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다] 여성 비율 높지만, 여성에게 좋은 일터는 아니거든요

프로젝트

[다섯 가지 키워드로 보는 ‘여성과 노동’] 임신, 출산/재생산 (上)

 

〈일다〉는 여성 노동자가 겪는 구조적 차별을 드러내기 위해, 연속 세미나 [다섯 가지 키워드로 본 여성과 노동]을 기획했다. 세 번째 키워드 ‘화장실/젠더 건강’에 관한 논의는 9월 7일 반올림(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사무실에서 열렸다. 기록노동자 희정이 진행과 기록을 맡았다. [편집자 주]

 

 (이미지: 문화공감이랑)

작년, 반도체 공장에서 일했던 노동자들의 ‘2세 질환’ 직업병 이슈를 제기하는 책의 출간을 앞두고 『문제를 문제로 만드는 사람들』이라는 제목을 짓기까지, 이 책을 쓴 나와 책을 함께 기획한 단체 ‘반올림’(반도체 노동자의 인권과 건강 지킴이)에서는 고민이 많았다. 출판사가 제안한 이름이 마음에 들었으나, ‘문제’라는 단어가 마음에 걸렸다.

 

그동안 ‘문제’로 취급받지 못해 말해지지 않거나 개인적인 일로 치부되던, 여성 노동자들의 생식과 재생산 권리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기 때문에 ‘문제를 문제라고 명명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었다. 하지만 혹여나 책에 이야기가 실린 당사자들이 자신의 질환과 난임, 유산 그리고 아픈 자녀가 ‘문제’라 지칭되는 것처럼 느끼면 어떡하나 걱정이었다.

 

결국은, 문제를 문제로 만들어낸 이야기라는 주제에 충실하기로 했다. 인터뷰이들도 이 책에서 ‘문제’가 무엇을 지칭하는지 충분히 이해해줄 거라는 믿음으로 책의 제목을 정했다. 『문제를 문제로 만드는 사람들』에 나온 이들은 자녀가 아픈 것은 ‘엄마 탓’이라 쉽게 말하는 세상에서, “우리 아이는 왜 아프게 태어났을까“ 그 물음의 답을 찾기 위해 움직였고, 그것이 ‘직업병’임을 밝혀낸 사람들이다.

 

직업병과 ‘젠더라는 그물’

 

과연 이들 뿐일까. 많은 여성 노동자들이 각자 삶에서 ‘문제를 문제로 소환’하는 경험을 하나둘 가지고 산다. [다섯 가지 키워드로 보는 ‘여성과 노동’] 네 번째 세미나는 『문제를 문제로 만드는 사람들』(오월의봄, 2023)을 텍스트로 삼아서 임신, 출산, 양육을 포함하는 재생산권에 관하여 이야기는 나누었다. 여성으로 일하며 각자의 자리에서 ‘문제를 만드는’ 경험을 해온 이들과 함께했다.

 

▲ [다섯 가지 키워드로 보는 ‘여성과 노동’] 네 번째 세미나는 『문제를 문제로 만드는 사람들-우리 아이는 왜 아프게 태어났을까, 그 물음의 답을 찾다』(희정 씀, 반올림 기획, 오월의봄, 2023)을 텍스트로 삼아서 임신, 출산, 양육을 포함하는 재생산권에 관하여 이야기는 나누었다. 책을 들고 있는 병원 노동자 ‘은화’의 모습. (촬영: CH Photos_최형락)

은화: 일터에서 저의 모습을 책상 먼지를 터는 사람, 그 먼지를 닦는 사람 같다고 생각을 했어요. 그러니까 아무도 거기에 먼지가 있는지 모르는데 난 그게 보이는 거에요. 그래서 닦아. 그러니까 좀 먼지처럼 소소한 이슈들에 마음이 동하는 사람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은화는 병원 노동자이다. 병원에서 일한다면 의사나 간호사를 떠올리기 쉬운데, 병원은 다양한 분야에서 다양한 업무를 수행하는 사람들이 모여 만들어지는 공간이다.

 

은화: 저는 제가 (병원) 현장 노동자라는 자부심이 있거든요. 현장을 지키고 있다는 것. 병원은 일하는 사람 중에 여성 비율이 굉장히 높은 일터임에도, 여성에게 좋은 일터는 아니거든요. 이런 생각을 정리하는 데도 오래 걸린 것 같아요. 왜냐하면 부모님이나 주변에선 다 병원이 여자가 일하기 좋은 일터라고 이야기를 하니까. 저만 가지고 있던 문제의식을 오늘 처음 이야기해보는 거예요.

