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더 많은 학부모들과 함께 '금서'를 읽어보고 싶습니다
더 많은 학부모들과 함께 '금서'를 읽어보고 싶습니다
최근 충남 지역을 중심으로 공공도서관에서 성평등·성교육 도서를 제외해야 한다는 보수 학부모 단체들의 민원이 빗발쳤다. 다수의 충남교육청 소속 공공도서관에서는 성평등·성교육 어린이책인 ‘나다움책’의 열람이 제한되고 있고, 지방의회 의원들을 비롯해 김태흠 충남도시사까지 나서 성평등 도서를 ‘문제적’이라고 낙인찍고 있다. 이에 지난 1일 충남 내포혁신플랫폼에서는 차별금지법제정연대, 충남차별금지법제정연대, 충남청소년인권더하기 공동주최로 ‘공공도서관을 향한 성평등 책 금서요구, 무엇이 문제인가' 토론회가 열렸다. 현재 성교육·성평등 도서에 대한 왜곡과 오해를 둘러싸고 한 사람의 학부모이자 양육자로서 토론에 참여한 김용실 어린이책시민연대 활동가의 이야기를 싣는다.[기자말] |
오늘은 학부모 혹은 양육자의 위치에서 이야기를 하고 싶다. 최근 충남에서는 다음세대를위한학부모연합(아래 다학연)과 꿈키움성장연구소 등 보수 학부모 단체들이 성평등 도서 117종을 도서관에서 빼라며 충남 공공도서관에 공문을 보내고 민원을 제기하고 있다. 이들은 '나다움책'을 비롯한 책들이 페미니즘과 동성애를 미화하거나 어린이·청소년들을 '조기성애화' 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이들이 지목하는 책들을 도서관에서 빼면 아이들은 좀 더 안전해지는 걸까?
성평등 책담회, '금서'를 함께 읽는다는 것
'함께 읽고 이야기 나누는 릴레이 성평등 책담회'를 열고, 보수 학부모 단체들에 의해 '금서'로 지정된 성평등·성교육 책들을 충남 시민들과 함께 함께 읽어보기로 했다. 이 책들이 정말 어린이·청소년, 학부모를 비롯한 양육자, 시민들에게 금지되어야 하는 책일까. 4회차에 걸쳐 해당 책들을 읽고 발제를 하고 토론에 참여했던 사람들은 모두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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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o 금서, Yes 필독서! 함께 읽고 이야기 나누는 릴레이 성평등 책담회 충남 공공도서관에서 성평등·성교육 도서를 도서관에서 빼라는 민원이 제기되자, 충남차별금지법제정연대에서는 지난 6월부터 격주 간격으로 해당 도서를 함께 읽고 토론하는 를 진행해왔다. | |
ⓒ 충남차별금지법제정연대 |
개인적으로는 내 몸을 정확히 알고 내 몸에서 일어나는 감각들, 피와 땀과 분비물을 부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책의 이야기가 나를 인정해주어 기뻤다. 그리고 그동안 내가 왜 힘들었는지 알게 되는 것만으로도 뿌듯했다. 중년의 나이인 나에게도 필요하고 유용한 정보가 많았고, 나와는 다른 다양한 사람들이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싶어 하는지 차근차근 배우는 시간이기도 했다. 오히려 사람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면서는 현재 시대에 뒤떨어진 부분 등 아쉬운 점을 나누기도 했다.
이미 우리가 알고 있듯이 어린이·청소년들은 매일 수많은 영상이 쏟아져 나오는 유튜브, 원치 않아도 성적인 콘텐츠를 보여주는 SNS를 통해서 성과 관련한 정보를 접하고 있다. 여성을 비하하는 남성 게임 유튜버의 남자어린이 구독자가 굉장히 많다는 사실도 잘 알려져 있다. 성인도 마찬가지이지만 어린이·청소년들에게 스마트폰은 항상 지니고 있는 몸의 일부가 되었고, 부모는 아이가 무엇을 보는지 일일이 알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자녀들이 아직 안 봤다고 하더라도 성적 콘텐츠나 음란물에 노출되는 것은 곧 닥칠 일이다.
이런 영상들을 접하는 것을 막을 수 없기 때문에 성평등·성교육 책들이 '조기성애화'를 부추긴다는 말에 양육자들이 더 불안해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미 이런 사회에서 아이들이 살아가고 있는데 도서관에 있는 '문제적'인 책들을 빼면 아이들이 안전해질 수 있는지 양육자들과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다. 정말 불안하다면, 이 책들을 함께 읽고 이야기를 나누어보자고 하고 싶다.
