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여가부, 차관 체제로 폐지까지 가나

|김행 장관 후보자 사퇴 전후 여권 “임명하지 말자”

|‘부처 폐지’ 위한 인물 세우니 늘 자질 논란 ‘딜레마’

 

10월 5일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김행 여성가족부 장관 전 후보자가 답변하고 있다. / 연합뉴스

10월 5일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김행 여성가족부 장관 전 후보자가 답변하고 있다. / 연합뉴스

 

지난 10월 12일 김행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가 사퇴했다. 김 전 후보자는 ‘주식파킹’ 의혹, 청문회장 이탈 등으로 논란을 빚었다. 여성가족부 장관으로서 자질 및 전문성이 결여됐다는 비판을 받았다. 9월 15일 김 전 후보자는 여성의 임신중지권에 대해서 “여성의 자기결정권이라는 미사여구 포장 뒤로 감춰진 낙태의 현주소를 여쭙고 싶다”고 말했다. 형법상 낙태죄에 대해 2019년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헌법재판소의 판단과 역행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인사청문회에서는 김 후보자가 공동창업한 위키트리에 실린 노골적인 여성혐오 기사들이 지적됐다. 10월 5일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은 “성희롱적 보도를 악질적으로 양산했다”며 “해당 보도 대부분이 김행 후보자가 경영에 관여한 이후의 기사들이고 언중위의 시정 권고를 받았던 기사들인데도 지금까지 위키트리 홈페이지에 남아 있다”고 지적했다. 10월 7일 ‘여성가족부 폐지 저지와 성평등 정책 강화를 위한 범시민사회 전국행동’은 “성차별과 폭력, 혐오에 기생해 100억원이 넘는 자산을 증식시킨 언론사 수장이 여가부 장관으로 임명된다는 것은 매우 부적절하다”며 “윤 대통령은 또다시 부처 폐지를 자신의 역할로 인식하는 자격 미달의 여가부 장관 후보자를 지명했다”고 비판했다.

 

장관의 임무, 부처 폐지

 

윤석열 대통령은 후보 시절 ‘여성가족부 폐지’를 공약으로 내세웠고,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각종 지표는 정반대를 가리키고 있다. 2022년 한국 성별임금격차 31.1%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하위다. 2021년 세계경제포럼(WEF)의 글로벌 젠더격차지수(GGI)는 156개국 중 102위다. 2020년 디지털성범죄 피해자 지원센터 보고서에 따르면 피해자 4973명 중 81.4%가 여성이다.

‘구조적 성차별’을 보여주는 근거들은 뚜렷하지만, 윤석열 후보의 ‘여가부 폐지’ 기조는 당선 이후에도 계속됐다. 이에 따라 현 정부의 여가부 장관 핵심 임무도 ‘부처 폐지’가 됐다. 성평등 정책 추진과는 거리가 먼 장관의 자질과 전문성 논란이 이어졌다. 김현숙 여가부 장관은 양성평등과 출산율의 상관성에 대해 연구해온 경제학자다. 19대 국회에서는 비례대표 의원으로 특정 성별이 위촉직 위원의 60%를 초과하지 못하도록 하는 여성발전기본법 개정안, 지역구 여성 공천비율 30% 이상을 의무화하는 공직선거법 개정안 등을 대표발의했다.

장관 임명 이후에는 그러나 ‘여가부 폐지’를 우선순위로 두고 무리하게 정부 기조를 따라가면서 자질 논란을 빚었다. 지난해 5월 인사청문회에서는 ‘구조적 성차별이 있냐’는 질의에 “여가부가 20년간 있었는데, 세계성격차지수가 나아지지 않고 102위로 떨어졌는지 의원들과 토론하고 싶다”며 말을 돌렸다. 지난해 9월 발생한 신당역 스토킹 살인사건을 두고 “여성과 남성의 이중 프레임으로 보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고”고 말해 비난을 자초했다. ‘인하대 성폭력 사망 사건’을 두고서도 “학생 안전의 문제이고 성폭력이지, 여성폭력이 아니다”라고 말했다가 비난을 받자 “여성폭력이 맞다”고 정정하기도 했다. 김행 전 후보자도 “드라마틱하게 엑시트하겠다”며 여가부 폐지를 목표로 앞세웠다.

