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경향 | 윤형중의 정책과 딜레마] 저출생 문제 다룰 준비도 안 된 우리 사회
지난해 12월 26일 서울의 한 공공산후조리원 신생아실에 일부 요람이 비어 있다. 연합뉴스
정책을 선악이 아닌 딜레마의 관점으로 보며 장점과 단점, 효과와 부작용을 꼼꼼히 검증해보자는 취지로 ‘정책과 딜레마’라는 이 코너의 연재를 2년여간 이어왔다. 이번 글에선 다소 다른 접근을 해보려 한다. 정책 이전의 담론, 인식, 문화의 문제를 짚어보고자 한다. 주제는 저출생이다. 최근 정치권에서 2023년 합계출산율 0.72를 접한 이후 관련 대책을 쏟아내고 있지만, 이런 대책들로 올해 합계출산율이 반전될 리는 만무하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아직 한국사회는 저출생 문제를 다룰 준비가 되지 않았다. 그래도 정부와 정치권이 한목소리로 특단의 대책들을 내놓는다고 하는데, 나름의 성과가 있지 않을까. 두고 보면 안다. 진짜 필요한 정책을 제대로 집행하려고 할 때 그 동력이 과연 유지되느냐는 우리 사회 전반의 인식, 문화에 달렸다. 문제는 그 인식과 문화에 있다는 것이다.
저출생 예산 언급 신중해야
저출생 현상과 관련한 흔한 오해가 ‘많은 돈을 썼는데도 효과가 없었다’는 것이다. 특히 2021년에 ‘지난 15년간 200조원을 썼다’는 보도가 쏟아졌고, 지난해엔 정부가 한 해에만 50조원을 넘게 저출산 예산을 편성했다고 발표했다. 이런 발표와 보도의 반응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돈을 왜 이렇게 비효율적으로 썼느냐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효율을 떠나 이 문제에 과도하게 많이 쓴다는 것이다. 후자는 저출생을 중요한 문제로조차 인식하지 않는 시각이다.
후자의 반응은 익명화된 온라인 공간에서 ‘애 낳은 게 벼슬이냐’, ‘집에서 놀면서 아이도 안 돌보려고 하냐’ 등의 표현으로도 표출된다. 한동안 온라인을 넘어 공적인 영역에서도 이런 인식이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고, 실제 정책으로도 반영됐다. 2016년 박근혜 정부가 도입한 맞춤형 보육이 그 사례다. 맞춤형 보육이란 전업주부의 보육기관 이용시간을 제한하는 정책이다. 정부로선 기존 보육비 바우처 형식으로 보육기관에 지급하던 재원을 상당분 아낄 수 있었다. 정부로선 ‘아이는 엄마가 키워야지’란 인식에도 부합하고, 예산도 절감하는 정책인 셈이었다. 당시 보육시설과 보육서비스가 태부족인 상황에서 이런 정책이 도입됐으니, 지금 돌이켜보면 저출생의 심화는 정책 탓이란 느낌도 든다.
저출생이 점차 심화하면서 적어도 이 문제에 이렇게까지 돈을 쓰는 것이 잘못됐다는 목소리는 공적인 영역에서 힘을 잃었다. 대신 ‘비효율적인 예산 사용’이란 목소리가 강해졌다. 이건 맞는 얘기일까. 이 연재에서 여러 번 강조했지만, 틀린 얘기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분류하는 공적사회지출(SOCX·Social Expenditure)의 가족지출(family benefits public spending)을 보면 한국은 명확히 OECD 국가들 가운데 하위권이다.
각국을 비교할 수 있는 가장 최신의 자료인 2019년 기준 한국은 GDP 대비 가족지출이 1.374%이고, OECD 평균은 2.109%이다. 북유럽 국가들인 노르웨이, 핀란드, 스웨덴은 2.9~3.4%이고, 프랑스와 독일, 영국 등 서유럽 국가들은 2.4~2.7%다. 한국 다음으로 저출생 현상이 심각한 스페인, 이탈리아, 일본 등은 각각 1.419%, 1.274%, 1.748%다. OECD가 집계한 가족지출에는 아동에 대한 수당, 보육비와 보육서비스, 출산과 양육과 관련된 보조금과 세제 혜택 등이 포함된다. 한국 정부가 발표한 잡다한 항목은 대부분 제외되는 셈이다.
정리하면 한국은 저출생 예산을 비효율적으로 쓰는 나라가 아니라 독보적으로 저출생이 심각하면서도 누구보다 이 문제에 돈을 덜 쓰는 국가다. 예를 들어 다른 사람들보다 당뇨병이 심하면서 처방약 복용도 안 하고, 누구보다 식단관리도 안 하면서 ‘나는 열심히 하는데 성과가 안 나온다’고 정신승리만 하면 결과가 어떻게 될까. 당연히 병세만 악화한다. 한국의 저출생이 그런 상황이다.
이런 인식과 실제의 격차로 인해 지난 연재(정책과 딜레마 (19))에서 ‘저출생 직접 예산’과 ‘저출생 간접 예산’을 구분하자는 제안도 내놨다. 하지만 솔직한 심정으론 저출생 예산과 관련된 논의를 좀 자제했으면 한다. 어떤 식으로든 이 얘기를 해봤자 결국 저출생에 상당한 예산을 쓴다는 내용으로 이어지고, 이는 양육자와 여성, 돌봄 노동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강화하기 때문이다. 즉 ‘막대한 지원을 받으면서도 아이를 제대로 돌보지 않는다’는 따가운 눈초리를 쉽게 받는다.
