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오늘] 정치하는엄마들 “차별과 혐오는 웃음거리가 아니다”
언론노조 시민미디어렙 1기 정치하는엄마들, 예능프로그램 차별·혐오 표현 모니터링
언론노조에 ‘미디어 위한 차별·혐오표현 사례와 예방 가이드’ 발간 제안
‘웃자고 하는 말에 죽자고 덤빈다’라는 말은 예능 프로그램에서 차별을 지적하지 못하는 분위기를 만든다. 때문에 타인을 비하하는 방식으로 웃음을 만드는 일은 예능 프로그램에서 사라지지 않고 있다.
하지만 예능 프로그램은 시청자에게 적극적인 공감을 받으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차별·혐오를 웃음으로 소비할 경우 그 부작용을 바로잡기 더 어렵다. 이는 당사자들에게는 예능이라는 이름으로 행하는 폭력이고, 사회적으로는 차별과 혐오의 심각성을 희석하는 퇴행이다.
이에 전국언론노동조합 시민미디어렙 1기에 참여하는 시민단체 ‘정치하는엄마들’은 지상파와 종편, 케이블에서 방송되는 예능 프로그램들의 차별·혐오 표현을 모니터링했다. 이후 설문조사를 통해 노인 중장년, 발달장애, 어린이, 청소년, 성소수자, 젠더 등 해당 표현에 대한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직접 들었다. 지난해 12월14일부터 31일까지 약 2주간 진행한 설문에 37건의 답변을 받았다.
당사자 설문조사 진행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차별 표현에 거부감 느껴’
‘~린이’는 ‘요린이’(요리 초보)처럼 미숙하다는 의미로 사용되는 표현으로 국가인권위원회가 아동에 대한 비하와 차별을 조장한다며 사용 자제를 요청한 차별 표현이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예능 프로그램들은 어린이라는 말을 초보, 잘 못하는 사람, 서투른 사람으로 규정하며 ‘보린이(보드+어린이), ‘헬린이(헬스+어린이)’, ‘맵린이(맵다+어린이)’ 등의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실제 응답자들은 해당 표현에 대해 “세상의 모든 어린이를 서툴고 나약하고 잘 해내지 못하는 인간으로 인식하게 하는 무서운 나비 효과 같은 단어이므로 사용을 금지해달라”고 말했다.
청소년 출연자의 행동이나 발언은 ‘중2병’, ‘사춘기이기 때문’에 충동적이고 비이성적인 것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중장년층의 감정적 변화나 반응은 ‘갱년기’로 납작하게 설명되고 고령층에는 과거의 곤궁했던 시절이나 무상승차와 같은 복지의 수혜자로 희화화하는 사례들도 있다. SBS ‘런닝맨’에서 출연진들은 지석진씨를 놀리며 “전철은 공짜고(웃음)”, “형, 목욕탕도 공짜 아니에요? 한 달에 몇 번”이라고 말했고 ‘어딜 가나 우대 받을(?) 나이’라는 자막이 나왔다.
이에 응답자들은 “나이에 따른 조롱, 차별. 연장자에 대한 복지를 놀림거리로 생각하게 만드는 것 같다”, “사춘기, 갱년기 등 자연스런 신체의 변화까지 혐오하고 조롱하는 문화는 몸을 대상화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반신불구’, ‘앉은뱅이 의자’는 장애를 부정적인 맥락에서 비유하는 단어들이다. 하지만 대다수 예능 프로그램들은 재미를 위해 출연자를 발달장애, 정신장애를 의미하는 비하 단어인 ‘바보’, ‘얼간이’로 부르며 희화화하거나 모자람을 의미하는 흰색 콧물을 그래픽과 분장을 이용하고 있다. MBC ‘나혼자산다’에서 아침운동으로 무에타이 동작을 가르치는 기안84씨를 두고 출연자들이 “동네바보 동작(?)이야?”라고 발언하고 자세를 과장하며 따라해 이를 강조하는 식이다.