 

개구리: 저는 보육교사로 살고 있는 개구리라 합니다. 어린이집을 운영하고 있어요.

 

개구리라니, 너무 귀엽다!

 

개구리: 아이들이 지어준 별명이에요. 처음에는 별명이 좀 가볍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너무 좋은 거예요. 아이들이 가볍게 잘 불러줄 수 있는 이름이더라고요. 1996년에 공동육아로부터 이 일을 시작했으니까. 30년 가까이네요. 『문제를 문제로 만드는 사람들』을 읽으면서, 문제를 밝히는 사람들이 있어서 고맙다는 생각을 했어요. 저도 제 일상에서 늘 사고 좀 치고 싶은 마음이 있거든요.

 

어린이집을 운영하면서 갖게 된 문제의식으로 정부에 항의하고, 법과 제도에 딴지를 거는 ‘사고’를 치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그 마음이 동해 ‘유치원 3법’(유치원의 비리를 방지하기 위해 2018년 12월 국회에서 정부가 개정을 추진한 유아교육법, 사립학교법, 학교급식법 개정안)을 만들 때 ⌜정치하는엄마들」 단체와 함께했다.

 

정치하는엄마들은 양육자 정체성을 가지고 직접적인 정치 참여를 하는 단체인데, 이때 엄마란 꼭 생물학적 어머니가 아니다. 돌봄을 수행하거나 수행할 모든 양육 주체를 아우른다. 권영은도 이 단체의 회원이다. 그리고 이 책의 기획을 함께한 반올림의 상근 활동가이기도 하다.

 

영은: 반도체 일터에 오퍼레이터(생산직), 그러니까 여성 노동자들의 비율이 굉장히 높음에도 불구하고, 스테레오 타입의 여성 노동으로만 이야기가 되던 때도 있었던 것 같아요. 그때는 반도체 직업병이라는 문제가 이제 막 등장하고, 그걸 맞닥트리는 것도 큰일이라….

 

반올림 초창기, 여성들이 겪는 생식 관련 문제는 ‘반도체 직업병 인정’이라는 중대한 문제에 가려 드러나지 못하는 이야기였다. 반도체 사업장에서 일하다가 백혈병과 각종 암에 걸렸다는 당사자들 앞에서, 생리통과 생리불순을 비롯한 생식독성 문제는 후순위가 될 수밖에 없었다.

 

“생리통과 생리불순은 의사가 진단한 이름을 가진 다른 질환들에 비해 아주 작은 증거였다.”(9쪽)

 

▲ 반올림(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상근 활동가이자 정치하는엄마들 회원이기도 한 ‘영은’은 자녀에게 대물림되는 직업병에 대한 이야기를 세상에 알리기까지 그 과정에 대해 설명했다. (촬영: CH Photos_최형락)

영은: 2013년에 반올림 안에서 여성 건강권 모임들을 하고, 피해자들과 연대자들이 만나 여성으로 자기 이야기를 하고 그랬지만, 그때도 젠더 의식을 반올림 활동에 적극적으로 들여왔다고 할 순 없는 거 같아요. 그렇다고 우리 안에 젠더 문제가 어느 순간 갑자기 들어왔다, 이런 건 또 아니에요. 피해자분들의 이야기 안에 분명 (성)차별이라는 게 존재했거든요. 환경 수첩의 경우(반도체회사에서 사용 물질의 정보와 안전 관련 지침이 담긴 자료를 여성 생산직 직원들에게만 제공하지 않았던 일)도 성별의 위계가 드러난 문제였죠. 그런 것들을 하나하나 문제 제기해나갔지만, 그 문제의식이 ‘젠더’라는 그물망 안에 하나로 묶이진 않았던 것 같아요.

 

반올림이 『문제를 문제로 만드는 사람들』 출간 작업을 한 것은 우선 자녀에게 대물림되는 직업병의 위험과 피해를 알리기 위해서였지만, 그간 흩어져 있던 피해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연결하여 ‘젠더’라는 그물망에 건져 올리기 위함도 있었다.

 

영은: 시작은 제주의료원 간호사들의 대법원 판결을 앞두고였어요. 반도체 산업에서도 여성 노동자들의 자녀(2세) 질환 직업병 문제도 있었고. 이 문제를 어떻게 드러낼 수 있을까 고민하던 참이었죠.

