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플랫] “성희롱 교사, 징계 대신 승진이 말이 되나” 스쿨미투 학부모의 편지
“성희롱 교사, 징계 대신 승진이 말이 되나” 스쿨미투 학부모의 편지
2022.10.19 15:37
“(성희롱 가해 교사들에 대한) 적절한 조치를 취한다고 해 잠잠하게 하더니 피해 학생들이 졸업하자 아무 일 없었다는 것처럼 되돌아간다는 게 말이나 되나요?”
서울의 한 남녀공학 사립고등학교인 A고를 졸업한 딸을 둔 학부모가 지난 7월 시민단체 정치하는엄마들에 보낸 손편지의 일부다. 이 고등학교는 일부 교사가 학생들에게 성희롱성 발언을 한 사실이 2018년 학생들의 ‘스쿨 미투’ 고발로 알려졌던 곳이다.
당시 학생들은 트위터에 ‘A고 미투’ 계정을 개설하고 재학생과 졸업생들의 증언을 모아 폭로했다.학생들이 취합한 A고 교사들의 성희롱성 발언은 “앉아서 싸는 애들한테는 이겨야 한다” “여성이 짧은 옷을 입어서 성폭력을 당한다” “헤어롤을 마는 것은 창녀들이나 하는 짓” “맞아서 빨간 다리가 섹시하다” “볼에 뽀뽀하면 휴대전화를 돌려주겠다” 등이다.
2018년 발칵 뒤집혔던 학교는 피해 학생들이 졸업하자 평소처럼 조용해졌다. 가해 교사들은 단 한 명도 징계를 받지 않았고, 일부는 승진한 것으로 확인됐다.
16일 민형배 무소속 의원과 정치하는엄마들, 서울시교육청의 설명을 종합하면 A고는 ‘스쿨 미투’ 공론화 이후 학생들을 대상으로 익명 전수조사를 벌여 가해 교사 12명을 추려냈다. 일부 교사에게는 경위서를 받고, 성희롱성 발언 수위가 심했던 교사 3명에게는 주의·경고 처분을 내렸다. 주의·경고는 학교장이 내리는 행정처분으로 징계에 해당하지 않아 인사기록카드에 등재되지 않고 교육청에 보고되지도 않는다.
가해 교사 중 징계를 받은 교사는 한 명도 없었다. 현재 가해 교사 12명 중 4명은 정년퇴임·명예퇴직으로 교단을 떠났고, 나머지 8명은 같은 학교에 근무하고 있었다. 이 중 1명은 교장으로 승진했다. 사건 당시 학교의 총 책임자였던 교장은 현재 학교법인 이사로 재직 중이다. 사립학교 교원의 징계는 소속 학교법인이 심의·의결하고 교육청은 징계 요구만 할 수 있는데, 당시 서울시교육청은 A고 소속 재단에 징계 요구도 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학교 내 성폭력을 학교 내부에서 자체 처리하는 것이 아니라 교육청이 처리하도록 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재는 교직원이 학생에게 성희롱·성폭력을 저질렀다는 신고가 들어온 경우 학교가 성희롱·성폭력 고충심의위원회(성고충심의위원회)를 열어 성희롱 성립 여부 등을 판단하도록 되어 있다. 당시 A고는 증거 부족 등을 이유로 해당 사건들이 성희롱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의결한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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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당시 기록이 체계적으로 남아있지 않지만 피해자 조사 등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며 “학교가 아닌 교육지원청·교육청 등이 성고충심의위원회를 열도록 제도를 개선하는 방향 등도 검토해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스쿨 미투’ 사후처리에 미온적인 것은 A고뿐만이 아니다. 민형배 의원에 따르면 2018년부터 올해까지 학생 대상 성희롱·성폭력 가해자로 지목된 교사 542명 중 137명은 아직 재직 중이었고, 255명은 교육 당국이 재직 여부조차 파악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치하는엄마들이 지난 6월 서울시교육청과의 소송을 통해 확보한 자료에 따르면 2018년~2020년 성희롱·성폭력으로 서울시교육청에 보고된 가해 교사 187명 중 83명은 징계를 받지 않았다.
교육당국이 가해자 징계에 손을 놓고 있는 사이 피해 학생들의 상처는 여전히 덧나고 있다. 정치하는엄마들에 편지를 보낸 학부모는 “피해 학생들이 졸업하자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평상시로 돌아가는 것이 말이 되는가 싶다”며 “잘못한 것에 대해 그에 맞는 적절한 조치가 취해지는, 정의가 살아 있는 사회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민 의원은 “학생들의 상처를 그동안 학교와 교육청이 은폐하고 방기해왔음이 이번 일로 또다시 드러난 것”이라며 “교육당국은 학교 내 성폭력 사건이 벌어질 때마다 관리하는 시늉만 할 것이 아니라, 완전히 해결될 때까지 사건에 적극 개입하고 지속적, 체계적으로 관리할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남지원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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