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 승부만 남은 혐오 게임, 이준석에게 남는 것은?

승부만 남은 혐오 게임, 이준석에게 남는 것은?

갈등의 한국 정치에서조차 낯선 이준석의 혐오 선동 정치, 동조 없는 고립의 길로

 

3월26일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페이스북에 공개한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대표(왼쪽)와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운데)가 함께 찍은 사진. 이준석 대표 페이스북

 

 

 

 

“모든 정의는 말과 함께 시작되지만, 모든 말이 정의로운 것은 아니다.” -자크 데리다(카롤린 엠케, <혐오사회> 재인용)

 

 

한국 사회는 지금 전에 없던 정치를 보고 있다. 이준석이 빚어낸 혐오 선동의 정치다. 소수자에 대한 부박한 인식을 드러내며 실언한 정치인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대부분은 비난 여론 속에 자신의 무지를 사과했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어느 쪽이든 자유롭지 않다.

 

‘이준석’은 다르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소수자를 먹이 삼는 정치 선동을 공공연히, 고의로, 적극적으로 구사한다. 20대에 전격 발탁된 뒤 행정가를 맡아 갈등을 해결한 경험도, 의원직을 맡아 원내 협의에 나선 경험도 없었던 탓일까. 당 안팎의 선거만으로 정치를 구사해온 그에겐 모든 게 이기고 지는 게임이다. 이준석의 정치 10년 역사엔 이해를 조정하는 정치의 본령이 기록돼 있지 않다. 토론에서 이긴 것처럼 보이는 전술이나, 선거판에서 먹힐 정치 전략뿐이다.

 

 

페미니스트 게임이 ‘오버’된 뒤

승부가 핵심인 게임이니, 제물은 약한 고리다. 제20대 대선에서 그의 승부처는 ‘페미니스트 여성’이었다. 방송 3사 출구조사에서 20대 남성의 58.7%가 윤석열 당선자를, 20대 여성의 58.0%가 이재명 민주당 후보를 지지한 것으로 확인되자 그의 ‘젠더 갈라치기’ 전략이 역풍을 맞았다는 진단이 곳곳에서 흘러나왔다. 윤 당선자와 대통령직인수위원회를 둘러싸고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이 언론의 관심사로 떠올랐지만 이준석은 더 말을 내놓지 않았다. ‘여성가족부를 되레 부총리급으로 격상해야 한다’는 조은희 국민의힘 의원(서초 갑)의 발언이 보도되자 “당내 구성원들이 이준석을 까든 말든 관계없지만 당선인의 공약을 직접 비판하지는 말라”고 올린 페이스북 게시물이 전부다. 여가부 폐지는 사실상 그가 쏘아올린 공이지만 자신의 게임에서 ‘게임 오버’된 만큼 새로운 승부처가 필요했을 테다.

 

그가 택한 다음 표적이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다. 대선 직전 <한겨레21> 좌담(제1404호 ‘‘이대남’ 같은 정치가 활성화될 가능성 높다’)에서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부 교수는 “‘이대남’식 정치가 지지를 이끌어내는 데 유용하다는 걸 확인했기 때문에 이렇게 ‘갈라치기’ 하는 정치가 활성화될 가능성이 상당히 크다. 성소수자, 장애인, 다른 소수자 집단에 대해서도 비슷한 방식의 정치가 작동할 가능성이 생겼다”고 우려한 바 있다. ‘혐오정치’의 반경 안에서 이준석은 예상 경로대로 움직인 셈이다. 속도는 예상보다 빨랐다. 이준석은 2022년 3월25일 뜬금없이 ‘참전’을 선언했다. “서울경찰청과 서울교통공사는 안전요원 등을 적극 투입해 정시성이 생명인 서울 지하철의 수백만 승객이 특정 단체의 인질이 되지 않도록 조치해야 합니다. 장애인의 일상적인 생활을 위한 이동권 투쟁이 수백만 서울시민의 아침을 볼모로 잡는 부조리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합니다.”(이준석 페이스북) 아침 8시께 올라온 이 게시물을 포함해 하루 새 전장연을 비판하는 게시물 4개를 페이스북에 잇따라 올렸다. “시민의 출퇴근을 볼모 삼는 이런 식의 시위가 지속될 경우 제가 현장으로 가서 따져 묻겠습니다.” 전장연이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촉구하며 2021년 12월 지하철 출근길 시위를 시작한 지 3개월 만임을 고려할 때 시기적으로 맥락 없는 선전포고다. ‘타격’할 대상을 찾은 이준석은 화력을 집중했다. 그날부터 4월7일까지 14일간 그의 페이스북에 올라온 게시물 46건 가운데 28건이 전장연과 관련한 비판 게시물이다.