"우리는 제대로 된 성교육을 받지 못했구나…"
2020년 여성가족부가 '나다움책' 회수를 발표한 일로 떠들썩했을 때, 초·중·고 자녀를 둔 학부모들과 함께 '나다움책'을 읽고 함께 토론을 한 적이 있다. 나도 그때 처음으로 <아기는 어떻게 태어날까?>를 처음 보게 되었다. 덴마크에서는 1971년에 출판되었지만, 한국에는 2017년에 번역·출판된 책이다.
솔직하게 이야기하자면, 나도 처음 봤을 때는 사실 좀 민망했다. 책을 보자마자 뭔가 나의 성생활을 들킨 것 같은 민망함이 들었다. 읽었던 책의 내용과 맥락은 다 사라져 버리고 그냥 성관계 장면에 바로 반응하게 되었다. 그건 일종의 죄의식에 가까운 감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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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기는 어떻게 태어날까?』 페르 홀름 크누센(지은이), 정주혜(옮긴이), 담푸스, 2017 | |
ⓒ 담푸스 출판사 |
그 날 학부모들이 입을 모아 한 이야기는 양육자인 우리가 제대로 된 성교육을 받지 못해서 '섹스'라는 단어도 입에 올리지 못하고, 누가 볼까봐 겁나서 성교육 책 속의 성관계 장면도 제대로 쳐다보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최근에 이 책을 다시 보았는데, 사실은 굉장히 건조한 글과 해부학 같은 그림으로 사실을 전달하는 데 집중한 책이다. 그러니 '책의 문제'가 아니었다. 오히려 50년 전 책이어서 지금 다시 보면 남성중심적인 시각이 도드라지는 점이 많이 아쉬운 책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들에게 성교육을 제대로 정확하게 할 수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도 같이 나누었다. 이제 성인, 고등학생이 된 우리 아이들은 어디서 무엇을 보고 아기가 태어나는 과정에 대해서 배웠을까. 성욕, 자위, 섹스를 어떻게 배우고 받아들이면서 지금의 나이가 되었을까.
어린이를 진지하게 대하자
이 책이 '아기는 어떻게 태어날까?'라는 질문에 진지하게 대답한 '인류의 유산'이라는 책 소개를 본적이 있다. 감동적이었다. 각자도생해야 하는 험한 세상에서 자녀를 보호하느라 불안하고 마음이 약해진 양육자들에게는 이런 힘 있는 언어가 필요했는지도 모르겠다.
아기가 어떻게 태어나느냐는 질문에 뭐라고 답할까? 여전히 다리 밑에서 주워왔다는 말로 넘기거나, 당황하면서 '크면 다 알게 된다'고 말해놓고 후회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아이들의 질문에 진지하고 솔직하게 대답해야 아이들도 받아들인다. 그리고 부모를 신뢰하고 교사를 신뢰한다. 회피와 통제만 하는 부모는 두렵고 피하고 싶다.
성착취물을 제작하고 유포한 n번방 가해자들이 피해 여학생들에게 한 협박은 다른 무엇도 아닌 "부모에게 알린다, 학교에 알린다"였다. 아이들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가장 먼저 알아야 할 사람들은 가장 알리고 싶지 않은, 가해자의 협박보다 더 두려운 대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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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용실 (어린이책시민연대) | |
ⓒ 충남차별금지법제정연대 |
생각해보면 나 역시 인생의 많은 시간을 내 몸을 부끄러워하며 사느라 너무 힘들었다. 성과 관련한 모든 것들은 금기였고, 죄의식과 죄책감이 수시로 들었다. '그래도 잘 자랐다'는 말은 하고 싶지 않다. 더 좋은 삶을 살 수도 있었는데, 그런 기회와 권리를 박탈당했으니까.
나는 현재를 살아가는 어린이·청소년들이 성에 대해서 행복하게 배우고 편안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어른이 가까이에 있길 바란다. 그리고 더 많은 사람들이 아이가 문을 두드릴 때 당황하지 않고 선배로서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양육자가 되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이들을, 어린이·청소년들을 진지하게 대할 수 있어야 한다.
