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신문] 말 배우는 아기가 물었다… “엄마, ‘키스방’이 뭐야?”
말 배우는 아기가 물었다… “엄마, ‘키스방’이 뭐야?”
한국여성인권진흥원, 20일 서울시민청서
‘성매매 추방주간 시민참여 토크콘서트’ 개최
현장 활동가·성매매 반대하는 남성 등 참여
“성매매는 직업도 선택도 아닌 구조적 착취
여성혐오·성상품화 합리화 남성문화 반성해야”
반성매매 여론 커지나 깊은 성찰·변화 더뎌
성매매·성착취에 일상적으로 노출된 아이들
일상의 관심·감시·실천 중요해
아동·청소년 성매매 피해자를 지원하는 활동가, 온라인 성매매·성착취 모니터링 활동가, 기자, 젠더 연구자, 성교육 전문가 등 다양한 시민들이 모였다.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반성매매 여론이 커져 가지만 근본적인 성찰과 변화는 더딘 현실, 성매매·성착취에 일상적으로 노출된 우리 아이들, 지역 성매매 집결지 폐쇄 이후의 이야기 등 각자의 일상 속 성매매에 관한 경험과 의견을 나눴다.
한국여성인권진흥원 주최 ‘성매매 추방주간 시민참여 토크콘서트 - 성매매 없는 세상을 위한 질문: 당신의 일상은 안녕하신가요?’가 20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시민청 바스락홀에서 열렸다. 임현주 MBC 아나운서가 사회를 맡았다. 싱어송라이터 신승은 씨가 일상 속 성차별을 꼬집는 내용의 노래들을 부르며 1부를 열었다.
“남성들, 성매매에 반대한다면 외면 말고 공개적으로 지적·고발해야”
성매매에 반대하는 남성들이 먼저 마이크를 잡았다. 젠더 연구자 곽승훈 씨는 “성매매 집결지는 사라진 듯 보여도, 여성 상품화와 성매매는 곳곳에서 은근한 방식으로 행해지고 있다. 다양한 경로를 통해 성을 소비할 수 있지만 직접적·노골적 구매가 아니면 자신은 성매매와 무관하다고 믿는다”라고 비판했다.
그는 “공창제 주장, 성착취 현실을 가리는 성노동 이미지를 만들어 여성을 낙인찍으려 하거나, 성구매자나 성매매 여성이나 피차일반이라는 양비론 모두 문제”라고 지적했다. “성매매는 가치중립적인 문제가 아니다. 성차별과 젠더폭력을 외면하는 일이다. ‘나는 성구매한 적 없으니 충분하다’는 사람도 있지만, 당연한 행동에 만족하고 멈추면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없다”고도 했다.
남성들을 향해서는 “권위적, 시혜적 태도를 배제하고 동료 시민인 여성들과 함께해야 한다. 사회문화적으로 남성들이 습득하는 남성성을 반성하고 해체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했다. “남성들도 성매매가 잘못됐고 성평등을 지향해야 한다는 걸 알지만, 자신의 결심을 언어화하기를 어려워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카이빙과 공유 작업이 필요합니다. 성매매를 공개적으로 지적하고 고발하는 일이 피곤하고 불편하다고 생각해서 이야기하지 않는 남성들도 있습니다. 저는 남성들이 이제 좀 피곤하고 불편해야 할 때가 됐다고 봅니다.”
“성매매, 수요도 공급도 남성...직업 아닌 구조적 착취”
박정훈 오마이뉴스 기자는 성매매에 대한 흔한 오해를 조목조목 비판했다. “성매매를 두고 ‘공급이 있으니까 수요가 있다’는데, 수요도 공급도 남성인 경우가 많다. 업주를 포함해 성매매 시장을 유지하는 많은 남성이 있다”며 “성착취 구조에 운 나쁘게 빠진 이들이 문제일까, 그 구조를 만든 사람이 문제일까? 생존을 위해 성매매할 수밖에 없는 여성이 문제일까, 여성을 착취하는 남성이 문제일까?”라고 되물었다.
또 “성매매를 ‘자유 시장’처럼 여기는 분들이 있는데, 명확한 여성 착취 구조에 기반한다. 알선자만 이득인 구조라 성매매로 생계를 유지할 수 없다. 여성의 적성·능력이 아닌 구조적으로 열악한 상황을 이용한다. 성매매는 직업이 아닌 착취 행위로 보는 게 맞다”고도 했다.