 

집권여당을 떠맡게 될 당대표가 사회의 벼랑 끝에서 기본권을 요청하는 소수자를 공격하고, 그들에 대한 혐오를 노골적으로 선동하는 상황은 보혁이 극단적으로 맞서온 한국 정치에서도 분명 낯선 풍경이다. 국민의힘 내에서조차 “정치인으로는 선을 넘었다”(임태희 전 의원), “전장연의 시위 태도도 문제지만 (이준석의) 폄훼, 조롱도 정치의 성숙한 모습은 아니다”(나경원 전 의원)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김은혜 인수위 대변인도 “장애인들의 이동권 문제는 20년 넘게 그분들께서 간절히 바란 것”이라고 이준석과 선을 그었다. 지방선거를 앞둔데다 정권이 출범도 하지 않은 상황에서 불필요한 갈등을 조장해선 안 된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혐오의 빗장을 풀어주는 정치의 말

그러나 이준석에게 중요한 건 게임의 결과이지 여정이 아니다. 그는 자신을 향한 당 안팎 비판에 “단 하나의 이의도 제기하지 못하게 틀어막는다”거나 “아무 데나 혐오발언 딱지 붙여 성역을 만들려고 한다”는 비아냥으로 응수한다. 이준석 대표는 박경석 전장연 대표와 일대일 방송토론(4월13일)에 나서기로 했지만 줄곧 “이준석은 장애인을 혐오하는가”를 주제에 올리자고 주장하고 있다. ‘혐오 표현’을 연구한 저서와 연구자의 설명을 들어보면 그의 대응 자체가 ‘예상 경로’ 그대로다. 중요한 건 그의 말에 장애를 공격하는 표현이 깃들어 있는지가 아니라, 그의 말이 가져오는 선동의 효과다.

 

독일의 저널리스트 카롤린 엠케는 그의 저서 <혐오사회>에서 이렇게 설명한다. “이 공포의 부당이득자들이 시청률이라는 화폐를 기준으로 생각하는지 득표수라는 화폐를 기준으로 생각하는지, 아니면 공포를 부추기는 제목으로 베스트셀러를 만들어내는지 흥미로운 헤드라인으로 주의를 끄는지 그런 구분은 중요하지 않다. 어쨌든 그들은 모두 거리의 ‘폭도’라 불리는 이들로부터 거리를 두고 싶어 하면서도 그들을 이용해 이익을 취하는 방법은 아주 잘 알고 있다.”

 

이준석의 경우 더욱 고약한 것은 이미 존재하는 대중의 혐오에 올라탄 것이 아니라, 정치인 스스로 혐오의 빗장을 활짝 열어준 점이다. “모든 혐오와 마찬가지로 정치인이 혐오에 불을 지르는 순간 상황은 급속도로 변한다”는 게 홍성수 교수의 설명이다. 장애를 가진 이들에 대해 평소 ‘시혜’와 ‘차별’의 경계에서 바라보던 이들마저 이준석의 ‘신호’에 빗장이 풀린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준석의 발언은 장애인을 마음껏 공격해도 좋다고 부추기는 것이나 다름없다”. 실제로 이준석이 페이스북에 “할머니의 임종을 맞으러 가야 한다는 시민의 울부짖음에 (전장연 활동가가) ‘버스 타세요’라고 답하는 모습은 비판받아야 마땅하다”(3월26일)며 관련 편집 영상을 소개한 뒤, 전장연 활동가들은 그 영상을 본 다른 시민에게 지하철 안에서 언어폭력에 가까운 공격을 당했다.