여가부 장관이나 후보자가 ‘부처 폐지’를 앞세우다 보니 정작 성평등 등 여가부 본연의 정책과 관련해서는 시민의 눈높이에 맞지 않는 발언을 한 셈이다. 권수현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 대표는 이를 여가부 폐지를 내건 현 정부의 ‘딜레마적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권 대표는 “정부는 여가부 폐지라는 자신의 기조에 맞는 사람을 여가부 장관으로 임명하려고 하다보니 여가부의 존재 방향과 목표에 맞지 않는 사람을 임명하게 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배진경 여성노동자회 대표는 “현 정부는 어떤 사람을 여가부 장관에 앉혀야 하는가 그 자체를 모르고 있다”며 “여가부가 무슨 일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상 자체가 없다는 반증이다”라고 비판했다. 권수현 대표는 “여성가족부는 정부 내 야당 역할을 해야 하는 부처다. 다른 부처가 젠더 관점이나 성인지 의식 없이 정책을 실행하는 것에 대해 여가부가 성인지 관점에서 방향을 잡는 야당 역할을 해야 한다. 이를 성주류화라고 하는데 이 같은 책임을 갖고 있는 부서가 여가부”라며 “그런 만큼 장관을 잘 임명해야 한다. 하지만 현 대통령은 ‘그런 부처가 필요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무책임한 인사가 이뤄지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차관 대행 체제로?

 

김현숙 장관에 이어 김 전 후보자까지 이 같은 딜레마적 상황이 이어지면서, 후임 여가부 장관 인선에 눈길이 쏠리고 있다. 당분간 김현숙 장관 체제가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도 있지만, 잼버리 파행 이후 김 장관이 장관직을 유지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예측도 나온다.

9월 19일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이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입장하고 있다. / 연합뉴스

9월 19일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이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입장하고 있다. / 연합뉴스

 

한편 정부·여당 일각에서는 김 장관의 사표를 수리하고, 여가부를 차관 체제로 운영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지난 10월 11일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은 SBS라디오 인터뷰에서 김행 후보 지명 철회를 정부에 요구하며 “철회의 뜻이 다른 후임자를 지명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여가부 폐지를 위해 지명을 안 하겠다는 그런 뜻으로 지명을 안 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여가부 폐지가 우리 대통령 공약”이라며 “여가부 폐지에 대한 결연한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 그 의지는 장관을 임명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차관 대행 체제로 가면서 내년 총선에서 여당이 과반 의석을 확보한 후, 정부조직법을 개정해 부처를 폐지한다는 시나리오다.

이 같은 여당 일각에서 나오는 주장에 대해서는 시민사회에서는 책임 회피라고 지적했다. 배진경 여성노동자회 대표는 “만약 진짜로 그렇게 한다면 정부가 책임을 방기하는 것”이라며 “아무리 시한부라고 해도 장관을 임명하지 않는 행정부가 어디 있나. 장관과 차관의 역할은 엄연히 다르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여가부가 해야 할 일이 많은데, 대놓고 일을 안 하겠다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권수현 대표는 “여권 일각에서 차관 대행 체제로 가자는 이야기가 나왔다면 굉장히 우려스러운 이야기다. 지금 정부가 사회적 약자와 관련한 사업 예산을 삭감하고 있는데, 여가부 업무 중에 그런 사업이 상당히 많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장관이 추진해도 어려운데 차관 대행 체제라면 훨씬 힘이 약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권 대표는 “대통령이 장관을 임명하면 그 장관이 책임을 진다는 뜻이다. 만약 정말로 장관 임명을 하지 않는다면 그건 정부가 책임을 지지 않겠다는 신호”라며 “그렇게 되면 피해는 결국 시민들이 짊어지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차관 체제가 논의되면서 당장 11월 2~3일 예정된 여성가족부 국정감사에 누가 출석할지에 대해서도 논의가 분분하다. 야당 여가위 관계자는 “김현숙 장관이 사퇴 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고 있어서 가부가 어떻게 될지 지켜봐야 할 것 같다”며 “기관 증인으로 여가부 장관을 의결했기 때문에 여가부의 답을 기다리는 중이다. 정부에서 정확하게 여가부 장관의 거취에 대한 답을 해줘야 하고, 만약 김 장관이 국감에 나오지 않고 제대로 답할 수 없는 차관이 나온다면 어떻게 할지 다시 판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여가위 관계자는 “여가부 장관 관련해 다른 소식을 듣지 못해 김 장관이 국감에 나오는 것으로 알고 준비하고 있다”며 “현 정부 들어서 여가부 예산이나 사업이 축소되는 조짐이 있는데, 폐지를 위한 사전 준비 작업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어 그런 것들을 주로 지적할 예정이다”라고 말했다. 여가부 관계자는 국감 출석과 관련해 “지금 김현숙 장관이 재직 중인 만큼 국정감사에 출석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답했다.

