절하게 보상 받고 지원 받을 수 있는 세상.
갑질과 폭력, 폭언, 욕설을 겪지 않아도 되는 군대.
사람이 다치지 않는 군대. 다쳐도 눈치 보지 않는 군대. 치료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군대.
성폭력이 없는 군대. 성차별이 없는 군대.
여성도, 남성도, 성소수자도, 트랜스젠더도, 성정체성과는 상관 없이 한 명의 ‘군인’으로서 존중 받고 자신의 사명을 다 할 수 있는 군대.
이런 세상이어야, 이런 군대여야 내 가족을 보낼 수 있지 않겠습니까. 걱정을 덜 수 있지 않겠습니까.
이런 세상이라면, 이런 군대라면, 나의 성별과 정체성, 내가 누구든지 상관 없이, 내가 한 명의 ‘군인’으로서 존중 받을 수 있는, 그런 세상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목숨을 걸고 철책 앞에, 작전 앞에 당당히 설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군인들이 그렇게 느낄 수 있는 군대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강한 군대가 아니겠습니까! 페미니즘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페미니즘과 함께 하는 군대라면 가능합니다. 이렇듯 페미니즘은 국방개혁의 1번 과제 입니다. 군대에는 페미니즘이 필요합니다. 절실합니다. 폭력과 차별이 없는 군대를 만들어 갈 페미니스트 참모총장이, 페미니스트 사단장이, 페미니스트 소대장, 페미니스트 반장, 페미니스트 분대장이 절실하게 필요합니다. 이들이 함께 모여, 밖으로는 걱정 없는 군대를 만들고, 안으로는 일하기 좋은 군대를 만드는 것. 이것이 진정한 ‘국방개혁’ 입니다.
대통령 선거가 코앞입니다. 국방과 안보가 중요하다고 말하는 대통령 후보들께 요청 드립니다. 대통령으로서 폭력과 차별이 없는 군대를 만들겠다고 약속해주십시오. 대통령으로서 페미니즘과 함께 하는 군대를 만들겠다고, 그리하여 안전하고 성평등한 건강한 대한민국 국군을 만들겠다고 약속해주십시오.
페미니즘과 함께 하는 군대, 차별이 없는 사회가 만들어지는 그 날. 그 날이 오면, 우리는 떠나보내야 했던 이들의 죽음 앞에서 비로소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땅의 군인이었던 당신이 자랑스러웠다고, 당신의 모든 시간이 명예로웠다고.
이상 ‘행동하는 보통 남자들’ 김연웅 이었습니다.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붙임2-2
안녕하세요, 행동하는 보통 남자들의 정재현입니다. 특별할 것 없는, 많고 많은 군대 전역자 중 한 명으로, 오히려 특별하지 않기에 오늘 하고자 하는 말이 있습니다. 처음으로 동료 페미니스트들을 포함해 많은 사람들에게 생각을 전하는 일이기에 긴장되지만, 그럼에도 옳음을 위해 나서는 것은 두려워하지 않아야 마땅한 일입니다.
때때로 저는 모병제가 없어, 주변의 군복무를 앞두거나, 하고 있거나, 이미 마친 친구와 동료들이 그와 관련된 걱정을 하지 않는 세계를 상상합니다. 저는 여군들이 성범죄의 우려에서 벗어나 군 경력을 추구하고, 무사 전역만을 되뇌이며 영내 괴롭힘을 버텨내는 사람이 없는 세상을 상상합니다. 이런 세계에 이르는 데에는 많은 갈래길이 있겠지만, 아무래도 우리에게 가장 가까운 대안은 페미니즘이겠죠. 여성을 포함한 약자들이 받는 차별이 사회적임을 인정하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논의를 거듭하는 삶의 태도.
군대와 페미니즘이 함께할 수 없는 존재들임을 주장하는 의견을 많이 듣습니다. 그런 것쯤 군인이 못 참으면 어떡하냐, 군인은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하지 않느냐…여기서 모두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입니다. 그러나 이 지점에서 되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현재 군대에 많은 문제가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약자에 대한 구조적 차별의 해소를 향해 노력하는 학문이자 사상이 어찌하여 대안이 될 수 없는지 말입니다.
아프면 참아야 한다, 군대를 갔다와야 진정한 ‘남성’ 이 된다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런 말들로 인해 다쳐도 군복무 당시 제대로 진료를 받지 못한 친구들을 알고 있습니다. 군대 내에서 재생산되는 ‘남성상’ 은 과연 우리에게 얼마나 단물을 주었나요? 오히려 주변의 가족, 친구, 선후임에게 걱정과 고민을 안겨 주지 않았습니까. 스스로 ‘맨박스’를 벗어던지겠다며 남성적 성역할을 강조하지 말 것을 부탁하는 젊은 남성들이라면, 이런 지점에 대해 고민이 필요하지 않은지 진지한 질문을 이 자리에서 던집니다.
