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반복되는 스쿨존 사망사고... 이를 둘러싼 어이없는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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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되는 스쿨존 사망사고... 이를 둘러싼 어이없는 현실

[분석] 학교 통학로 설치 문제점... 흩어진 업무로 조정 어려워, 관련 부서 통합-맞춤 대책 필요

 

우리 마을은 처음 건물들이 지어질 때만해도 '부천의 명동'이라 불릴 만큼 길도 넓고 번듯한 곳이었다고 한다. 시간은 흐르고 현재 일부 구역은 재개발구역으로 지정이 됐고, 일부 구역엔 신축빌라들이 들어서며 마을에 사람과 차가 많아졌다. 그러다보니 길에는 늘 주차된 차들이 늘어서 있고, 특히 아이들이 많이 몰리는 등굣길에는 길 양쪽으로 차들이 세워져 있다. 차가 양방향으로 오가는 길을 아이들과 걷다보면 아슬아슬한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2021년 봄, 마을 양육자들이 모였다. 코로나로 아이들과 함께 '집콕'만 하고 있었는데, 이제 슬슬 바깥 활동을 하려다 보니 걷는 길 곳곳이 위험했기 때문이다. 등굣길 개선에 한 시의원이 함께하기로 했다. 아이들이 걸어 다니기엔 길이 위험하다고 호소하며 함께 그 길을 걸었다.



100미터도 안 되는 길을 걷는데도, 차들은 비키라며 위협적으로 달려왔고 경적을 울렸다. 사거리 중 마주보는 두 길이 일방통행, 그것도 차량의 통행방향이 학교 가는 방향으로 합쳐져 나오도록 돼 있는 길이다. 길모퉁이엔 늘 주차가 돼 있고, 그 모퉁이부터 학교 가는 길까지 차들이 양쪽으로 주차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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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여기저기에서 학교로 걸어오는 중에 위험한 길이 많다. 그래도 학교 앞 인도에 다다르기 전 250m는 특히 차도 사람도 많아 보행자에게 너무 위험한 길이라는 걸 시의원도 인정했다. 그런데 갑자기 상가에서 우리를 지켜보던 한 분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아니, 여기 애들이 어디 있다고 그래!"



매일 유치원과 학교를 오가던 아이들이 있는데, 그분 눈엔 왜 아이들이 안 보일까. 안 보인다는 말이 아이들을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존재'라고 규정하는 것 같아 화가 났다.

 






통학로를 만들려고 했는데... 이미 통학로가 있었다?

 

큰사진보기양육자들이 상가를 하나하나 찾아다니며 통학로의 필요성을 설득하고 얻어낸 것이었다. 하지만, 통학로 위에 차들이 주차되어있어 몇 년 동안 통학로가 있는 줄도 모르고 살았다.
▲ 통학로를 만들려니 통학로가 있었다 양육자들이 상가를 하나하나 찾아다니며 통학로의 필요성을 설득하고 얻어낸 것이었다. 하지만, 통학로 위에 차들이 주차되어있어 몇 년 동안 통학로가 있는 줄도 모르고 살았다.
ⓒ 곽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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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나는 일은 또 있었다. 주차된 차들 아래로 이미 노랗게 표시된 80m 길이의 통학로가 있었기 때문이다. 알고 보니 3년 전 위험한 등굣길을 참다못한 양육자들이 상가를 한 곳씩 방문하며, 상가 주인들의 동의를 구해 만들었단다. 매일 아침 아이들에게 '멈춰' '피해' '조심해'라고 몇 번이고 소리치던 부모들은 있으나 마나 한 통학로를 보며 허탈했다.



우리는 학교 양육자를 대상으로 통학로 개선에 대한 설문을 시작했다. 200명에 가까운 설문 응답을 보면서 통학로 개선이 정말 필요한 것임을 재확인했다. 시청·시의회·경찰서와 지역구 국회의원 사무실에 마을 양육자들의 의견을 담아 진정서를 넣기로 했다. 동시에 지역 방송국에 취재요청을 했다. 통학로 개선에 대한 진정서의 내용은 이랬다.



1. 어린이·노인 및 장애인 보호구역의 지정 및 관리에 관한 규칙 제3조⑥에 "해당 보호구역 지정대상시설의 주 출입문을 중심으로 반경 300미터 이내의 도로 중 일정구간을 보호구역으로 지정한다". 또 "필요한 경우 보호구역 지정대상시설의 주 출입문을 중심으로 반경 500미터 이내의 도로에 대해서도 보호구역으로 지정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는 바, 해당 통학 구간을 어린이보호구역으로 지정을 요청한다.