발달장애 자녀를 키우고 있는 한 응답자는 “아이가 말을 더듬거나 안면근육이 비이상적으로 일그러지는 모습은 발달장애인에게는 장애로 인한 신체적 기능이 낮거나 한계가 있음에도 해내기 위해 굉장히 애쓰고 있는 일상적인 모습 중 하나”라며 “누군가 일시적으로 발목을 다쳐서 절뚝거리게 되었을 때 애써 절뚝거리며 이동하는 모습을 보며 웃고 따라한다면 불쾌할 수 있음을 모두가 알고 있는 것처럼, 발달장애인도 타고난 장애의 한계에도 일상적인 일들을 해나가고 있는 것임을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특히 부부가 출연한 프로그램이나 요리 프로그램에서는 성역할 고정관념을 기반으로 한 출연자들의 멘트가 두드러졌다. 가령, 적은 가사노동을 하는 남성에게는 ‘저런 남편이 없다’며 칭찬을 하고, 여성의 가사노동은 당연시하며 서툰 모습은 웃음의 소재 혹은 비난의 대상이 되는 식이다. 이에 응답자들은 “여성이기에, 기혼여성이기에, 자녀가 있기에 당연히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의무와 책임들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표현에 거부감을 느낀다”, “제작진의 의도와 다르다면 굳이 자막을 써서 강조까지 했을까? 제작진도 같은 의도를 가지고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것이 아니라면 되도록 관련 내용들을 편집해달라”고 말했다.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 표현들도 ‘실례’라는 표현 아래 문제의식 없이 쓰이고 있었다. 채널S ‘진격의 언니들’에서 패널들은 트랜스젠더 여성 출연자의 외모를 보고 ‘지금 여자지만 남자였을 때도 되게 잘생겼을 것 같다’, ‘(성별 변경 전 사진을 본 후) 이런 말 하면 실례인 줄 모르겠지만 아깝다’는 등의 말을 했다. 이에 응답자들은 “잘생기고 예쁜 사람들만이 퀴어인 것처럼 여겨지는 데에 미디어가 기여하고, ‘예쁜 남성’만 트랜지션을 하는 것 같은 인식을 퍼뜨려 다수의 트랜스젠더를 변방으로 내몬다”, “성별 전환 전후를 비교하며 아깝다는 것은 그 사람의 정체성 자체를 부인하는 말 같다”고 말했다.
이밖에도 심리적으로 타인을 지배하는 정서적 학대를 의미하는 ‘가스라이팅’을 ‘먹스라이팅’(먹다+가스라이팅)과 같은 합성어로 가볍게 사용하거나, 남성 출연자가 여성 출연자에게 뜬끔없이 “근데 너는 왜 살을 안 빼는 거야?”라며 묻는 무례를 웃음으로 포장하는 장면, 먹방 프로그램에서 음식을 먹으며 ‘입양 보내기 전이라 많이 먹이는 거냐’는 내용의 콩트가 이어지는 등 차별·혐오의 단어는 문제의식 없이 빈번하게 쓰이고 있었다.
정치하는엄마들은 “누군가를 특정해 비하할 의도로 사용한 것이 아닐지라도 대상 집단에 대한 부정적 편견이나 차별적 인식이 있으면 모두 혐오표현”이라며 “제작진은 사회적으로 약한 위치에 있는 사람이 자주 웃음거리로 소비되고, 소수자에 대한 비하나 차별이 일상화하는데 방송의 책임이 크다는 것을 인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언론노조에 ‘미디어 위한 차별, 혐오표현 사례와 예방 가이드’ 발간 제안
정치하는엄마들은 언론노조에 구체적 제언 내용을 전달하며 ‘미디어를 위한 차별·혐오표현 사례와 예방 가이드’를 발간할 것을 제안했다.
우선, 방송사의 ‘방송제작 가이드라인’,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의 혐오와 차별 관련 항목을 ‘당사자’ 중심으로 구체화해야 한다고 했다. 정치하는엄마들은 “가이드라인의 이행 여부는 제작사 자율에 맡겨져 있고 개괄적인 방송심의 규정과 심의위원의 인권, 성 인지 감수성에 따라 달라지는 심의 결과로는 적극적인 개선을 기대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라며 “‘혐오’와 ‘차별’에 대한 판단 기준이 구체적이고 촘촘하게 규정되어 있지 않은 현재의 상황에서 당사자를 중심에 둔 새로운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고 했다. 항목을 구체화 한 후에는 재방송 중인 과거 프로그램에도 일괄 적용해야 한다고 했다.
문제 사례가 발생한 후에는 후속 조치 내용을 구체적으로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방통심의위의 제재조치나 인권위 권고 의견 등이 내려진 사항에 관해 일괄적으로 다시보기 서비스에서 문제 장면을 삭제하고, 알림, 설명 삽입 등을 해야한다는 주장이다. 아울러, 프로그램 제작진과 패널, 출연자를 대상으로 차별·혐오 표현의 사례, 쓰면 안되는 단어와 그래픽 등을 담은 소책자, 포스터, 제작지침을 만들어 배포하고 정기적으로 교육할 것을 제안했다.
📰기사 전문 보기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3084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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