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경향 | 오늘을 생각한다] 가까스로 살아갈 미래
여름마다 바닷물이 미지근하다. 40년 전, 30년 전, 20년 전 그리고 2015년 딸이 태어나기 직전의 제주 바다를 전부 기억하는 나에게 바닷물이 따뜻한 것은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바닷속 한가득 일렁이며, 어린 다리를 휘감던 무성한 해조숲은 벌써 사라졌다. 시커먼 현무암 바위 위에 짙푸른 해조숲이 펼쳐져 있고, 전복이며 소라며 어린 물살이가 우글우글 살아 숨 쉬던 풍경은 이제 기억 속에만 남았다. 엽상바닷말(다시마·미역 등 잎과 줄기가 구분되는 해조류)이 사라진 자리에 칙칙한 잿빛 물질(무절석회조류)이 바위에 들러붙어, 현(玄)무암은 회(灰)무암 꼴이 됐다. 사막이 된 바다, 이를 백화현상 또는 갯녹음현상이라 한다. 갯녹음의 원인은 크게 수온 상승과 환경 오염이다. 한국수산자원관리공단에 따르면 우리나라 연안은 최근 40년간(1971~2010) 수온이 1.14℃ 상승해 전 세계 평균에 비해 약 3배 이상의 상승 속도를 보인다. 지구온난화로 해수 온도가 급상승하고, 바다숲이 황폐화하고, 그린 카본(숲과 같은 육상 생태계가 흡수하는 탄소)보다 탄소 포집 속도가 50배 빠른 블루 카본(해조류나 염습지 같은 해양생태계가 흡수하는 탄소)이 급감하는 악순환이 벌어지고 있다. 여기 한국 바다에서.
타는 듯한 여름 태양 아래, 일손을 멈출 수 없는 어르신들을 보면 아찔하다. 고령인 농민들의 건강과 생존은 매일 위태롭다. 뉴노멀이 된 폭염과 폭우 앞에 애써 지은 농작물은 말라비틀어지고 떠내려간다. 목숨 걸고 지은 농사가 하루아침에 사라진다.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채솟값이 올라 힘들겠지만, 농촌 사람들에게 기후위기는 생명과 생계가 달린 생존의 문제다. 모든 재앙은 현재진행형이다. 2023년 9월 초등학교 2학년 딸과 함께 강원도 삼척에 갔다. 삼척블루파워 공사장 입구를 가로막던 기후 활동가들이 결국 연행되는 광경을 보며, 어린 딸의 눈에 어린 두려움과 슬픔도 보았다. 딸은 1년에 한두 번 학교에서 기후 수업을 듣는데, 물과 전기를 아껴 쓰고 일회용품을 쓰지 말라고 배웠다고 말한다. 그래서 더욱 나는 딸에게 현실을 숨길 수 없었다. 가정용 전기만 절약해서는 멸종할 테니까.
지난 6월 아일랜드가 유럽에서 6번째 탈석탄 국가(아일랜드·벨기에·오스트리아·스웨덴·에스토니아·포르투갈)가 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스페인, 이탈리아(사르데냐섬 제외)도 올해 탈석탄 완료 예정이다. 반면 올해 초 가동된 삼척블루파워 2호기의 설비 수명은 30년, 2055년까지 가동할 수 있다. 왜 우리는 전 세계의 어린 생명을 위협하는 국가가 된 것일까? 신규 석탄발전소를 지으면서, 전기 절약을 가르치다니 한국 정부와 기성세대는 얼마나 저급한가?
황폐해진 바다에도 작은 생물들이 가까스로 살아가고 있다. 그들을 보면 전 세계 어린이들이 가까스로 살아갈 미래를 보는 듯하다. 내가 어린 시절에 보았던 울창한 바다숲을 열 살이 된 딸은 한 번도 보지 못했고, 영영 보지 못할 수도 있다. 지난 대선 직전 석탄발전소 지역 주민들과 발전 노동자들과 기후 활동가들과 양육자들이 함께 만든 탈석탄법이 성안됐다. 세대 간 정의·지역 간 정의를 회복하고 어린이도 노동자도 지역 주민도 누구도 희생되지 않는 정의로운 에너지전환을 담은 법이다. 국회와 정부는 ‘정의로운 탈석탄법’을 진지하게 신속히 검토하는 것에서 어린이들에 대한 속죄를 시작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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