성욕과 성적 호기심을 건강하게 받아들이는 방법을 가르치기
성욕이나 성적 호기심은 우리 자신에게 있는 것인데, 있는 것을 없다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없는 것처럼 말한다면 아이들은 계속 숨기고 살거나 내가 그랬던 것처럼 죄책감에 살아갈지도 모른다. 자위하는 아이들 때문에 고민인 양육자나 교사들이 많이 있다. 집과 유치원, 학교 교실에서 어린이의 자위를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를 고민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들이 해야 할 성교육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에서 출판된 책은 아니지만 <엘자가 좋아하는 것>이라는 프랑스 성교육 그림책이 있다. 엘자는 요리도 좋아하고, 자전거 타는 것도 좋아하고, 친구와 노는 것을 좋아하는 어린이다. 엘자가 좋아하는 것 중에는 자위도 있다. 책은 여자어린이의 자위를 보여주며 자위는 즐거운 것이고 자위를 하고 싶을 땐 사람들이 보지 않는 자기만의 공간에서 하는 것이 에티켓이라고 가르친다.
나에게 존재하는 성욕과 성적 즐거움을 없다고 부정하거나 나쁜 짓이라고 죄의식을 심어주지 않고 잘 다룰 수 있도록 알려주는 성교육이 필요하다. 자기 몸이 느끼는 것을 잘 받아들이고 풀어나가는 방법을 배워야 타인에게도 싫어하는 것을 억지로 시키지 않는다. 그리고 강요가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거나 범죄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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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공도서관을 향한 성평등 책 금서 요구, 무엇이 문제인가?> 토론회 지난 5월부터 충남 지역을 중심으로 보수 학부모단체가 '나다움책'을 비롯해 성평등·성교육 도서를 '유해도서'라며 '금서' 지정을 요구하는 민원을 제기했다. 이에 지난 1일 차별금지법제정연대, 충남차별금지법제정연대, 충남청소년인권더하기 공동주최로 <공공도서관을 향한 성평등 책 금서 요구, 무엇이 문제인가?> 토론회를 개최한 바 있다. | |
ⓒ 충남차별금지법제정연대 |
사유하는 힘을 길러주는 책과 도서관을 지키는 것이 우리의 역할
나도 아이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쉽지 않다. 부모라고 해서 성과 관련한 이야기를 나눈다는 것이 마냥 좋거나 자신이 있는 것도 아니다. 어떻게 말을 꺼내고 이야기를 이어갈지 막막하다. 아는 것도 많지 않아서 자신감이 뚝뚝 떨어지고 나도 모르게 아이에게 화를 내거나 통제할까봐 걱정이 된다.
우리가 선택할 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가 바로 책이다. 그럴 때 책 한 권을 읽어주고 아이가 궁금해 하는 부분에 대해서 같이 이야기를 나누면 좋겠다. 아기가 어떻게 태어나는지, 자라면서 몸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에 대한 내용을 함께 읽는 것부터 시작할 수 있다. 자위, 성욕, 섹스에 대해 아이들 마음속에 있는 생각과 궁금증, 불안과 죄책감을 알아주는 것만으로도 아이는 부모가 자신의 영혼을 안아주는 것과 같이 느낀다고 한다.
그리고 도서관은 모든 사람이 책을 손쉽게, 평등하게 만날 수 있는 공간이다. 학교도서관이나 공공도서관에 더 다양하고 더 많은 성평등·성교육 책들이 있으면 좋겠다. 성적인 콘텐츠에 무분별하게 노출되는 것을 막을 도리가 없다면, 어린이·청소년들이 도서관에서 성평등·성교육 책들을 자유롭게 접하고 사유의 힘을 갖도록 하는 것이 훨씬 건강하지 않을까. 누구나 도서관 서가에 꽂힌 책을 읽고 자신의 의견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학부모나 교사, 시민들에게도 마찬가지다. 보수 학부모 단체들이 '금서'로 지목된 책들을 함께 읽어 보자고 제안한다. 성평등·성교육 책을 읽고 각자의 다양한 의견을 개진하고 때로는 상충될 수도 있는 서로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면서 서로를 설득해보자. 성평등·성교육 책을 도서관에서 제외하라는 요구가 검열이라면, '금서'를 만들고자 하는 권력에 맞서는 것 또한 학부모의 역할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김용실 님은 어린이책시민연대, 충남차별금지법제정연대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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