국방을 수호하고, 재난 시에 국민들을 도우며 세계 각국에서 치안유지 작전에 참여하는 군대의 긍정적인 모습을, 저는 그곳에 있다 왔기에 더욱 잘 알고 있습니다. 오히려 이러한 빛나는 모습들이 있기에, 우리는 구성원이 안전하고, 스스로 지향하는 정체성에 의해 위협을 느낄 일이 없는 군대를 만들기 위해 페미니즘적 가치관의 적극적인 수용이 필요하다고 감히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바로 이런 가치관이 농담처럼 받아들여지지 않는, 이미 존재하는 차별과 앞으로 있을 수 있는 차별의 인지와 해소를 위해 계속해서 지평을 넓히고 본연의 기능에 더욱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주는 것이야말로 인권과 페미니즘에 대한 논의이기에, 저는 그 곳에 있다 왔던 한 명의 이름 없는 페미니스트로서 동료들과 목소리를 내어 보고자 합니다. 감사합니다.
붙임2-3
청년유니온 나현우 활동가
바야흐로 젠더 ‘갈등’의 시대입니다. 이대남과 이대녀, 여성과 남성이라는 ‘대립구도’속에 누가 더 불행한지 이야기합니다. 대선 국면에서 정치권은 이러한 ‘갈등’을 자신의 표를 결집하는 용도로 사용하고, 언론은 길을 지나가는 20대로 보이는 청년들을 붙자고는 ‘이대남’으로서, 또는 ‘이대녀’로서의 의견을 묻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 한 가지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과연 이것은 ‘갈등’입니까?
35.9%.정부가 내놓은 성별임금격차 수치입니다. 남성의 평균임금이 100일 때, 여성은 그것의 64.1% 수준의 임금을 받고 있습니다. 이것은 갈등입니까? 5.2% 정부가 내놓은 국내 상장기업 여성임원 비율입니다. 국내 상장 기업 임원 32,000여명 중 여성은 불과 5.2%이며, 아예 남성임원만 있는 기업이 전체 상장기업의 63.7%입니다. 이것은 갈등입니까? 14.2% 정부가 내놓은 여성의 직장 내 성희롱 피해경험률입니다. 여성의 직장 내 성희롱 피해경험률은 남성의 피해경험률인 4.2%의 3배가 넘습니다. 이것은 갈등입니까? 여성이라서 남성보다 임금을 덜 받아도 되고, 여성이라서 남성보다 승진을 못해도 되고, 여성이라서 남성보다 더 많은 성적 모멸을 겪어도 되는 것입니까? 이것은 갈등이 아니라 격차입니다. 우리가 그토록 거부하는 불공정이자, 부조리입니다.
어찌하여 이 문제들에는 ‘공정함’이 요구되지 않는 것입니까? 남성이 차별받을 때는 분노하고, 여성이 차별받을 때는 침묵하는 것이 공정입니까? 이것은 여성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동료 시민들이 여성이라는 이유로 부당한 차별을 받고 있는 문제입니다. 우리의 동료 시민들이 일터에서 여성이라는 이유로 더 적은 임금을, 더 적은 승진을, 더 많은 성적모멸을 겪고 있는 문제입니다. 이대남, 이대녀는 없습니다. 특정 성별이라는 이유로 부당하게 차별받고 있는 우리의 동료시민이 있을 뿐입니다.
이러한 차별이 정당하다고 생각한다면 침묵합시다. 같은 노동자여도, 여성이니까 더 적은 임금을 받아도 된다면 생각한다면 침묵합시다. 같은 노동자여도, 여성이니까 더 적은 승진을 해도 된다고 생각한다면 침묵합시다. 같은 노동자여도, 여성이니까 일터에서 더많은 성적 모멸을 겪어도 된다고 생각
하면 침묵합시다. 그러나 이러한 차별이 부당하다고 생각한다면 함께 싸웁시다. 자신의 표 결집을 위해 동료시민에 대한 부당한 차별을 갈등으로 둔갑시키는 혐오의 정치에 함께 맞섭시다. 성평등한 일터, 공정한 일터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것은 여성가족부 폐지가 아니라 성별임금격차 해소, 더 많은 여성임원, 성폭력 없는 일터를 만들기 위한 적극적 조치들이 필요하다고 함께 목소리 냅시다.
청년유니온은 너무나 당연하게도 보장받아야 할, 마땅히 동등하게 대우받아야 할 노동자들이 여성이라는 이유로 부당하게 차별받는 모든 것에 대한 싸움에 함께하겠습니다.