 

 

 

주목받지만 정치적 효과는 없는

그러나 전장연을 대상으로 한 이준석의 혐오 선동은 주목은 받을지언정 정치적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이대남’이라는, 비교적 명확한 소구 대상이 존재한 여성혐오 선동과 달리 ‘전장연을 제외한 비장애 국민’이 두루 이준석에게 공감해야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준석의 전쟁’을 시작한 지 불과 사흘 만에 소속 정당 비례대표인 김예지 의원이 전장연 시위를 찾아 사과(3월28일)하면서 크게 김이 빠졌다. 시각장애가 있는 김 의원은 “헤아리지 못해서, 공감하지 못해서, 적절한 단어 사용으로 소통하지 못해서 정말 죄송하다는 말씀, 정치권을 대표해 사과드립니다”라며 무릎까지 꿇었다. 오랜만에 보게 된 진정성 있는 정치인의 모습에 소셜미디어에서는 김 의원을 응원하는 목소리가 잇따랐다.

 

김 의원은 이준석의 발언 가운데 ‘볼모’라는 단어에 큰 우려를 가졌다고 했다. 그는 JTBC와의 인터뷰(3월28일)에서 “가장 놀란 것은 볼모라는 단어였다. 볼모는 어떤 조직에서 악행을 저지르려는 목적을 가진 사람들이 인질이나 약속을 담보로 협박하는 것에 가까운, 위험한 발언이다”라고 말했다. 권수현 평등공작소 나우 대표도 “볼모”로 상징되는 ‘타자화’의 기술을 비판했다. 그는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후기자본주의 타자화 양식 중 두드러지게 강화되는 것이 도덕적 배제다. 페미니스트에게 ‘미친년’이라는 낙인이 붙는다면, 가난한 이에게는 ‘(예비) 범죄자’라는 이미지/낙인이 붙는다. 이번에 이준석이 장애인 이동권 투쟁에 대해 사용한 타자화 양식은 후자다”라고 짚었다.

 

이준석의 선동술에는 몇 가지 특징이 더 추가된다. ‘메신저 공격하기’다. 김예지 의원이 자신과 다른 의견을 내며 주목받기 시작하자 그는 CBS 라디오 인터뷰(4월5일)에서 “김 의원실 비서관이 전장연 정책국장 하던 분의 배우자”라고 주장했다. ‘갈라치기’를 통한 소수자 고립시키기도 주요 전략이다. ‘선량한 시민’과 ‘그들을 볼모 삼는 불법시위자’ 프레임이 잘 먹히지 않자, 전장연과 입장을 달리하는 장애인 관련 단체를 앞세워 “지체장애인협회와 긴밀하고 진지한 정책적 협력관계를 구축해나가겠다”고 밝히기도 한다.

 

이준석은 언제까지 이런 혐오 선동의 정치를 이어갈 수 있을까. 김예지 의원이 소신 발언에 나섰고, 당내에서도 이준석에게 동조하는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반면 전장연엔 시민들의 후원금이 쇄도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치하는엄마들, 노년알바노조(준) 등 시민사회단체는 기자회견(4월4일)을 열어 장애인 이동권 투쟁에 연대한다고 밝혔다. 이대남을 등에 입고 치른 ‘페미니스트’와의 전쟁에서 무승부 정도를 거뒀다면, 적어도 전장연과의 전쟁에서 이준석은 얻은 것이 많지 않아 보인다.

 

 

내내 붙을 ‘혐오자·갈라치기’ 꼬리표

당장 지방선거(6월1일)를 치르고 나면 그는 총선이나 청와대행 등을 이유로 당대표직을 내려놓을 가능성이 높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은 “대선에선 윤석열 당선자가 최약체였지만 지방선거는 양상이 다를 수 있고 국민의힘이 선전할 수밖에 없다고 본다. 이 대표가 대선 이후 모양새가 좀 구겨졌지만, 이대남을 대표하는 정치인으로서의 위상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듯하다”고 평가했다.

 

다만 그럼에도 자기 정치를 해나가는 과정이 쉽진 않으리란 전망이 크다. 이준한 인천대 교수(정치외교학)는 “이준석은 대표로서 많은 외상을 입었다. 젊은 나이에 큰 성취를 이뤄 정치적 경력은 훌륭하게 남겠지만 ‘여성 및 소수자 혐오자’ ‘갈라치기 정치인’이라는 꼬리표는 정치하는 내내 따라붙을 것이다. 국민의힘이 대선에 이어 지선에서 승리한다 해도 그의 미래가 장밋빛은 아닐 듯하다”고 평가했다.

 

 

엄지원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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