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인] 기후소송 “아이들이 기회를 주었습니다, 어른이 될 기회를”

프로젝트

 

역사적인 헌법재판소 기후소송을 앞두고 도착한 시민들의 손편지 일부를 소개한다. 초등학생부터 학부모까지, 이들의 편지에는 미래세대에게 이런 현실을 물려줄 수 없다는 간절함이 담겼다.

 

청소년기후행동 등 기후소송 원고 단체들은 헌법재판소의 전향적 판결을 염원하는 손편지를 모았다. ⓒ사진합성 시사IN 유옥경

청소년기후행동 등 기후소송 원고 단체들은 헌법재판소의 전향적 판결을 염원하는 손편지를 모았다.ⓒ사진합성 시사IN 유옥경

 

 

2년 전 기사에는 이런 댓글이 달렸다.

“아무것도 모르는 애들 앞세워서 선동 조작 날조하네.” “세뇌교육 된 아동들, 정말 불쌍하다.” “니들은 차 타지 말고, 옷 입지 말고, 물 쓰지 말고 완전히 원시시대 사람처럼 살아라.”

2년이 지난 뒤 그 아이들이 다시 입을 열었다.

 

“2년 전 제가 이 헌법재판소 앞에서 처음 기자회견을 했을 때, ‘어린애가 뭘 알고 했겠어? 부모가 시켰겠지’와 같은 댓글이 있었습니다. 저는 억울했습니다. 단지 어리다는 이유로 저의 진지한 생각이 무시당하는 듯했습니다. 어른들은 투표를 통해 국회의원이나 대통령을 뽑을 수 있었지만, 어린이들은 그럴 기회가 없습니다. 이 소송에 참여한 것이 미래를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또 해야만 하는 유일한 행동이었습니다.”

 

5월21일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기후소송’ 공개변론에서 헌법소원 청구인인 서울 흑석초등학교 6학년 한제아 양이 최종진술을 통해 이렇게 밝혔다. 한제아 양은 초등학교 4학년 때인 2022년 6월 영유아를 비롯한 어린이 62명으로 구성된 ‘아기 기후소송’ 청구인단에 참여했다. 이번 기후소송은 2020년 3월 청소년 원고 19명이 첫 기후소송을 제기한 이래 아기 기후소송을 포함한 다른 소송 네 건을 병합해 진행한다. 쟁점은 한국 정부의 기후 대응 정책이 불충분해 청구인의 기본권을 침해했는지 여부다.

이번 소송이 주목받은 것은 아시아 최초의 기후소송이기 때문이다. 이미 네덜란드· 프랑스·독일 등에서는 국가가 시민 보호를 위해 보다 적극적으로 온실가스 감축 노력을 해야 한다는 사법기관의 판단이 나왔다. 2021년 독일 연방헌법재판소는 기후 대응 부담을 미래세대로 넘기는 것을 ‘위헌’이라고 판결했고, 이후 독일 정부는 2030년 온실가스 감축 목표치를 높였다. 이르면 오는 9월 나올 헌법재판소 판단은 한국 정부의 탄소 감축 노력에도 큰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소송을 앞두고 청소년기후행동, 기후위기비상행동, 정치하는엄마들 등 기후소송 원고 단체들은 헌법재판소의 전향적인 판결을 염원하는 시민들의 손편지 130여 통을 모았다. 초등학생이 쓴 편지도 있고, 기성세대의 무책임을 질타하는 학부모의 편지도 있다. 이들의 편지에는 미래세대에게 절망적인 현실을 물려줄 수 없다는 간절함이 담겼다. 이들 편지 가운데 일부를 발췌·축약해 소개한다.

 

“지난주 아이들과 봄을 주제로 풍경 그리기 수업을 하였습니다. 저는 충격받았습니다. 아이들이 꽃과 함께 그린 것은 마스크를 쓴 사람들과 미세먼지로 흐린 하늘이었습니다. 벌과 나비는 11명 중 2명만 그렸습니다. 이유를 물었습니다. ‘길에서 벌을 본 적이 없는데 왜 어른들은 봄 하면 자꾸 벌을 떠올리라고 해요?’ 저는 아무 대답도 해줄 수 없었습니다. 우리 어른들이 무슨 자격으로 무슨 권리로 아이들에게서 봄을 빼앗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아이들이 기회를 주었습니다. 어른이 될 기회를(경기도 고양시 26세 청년 김현서).”

“기업과 산업계 전반의 각성과 노력 없이 기후위기가 해결될 수 없음은 자명합니다. 저는 늦지 않았다고 믿습니다. 코로나19 시기에 자동차가 덜 다니고 중국의 공장이 좀 쉬니 뿌옇게 보이던 먼 산이 선명하게 보이는 날이 많이 있었다고 기억합니다(경기도 용인시에 사는 일곱 살 아이의 엄마이자 숲해설가 구혜진).”