성구매 여부에 관한 설문조사 결과, 20대 남성은 6.9%(30대 23.7%, 40대 41.7% 50대 44.4%)만이 성구매 경험이 있다고 답해서 다른 세대와 큰 차이를 보였다(한국여성정책연구원, 2019)는 통계가 있다. 박정훈 기자는 이를 들며 “성구매가 떳떳하지 못하다는 인식이 젊은 세대에는 상당히 퍼져 있지만, 거기에 그쳐선 안 된다”며 “평범한 남성들도 성매매는 여성에 대한 착취·학대이며 용납할 수 없는 행위라고 인식해야 한다”고 했다.
또 “지난해 동료들과 ‘미성년자 성매매’ 관련 기획 보도를 하면서 절대로 성매매가 자발적이라고 얘기하면 안 된다는 걸 깨달았다. 피해 청소년들을 적절히 보호하지 않으면 이들은 또다시 성착취 구조의 굴레에 빠질 수밖에 없다”며 법제도와 교육, 인식 변화도 강조했다.
“엄마, ‘키스방’이 뭐야?” 성매매·성착취에 일상적으로 노출된 아이들
아이들이 성장 과정에서 성매매·성착취에 일상적으로 노출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남궁수진 정치하는엄마들 활동가는 엄마로서의 경험을 들려줬다. “첫째가 두 돌쯤 됐을 때였다. 길을 가다가 성매매 광고지를 주워서 제게 선물처럼 줬다. 아이들이 글을 배우면서 길거리 광고판을 따라 읽기도 한다. 제게 묻더라. 엄마, ‘키스방’이 뭐야? ‘황제 룸살롱’, ‘노래방 도우미 상시 대기’? 대답하지 못했다.”
성매매는 ‘스쿨미투’와도 맞닿아 있다고 했다. “교사가 학생들에게 한 이야기다. ‘공부가 안될 땐 빨간 집 언니들을 생각하라. 예쁜 여학생이 무릎에 앉으면 수행평가 만점 주겠다. 공부 못하니까 몸 팔면 돼지, 화장실 가서 옷 벗고 기다리면 수행평가 만점 주겠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성을 매개로 어떻게 학대당하는지 보여준다. ‘성을 사고팔 수 있다, 권력을 가지면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다, 약한 사람의 것은 빼앗고 짓밟아도 괜찮다’는 인식을 보여준다.”
남궁수진 활동가는 시민들에게 일상의 실천을 당부했다. “성매매를 암시하는 미디어나 인터넷 게시물 등을 경찰에 신고해달라, 잘못된 언론 보도도, 지역 단체장들이 성매매방지법에 따른 의무를 명확히 수행하고 있는지도 감시해달라. 스쿨미투 운동에도 관심을 가져달라.”
“성매매 광고 쏟아지는 온라인 세상...플랫폼 차원의 조처 시급”
장경애 서울시인터넷시민감시단 활동가는 온라인상 성매매 게시물 감시 경험을 나눴다. 그는 고등학생 딸아이의 엄마이자 직장인이다. 학교폭력자치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온라인상 음란물이 아이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지켜봤다. 더 할 수 있는 일을 찾고자 했다. 서울시다시함께상담센터에서 운영하는 감시단에 합류했다. 매일 2시간씩 트위터를 살피며 성매매 광고 게시물 등을 신고하고 있다. 5개월 동안 약 6000건을 신고해 포상을 받았다.
“중딩, 고딩 등 일상적 단어를 트위터나 페이스북에 입력만 해도 성매매 광고가 쏟아지는 세상입니다. 지워도 지워도 같은 패턴으로 계속 나타나는 걸 보며 조직적인 활동이라고 생각했어요. 플랫폼 차원에서 관심을 갖고 선조치를 하길 바랍니다. 남의 사진을 도용하는 등 명예훼손, 저작권 문제와도 결부돼 있어요.” 장경애 활동가는 “누구나 감시, 제보할 수 있으니 많이 참여해달라”며 반성매매 시민참여 플랫폼(gamsi.dasi.or.kr)을 활용한 신고 방법을 직접 보여주기도 했다.
