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뉴스] ‘자본 아닌 인간 편에서 탄소중립을’ 거센 함성
[기후위기시대] 72. 세종청사 앞 ‘4.14 기후정의파업’
지난 14일 오후 2시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 앞에서 ‘4.14 기후정의파업, 함께 살기 위해 멈춰’ 집회가 열렸다. 주최 측 추산 4천여 명의 참가자들이 서울, 제주, 광주, 부산 등 전국에서 모였다. 신공항건설반대·삼척화력발전반대·산악열차반대 등 분야별 대책위원회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등 350여 단체가 참여했다. 이들은 ‘기후정의 실현’ ‘사회 공공성 강화’ 등을 외치며 탄소중립위에서 산업통상자원부, 환경부, 국토교통부 청사 앞까지 2.2킬로미터(km)를 행진했다.
‘민주적·생태적이며 공공성 보장하는 대책’ 요구
“탄소중립기본계획은 기업의 편에 선, 정의롭지 못하고 한가한 계획으로 수립되었습니다. 국민의 말을 듣지 않는 이따위 정부, 지배동맹을 위해 일하고 민중은 안중에도 없는 생태학살 정부, 가만히 있어서는 바뀌지 않을 겁니다. 바로 우리가 민주적이고 생태적이며 공공성을 보장하는 체제를 만들어내는 주체임을 똑똑히 알려줍시다.”
박은영 4.14 기후정의파업 공동집행위원장은 집회 시작을 알리는 연설에서 “철저히 기업의 편인 정부에게 국민이 사회 공공성 확보와 생태학살 중단을 요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규석 녹색연합 사무처장은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계획에서 2030년까지 감축해야 하는 탄소 배출량의 25%만 현 정부 임기 내로 하고, 나머지 75%는 2027년 이후로 미룬 것을 지적하며 “현 정부는 책임지지 않겠다는 말”이라고 비판했다.
‘국민 생존권 위협하는 핵발전 반대’ 구호도
양옥희 전국여성농민회 총연합회장은 “윤 정부의 농업정책은 대기업의 농업진출을 지원하고 공장식 농업을 지향해 기후위기를 유발한다”며 “기후위기 극복을 위해서는 자본이 아닌 인간을 향한 대책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현숙 탈핵울산시민연대 대표는 “(부산) 고리원자력발전소 주변은 전 세계 최대 핵발전소 밀집지역이자 지진 위험성이 높은 지역”이라며 ‘노후 핵발전소 수명연장 반대’ ‘고준위 방폐장 핵발전소 내 건설 반대’를 외쳤다. 이 대표는 “(일본) 후쿠시마와 같은 사고가 나면 우리나라는 전 국토가 오염되어 경제에 심각한 타격을 줄 뿐만 아니라 농수축산물은 최소한 10년까지 국내산을 먹을 수 없을 것”이라며 “핵발전은 일부 지역의 문제가 아닌 전 국민의 생존권이 달린 문제”라고 말했다.
문경희 세종장애인차별철폐연대 대표와 여성, 청소년, 노동자, 성소수자 대표들은 파업 선언문을 함께 낭독했다. 선언문은 “자본의 폭력으로 노동자의 삶과 권리는 짓밟히고 사회의 돌봄과 연대의 역량은 파괴된다”며 “자본이 우선시되면 기후위기는 극복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선언문을 포함한 모든 발언은 수어 통역과 함께 진행됐다.
어린이들이 리코더 불며 앞장선 기후정의 행진
오후 2시 40분쯤, 참가자들은 탄소중립위 앞에서 산업부 청사 앞까지 1차 행진을 시작했다. 호루라기를 불거나 페트병을 두드리는 소리, 깃발 펄럭이는 소리가 어우러졌다. 500여 명의 어린이 참가자들은 행렬의 맨 앞에 서서 약 1km를 행진했다. ‘지켜보고 있다, 지구 아껴 써라’ 등의 구호가 적힌 손팻말과 깃발을 들고 리코더를 불며 걷는 어린이들을 돌봄 교사와 안전요원 등이 안내했다. 대전의 대안학교인 ‘발도르프학교’에 다닌다는 한 어린이는 <단비뉴스> 인터뷰에서 “너무 뜨거워서 기후위기를 막아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눈이 많이 오지 않고 여름에 열대야가 심해서 피켓에 그것을 표현하는 그림을 그렸다”고 말했다.