붙임2-4
[학교와 교육현장에 성평등을!]
이한(행동하는 보통 남자들 활동가)
안녕하십니까? ‘행동하는 보통 남자들’ 활동가 이한입니다. 저에게는 자랑스런, 그리고 제가 제일 좋아하는 정체성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성평등 교육 활동가입니다. 2019년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에서 어렵사리 강사양성과정을 이수하고 각종 성문화센터, 성평등센터 소속강사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조금이라도 더 많은 사람에게 성평등을 전달하려고 매번 돈과 시간을 들여 보수교육을 들으며 지금도 공부합니다. 고단하고 어려운 일이지만 학교와 각종 현장에서 참여자를 만나 변화를 느낄 때마다 보람되고 기운이 납니다.
그런데 최근 황당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한 정당에서 성인지 교육 내용을 왜곡하여 교육이 무용하고 갈등을 조장하며 세금을 낭비한다는 식의 이야기를 쏟아냈습니다. 그 정당의 대선 후보는 ‘30조원이나 되는 성인지 예산을 북핵 위협을 막는 데 쓰겠다’며 인터넷 찌라시에서나 쓰일법한 말도 안되는 소리를 유세장에서 하고 있습니다.
이마를 짚었습니다. 이대로면, “여가부 예산이 30조원이라는 데 사실인가요?”라는 얘기를 3만 번 들어야 하고 “성인지 교육은 남자를 잠재적 가해자 취급한다”는 댓글을 백만번쯤 봐야합니다. 그래도 전 교육자니까 다시 한 번 친절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똑똑히 들으십시오. 성인지예산은 따로 집행되는 예산이 아니라, 나랏돈이 성평등하게 잘 쓰이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겁니다. 따로 빼서 쓸 수 없다는 겁니다! 여가부 예산은 우리나라 전체 예산에 0.2% 수준으로 1조원 겨우 넘습니다. 정부 부처 중 꼴찌 수준입니다!
특권과 사회적 차별에 대한 이야기는 김지혜 선생님의 <선량한 차별주의자>라는 책에 이미 상세히 나와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특권은 ‘사회적 조건에 의해 누리게 된 혜택’을 말합니다. 여러분이 대중교통을 타고 이 계단까지 별 불편함 없이 모일 수 있었다면, 그건 비장애인 중심으로 구성된 사회에서 비장애인이라는 특권을 누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비장애인을 타파하자는 게 아니라 함께 살기 위해 사회적 차별을 개선하자는 게 말씀하신 성인지 교육의 골자입니다!
이 내용, 교육 참여자가 물어보면 앞으로 오조오억번도 더 설명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정치 한답시고 대중 앞에 선, 당신들이 그러면 안됩니다! 정말 몰라서 그러는 거라면, 얼마든지 강의 할테니 불러만 주십시오. 강사기준에 따르면 1시간에 15만원이지만 사정이 급해보이니 할인이라도 해드리겠습니다.
기왕 하는 거 정치인에게 부탁 하나만 더 드리겠습니다.
학교에, 교육 현장에 성평등이 필요합니다. 이른바 ‘N번방 사건’으로 알려진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 온라인 그루밍과 메타버스 성범죄, 청소년 사이에선 여성 게임 유저를 비하하는 여성혐오 문화가 만연합니다. 청소년에게, 미래세대에 여전히 성평등이 필요합니다!
지긋지긋한 ‘요즘 애들’타령 그만하고 성평등 이야기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 우리사회 어린이·청소년이 없던 거 배웠겠습니까! 기존의 가부장제도 악습과 여성혐오 문화를 답습하게 둔 기성세대의, 우리의 잘못 아닙니까! 성평등 교육을 하는 사람으로서, 정말 무한한 책임을 느낍니다. 하지만 한편으로 억울하고 속상합니다! 언제 그렇게 교육할 기회를 주기는 했습니까. 학교에 나가 교육할 수 있는 시간, 고작 1년에 80~90분이 전부입니다. 학교 컴퓨터에 문제가 생기거나 앞에 교육이 늦게 끝나면 그마저도 시간이 부족해 쇼미 뺨치는 랩을 하기 일쑤입니다. 그런데 또 정치인이 가짜뉴스 퍼뜨리면 저는 그 모자란 시간 쪼개서 가짜뉴스 해명해야합니다. 이제 정말 랩 말고 교육이 하고 싶습니다. 가짜뉴스 그만 퍼뜨리고 교육 잘 할 수 있게 시간 좀 늘려주십시오. 못해도 국어, 영어, 수학 정도만큼은 해야지 않겠습니까.
