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팀사그룹 셜록] “미투한 사람 손들어” 2차가해 뚫고 달려온 스쿨미투 5년
이소영(21, 가명) 씨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새카맣게 옷을 빼입고, 한 손에는 오토바이 헬멧을 들고 있었다. 검은색 몸체에 초록색 선이 눈에 띄는, 제 몸보다 큰 오토바이를 몰고 인터뷰 장소에 나타났다. 카페 야외 주차장에 주차된 오토바이의 배기음은 웬만한 차보다 웅장했다.
“가해 교사에게 받은 민·형사 위자료를 다 털어서 오토바이를 샀어요. 그 돈을 갖고 있기 싫었어요. 다 써버려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지난 13일 이소영 ‘충북 스쿨미투 지지모임’(이하 지지모임) 활동가를 만났다. 충북 스쿨미투 제보자 이소영 씨. 그는 2018년 충북여자중학교 미투 제보를 시작으로, 지지모임에서 활동해왔다. 최근에는 스쿨미투 매뉴얼북을 만들어 배포했고, 스쿨미투 재판에 연대 방청을 가거나, 1인시위와 탄원서 제출 등으로 스쿨미투 지지 활동을 이어왔다.
5년 전인 2018년 9월 충북여중 3학년이던 이소영 씨는 스쿨미투 운동을 시작했다. 그때는 가해 교사를 처벌하기까지 만 4년이나 걸릴 줄은 상상도 못했다. 이소영 씨는 긴 시간을 싸웠고, 끝내 승리했다.
“당시 스쿨미투 활동을 함께 하던 친구들과 웃으면서 ‘졸업 전에 끝나겠지’ 했는데, 고등학교, 대학교에 가서도 이어지고 있어요.”
A 교사는 충북여중에서 유명인사(?)였다. 학생에게 성희롱·성추행을 일삼는 “원래 그런” 선생님으로 알려져 있었다.
“선배들이 ‘A 교사가 애들한테 자꾸 스킨십하고 만지고 그런다, 원래 그런 사람’이라고 팁처럼 알려줬어요. 원래 그러니까 그러려니 하라면서 그냥 넘어가는 분위기였어요.”
충북여중 스쿨미투의 발단은 학교 축제였다. 외부 행사 관계자에 의한 영상 무단촬영 사건이 일어났다. 당시 불법촬영 사건이 연이어 터져 나오면서 사회적인 논란이 되던 때였다.
“앞 순서의 성악, 합창, 난타 공연은 촬영하지 않다가 댄스부 공연만 찍었어요. 친구들을 응원하다가 (불법촬영을) 발견하고 선생님께 말씀드렸지만, 그냥 앉아 있으라고 했어요.”
이소영 씨와 댄스부원들은 선생님이 어떤 후속 처리를 했는지, 촬영 파일은 어디로 갔는지 정확히 알 수 없었다. 학생들 사이에서도 ‘학교 측 대처를 신뢰하기 어렵다’는 의견과 ‘페미냐, 학교 명예 실추된다’는 의견 사이에 갈등이 일어났다.
이소영 씨는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평소 불편했던 이야기를 해보자는 취지로 ‘대나무숲’ 같은 트위터 계정을 개설했다. 누구나 익명으로 자기 경험을 꺼낼 수 있는 공론장이었다.
“말하지 말라고, 막는다고 가만히 있을 수 없었어요. 그러다 졸업생들이 자신들이 학교에서 겪은 일을 개인 트위터 계정에 올리면서 열풍이 불었죠.”
이렇게 충북여중 스쿨미투 운동이 확산하고, 이소영 씨와 친구들이 계정을 관리하는 스쿨미투 폭로 계정이 생겨났다. 이소영 씨도 자신의 신분을 밝히고 A 교사에게 성추행당했던 일, 과거 수업 중에 “생리주기를 적어 내면 가산점을 주겠다”는 말을 들었던 일 등을 트위터에 폭로했다. A 교사는 2018년 2월 건강상의 이유로 명예퇴직한 상태였다.
스쿨미투 폭로가 이어지자, 학교 측은 비상 조회를 열어 학생들을 강당에 모았다.
“선생님이 ‘트위터로 미투 한 사람 손 들어보라’고 했어요. 그러더니 각 반에서 3~4명이 대표로 만나서 공청회처럼 자리를 만들어보자고 했죠. 댄스부 친구가 동의 없는 촬영에 대해 사과받고 싶다고 하니까, 교무부장 선생님이 ‘우리가 사후처리 다 하고 경찰에 신고도 했는데 사과까지 바라는 건 좀 아니지 않냐’고 하더라고요.”
이소영 씨 기억 속 선생님들은 대체로 침묵하는 얼굴이었다. 당연히 학생 편을 들어줄 거라고 기대했던 선생님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교감 선생님은 도리어 A 교사의 편을 들었다.