오후 3시쯤 산업부 앞에 도착한 참가자들은 ‘함께 살기 위해 멈춰’ ‘기후정의 실현’ 등의 문구가 적힌 종이를 건물 담장에 붙였다. 산업부의 책임감 있는 정책 마련을 촉구한다는 취지였다. 발전비정규직연대는 미숫가루가 들어있는 대형 플라스틱 통 10개를 ‘발전노동자 총고용보장’ 등의 구호를 적은 손팻말과 함께 놓아두기도 했다. 이태영 발전비정규직연대 간사는 단비뉴스 인터뷰에서 “석탄을 태우고 난 재를 미숫가루로 표현해 발전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환경을 나타낸 것”이라며 “미숫가루는 시위가 끝난 후 고생한 참여 단체들에 나누어 줄 것”이라고 말했다.
오후 3시 반쯤 시작된 2차 행진은 산업부에서 정부청사 종합안내실 사거리까지 760미터(m)가량 이어졌다. 참가자들은 탈핵울산시민공동행동, 경남기후위기비상행동, 정치하는 엄마들 등 소속 단체 이름이 적힌 깃발을 휘날리며 발걸음을 맞췄다. 일부 참가자들은 도로 바닥에 색색의 분필로 기후위기의 심각성을 나타내는 그림을 그리며 정부의 신속한 대응을 촉구하기도 했다.
‘다이-인’, 죽은 듯 함께 누워 멸종 위기 경고
오후 4시 무렵 세종청사 종합안내소 사거리 앞에서는 멸종을 상징하는 ‘다이-인’(die-in) 액션이 진행됐다. 다이-인은 참가자들이 행진 중 죽은 듯 땅에 누워 기후재난과 기후불평등에 항의하는 퍼포먼스다. 사이렌 소리가 울리자 참가자들은 일제히 도로에 누워 눈을 감았다. 휠체어를 탄 장애인 참가자들은 눈을 감고 고개를 숙였다.
5분 동안의 다이-인이 끝난 뒤, 참가자들은 3차 행진을 이어갔다. 마무리 집회 장소인 환경부·국토부 앞에 모인 참가자들은 깃발을 한데 모으고, 미흡한 기후대응 정책에 항의하는 의미에서 환경부 정문을 함께 바라봤다.
김연태 새만금신공항백지화공동행동 공동대표는 “탄소를 대량 흡수하는 갯벌을 없애고 탄소를 대량 배출하는 공항을 짓는다면 기후위기는 심화될 것”이라며 “환경부가 생명을 소비해 자본의 배만 불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카톨릭기후행동 강승수 요셉 신부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말을 인용해 “사회에 선을 퍼뜨려 세상을 바꿀 수 있다”며 기후변화 속도를 늦추기 위해 참가자들이 함께 노력할 것을 당부했다.
정록 기후정의동맹 집행위원장은 “기후위기 시대에 석탄 및 핵발전소가 건설되는 이유, 시민들이 지불하는 공공요금은 끝없이 오르는데 기업은 누진세(법인세) 할인을 받고 사회적 소수자에게 위기가 집중되는 이유는 자본이 모든 것을 삼키고 있기 때문”이라며 “시민들의 꾸준한 목소리만이 이러한 흐름을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지역·분야별 다양한 목소리 분출된 집회
참가자들은 단비뉴스 인터뷰에서 소속 단체별로 다양한 집회 참여 동기와 요구사항을 밝혔다. 서민태 울산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는 “울산 신불산은 높이가 1100m 정도로 케이블카가 필요 없는 산”이라며 “표를 얻기 위한 정치인의 무리한 결정을 산업부가 무조건적으로 수용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동물권운동가 유휘경(활동명 현복) 씨는 “기후위기로 환경이 파괴되면 가장 먼저 동물들이 영향을 받고, 그 영향은 인간에게 다시 돌아온다”며 “인간과 동물이 모두 잘 살아가려면 안전한 환경이 필요하고, 그를 위해 기업은 탄소배출을 줄이고 정부는 기업을 더 엄격하게 규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참가자들은 오후 5시쯤 ‘우리가 대안이다, 기후정의 실현하자’ 등의 구호를 외치며 집회를 마무리했다. 이들은 오는 9월 기후정의 행진에서 다시 만날 것을 기약했다.
📰[단비뉴스|우현지, 김현지 기자] 기사 원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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