교육 활동가들 정말 열악한 상황에서 절박한 마음으로 교육에 임하고 있습니다. 저부터도 이 교육이 듣는 참여자 인생의 처음이자 마지막 교육이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하며 강의합니다. 그래도 저는 교육과 여기 모인 사람들의 힘을 믿습니다. 2015년 페미니즘 리부트, 2016년 강남역 여성혐오 살인사건 이후 수많은 사람들의 각성, 해시태그 운동은 각종 문화계 성폭력을 고발했습니다. 불법촬영 규탄 시위는 불법촬영물 시청 가해를 처벌할 수 있게 했습니다. 이른바 ‘N번방 사건’에서 꺼져가던 경찰, 사법부의 관심을 다시 이끌어 낸 것도 낙태죄를 위헌으로 이끌어낸 것도, 스토킹과 온라인 그루밍 문제를 가시화하며 법안을 만들고, 100곳이 넘는 학교에서 성차별, 성폭력을 고발하는 스쿨미투 목소리가 울려퍼지게 한 것도, 모두 저절로, 거져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자리에 모인 수많은 행동하는 보통 사람들의 힘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이번에는 정치인 여러분의 차례입니다. 성평등을 향한 의지를, 진심을 보여주십시오.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성평등 교육 활동가 이한 드림
붙임2-5
안녕하세요. 저는 ‘행동하는 보통 남자들’에서 활동하고 있는 김정현이라고 합니다.
2021년 2월,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실시한 ‘트랜스젠더 혐오차별 실태조사’에서 351명 중 73%는 전국에 몇 개 있지 않은 트랜스젠더 친화적인 의료기관을 방문하였고, 일반적인 의료이용을 위해 의료기관을 방문한 적이 있는 526명 중 73%는 자신의 정체성에 맞지 않은 탈의실 등을 이용하거나 의료진이나 병원 직원에게 본인이 맞는지 등의 질문이나 모욕적인 언행을 경험했다고 답했습니다. 또한 전체 응답자 중 27.7%는 지난 1년 동안 병원에 가야할 일이 있었으나 병원 방문을 포기한 적이 있다고 답했습니다.
설문조사 결과에서 보듯이 대부분의 시스젠더들은 부담없이 갈 수 있는 병원이 많은 트랜스젠더들에게는 거대한 장벽일 때가 있습니다. 저 또한 1년 중 일반 의료기관을 방문하는 횟수가 한 손에 꼽을 정도로 적습니다. 실제로 얼마 전 몸이 안 좋아서 회사 근처 내과에 방문을 했었는데 병원에서는 의사가 저보고 ㅇㅇ씨가 맞냐는 질문을 했고, 약국에서는 약사가 ㅇㅇ씨 대신 약을 타러왔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겉으로 보기에 남자로 패싱되지만 주민등록번호 뒷자리가 2로 시작하는 법적 성별 여자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경험이 하나 둘 쌓이면서 병원에 가기 전에 매우 망설이게 되고 결국은 병원에 가는 것을 포기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수술을 하면 되지 않냐고 물으시는 분도 계시겠지요. 작년에 제가 성형외과에 가서 유방제거술에 대한 견적을 받아본 적이 있는데 880만원이 나왔습니다. 트랜스젠더 남성의 경우 법적 성별정정을 하려면 유방 제거를 해야하고 포궁 적출을 해야합니다. 판사에 따라서는 성기재건 수술까지 요구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근데 저 같은 경우에 수술 하나에 약 900만원이 나왔고 제 예상으로 포궁 적출도 500만원 정도 할 것이라고 생각하니 약 1400만원에서 1500만원 정도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거기에 성기재건수술은 1500만원에서 2000만원 정도 하니 최소 3000만원은 있어야 제가 수술을 받고 마음 편히 법원에 성별 정정 신청을 낼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옵니다. 소형 SUV 제일 최상위 등급에 풀옵션을 넣으면 이 정도 하더군요. 슬프게도 대한민국에서 성별적합수술은 비보험, 비급여 항목입니다. 나라의 금전적인 보조 1도 없이 전액을 다 제가 부담해서 받아야한다는 얘기입니다. 저의 연봉보다 많은 돈을 지불하고, 목숨을 걸고 수술을 한 다음 제3자인 판사의 판단이 있어야 제가 원하는 성별로 살 수 있는 세상입니다.