 

부처 폐지하기도 전에 청소년·성평등 정책 마비

여가부 폐지가 여가부 장관의 주요 임무가 되면서 성평등 정책이 축소·폐지되고 여가부 본연의 사업이 제대로 운영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가장 먼저 관련 예산 축소다. 지난해 11월 15일 국회 여가위 예산결산심사소위는 2023년도 예산안을 심의했다. 위성곤 민주당 의원은 “일반회계는 432억원이나 감액했다. 일할 마음이 있다면 일반회계 예산이 줄어들 동안 장관은 무엇을 했는지 질문하지 않을 수 없다”며 “특히 성평등정책기반강화 및 여성경제활동지원사업은 전년대비 75%나 감액을 했다”고 지적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던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지원 사업’ 관련 예산이 빠졌다는 지적도 나왔다. 2021년과 2022년 1억600만원이 배정된 디지털 성범죄 인식개선 홍보 예산은 전액 삭감됐다.

2024년도 예산안에서도 성평등 및 청소년 정책 예산은 쪼그라들었다. 지난 8월 29일 정부가 의결한 여가부 예산은 1조7153억원으로 올해보다 9.4% 증액됐다. 가족 정책 분야가 1조1970억원으로 16.6% 인상된 반면, 양성평등 지원 예산은 2407억원으로 2.5% 줄었다. 청소년 정책은 전년 대비 6.9%가 감소했다. 이에 따라 성인권교육 사업과 청소년 근로권익보호 사업 등이 중단될 위기에 처했다. ‘정치하는엄마들’은 비장애학생과 장애학생이 참여하는 ‘성인권교육’ 예산을 전액 삭감한 결정을 두고 “여성가족부가 장애인 성폭력 예방의 일환으로 수립한 정책을 폐지하는 것은 무책임한 결정”이라고 비판했다.

여가부 폐지 기조가 지방자치단체의 성평등 정책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분석도 나왔다. 지난 7월 19일 한국여성단체연합은 ‘민선 8기 1년, 광역자치단체 성평등 정책 평가 토론회’를 열었다.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 이후 지역 성평등 정책 현황 분석 및 시사점’을 발표한 김민문정 한국여성단체연합 상임대표는 “지방정부의 성평등 정책 전담부서는 대부분 여성가족부의 위임사무를 집행하는 수준의 정책 기구만 있고, 주로 여성·아동·청소년의 안전과 복지 등을 중심으로 역할이 한정됐다”고 분석했다. 지방정부의 성평등 정책이 중앙정부의 기조에 따라 변화하는 만큼 여가부 폐지 기조에 따라 지자체 또한 성평등 정책 전담부서 위상이 격하되고 성평등 정책 연구기능이 축소·약화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잼버리 파행 또한 ‘여가부 폐지’를 우선순위로 두면서 주무부처인 여가부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한 데서 기인한 측면이 크다. 야당 여가위 관계자는 “김현숙 장관이 여가부 폐지에만 몰두해 정작 여가부가 해야 하는 본연의 업무에 소홀했기 때문에 잼버리 파행 사태도 나타났다고 본다”고 말했다.

 

📰[경향신문 | 박송이 기자]  기사 전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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