 

 

'기후소송'으로 알려진 '저탄소 녹색성장 기본법 제42조 제1항 제1호' 등의 위헌 확인 소송 2차 공개변론이 열리는 5월21일 오후 소송을 대표하는 3인을 포함한 소송 주체들이 헌법재판소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참가 하고 있다. ⓒ시사IN 신선영

‘기후소송‘으로 알려진 ’저탄소 녹색성장 기본법 제42조 제1항 제1호’ 등의 위헌 확인 소송 2차 공개변론이 열리는 5월21일 오후 소송을 대표하는 3인을 포함한 소송 주체들이 헌법재판소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 참가 하고 있다.ⓒ시사IN 신선영

 

 

“당장에 손해인 것 같더라도”

 

“우리는 한반도 역사상 가장 풍요로운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의아하게도 부끄럽게도 착하게 바르게 사는 것에 대한 고민은 너무나도 하찮게 여겨지고 한 푼이라도 더 벌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저 또한 두 가지 고민 사이에서 늘 갈팡질팡하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존경하는 재판관님! 저는 재판관님의 가르침을 간절히 바라고 또 바랍니다. 착하게, 바르게 살려고 하는 것이 얼마나 훌륭하고 위대한 일인지! 당장에 손해인 것 같더라도 진정 우리의 후손들에게 이익이 되는 것이 무엇인지를(경기도 용인시 마흔 살 시민)!” 

“올해 초등학교 2학년 아이와 함께 2년 전 서울에서 충북 옥천으로 내려온 가족입니다. 식목일에 묘종을 파는 곳에 갔더니 ‘식목일은 나무를 심기에 좀 늦은 감이 있다’라고 하시더군요. 날씨가 예전보다 훨씬 더워졌다는 겁니다. 세상에 영원한 것이란 없고 모든 건 변하는 게 당연할 겁니다. 그런데 그 변화가 우리에게 익숙한 것들을 예측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이라면, 우리 아이를 비롯한 미래세대는 어떤 삶을 살게 될까요(충북 옥천군 45세 강영훈)?”

 

아이들이 보낸 편지도 여러 통 있었다. 그림까지 그려가며, 한 자 한 자 정성스레 써내려갔다. 맞춤법이 틀린 것도 있었다.

 

“재판관님 안녕하세요. 저는 충북 옥천에 사는 2학년 4반 강로이입니다. 기후변화는 막아야 해요. 제가 로블록스라는 게임에서 자연재해 (서바이벌을) 하는데, 그런 자연재해가 일어나면 안 될 거 같아요(충복 옥천군 초등학생 강로이).”

“서울에 사는 예솔이라고 해요. 요즘 점점 기후변화가 심해지고 있어요. 지구가 1도씩 올라갈 때마다 온갖 자연재해가 일어난대요. 그러니까 이번 재판에 환경정책에 대한 재판을 해주세요. 재판관님, 응원할게요( 서울 구일초 4학년3반 이예솔).”

“서울에 사는 5학년 학생입니다. 저희는 깨끗한 환경에서 살고 싶습니다. 어른들은 지금 기후문제 해결을 위한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더 이상 미루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상황이 지금보다 더 악화된다면 사람뿐만 아니라, 동물, 식물도 살기 어려워집니다(초등학생 손유찬).”

“저는 참나무어린이집 정윤찬이에요. 지구를 더 이상 안 아프게 해주세요(참나무어린이집 정윤찬).”

“기후위기 때문에 사람들이 고통받아요. 재판관님 제발 배출하는 양을 좀 줄여줘요. 제발(그림 인하·인결, 글 인우).”

 

이번 소송을 총괄하는 이종석 헌법재판소장은 2019년 낙태죄 위헌결정 때 합헌 의견을 내는 등 헌법재판관으로서 보수적 행보를 보여왔다. 그는 공개변론을 시작하며 “최근 유럽인권재판소(ECHR)가 스위스 정부의 기후변화 대응책이 불충분해 국민 기본권을 침해했다는 결정을 내렸다”라고 밝혀 눈길을 끌었다. 이종석 소장이 언급한 ECHR의 판결은 2020년 64세 이상 스위스 여성 2400명이 기후소송을 제기한 사건이다. 지난 4월9일 ECHR이 스위스 정부의 대응을 기본권 침해라고 판결하면서 세계적 주목을 받았다.

헌법재판소 공개변론이 마무리된 지 일주일 만인 5월28일 한화진 환경부 장관이 입을 열었다. 한 장관은 “헌법소원을 통해 공론의 장이 마련됐다는 점에서 상당히 긍정적이라고 본다”라면서도 “현재 국가온실가스 감축 목표가 위헌이라고 보기 어렵다”라고 말했다. 이종석 헌법재판소장은 기후소송에 대해 “사건의 중요성과 국민적 관심을 인식해 충실히 심리하겠다”라고 밝혔다.

 

📰자세히 보기
https://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53106#google_vignet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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