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경향 | 오늘을 생각한다] “함께 살아야 살 수 있다”
학생인권조례를 폐지한다고 지금의 상황이 나아지리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왜냐면 학생인권조례가 생기고 나서 학생인권이 현격히 신장했거나, 학교가 극적으로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조례가 제정된 것과 교육현장에서 실현됐는지는 별개다. 학생인권조례가 있는 지역의 학생들은 성별, 종교, 나이, 사회적 신분, 출신 지역·국가·민족, 언어, 장애, 용모 등 신체조건, 임신 또는 출산, 가족 형태 또는 가족 상황, 인종, 경제적 지위, 피부색, 사상 또는 정치적 의견, 성적 지향, 성별 정체성, 병력, 징계, 성적 등을 이유로 정녕 차별받지 않고 있나? 체벌, 따돌림, 집단 괴롭힘, 성폭력에서 자유로운가? 꿈같은 소리다.
성소수자 혐오, 무슬림 혐오로 모자라 교사가 학교에서 생을 마감한 비극적인 사건을 학생인권조례 폐지라는 부당한 목적 달성에 이용하는 혐오 선동세력의 야만성과 이를 대변하는 교육부에 치가 떨린다. 정의당 정책위원회가 지난 7월 25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학생인권조례가 있는 경기, 광주, 서울, 전북, 제주, 충남 등 6개 광역시·도의 ‘교원 100명당 교육활동 침해 건수(2021년)’는 0.51명이고, 학생인권조례가 없는 나머지 11개 지역은 0.54명이다. 혐오 세력의 주장에는 인과성이 없다. 학생인권조례 폐지를 한국 교육이 처한 참담한 현실의 해법인 양 떠드는 것은 사회가 지키지 못한 한 선생님의 고귀한 생 앞에서 결코 범해선 안 될 결례다.
이른바 진상 학부모, 진상 학생을 교육현장에서 배제하는 방식으로 한국 교육이 당면한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왜냐면 이들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2022년 기준 6~11세 인구의 98.5%가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고, 이중 98.5%가 국공립학교에 다닌다. 말 그대로 우리 모두의 문제다. 학교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상이 학교 안에서 고스란히 펼쳐지고 있다. 그래서 ‘진상 학부모=요즘 학부모’란 식으로 모든 학부모를 싸잡아 비난하고 혐오하는 방식은 최악수다. 그 말이 맞다면 거의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이지 않겠는가. 그냥 서로를 진상이라 욕하면서 이대로 사는 수밖에 없다. 우리가 진짜 배제해야 할 것은 진상(사람)이 아닌 진상 짓이다. 교사의 그것도 포함해서 말이다.
무엇보다 진상 교사, 진상 학부모는 있어도 ‘진상 학생은 없다’라는 공감대에서 출발하자. 모름지기 교육이라면 어린이가 가진 잠재성과 가능성을 향해 희망을 품어야 하지 않나? 사람은 평생, 그리고 매일 크고 작은 잘못을 저지른다. 하지만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고, 될 수 있다는 믿음으로 자신에 대한 사랑을 지킨다. 공교육은 모든 어린이에게 그런 사랑과 기회를 줘야 한다. 경쟁 사회가 경쟁 교육을 낳고, 과도한 경쟁과 피해의식은 혐오를 부추긴다. 공동체의 붕괴로 이어진다. 한국 교육을 되살리는 데 ‘교권 따로, 학생인권 따로’ 식으로 내 것만 지키는 사고를 넘어서서, 경쟁 대신 공존의 가치가 절실하다는 생각을 나눠보자. 제발 함께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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