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 한채윤의 비 온 뒤 무지개] 오세훈 서울시가 수상하다
수상하다는 말은 누군가의 행보가 겉보기와 속에 숨긴 진심이 다르다는 느낌을 받을 때 입밖으로 내뱉게 된다. 근래 오세훈 서울시장이 수상하다. 정치부 기자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명태균씨와의 관계를 두고 하는 말이 아니다. 서울시립청소년성문화센터의 운영에 대한 갑작스런 기조 변화 때문이다. 최근 서울시는 7개 지역에서 운영 중인 청소년성문화센터들을 통합하여 하나의 대표 센터와 6개의 분소 체제로 재편하고 새로운 수탁 단체를 선정하기로 했다. 각기 잘 운영하고 있는 기관들을 왜 굳이 하나로 합친 걸까? 이 소식을 듣자마자 대전시와 구리시의 사례가 떠올랐다.
구리시는 청소년성문화센터의 설립을 극렬 반대하던 보수 개신교 기반의 단체가 정작 위탁 공고가 나자 자신들이 신청해 선정되었다. 대전시도 마찬가지다. 학생인권조례와 차별금지법을 반대하고 “성폭력을 당하지 않으려면 여성으로서 성품을 갖춰야 한다”는 식의 교육을 하는 보수 개신교 기반의 단체를 대전청소년성문화센터의 위탁 단체로 선정했다. 모두 2023년의 일이다. 그리고 2년 뒤, 서울시는 갑자기 청소년성문화센터 통합 위탁을 결정했다. 만약 대전과 구리처럼 보수 개신교에 기반한 단체가 서울시의 청소년성문화센터도 욕심을 낸다면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없을 것이다. 일거양득 정도가 아니라 일거칠득이다.
의심이 확신으로 바뀐 것은 서울시가 6월12일에 ‘시립청소년성문화센터 운영매뉴얼 제작 티에프 회의록’을 공개하면서다. 연애를 이성교제로 바꾸라고 하거나 ‘포괄적 성교육’, ‘섹슈얼리티’, ‘성소수자’와 같은 핵심 용어를 삭제하거나 대체하는 내용이었다. 시대를 역행한다고 할 만한 내용에 언론에서도 비판 기사가 나왔다. 또 티에프 회의에 구리청소년성문화센터의 수탁기관인 글로벌바른가치연구소 대표로, 종교 편향적인 성교육을 주장하는 인사가 참여해 또 한번 논란이 있었다. 서울시는 이런 인사에 대해 청소년 성교육 전문가로 보여서 섭외했을 뿐이라고 한다. 만약 이렇게 허술한 기준으로 서울시가 청소년성문화센터 통합 위탁 단체도 선정한다면? 만약 현재 리박스쿨과 관련성을 끊임없이 의심받고 있는 대전청소년성문화센터 수탁 단체가 이번 서울시 위탁 공모에 참여했다면? 또 하나의 문제는 심사를 엄정하게 한다지만 그 심사위원들이 누군지, 어떻게 선정되는지 역시 불투명하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서울퀴어문화축제가 2015년부터 서울광장에서 축제를 열었지만 2023년부터 불가능해진 것은, 허가 여부를 결정하는 ‘열린광장운영시민위원회’ 구성이 오세훈 시장 이후 달라졌기 때문이었다. 이때도 시민위원 위촉 기준이 어떻게 되는지는 알 수가 없었고, 서울광장에서는 보수 개신교 단체의 축제가 열렸다. 서울시는 위원회가 결정한 것일 뿐이라고 책임을 미뤘다.
이런 모든 전례와 상황을 종합해 볼 때, 지금 오세훈 시장의 청소년성문화센터 통합 위탁 정책은 아무래도 수상하다. 지난 7월1일, 서울지역 213개 노동·시민사회단체가 ‘오세훈 아웃! 투쟁 선포 기자회견’을 개최한 것도 이런 걱정과 무관하지 않다. 청소년성문화센터 통합 위탁 심의가 현재 진행 중이라고 한다. 어떤 결과가 나올지 서울시민뿐만 아니라 전국민이 관심을 가져야 할 일이다. 서울시의 결정은 또 다른 지역의 위탁 결정에도 영향을 미칠 테니 말이다. 수상함이 부디 수상함으로 끝나길 바란다. 청소년 성교육에 보수 개신교의 입김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도록 말이다.
[한겨레 | 한 채윤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 활동가] 전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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