우리가 살고있는 세상은 성별이분법에 따른 편견이 심한 것 같습니다. 남자는 이래야 해. 여자는 이래야 해. 이런 식으로 머리 긴 남자, 머리 짧은 여자, 치마를 좋아하는 남자, 바지를 좋아하는 여자는 좀 특이한 사람, 이상한 사람으로 보여지는 세상이 과연 좋은 세상일까요? 제가 커밍아웃을 하고나서 제일 많이 들은 말이 살면서 치마를 입은 적이 없는지, 머리를 길러본 적이 없는지와 같은 코르셋에 갇힌 말들이었습니다. 법적 성별 여자로서 학교에서 치마 교복을 입기 싫어 학교 가자마자 체육복으로 갈아입기도 했고 고등학생 때부터 계속 숏컷을 유지하고 있지만 머리를 길러본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모습을 조금이라도 보이면 네가 이런 모습인데 무슨 남자가 되려고 하냐는 등의 말을 듣곤 합니다.
오늘 기자회견을 준비하면서 구성원들에게 이런 의견을 냈었습니다. ‘수어통역을 하면 어떨까? 문자통역은 어렵겠지?’ 이런 식의 의견 말입니다. 지금 저희가 이 자리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무성영화와 같이 아무 것도 들리지 않는,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는 시간이겠지요. 저는 양쪽 보청기를 착용하고 있는 중도 난청인입니다. 그래서 최대한 배리어프리하게 준비하고자 했는데 한계가 존재해 그러지 못함에 미안한 마음입니다.
얼마 전 장애인 인권단체 동지들이 지하철역에서 장애인의 이동권을 보장하라고 시위를 했었습니다. 그런데 비장애인들은 자신의 출근길을 방해한 나쁜 존재, 거슬리는 존재로 인식하고 동지들에게 욕 같은 부정적인 말들만 했었죠. 지금 이 순간에도 세상 밖으로 나오고 싶지만 주변의 시선이 부담스러워,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수단이 없어서 집에서만 지내고 있는 분들이 많습니다. 장애인 이동권 문제는 장애인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비장애인 노약자 분들의 이동권 편의를 위해, 우리의 미래를 위해 꼭 챙취 해야 하는 것입니다.
저는 모두가 평등한 세상, 페미니즘이 당연한 세상이 온다면 그 누구도 차별받지 않고 자신이 원할 때 밖에 나오고 돌아다니는 세상이 오리라 생각합니다. 그런 세상이 하루라도 빨리 올 수 있도록 함께 해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붙임3-1
돌봄과 양육에서의 성평등이 가져올 변화
🟣박범섭(정치하는엄마들 활동가) 연대발언문
안녕하세요. 배우자와 맞벌이로 아이와 함께 살고 있는, 아빠 양육자 박범섭입니다. 저는 오늘 사회적으로 저평가 되고 있는 돌봄노동의 주체자로서, 우리가 그림자 같은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 ‘행동하는 보통 남자들’ 곁에 섰습니다. 작은 회사의 첫 육아휴직자였던 저는 회사가 대체근로자를 찾지 못한 휴직 6개월 동안, 월급의 반쪽을 받으며 계속 일해야 했습니다. 부당함을 알지만 회사에서 짤릴까봐 두려웠던 저는, 어린이집에 아이를 보낸 뒤 회사일과 동시에 살림을 하며, 자립하기 이전 어머니의 돌봄노동에 기대어 살았던 시절을 되돌아볼 수 있었습니다. 그제서야 저처럼 ‘돌보는 일을 하는 사람’이 눈에 들기 시작하고 절실히 깨달았습니다. 가정의 일을 무시하는 <일 가정은 양립> 정책은 허구이며, 일과 생활의 균형을 잡기란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를요.