 

2009년, 제주의 한 병원에서 임신한 15명의 간호사 중 5명이 유산을 했다. 출산한 10명 중 4명의 자녀는 선천성 심장 질환을 가지고 태어난다. 이들은 임신 중에도 야간 근무, 중량물 운반, 약품 수동분쇄 업무를 해왔다. 일하다가 (태아가) 병이 든 엄연한 직업병이었다. 간호사들이 분쇄한 약품 중에는 미국식품의약국(FDA)에서 임산부에게 사용을 금지한 약품 50여 종이 포함되어 있었다.

 

2세 질환 직업병 문제를 처음 접했을 때, “아이를 낳지 않으면 이기적이라고 하면서 정작 임신하면 직장과 주변에 민폐가 되는, 애는 엄마가 키워야 한다면서도 육아 때문에 직장을 그만두면 이래서 여자는 안 뽑는다고 하는, 경력단절 끝에 다시 일터로 가면 저임금 ‘아줌마’ 노동이 기다리는 현실”에서 “직장과 임신의 조합이 자녀의 질환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사실”에 경악했다.

 

임신은 축복이라고 말하지만, 임신한 노동자는 천덕꾸러기 취급받는다. 임신한 순간, 내 자신이 ‘문제(거리)’가 된다. 참고 일하는 것도, 직장을 그만두는 것도, 자신이 ‘문제 요소’가 되지 않겠다는 발버둥일지도 모른다.

 

“아이를 가진 것만으로도 내 책임을 다하지 못하는 것 같아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다.”(차엠, ⌜육아도 경력이 될 수 있다면」, 다음 웹툰 중) 

 

▲ [다섯 가지 키워드로 보는 ‘여성과 노동’] 네 번째 재생산권에 관한 논의는 반올림 사무실에서 진행되었다. 왼쪽부터 병원 노동자 은화, 진행을 맡은 기록노동자 희정, 반올림 상근활동가 영은, 보육교사이자 어린이집 원장 개구리. (촬영: CH Photos_최형락)

임신을 했다, ‘문제’가 됐다

 

영은: 제가 젠더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아이를 낳으면서였던 거 같아요. 이 문제를 더 심정적으로 와닿게 됐고. 임신 중에 단체 사람들이 저를 엄청나게 배려해주는 걸 알면서도, 당시에 반올림 농성장이 강남 한복판에 있었단 말이에요. 동료들은 제가 농성장에 가지 못하는 거 다 이해하고 그랬는데도. 정말 누워있다시피 해도 너무 피곤한 거예요. 도심만 나와도 미세먼지 이런 게 너무 힘들고. 나도 이런데. 방진복을 입고 종일 서서 일을 하고, 임신에 대해 배려받지도 못하는 노동 환경에서 일한 이들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얼마나 마음이 외로웠을까…. 그런데 한편으론 (시민사회 운동 내에서 지인들 중에) 자녀를 둔 활동가들이 별로 없어요. 그래서 이건 저의 개인적인 문제가 되어 버리는 거예요. 혼자 해결해야 하는 문제. 주변의 배려가 없어서가 아니라, 나 혼자 양육자라는 조건이 다르기 때문에.

 

자녀는 둔 동료가 별로 없는 것은 병원 노동자도 마찬가지였다.

 

은화: 병원이 2000년대 초반에 개원했거든요. 제가 입사를 하고 나서야 임신하고 출산하면서도 병원 다니는 여성이 나왔어요. 입사가 2015년경인데. 임신부용 작업복은 당연히 없어서 그분은 사복 입고 일하고…. 『문제를 문제로 만드는 사람들』 읽으면서 막 되게 뭉클하고 용기도 얻고 또 슬프기도 했던 것 같아요. 어떤 문장에 꽂혀서, 직장에 있는 동료에게도 보여줬는데, 이거였어요.

 

“이들이 임신하고도 회사를 계속 다닌 이유는 각기 다르겠지만, ‘다닐 수 있는 조건’을 만든 것은 바로 앞서 버텨준 여성들이었다.”(53쪽) 

 

은화: 보여주니까 그분들은 역시, “너도 빨리 결혼해라”, 저는 “싫어요.”

 

희정: 비혼 여성으로서 임신/출산 관련 내용을 다루는 이 세미나 자리에 와달라 요청을 받았을했을 때, 왜 나한테 제안을? 이랬을 것도 같은데. 사실 비혼 여성도 동료들의 임신과 출산을 함께 겪잖아요. 그 일에 대해 듣고 싶어요.