“교감 선생님이 A 교사가 정말 애들을 만졌냐고 물어봤어요. A 교사가 원래 열정적이고 몸짓도 크지 않냐면서, 오해한 건 아니냐고…. 어이가 없었죠. 그러면서 A 교사가 극단적인 선택을 할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도 했어요. 마치 가해자의 억울함을 전해주는 것처럼.”
충북여중 스쿨미투는 졸업생과 일부 재학생, 학부모 사이에서 눈총을 받는 사건이었다. 이소영 씨 가족도 스쿨미투 운동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충북교육청은 충북여중 스쿨미투 사건 전수조사를 진행했고, 경찰 조사도 이뤄졌다. 거론된 교사는 10명 정도였다. 그러나 전수조사 이후 실제 재판에 회부된 교사는 A 교사를 포함한 2명뿐이었다. A 교사에게 피해를 입은 학생은 이소영 씨를 포함한 5명이었다.
“부모가 동의하지 않을까봐 모른 척하는 애들도 있었어요. 경찰 조사에 대부분 출석하지 못한다고 했어요.”
그런데도 이소영 씨가 사법 절차에 필사적으로 임한 이유는 스쿨미투 제보가 거짓이 아님을 밝히기 위해서였다.
“거짓말한다고 누명 쓰는 게 너무 싫었어요. 저와 주변 사람들이 전부 피해를 보니까 최소한 거짓이 아닌 것만 밝히자고 생각했어요. 안 되면 나중에는 죽자 싶었어요. 가해 교사는 최대한 벌 받지 않으려고 거짓말하는데, 갈 데까지 가보고, 안 되면 죽겠다고 생각했어요.”
2019년 7월 검찰은 ‘청소년성보호법 위반’ 등의 혐의로 A 교사를 기소했다. 같은 해 9월에 열린 재판에서 A 씨는 성추행 사실을 부인했다. 다만, “생리주기를 적어내면 가산점을 주겠다”고 수행평가 과제를 낸 건 ‘교육의 일부’라고 주장했다.
“가해 교사가 1심에서 잘못한 게 없다고 주장하다가 2심에서는 모든 걸 인정하고 합의 보겠다고 했어요. 가해 교사 측 변호인이 저와 다른 피해자 친구들에게 연락하기 시작했죠.”
이소영 씨는 재판 과정에서, A 교사 편에 선 졸업생들로부터 2차가해에 시달렸다. 졸업생들은 SNS에 A 교사를 옹호하는 글을 적거나, 100여 명의 졸업생이 단톡방에 모여 A 교사를 돕기 위한 진술서를 작성해 전달했다.
“재판장에 들어갔더니 가해 교사 측이 제 일상을 모두 알고 있었어요. 제 SNS 게시물을 전부 캡처해서 가해 교사 측에 보내준 거예요. 전부 재판 증거로 제출됐어요. (졸업생들은) 가해 교사를 돕기 위해 증언도 했죠. 그 사람들이 만든 증거가 너무 그럴싸해 보여서 ‘이걸 어떻게 이기지?’ 싶었어요.”
지속적인 2차가해로 인해 이소영 씨는 충북여중과 멀리 떨어진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하지만 거기도 문제가 있었다. 스쿨미투 운동을 조롱거리로 언급하는 교사 때문이었다.
“한 선생님이 ‘이런 말 하면 미투에 올라가냐’는 말을 농담처럼 썼어요. 저는 그 발언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고, 결국 여러 이유로 고등학교 생활을 견디기 어려워서 자퇴했어요.”
그러던 중 이소영 씨는 재판부에 제출할 결정적 증거를 찾았다. A 교사의 수업 녹음 파일이었다.
“중학교 때 등교하자마자 공부하려고 녹음을 켜놨어요. 그중 하나가 가해 교사 수업 녹음 파일이었는데, 거기서 가해 교사 측의 주장을 모두 반박할 근거가 나왔죠.”
2020년 2월 A 교사는 징역 3년을 선고받고 법정구속 됐다. 그러나 A 씨는 양형부당을 이유로 선고에 불복해 항소했다. 그해 9월 재판부는 항소심에서 A 교사에 대해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으로 감형했다. 취업제한 5년 명령은 유지됐다.
이소영 씨는 재판 과정에서 또다시 2차가해를 겪었다. 1심 도중 검찰과 재판부의 잘못으로 신상이 노출됐다. 가족과 주변인에게 2차가해 편지가 도착했다. 충북여중 졸업생이 썼다는 편지에는 ‘이소영 씨가 페미니스트이고, 허위사실을 퍼트렸다’는 내용이 담겼다. 또 이소영 씨의 SNS 계정 여러 개를 캡처하고, 정리한 첨부 문서도 동봉됐다.