2. 인도로 차와 보행자를 구분하고, 인도가 끝나는 곳에는 고원식 횡단보도 설치를 요청한다.

 

큰사진보기통학로가 너무 위험하니 개선을 호소하는 양육자들이 많았다. 진정서에 함께 제출한 양육자들의 호소.
▲ 양육자들의 호소 통학로가 너무 위험하니 개선을 호소하는 양육자들이 많았다. 진정서에 함께 제출한 양육자들의 호소.
ⓒ 곽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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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사진보기부천시와 경찰서에서 어린이 보호구역 확대지정에 대한 내용을 현수막으로 게시하였다.
▲ 드디어 어린이 보호구역으로 부천시와 경찰서에서 어린이 보호구역 확대지정에 대한 내용을 현수막으로 게시하였다.
ⓒ 곽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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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력의 결과는 '다시 원점'



부천시 관련 부서, 경찰 관련 부서, 학교 관계자와 통학로를 둘러봤다. 하나같이 '위험한 길'이라고 입을 모았다. 교통정책과에서 학교에 어린이보호구역 신청서를 제출해달라고 요청했다. 그후 '어린이보호구역 확대 지정'을 알리는 현수막을 게시했고, 모퉁이엔 횡단보도가 설치됐다. 30km/h가 써진 표지판도 세워졌다.



우리가 처음 요청했던 구간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구간이었지만, 그 정도라도 만족하며 이제 모두 끝났다고 여겼다. 이제 아이들은 안전이 보장된 도로로 통행할 수 있겠고, 아쉽지만 어린이보호구역이 된 이 길만큼은 안전할 수 있겠구나 안도했다.



하지만 끝이 아니었다. 그 길에 있던 부동산과 상가주인, 건물주들이 들고 일어났다. 학교로 찾아와 큰소리로 항의했다. 그 사이 시 관련 부서 담당자는 바뀌어 있었다. 결국 어린이보호구역 확대 지정은 무산됐고, 이미 황색 실선으로 그려져 있던 통학로에 보도와 차도를 분리하는 볼라드를 설치하고, 나머지 구간은 보행로에 색칠을 하는 것으로 조치가 끝났다. 아쉬움은 컸고, 좌절감도 상당했다.



아이들에게 안전한 통학로를 만들기 위해 우리는 도로정책과, 도로관리과, 경찰서, 지역구 국회의원 사무국장, 시의원 2명, 마을자치위원장을 만났다. 시청과 시의회, 경찰서와 지역구 국회의원 사무실을 방문했다. 수차례 국민신문고에 민원을 넣었다. 수없이 시청과 경찰서에 문의했다. 그러면서 마을 양육자들과 시간 나는 대로 논의했다. 생업과 육아를 소화하며, 시간을 맞춰가며 만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요구사항은 하나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변함없는 사회, 반복되는 사고

 

큰사진보기지난 13일 강남구 언북초등학교 앞에 추모 메시지가 써붙어 있다. 12월 2일 이곳에서는 방과 후 수업을 마치고 하교하던 학생이 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에서 음주운전 차량에 치여 숨졌다.
▲  지난 13일 강남구 언북초등학교 앞에 추모 메시지가 써붙어 있다. 12월 2일 이곳에서는 방과 후 수업을 마치고 하교하던 학생이 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에서 음주운전 차량에 치여 숨졌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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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일, 서울 강남구에서 일어난 스쿨존 사고를 보며, 안타까운 아이의 죽음에 마음이 몹시 아팠다. 내 아이 또래가 사고를 당했다고 생각하니 감히 그 부모의 참담함을 가늠할 수조차 없다. 그런데, 더 억울하고 마음 아픈 건 이번 스쿨존 사고를 막을 기회가 두 번이나 있었다는 것이다.



한 번은 2019년 11월, 도로교통공단 서울특별시지부와 합동으로 '서울시교육청 관할 교통안전시설 점검' 대상에 포함됐었다. "언북초교 후문은 동서 방면으로 차량이 많이 통행하고, 급경사로 이루어져 보차(보행자-차 충돌)사고 우려가 높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또 한 번은 올해 2월이었다. 당시 수립된 '2022 서울시 어린이보호구역 종합관리대책' 대상으로 선정됐고, 포장 보행로 조성을 추진한다고 밝혔으나 결국 보도는 생기지 못했다. 서울시교육청, 강남구청, 경찰 모두 위험을 예견했지만 우리는 왜 스쿨존 사고로 아이를 또 떠나보내야 했을까(관련 기사 보기).