경상북도가 지난 2월 20일 도청에서 ‘저출생과 전쟁’ 선포 행사를 하고 있다. 경상북도 제공
단적인 사례가 노키즈존이다. 한 해에 100만명이 넘게 태어나던 1970년대에 한국은 아이들이 어디나 갈 수 있는 사회였으나, 한 해에 30만명이 태어난 2019년엔 영화 <겨울왕국 2>의 노키즈 상영관을 만들자는 논의가 일 만큼 노키즈존의 전성기였다. 일부 극성스러운 양육자들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확연히 줄어든 양육자들이 과거보다 갑절의 문제를 일으킬 확률이 얼마나 될까. 예전엔 가게에서 사건이 발생하면 ‘문제적 개인’의 탓으로 봤다면, 이젠 ‘양육자들이 원래 저렇다’는 인식이 있었기에 이렇게까지 노키즈존이 늘어난 게 아닐까. 결국 노키즈존은 노키즈랜드로 확장됐다. 그리고 노키즈 국가가 머지않았다.
젠더 평등과 합계출산율의 관계
저출생 예산과 관련된 얘기를 길게 했지만, 한국사회가 저출생 문제를 다룰 준비조차 되지 않았다고 보는 더 중요한 이유는 따로 있다. 그것은 한국사회의 페미니즘에 대한 인식과 관련이 깊다. 이 글에서 페미니즘이 옳은가, 나쁜가를 따질 생각은 없다. 다만 페미니즘에 대한 인식이 저출생 현상과 관련이 깊은 것은 여러 연구를 통해서도 드러난다.
페미니즘이 지향하는 ‘젠더 평등’과 합계출산율과의 관계에 관한 대표적인 연구는 에스핑 앤더슨과 빌라리의 2015년 연구(Re-theorizing family demographics)다. 이 연구에서 연구진은 ‘다중균형모형’을 제시한다. 간단히 설명하면 젠더 평등의 인식이 확대되는 초기엔 합계출산율이 감소하지만, 나중엔 젠더 평등의 인식이 사회 지배적 규범에 이르러 출산율이 반등한다는 것이다. 처음에 새로운 가설로 제시된 다중균형모형은 여러 나라에서 진행된 연구들로 실증적인 근거들을 갖게 됐다.
올해 서울 초등학교 신입생 수가 지난해보다 10% 이상 급감하며 사상 처음으로 5만명대로 떨어진 가운데 지난 1월 3일 서울 시내 한 초등학교에 초등학생들이 등교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 연구에 여러 어려운 용어가 등장하지만, 실은 누구나 아는 단순한 얘기다. 이를테면 요즘 여성들은 당연하게도 사회적 삶, 경제적 독립을 꿈꾼다. 현모양처, 전업주부가 꿈인 여성은 거의 없다. 그런데 여성이 가정을 꾸리고 자녀를 낳게 되면 경제활동과의 병행이 쉽지 않다. 직장에선 남성과 동등하게 충직한 직원으로 인정받기 어렵고, 가정에선 육아와 가사 노동을 동등하게 분담하기가 불가능에 가깝다. 여성 직원이 아이 돌봄 문제로 쩔쩔매는 것이 민폐로 보이고 눈초리의 대상이 되지만, 남성 직원이 비슷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아예 낯설다. 따라서 경제적 독립과 자아실현을 추구하는 여성들의 증가와 이를 받쳐주지 못하는 사회의 규범과 시스템으로 인해 합계출산율은 감소한다. 한국뿐만이 아니라 여러 나라에서 그런 모습을 보여왔다. 하지만 다른 나라에선 젠더 평등에 대한 인식이 확산하면서 보육 정책의 확대, 일 가정 양립의 지원 등의 제도가 강화됐고, 다시 합계출산율의 반등이 이뤄졌다. 하지만 한국사회는 젠더 평등이 제도로 자리 잡길 거부하는 중이다.
그럼 구체적으로 어떤 정책들이 젠더 평등에 부합하면서도 꼭 필요한 정책일까. 여성이 사회적 삶과 가사를 병행할 수 있는 체계가 정책으로 마련돼야 한다. 정책의 효과는 여성의 고용률로 측정될 수 있다. 실제 한국은 35~39세 여성의 고용률이 OECD 국가의 평균보다 낮고, 비혼 여성이 증가하면서 이 고용률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그렇다면 기혼 여성의 고용률이 높아질 만큼 과소 공급된 보육서비스를 확대하고, 공공의 책임성을 강화하는 것이 우선이다. 구체적 정책으론 국공립 보육시설과 초등 돌봄 정책의 확대, 직장 어린이집 설치 등 기업의 보육 책임 강화 등이다. 하나하나가 모두 전국 단위 선거에선 공약으로 등장했지만, 이해관계자들의 반대로 추진이 쉽지 않았다는 공통점이 있다. 국공립 보육시설의 확충은 민간 어린이집과 민간 유치원의 반대, 초등학생에 대한 돌봄 강화는 교원의 반대, 직장 어린이집 설치 등은 기업들이 비용 부담의 이유로 반대해왔다. 이들 이해관계자는 선거에서 강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집결된 유권자다.
젠더 평등에 대한 강고한 지지도 없는 마당에 정부와 정치권이 강고한 이해관계자들에 맞서고, 때론 협의하고 조정하며 필요한 정책을 추진할 이유가 있을까. 저출생 통계에 충격을 받아 몇몇 정책을 추진하다가 결국 ‘아이는 엄마가 봐야지’란 인식으로 뜻을 접지나 않을지 걱정이다. 우리가 진정 저출생 문제를 제대로 다루려면 정책 이전에 인식부터 바꿔나가야 하는 이유다.
<윤형중 LAB2050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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