저는 1980년부터 1990년대 어린시절을 집 안에서 ‘안살림’ 하는 어머니와, 집 밖에서 경제적ㆍ사회적으로 활동하며 ‘바깥일’ 하는 아버지의 보살핌 속에 자랐습니다. 아버지를 비롯한 구성원들이 집 밖에서 일을 마치고 돌아와 쉼터가 되었던 집은 어머니의 ‘일터’였습니다. 어머니는 단 하루도 ‘일’을 쉰 적이 없습니다. 필요한 음식 재료를 사와 날마다 손보고 다듬어, 요리를 해 때맞추어 식사를 차리고 구성원들을 먹였습니다. 남편과 두 자녀의 체격에 맞는 옷을 때때로 구해 입히고, 더러워진 옷들을 빨고 널고 개어 정리했습니다. 각 방과 부엌, 화장실, 마당을 쓸고 닦고 살림살이 등을 관리했습니다. 늘 구성원들의 몸과 마음을 보살폈고, 구성원들이 아플 때는 식사와 청결을 더욱 세심히 챙겼습니다. 집안에서 끊임없이 구성원들을 문자 그대로 ‘먹여 살린’ 건 어머니셨습니다. 어머니의 돌봄노동으로 구성원들의 삶은 안팎으로 유지될 수 있었습니다. 시대가 흘러 2000년대 이후부터 어머니가 아버지와 맞벌이로 ‘바깥일’을 하게 되고 자녀의 독립으로 살림살이가 단촐해졌지만, ‘안살림’을 주도적으로 하는 사람은 여전히 어머니입니다. 너무 오랜 세월 어머니와 아버지의 가내 역할이 고착화되면서, 아버지가 집안일을 ‘내 일’이라고 의식하지 않는 한 기꺼이 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2022년, 세상은 변해왔습니다. ‘집안일’은 더 이상 엄마만의 몫일 수 없습니다. 바깥일 하는 틈틈이 장을 보고 매끼 반찬을 챙기며 집안을 치우는 사람이 엄마여야만 할 필요는 없습니다. 구성원들이 자신의 책임을 골고루 나눈다면 말입니다. 이 사회의 많은 이들이 생계를 위해 맞벌이를 하지만 맞살림을 하기 어려워합니다. 직접적으로 돈 버는 일을 더 높이 평가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재화를 생산하지 않는 집안일은 그야말로 하찮게 여겨지고, 그 일을 하는 사람은 그림자 취급하며 선뜻 자리를 내주지 않습니다. 제가 남성 양육자로서 육아휴직 제도를 사용하고, 사람을 돌보고 살리는 일을 하면서도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분위기에 위축되곤 했던 것은, 육아의 짐을 떠안은 대부분의 여성들이 지금도 겪고 있는 암울한 현실입니다.
과연 우리는 서로를 돌보지 않고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을까요? 모든 사람은 태어나 죽을 때까지 타인과 돌봄을 주고 받으며 살아갑니다. 혼자 살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이 불변의 진리는 돌봄의 사각지대에서 생명을 잃어가는 사람들이 증명하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노동자이며 돌봄자임을 자각해야 합니다. 생물학적 엄마에게 돌봄을 떠맡기는 게 아니라 혈연을 넘어 사회구조적으로 돌봄이 가능한 시스템을 만들어야 합니다. 자신과 타인을 돌보는 일은 개인에서 비롯되지만, 그 개인들을 보살피고 구성원 간의 빈틈을 채우는 제도적 돌봄을 구축하는 일이 시급합니다.
우리는 일상을 누리기는 커녕 노동한만큼 보상을 받지 못하는 고단한 현실을 살아갑니다. 대선을 목전에 앞둔 정치권은 삶에 지쳐있는 시민들의 이기심과 질투심을 자극해 표를 얻으려 합니다. 아이들 앞에 정말 부끄럽습니다. 우리는 그런 혐오와 차별 정치로 결코 오늘의 삶이 나아지지 않는다는 것을 이미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자신이 힘든 만큼 함께 사는 다른 이들의 힘듦을 알아차려야 합니다. 흑백논리와 구시대적 악습을 버려야 합니다. 서로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서서 한 조각이라도 여유를 갖고 주변을 둘러봐야 합니다. 나와 타인을 가르는 차별적 상황을 깨닫고 근본적인 원인을 찾기 위해 함께 고민한다면, 성별로 갈라치기 하는 지금의 논쟁은 신기루처럼 사라질 수 있습니다. 우리 스스로 자신과 타인을 보살필 권리를 찾고, 자라나는 아이들과 함께 안전하고 행복한 성평등 세상 우리가 만들 수 있습니다. 누구도 목소리를 내지 않으면 지금 살고 있는 오늘과 내일이 똑같을 것이고, 크고 작은 목소리들이 모이고 모여 세상에 퍼진다면, 우리의 존재가 자연스럽고 당연한 세상이 올 것입니다.
모두가 평등한 시대를 앞당기고 있는 ‘행동하는 보통 남자들’에게 감사과 응원을 표하며, 정치하는엄마들도 함께 발걸음 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붙임3-2
안녕하세요 저는 비온뒤무지개재단 소속 신필규입니다.