반복되는 스쿨존 사망사고에서 보행안전 관계 부처와 관련 부서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강남 스쿨존 사고 사례를 보면 아이들 보행안전을 위한 움직임이 있었음에도, 주민의 반대로 인해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못했다. 사람이 죽었지만, 사고에 대해 책임지거나 반성과 사과를 하는 곳은 없다. 주민들에게 개선의 필요성을 설명하고 설득하고, 도로교통법에 따라 아이들이 다치지 않도록 위험한 곳을 살피고 개선했다면 이번같은 안타까운 죽음은 막을 수 있었다.



스쿨존에 대해 논의해야 할 곳이 한 부서로 통합되지 않고 산재해 있는 것도, 스쿨존 개선을 어렵게 만드는 또 다른 요인이다. 우리 마을에서의 일을 돌이켜 보면, 도로 상황을 논의하려면 도로정책과를 만나고, 통학로에 필요한 도로정비는 도로관리과에 문의해야 했으며, 횡단보도는 경찰서와 논의해야 했다. 어린이보호구역 지정을 신청하는 것은 또 학교가 논의 대상이다. 그러다 문제해결이 잘 안 되는 것 같아 보이면 시의원에게 전화까지 해야 했다. 진행 상황을 여기저기 확인하느라 전화를 붙잡고 살았다. 스쿨존의 모든 과정을 통합하고 관리할 수 있는 통합부서가 있다면, 좀 더 적극적인 행정이 가능하지 않을까.



학교별로 다른 특성을 고려하며 스쿨존을 개선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서울연구원 '어린이 보호구역 강화에 따른 서울시 스쿨존 제도 운영 개선방안' 보고서(2022년 9월)에서는 교통사고 분석시스템 자료를 활용해 2011~2020년 스쿨존 내 어린이 교통사고를 파악했다.



그 결과, 넓은 도로보다는 좁은 도로에서 어린이 교통사고가 더 많이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보고서는 "초등학교 스쿨존을 효율적으로 개선하기 위해서는 맞춤형 스쿨존을 적용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학구도 범위와 스쿨존 범위가 유사할 경우 기존 제도 적용방식과 동일 적용하되, 어린이 안전을 확실하게 보장할 수 있도록 추가시설을 설치하고 주변을 정비해야 한다"고 제안한다(관련 내용 보기).

 






스쿨존 사망사고, 더 이상은 안 된다

 

큰사진보기지난 13일 강남구 언북초등학교 앞에 형광색 커버가 씌워진 가방을 멘 학생이 하교하고 있다.
▲  지난 13일 강남구 언북초등학교 앞에 형광색 커버가 씌워진 가방을 멘 학생이 하교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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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교통공단 교통사고 분석시스템에 따르면, 2021년 스쿨존에서 12세 이하 어린이의 사고건수는 523건, 사망자는 2명, 부상자는 563명이다. 통계자료는 아이들이 아직도 스쿨존에서 안전하지 못하다고 말한다. 그런데도 윤석열 정부는 '안전속도 5030'과 '스쿨존 제한속도'를 '국민의 편의를 위한 개편'을 운운한다. 속도가 줄어들면 부상·사망 사고가 줄어든다는 연구결과도 있는데 말이다.



일단, 스쿨존에서의 사망사고가 반복되는 것을 막으려면 스쿨존에서는 절대 서행의 원칙은 지켜져야 한다. 운전자들의 인식이 하루 아침에 달라지지 않을테지만, '개인의 불편'을 호소하며 과태료가 얼마인지 보험료가 얼마인지를 따지기 보다 '아이들의 목숨을 지켜주는 법'이란 인식이 확대되면 더 없이 좋겠다.



그러려면 앞서 언급한 관계 부처의 적극행정, 스쿨존 전담기구 신설, 학교별 특성을 고려한 스쿨존 운영 등 스쿨존으로서의 기능이 더욱 탄탄하게 작동될 수 있도록 개선이 필요하다.



'스쿨존에서 만큼은 아이들의 안전을 지키자'는 민식이법이 시행된 지 3년이 돼 간다. '더 이상은 학교에서 집까지 오가는 길에서 목숨을 잃지 않게 하겠다'던 이 법이, '내 아이는 지키지 못했으나 남아있는 많은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귀한 이름을 내줘' 만들어진 이 법이 그 진가를 발휘하며 빛을 발할 수 있는 날이 오기를 희망한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곽지현씨는 정치하는엄마들 활동가입니다.

 


🟣[오마이뉴스 | 기고 곽지현 활동가] 전문 보기
http://omn.kr/21zr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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