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펭귄] "플라스틱 대신 유리병 써달라"...롯데·농심 대답은
식음료기업 대부분 유리병 '재사용 계획' 없어
"환경부 주도로 표준용기 도입해 재사용 길 열어야"
[뉴스펭귄 이수연 기자] 식음료제품의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기 위해선 유리병 사용을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지만 관련 기업들 반응은 극히 미온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운송과정에서 파손 위험성, 재사용을 위한 비용(선별·세척) 추가 투입, 제품차별화 어려움 등이 표면적으로 내세우는 이유다. 환경부의 지지부진한 정책추진 의지도 업계의 '게으른 전환'을 부추기는 요소로 지적된다.
이같은 분석은 <뉴스펭귄>이 '유리병재사용시민연대'(이하 시민연대)와 함께 지난달 29일부터 이달 8일까지 주요 식음료업계 10개사를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다. 시민연대에는 두레생협, 서울환경연합, 알맹상점,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 등이 참여하고 있다.
이번 분석을 위해 시민연대는 '재사용 탐정단' 35명을 모집해 가정에서 사용하는 유리병 식음료제품 702개를 조사했다. 그중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상위 10개사를 꼽아 설문조사에 나섰다.
오뚜기·이마트(노브랜드/피코크)·대상(복음자리)·청정원·샘표(폰타나)·롯데칠성·농심·코카콜라·CJ제일제당·광동제약 등이다.
이마트와 청정원, 대상(복음자리) 등 3개사는 설문조사에 전혀 응답하지 않았으며 다른 7개사는 전부 또는 일부에 답변했다.
플라스틱→유리병
안 바꾼다는 기업들
설문조사에 응답한 7개사 모두 플라스틱 용기를 유리병으로 바꿀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오뚜기는 유리병이 다른 포장재보다 무겁고 깨질 위험이 크기 때문에 유리병으로 바꾸지 않겠다는 의견을 나타냈다.
롯데칠성은 포장재를 선택할 때 소비자의 수요를 반영하기 때문에 유리병으로 변경할 계획은 없다고 답했다. 장기적인 기후대응보다 당장 소비자의 편의성을 우선으로 고려한다는 뜻이다.
코카콜라와 샘표, 농심, CJ제일제당, 광동제약 등은 유리병이 플라스틱보다 무거운 탓에 운송 횟수가 증가해 오히려 탄소배출량이 늘어날 수 있다고 반론을 제기했다. 실제 유리병은 같은 용량의 제품을 담는 플라스틱보다 훨씬 무겁기 때문에 운송만 놓고 본다면 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고 탄소발자국도 큰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유리병을 재사용하면 생산과정에서 그만큼 탄소배출이 줄어든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유리병 재사용에 따른 탄소저감 효과와 운송과정에서의 탄소발자국 증가를 놓고 과학적인 효과분석을 통해 보다 구체적인 데이터 제시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유리병 제품 재사용 계획,
'적극 검토'는 단 2곳
제품에 사용 중인 유리병을 재사용할 의지에 대해선 7개사의 응답이 엇갈렸다.
재사용 체계를 적극 검토해 보겠다고 밝힌 곳은 CJ제일제당과 샘표 등 2곳이었다. 유리병 재사용을 위한 환경이 만들어진다면 적극 검토하겠다는 입장이다. 재사용을 위해선 수거 체계와 선별·세척 설비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롯데칠성과 코카콜라는 현재 유리병 일부를 재사용 중이라고 밝혔다. 롯데칠성은 빈용기보증금제를 통해 유리병은 회수와 선별을 거쳐 재사용하고 있다고 말했고, 코카콜라는 일부 유리병 제품에 수거 체계를 갖춰 재사용하고 있다고 답했다.
재사용 계획이 없다고 밝힌 곳은 농심과 오뚜기다. 농심은 유리병 용기 사용량이 많지 않고 자체생산이 아닌 수입 또는 위탁생산 구조이기 때문에 재사용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오뚜기는 "여러 원료가 포함된 가공식품은 쉽게 미생물이 번식해, 유리병을 제대로 세척하지 않으면 품질이 떨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대신 잼, 소스, 양념장 등 유리병 제품에 리무버블 스티커를 사용하고 있다고 전했다.
광동제약은 유리병 재활용을 이어가고 있다며 재사용에 관해선 언급하지 않았다.
'표준용기 논의'
참여 않겠다는 오뚜기
표준규격병 제작 논의에 관해 롯데칠성과 농심은 참여를 검토하겠다는 의사를, 오뚜기는 참여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CJ제일제당과 샘표는 뚜렷한 의견을 표명하지 않았다.
표준규격병은 유리병 재사용을 위해 모든 식음료기업이 공동으로 사용할 수 있는 가볍고 내구성이 강한 유리병을 말한다. 현재 빈용기보증금제 대상인 주류·음료병은 표준규격병을 적용하고 있다.
CJ제일제당과 샘표는 표준규격병 제작을 논의하기 위해 ▲모든 식음료기업의 품질 기준을 충족할 수 있는지 ▲최대한 파손 없이 회수할 수 있는지 등을 충분히 검토해야 한다고 답했다.
오뚜기는 "표준규격병을 도입하면 제품의 용량 선택이 제한되고, 동일한 디자인으로는 제품 경쟁력이 떨어진다"고 주장했다.
광동제약과 대상, 이마트, 청정원은 답변하지 않았다.
설문에 응답한 기업들은 유리병 재사용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기 위해서는 정부당국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정부가 표준규격병 생산과 유리병 선별·세척에 필요한 설비를 지원하고 수거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는 게 핵심 주장이다.
정부의 정책적인 지원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기업들이 플라스틱 대신 유리병으로 용기를 바꾸고 이를 재사용하는 데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유리병 재사용 목표 제시해야"
"차별성 확보할 기회"
홍수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장은 <뉴스펭귄>과 인터뷰에서 "플라스틱을 재사용하면 미세플라스틱 문제를 해결할 수 없으므로 가장 좋은 방법은 유리병을 재사용하는 것"이라며 "빈용기보증금제 대상을 확대해 유리병을 재사용할 수 있는 범위를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기업들이 당장 생산 설비를 교체하기는 어려운 만큼 유리병 재사용 목표부터 제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줄리안 퀸타르트 컵가디언즈 캠페이너는 "프랑스에선 법이 바뀌면서 기업들도 유리병 재사용을 홍보하기 시작했는데 그 모습이 참 멋지다"면서 "재사용이 와닿지 않을 수 있지만 기업들이 오히려 차별성을 확보할 기회가 될 것"이라고 <뉴스펭귄>에 말했다.
시민연대는 14일 서울 송파구 롯데칠성 본사 앞에서 유리병 재사용 목표 선언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재사용 유리병은 평균 25회 사용할 수 있으며 온실가스 배출량이 플라스틱을 사용할 때보다 90% 적다"고 주장했다. 이어 "10대 식음료기업도 표준규격병을 도입해 탄소중립과 자원순환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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