저는 그곳에서 활동가로 일하고 있습니다. 사실 쓰기 쉬운 글이란 없지만 이번 기자회견문을 준비하며 난감한 기분을 느꼈습니다. 저희 단체는 상근자가 세 명인 작은 조직입니다. 그리고 사무국에서 일하는 동료들은 모두 페미니스트입니다. 이건 인간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마 곧 있을 여성대회 행사에서 저는 반가운 제 친구들을 만날 것입니다. 제 친구들도 모두 페미니스트입니다. 그러다보니 활동의 영역에서도 일상에서도 페미니즘이 특별히 더 필요한 이유를 말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저는 이미 페미니즘이 원칙인 곳들에 발을 디디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이 자리에 서서 다른 사람 이야기를 하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어느 해인가 겪었던 매우 불쾌한 경험 하나가 생각이 났습니다. 사람들을 모아 함께 여름 MT를 떠났던 때의 일입니다. 대부분의 MT 행사가 그랬듯 사람들은 늦은 시간까지 술을 마셨고 그러다 졸리면 한 방에 옹기종기 모여 잠을 잤습니다. 하지만 그 날은 다른 게 하나 있었습니다. 제가 동의하지 않은 원하지 않는 신체적 접촉이 있었습니다. 제가 잠에 들기 위해 눕자 누군가 저를 뒤에서 껴안았습니다. 허락을 구하거나 안아도 괜찮겠냐는 말조차도 없었습니다. 평소에 그런 접촉이 있는 사이도 아니었습니다. 나를 다른 사람과 착각한 걸까 싶었지만 그것도 아니었습니다. 저는 똑똑히 기억합니다. 제가 불편함을 호소하자 ‘그냥 이러고 자자’고 그 사람이 말했던 것, 제가 당황함과 놀람에 몸을 떨자 ‘왜 이렇게 떠느냐, 혹시 추운 것이냐’라고 물었던 것, 모두 똑똑히 기억합니다.
저는 문제제기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 이후로 벌어질 일들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습니다. 저와 비슷한 일을 겪은 사람들이 왜 침묵하는지 고발에는 왜 용기가 필요한지 알 거 같았습니다. 그 일이 저를 좀먹거나 무너뜨리진 않았습니다. 하지만 과거는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잊어지지도 않았습니다. 저는 평생을 이 기억과 함께 살아갈 것입니다. 그건 그리 좋은 일이 아닙니다. 그렇기에 정의로운 사후 절차도 중요하지만 동시에 필요한 건 이런 일들이 처음부터 일어나지 않는 것입니다. 하지만 어떻게 가능할까요. 저는 종종 그날 일을 돌이켜 생각하곤 합니다. 우리가 각각 다른 방에서 한 사람씩 잤다면 괜찮았을까요. 하지만 그 사람이 문을 열고 제 방을 들어오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있을까요. 문을 잠글 수 있다면요. 그 사람이 마치 다른 일로 찾아온 것처럼 저를 설득해 방으로 들어오고 나서는 같은 일을 안 했으리라 장담할 수 있을까요.
결국 사람이 바뀌지 않으면 해결되지 않을 문제입니다. 아무리 분리하고 잠그고 벽을 세운다고 해도 사람들은 더욱 교묘하고 교활하게 가해를 저지를 것입니다. 우리는 곳곳에 CCTV가 있고 카드결제 기록으로 행적을 추적할 수 있는 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성폭력 사라졌습니까? 줄어들기는 줄어들었습니까? 우리에게는 타인의 동의가 없는 성적 행위, 신체적 접촉, 성적 내용이 담긴 언사가 폭력이고 침해라는 원칙, 그리고 그 원칙이 몸에 깊게 베여서 혹시나 무심결에 다른 사람에게 손을 뻗다가도 멈칫하게 되는 그런 사람들만이 있는 세상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이를 가능하게 할 그 원칙이 바로 ‘페미니즘’입니다. 페미니즘은 여성에 대한 폭력, 성폭력과 성적 괴롭힘에 대해 오랫동안 연구하고 이야기 해왔습니다. 페미니즘 운동은 훈육 정도로 취급되던 자기 배우자를 향한 남성들의 폭력을 가정폭력으로 다시 규정 했습니다. 직장, 학교 등 여러 공간에서 이루어지던 동의 없는 신체 접촉과 성적인 언사가 짓궂은 장난 정도가 아닌 성적 괴롭힘임이라 주장했으며 이를 관철시켰습니다. 이것은 페미니즘이 성폭력과 성적 괴롭힘을 처벌이 가능한 것으로 만들었다는 의미만은 아닙니다. 페미니즘은 사회가 인정하지 않던 약자와 소수자를 향한 폭력을 드러내고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됨을 주장했습니다. 무엇이 왜 폭력이고 저질러서는 안 되는 가, 페미니즘의 역사에 이 모든 것이 담겨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 사회에 페미니즘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페미니즘이 모든 사람들에게 뿌리 깊게 원칙으로 자리 잡아야 할 이유입니다.