“충북여중 스쿨미투의 기획, 연출, 선동의 총책임자는 이소영(가명)이다. 페미니스트 외부단체를 끌어들이고, 근거 없는 허위사실을 트위터에 올려 우리 모교인 충북여중을 완전히 남자 선생님들의 강제 추행하는 학교라는 것을 전국에 인식시킨 대단히 죄질이 나쁜 아이 (…) 16살밖에 안 된 학생의 영혼이 그렇게 타락할 수도 있는지요? (…)
다른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망가트릴 수 있는 일을 꾸민 것은 절대 용서받지 못할 범법행위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소영이 이 사건을 일으키면서 간과한 것이 있는데 선생님께는 졸업한 우리 고3 160여 명의 제자가 있다는 사실을 (…) 시간은 결코 이소영의 편이 아니라고 저희는 보고 있습니다.”(이소영 씨 가족과 주변인들이 받은 2차가해 편지 내용 일부)
이소영 씨는 A 교사 측이 편지를 보낸 것으로 추정해 형사 고소했으나 ‘증거불충분’으로 기소 중지됐다. 이소영 씨는 여기서 좌절하지 않았다. 2021년 6월 충북 스쿨미투 지지모임과 시민단체들의 도움으로 소송비용 500만 원을 모아, A 교사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결국 지난해 8월 이소영 씨는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승리를 거뒀다.
“재판 과정에서 아주 힘들었는데, 회복된 것도 있었어요. ‘내가 해냈고, 할 수 있었고, 앞으로도 할 수 있겠구나’라는 걸 알게 됐어요.”
민·형사 재판이 모두 끝나고, 이소영 씨는 일상을 되찾아야 했다. 재판 과정에서 마음이 회복된 것도 사실이지만, 마음 한편에는 허탈감이 자리 잡았다.
“다들 ‘멋있다’, ‘응원한다’ 말하지만, 개인의 고민, 가족 간의 갈등을 해소하는 게 얼마나 힘든지 몰라요. 저는 시민단체의 지원이 있어서 재판을 끝까지 진행할 수 있었어요.”
대학생이 된 지금도 일상생활에 종종 어려움을 마주하지만, ‘균형’을 잡으려고 노력한다.
“저는 아직 중학교 3학년에 머물러 있는 것 같아요. 대학 동기들은 다 같이 잘 어울리며 지내는데 저는 그게 잘 안 돼요. 항상 고민을 안고 살고 있고, 편하게 일상을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어색한 일이 돼버린 것 같아요. 요즘은 균형을 잡으려고 노력해요. 어떻게 하면 페미니즘 활동, 아르바이트 등 일상 속 현장에서 균형을 잡을 수 있을지 고민해요.”
스쿨미투 시작부터 모든 판결이 끝나기까지 햇수로 5년이 걸렸다. 길었던 그 시간이 의미 있는 이유는 스스로 일궈낸 성과이기 때문이다.
“중학교 때 스쿨미투 제보한 친구들끼리 학교 원형 계단에 포스트잇을 붙여보자는 둥 아이디어를 내는 과정에서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어요. 우리가 무언가를 하면 바뀐다는 것. 인식을 공유하고 생각을 나누고, 같이 실패도 해봐서 좋았어요. 그게 가장 큰 교훈이에요.”
올해 이소영 씨는 대학교 사회학과 신입생이 됐다. 고등학교를 자퇴한 뒤 검정고시와 두 번의 수능을 보고 대학에 입학했다.
“스쿨미투 운동을 하면서 활동가들이 피해자를 돕는 이유가 뭘까 고민해봤어요. 제 한계도 마주했죠. 저는 아무것도 모르는 학생이었어요. 그냥 열심히 교과목 공부하고 친구들과 놀던 학생인데, 기자회견장에서 ‘스쿨미투 활동가 입장에서 어떤 게 필요하다고 생각하냐’는 질문을 들으니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그래서 사회학이 배우고 싶었어요.”
이소영 씨는 언젠가 자신이 겪은 스쿨미투에 대한 글을 쓰려고 한다. 오토바이를 타고 드라이브하면서.
“스트레스 푸는 방법을 잘 몰랐는데, 오토바이를 타고 괜찮아진 것 같아요. 여러모로 환기가 돼요. 내가 가고 싶은 곳에 갈 수 있다는 추진력이 엄청 힘이 돼요. 가끔 생각이 많아지면 드라이브를 다녀오는데, 나중에 스쿨미투에 대한 글을 쓰게 되면 전국 여행을 다니고 있지 않을까요. 천천히 다니면서 잠깐 밥 먹고, 글 쓰고, 다시 나가고….”
조아영 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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