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정동칼럼] ❝여전히 2018❞
정동칼럼
여전히 2018
2022.10.11 03:00 입력
그는 여전히 교단에 있다. 서울 모 고등학교에서 체육 교사의 탈을 쓰고 있는 성범죄자. 신입 동료 교사에게 “운동을 해서 보기 좋다”며 팔·가슴·허리 부위를 만지고, “성에 관심이 많아 보인다”며 콘돔을 건넨 그가. 학생들에게는 “선생님한테 그렇게 속살 보이면 안 된다” “여자가 함부로 허리 돌리는 것 아니다” “손가락 하나면 너희 아무것도 못하게 할 수 있다”라며 성희롱을 저지른 그가. 아직도 교사다. 그래서 우리는 2018년을 보내지 못한다. 보낼 수가 없다.
장하나 정치하는엄마들 활동가
서울 양천구 금옥여자고등학교, 2018년 9월13일 스쿨미투 발생. 트위터 해시태그는 #금옥여고_미투. 하루 전날 JTBC 뉴스에 선배 교사가 신입 교사를 1년 이상 성추행했고 피해 교사가 학교에 신고했으나 학교 측과 강서양천교육지원청이 무마했다는 내용이 보도됐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결코 좌시하지 않았다. 2018년의 분위기가 그랬다.
피해 교사는 2018년 초 징계위원회 소집을 요구했으나 학교는 “가해자와 직접 해결하라”고 했다. 이렇게 말한 학교장과 책임자 모두 징계받아 마땅하다. 금옥여고는 심지어 공립학교다. 가해 교사 감싸기는 공사립 구분이 없는 한국 교육의 패습이다. 피해자가 교사임에도 이 지경인데, 학생의 경우 과연 학교 안에서 누구의 보호를 받을 수 있을까? 성추행이 멈추지 않자 피해 교사는 재차 처벌을 요구했고, 학교 측은 가해 교사에게 “사과문을 읽어라”라고 지시했다. 학교 당국의 솜방망이 조치는 2차 가해를 불렀다. 가해 교사는 “벌을 받았으니 찾아가도 되겠냐?”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내는 등 반성의 기미조차 없었고, 결국 피해 교사는 서울시교육청에 신고했다.
관할 강서양천교육지원청은 8월10일 금요일에 특별장학을 나갔고, 13일 월요일에 특별장학 보고서가 나왔다. 보나마나 졸속인 보고서에는 “가해 교사는 학생 성 관련 과실이 없고 성실하고 동료 교원과도 사이가 좋다”고 적혀 있었다. 특히 지원청은 피해 교사와 연락이 닿지 않는다며, 학교 관계자와 가해 교사만 면담하고 특별장학 보고서를 작성했다. “학교의 사건 처리 절차에 문제가 있어 외부 조사를 받고 싶다”는 피해 교사의 요구는 묵살되었고, 보고서에 담기지도 않았다. 학생들은 분개했다. 보도 이튿날 금옥여고 곳곳에는 학생들의 지지문이 나붙었다. “성추행범에게 수업을 받을 수 없다! #WITH YOU” “가해자 옹호하는 교장” “진상규명 하라! 가해자를 보호하는 학교가 웬 말이냐?” “우리도 알 권리가 있다” “우리도 본 눈이 있고 들은 귀가 있다. 모른 ‘척’해줄 때 밝혀라. 학생보다 못한 어른 부끄러운 줄 알아라.” 트위터에는 ‘# 금옥여고_미투’가 등장했고 가해 교사의 학생 대상 성희롱 발언들이 폭로되었다.
JTBC 보도(2018·9·12)에는 2018년 9월11일 서울시교육청이 정식 감사에 착수했다고 되어 있고, 한겨레 보도(2018·10·3)는 ‘교육청 감사가 진행 중’이라는 내용이 있다. 관련 보도는 그게 끝이다. 이후 사건이 어떻게 처리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감사 결과, 징계 내용, 수사기관 고발 여부 등 사안이 어떻게 처리되었는지는 재학생과 학부모조차 알 수 없다.
2019년 3월 트위터에는 전국 각지에서 가해 교사들이 교단에 돌아왔다는 내용의 트윗이 올라왔다. 끔찍한 전개다. 정치하는엄마들은 전국 17개 시·도교육청에 스쿨미투 처리현황에 대한 정보공개를 청구했고 예상대로 비공개 답변을 받았다. 2019년 5월15일 스승의날에 스쿨미투 처리현황 공개를 위한 행정소송(정보공개거부처분취소의 소)을 제기하여 2020년 12월까지 1심·2심 모두 승소했다(조희연 교육감은 기어코 항소했더랬다).
승소 판결문을 가지고 다시 정보공개를 청구했지만 교육청들 답변은 형편없었고 약속한 듯 ‘학교명’을 비공개했는데, 패소한 서울시교육청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2021년 5월 서울시교육청의 학교명 비공개 처분이 부당하다는 행정소송을 제기했고, 2022년 4월29일 또 승소했다. 세 번째 승소 판결문을 들고 다시 정보공개를 청구했지만 아직도 비공개 일색이다. 재판에서 기각된 법리를 버젓이 내놓는다.
서울시교육청에서 가장 최근에 받은 자료에 금옥여고 소식이 한 줄이 있다. 가해 교사는 언어적 성희롱으로 가장 가벼운 징계인 견책(훈계 및 6개월 승급·승진 제한) 처분을 받고, 2019년 3월 학교를 옮겨 현재까지 서울 ○○고등학교에 재직 중이라고 한다. 교사 간 사안은 쌍방 합의로 무마된 것일까? 피해 교사는 무사할까? 학교는 아직 안전하지 않다. 그래서 우리는 2018년에 당분간 더 머무르기로 했다.
🟣[경향신문 │장하나 활동가] 기사 전문 보기
https://m.khan.co.kr/opinion/column/article/2022101103000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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