 

은화: 임신한 분들의 업무량 조절이 안 되는 거예요. 육아휴직 가기 전에 한 달도 안 남았는데, 부서장이 부르더니 대체 인력이 안 나올 것 같다고 하더래요. 그런데 이 선생님이 더 미안해하는 거예요. 그래서 자기가 있을 때까지 좀 채워주고 가야겠다고 생각해서 무리하는 거죠. 임신한 동료를 볼 때 양가적인 감정이 들거든요. 옆에서 밥도 못 먹고 일하는 거 보면, “내가 할게요” 이 말이 나와요. 병원이니까 자기 위생 관리가 안 되는 환자분들도 있어요. 그러면 입덧이 심해지는 거죠. 그걸 보면 눈도 안 마주치고 “내가 할게요” 하는 거죠. 나도 너무 일이 몰려 힘드니까. 그러면서도 우리가 하는 건, 이 사람(임신한 직원) 업무가 팀장 보기에 적어보이면 안 되는 거예요. 이 사람의 일을 우리가 채워주면서도 이 사람이 업무를 다 하는 것처럼 보이게 해야 하는. 이런 상황들이, 그냥 좀 2인3각하는 거 같아요. 괜찮아요, 버텨요, 아기나 건강히 잘 낳아요. 이러면서 서로들 있는 거 같아요.

 

일터에서의 동료 관계라는 것은 참 볼수록, 오묘하다.

 

은화: 동료와 저는 끊어질 수 없는 관계인 것 같다고 생각해요. 병원에 입사하고 느꼈던 감정 중 하나가 우린 험난한 시절도 같이 겪은 동료들이야. 사람들이 떠날 때마다 저는 동료를 잃는다는 기분이 들었거든요. 임신이 축복이라고 사람들이 말하잖아요. 그런데 현실은 임신한 걸 알면 퇴사해야 하나를 생각해야 하는. 그냥 그 순간을 이 사람들이 온전히 즐길 수 있는 일터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죠.

 

▲ 정치하는엄마들 회원이자 어린이집 원장인 ‘개구리’는 어린이집에 대해 ‘일하는 여성’을 위한 공간이기도 하다고 말한다. (촬영: CH Photos_최형락)

여기에 어린이집 원장, 개구리도 경험을 보탰다.

 

개구리: 아이들 어릴 적에 그냥 마을에서 함께 키웠어요. 그때는 그런 단어가 없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공동육아라 할 수 있어요. 아이를 함께 키우던 시간이 전 참 좋았아요. 그리고 1996년부터 공동육아와 공동체교육 교사로 다양한 역할을 하며 20년 넘게 근무했는데, 인생의 흐름이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만 가는 게 아니잖아요. 민간 어린이집을 운영하면서, 아이들을 관리하는 형태가 부모랑 아이들을 행복하게 하지 못하는 거예요. 너무 답답했고. 저는 엄마(양육자)들에게 무조건 복직하라고 했던 거 같아요. 보통 어린이집은 점심 먹고 하원시키거든요. 저는 어린이집 개원하면서부터 이른 하원은 없다. 점심 먹고 낮잠 자고 다 놀고 그리고. 우리 어린이집은 일하는 여성을 위해 만들어진 조직이니까.

 

희정: ‘일하는 여성’을 위해 만들어진?

 

개구리: 제가 공동육아 교사로 살땐 일하는 여성들이 많았어요. 그런 곳에서 보육을 배우고 하면서, 비록 민간 어린이집을 운영하지만 당연히 어린이집은 일하는 여성을 위한 곳이라 생각했고. 여성들이 출퇴근 시간만 조절이 되어도, 아이 돌봐줄 곳만 있어도 직장을 유지할 수 있잖아요. 우리는 어린이집 선생님들도 자기 아이를 데려오거든요. 여기가 엄마 직장이자 어린이집인 거예요. 내 아이가 어린이집에 함께 있으면, 어린이집 교사인 엄마도 다른 학부모들이 퇴근이 늦어져 기다려주거나 하는 걸 더 부담 적게 할 수 있어요. 아이들도 한두 명이 남아 퇴근이 늦는 부모를 기다리는 게 아니라, 선생님이랑 그 또래 자녀들하고 함께 하는 거죠. 서로 이해가 더 되는 거예요.

 

임신과 출산이라는 생애주기의 한 과정이 ‘문제’가 되어버리는 억울한 심정을 아는 여자들은, 나와 내 주변의 여자들이 이 직장을 다닐 수 있도록 무던히 애를 쓴다. 우리 일터와 사회가 여성 노동자의 재생산권을 보장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下편에서 계속됩니다.)

 

[필자 소개] 희정. 살아가고 싸우고 견뎌내는 일을 기록한다. 『노동자, 쓰러지다』, 『일할 자격』, 『베테랑의 몸』 등을 썼다.

 

📌기사전문보기: https://m.ildaro.com/9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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