“성매매 피해 아동 청소년, 처벌 아닌 보호 대상“
김경미 경북성매매피해아동·청소년지원센터 이팝 센터장은 현장의 여러 고충을 들려줬다. 성매매 피해 아동·청소년은 경찰 조사 과정부터 국선변호인 등 전문가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실제로는 절차가 누락돼 도움을 받지 못하거나, 당사자가 피해 사실을 알리기를 두려워해 지원을 거부하는 사례도 있다. 또 성착취 아동·청소년 피해자가 가해자의 보복이 두려워 스마트워치를 신청했는데, 오작동이 많고 크기가 커서 사용하기가 어려웠던 일도 들려줬다.
김경미 센터장은 “무엇보다 성매매 피해 아동 청소년은 처벌 대상이 아니라 보호 대상임을 기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비난하거나 비판하지 않아야 한다. 그래야 그들이 숨지 않고, 도움을 요청하고 우리 사회 아동청소년 성매매 피해가 줄어들 수 있을 것이다.“
“생물학적·피해 예방주의적 성교육 바꿔야...성적 주체성 인정하는 교육 필요”
성교육 전문가인 노하연 성문화연구소 라라 대표는 “성매매 유입 경로는 정말 가까이에 있다. 청소년도 쉽게 찾을 수 있어서 소름 끼칠 정도”라면서 “그나마 1020 세대 대상 설문조사 결과, 성매매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나는 참여하지 않겠다, 적극적으로 반대하고 동참하겠다는 사람이 대다수라고 한다. 우리는 개입할 수 있다. 바꿀 수 있다. 보드게임을 활용해서 아이들에게 이를 교육하고 있다. 작은 변화가 적립되다 보면 변화의 물결이 올 것”이라고 말했다.
노하연 대표는 “우리나라 성교육은 생물학적이거나 피해 예방주의적 성교육”이라며 “‘무늬 있는 속옷을 입으면 비치니까 살색 속옷만 입어라’라고 요구하는 식은 안 된다. 그러한 통념을 뒤집어야 한다”, “생애주기별, 발달 단계에 따라 다양한 이야기를 통해 일상에서의 성을 체험하는 게 중요하다. 아이들의 성적 주체성을 인정하고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포괄적 성교육이 필요하다”고도 했다.
“성매매집결지 기록과 보전은 새로운 인권의 출발”
성매매 집결지 관련 아카이빙 작업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윤애정 시민기록가는 창원시 마산합포구 서성동 성매매 집결지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1905년 마산항 개항 후 생겨난 서성동 집결지는 2019년 폐쇄 절차가 시작됐다. 경남지역 145개 여성·시민단체로 구성된 ‘서성동성매매집결지폐쇄를위한시민연대’는 이곳을 ‘여성인권 기억 공간’으로 조성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많은 지역민이 성매매 집결지라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남을까 우려하며 반대하는 분위기다.
“지역의 중년 남성들은 고등학생 때부터 이곳이 성매매 집결지임을 알았고, 입대를 앞둔 남성들에게 술을 먹여서 행사처럼 이 골목으로 보냈다고 한다. 열악한 환경이다. 빨래를 좁은 골목 벽에 널어놓는 곳, 비가 오면 물이 차오르는 곳이다. 나이 들어도 이곳을 빠져나가지 못한 고령의 성매매 여성들도 아직 여기에 살고 있다고 한다. 가까이 살면서도 이곳 여성들의 삶을 생각해보지 못했다. 오히려 선입견을 갖고 바라봤구나 싶어서 미안하고 가슴도 아팠다.”
윤애정 기록가는 “수원, 아산, 전주, 부산 등지에서는 성매매집결지가 (성매매 집결지의 역사를 기억하는) 문화예술 공간으로 재탄생했다”며 “기록과 보전은 새로운 인권의 출발이다. 성매매 여성들이 삶의 터전을, 일상을 되찾을 수 있도록 정부, 단체의 많은 노력과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국여성인권진흥원은 여성폭력 방지 및 피해자 보호·지원을 위해 설립된 여성가족부 산하 공공기관이다. 이날 행사는 정부가 지정한 성매매 추방주간(매년 9월 19일~25일)을 맞아 마련됐다. 코로나19 감염 확산 방지를 위해 온라인 생중계됐고, 현장 행사엔 선착순으로 모집한 관객 50여 명만 참석했다.
🟣[여성신문|기자 이세아] 기사 전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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