얼마 전 한 대선후보가 여성이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들겠다며 성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했다고 합니다. 그 후보는 여성가족부 폐지를 주장하고 성인지 예산을 없애겠다고 공언했던 사람입니다. 길게 말하지 않겠습니다. 헛소리 하지 마십시오. 성평등 추진 부처, 성평등 정책 없애면서 성범죄와의 전쟁 선포한다고 이 나라가 안전해지지 않습니다. 최대한 선해한다 해도 그건 당신이 성폭력과 성적 괴롭힘이 무엇이고 이 개념에 어떤 역사가 있는지 아무 것도 모른다는 의미 밖에 되지 않습니다. 모두에게 안전한 나라, 성적 괴롭힘과 폭력으로부터 자유로운 나라는 성차별 부정하고 혐오와 손잡는 게 아니라 성평등을 이룩하고 페미니즘을 이 사회의 확고부동한 원칙으로 확립할 때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짧은 발언을 덧붙이겠습니다. 저는 한동안 제 스스로가 수치스럽고 비겁하게 느껴졌습니다. 용기가 없어서 말하지 않고 견디기로 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나중에서야 알게 된 것은 많은 걸 감수하고 견디기로 결정하는 것에도 결단은 필요했다는 점입니다. 저와 비슷한 일을 겪고 같은 선택을 하신 분들이 있을 겁니다. 그분들을 위해 저부터 스스로를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붙임3-3
연대발언 최형미 (여성학자)
저는 오늘 20대 남성들과 연대하기 위해 여기 섰습니다. 다가오는 대통령선거의 특정 후보자는 모든 이대남을 안티 페미니스트로 패싱하고, 이대남의 이름을 내세워 여성혐오정치를 정당화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여성가족부 폐지를 핵심공약으로 내걸어 약자를 포용하며 성숙해 가는 우리 사회를 퇴행시키고자 하고 있습니다. 이때 페미니스트 이대남의 목소리가 들려, 함께 소리를 낼 수 있어서 힘이 됩니다.
저희 세대(586)는 경제발전이라는 명목으로 우리나라의 청년들에게 기후위기, 환경문제, 일자리 부족, 주택문제 등 어려움을 남기고 말았습니다. 청년들의 어려움에 마음 아파하며,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함께 지혜를 모아야 하는 시점입니다.
하지만 특정 정치 후보자는 청년들의 어려움을 ‘페미니즘 탓’으로 돌리는 혐오와 분열을 정치의 전략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페미니즘은 불평등을 해소하고, 불평등 구조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폭력을 가시화시켜 안전한 사회로 나가도록 하는 학문이며 운동입니다.
혐오의 정치로, 반공의 이름으로, 특정지역 혐오의 이름으로 민중을 갈라치기 하며 희망을 꺾어왔던 것은 식민지 지배의 방식입니다. 전라도와 경상도가 척을 진 것도, 좌와 우가 갈라진 것도, 혐오의 정치 때문이었습니다. 오늘날 혐오의 정치로 정권을 잡으려 이대남을 앞세운 것에 다시 한 번 더 우려의 목소리를 냅니다.
그러나 함부로 정치적 도구, 혐오의 무기가 되지 않기 위해 목소리를 내는 <행동하는 보통 남자들>에게서 희망을 봅니다. 그리고 응원을 보냅니다. 진심을 담습니다. 그들의 목소리, 그들의 행동은 혐오로 권력을 잡으려는 성숙하지 못한 정치가들에 대한 경고이자 다짐일 것입니다.
군대, 일터, 가족 안에서 성평등을 실현해 안전하고 평화로운 사회를 지향하겠다는 우리시대의 행동하는 보통 남자들의 외침에 깊게 공감하며 함께 하겠다고 다짐합니다.
붙임 4)
10:00 |
집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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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0~11:15 (45분) |
기자회견 시작 ‘행보남’ 활동가 발언 |
‘군대’와 함께하는 페미니즘 : 연웅, 재현 ‘학교’와 함께하는 페미니즘 : 이한, 현준 ‘건강’과 함께하는 페미니즘 : 정현, 연웅 ‘가족’과 함께하는 페미니즘 : 김지학 활동가 ‘일터’와 함께하는 페미니즘 : 나현우 활동가 페미니즘은 이런 세상을 만들것이다 : 가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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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5~12:00 (45분) |
연대자 발언 |
박범섭 활동가 : 정치하는엄마들 신필규 활동가 :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동글 활동가 : 페미니즘교육플랫폼Be.Do. 최형미 선생님 : 감리교신학대학교 달랑베르 : 청소년인권운동연대 지음 최태섭 활동가 : 사회학자 정상현 활동가 : 노동당(구 사회변혁노동자당) 김혜미 활동가 : 청년유니온 마포녹색당 박하연 활동가 : 한겨례교육 작가아카데미 김찬서 활동가 53 활동가 김효철 활동가 최선우 활동가 : University of Ottaw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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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장 취재 담당자 : 현준 (010-5570-5493), 연웅 (010-2968-69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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