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하나의 눈] 민식이법은 악법도 떼법도 아니다

지난 22일 <민식이 법 개정을 청원합니다.>라는 제목의 청와대 청원이 354,857명의 참여로 종료됐다. 이 밖에도 참여인원은 적지만 민식이법에 반대하는 청원이 수십 건에 달한다. 민식이법ㆍ태호유찬이법ㆍ하준이법ㆍ한음이법ㆍ해인이법의 통과를 촉구했던 청와대 청원에 415,691명이 참여했던 것에 비하면 민식이법 반대 청원자 35만명은 엄청난 숫자다.

전국의 초등학생 수가 275만명인데 ‘어린이생명안전법 청원’에 참여한 41만명은 너무 적게만 느껴진다. 반면 2018년 한 해 동안 스쿨존에서 발생한 어린이 교통사고 435건에 비해 반대청원자 35만명은 이상하리만큼 많은 숫자다. 나도 2000년부터 운전을 했지만,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를 잠재적 가해자로 인식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 모든 보행자가 운전자는 아니지만, 모든 운전자는 원래 보행자 아니던가?    

반대청원도 그렇고, 작년 12월 10일 본회의에서 유일하게 민식이법에 반대표를 던진 미래통합당 강효상 의원도 그렇고, 민식이법에 반대하는 이유로 하태훈 고려대 로스쿨 교수의 발언을 인용한다. 12월 4일 연합뉴스 기사에서 하 교수는 "민식이법은 법정형을 과도하게 설정하여 형벌 비례성의 원칙에 위배된다. 교통사고로 인한 과실치사임에도 고의 살인(사형,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과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 고의와 과실범의 구분은 근대형법의 원칙인데 이런 원칙이 흐려진다"고 말하고 있다.

반대청원은 하 교수의 논리를 가져와서, 민식이법 형량이 윤창호법과 같은데 “음주운전이라는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행위와 순수과실범죄가 같은 선상에서 처벌 받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주장한다. 대체 순수과실은 무슨 뜻일까? 스쿨존에서 제한속도를 위반하고, 교통 신호를 위반하고, 횡단보도에서 일시정지 하지 않고, 즉 스쿨존을 무시하고 운전한 가해자에게서 어떤 순수함을 발견하라는 것인가?   

나는 법률가는 아니지만 하 교수에게 정말 묻고 싶다. 근대형법의 원칙이 무의미하다는 게 아니다. 하지만 민식이법은 피해자가 13세 미만 어린이라는 단서가 달려있고, 전국토의 극히 미미한 일부분인 스쿨존에서만 작동하며, 가해자가 제한속도를 위반하거나 ‘어린이의 안전에 유의하면서 운전하여야 할 의무를 위반’했을 때만 적용되는 법이다. 대체 원칙이 깨지면 얼마나 깨졌다는 것인가? 헌법의 정신에 입각하여 어린이는 특별히 보호해야 할 대상이 아닌가? 

하 교수가 하다못해 가까운 초등학교 통학로에 가서 아이들의 동선을 살펴보기라도 했다면, 원칙에 어긋난 민식이법이 만들어진 배경을 이해했을지도 모른다. 2018년 기준 전국 6,034개 초등학교의 30%인 1,834개 학교의 통학로에는 보도가 없고, 서울은 601개교 중 절반인 282개 초등학교가 그러하다. 민식이법 반대하는 사람들은 ‘아이들이 튀어나와서 억울하게 처벌 받을 것’을 걱정하지만, 스쿨존의 실상은 어린이들이 튀어나오는 차를 피해 살아남는 상황이다. 차는 아이들을 해칠 수 있어도 아이들은 차를 해칠 수 없지 않은가?

반대청원은 민식이법이 입법권 남용과 여론몰이가 불러온 엉터리 법안이라고 말한다. 악법이고 떼법이라고 말한다. ‘어린이의 안전에 유의하면서 운전하여야 할 의무’라는 규정이 추상적이기 때문에, 제한속도를 지켰다 한들 운전자 부주의를 문제 삼으면 징역이나 벌금형을 면하기 힘들 거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그건 민식이법의 문제가 아니다.

1997년 8월 30일 도로교통법 제11조의2(어린이보호구역의 지정 및 관리)에 제3항이 신설되면서 ‘차마의 운전자는 어린이보호구역에서 제1항의 규정에 의한 조치를 준수하고 어린이의 안전에 유의하면서 운행하여야 한다.’는 문구가 우리 법체계에 처음 등장한다. 2009년 12월에는 이를 ‘중과실 교통사고’로 규정하고 반드시 형사처벌 받도록 하는 교통사고처리 특례법(법률 제8718호)이 시행되었고, 지난 3월 시행된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민식이법)에서 가중처벌의 대상으로 해당 규정이 인용된 것이다.

즉 민식이법이 아니라 도로교통법 제12조제3항이 문제다. 법령 입안에 있어 비례성의 원칙이 실체적 내용 대한 헌법 원칙이라면, 법령 형식에 대한 헌법 원칙으로 명확성의 원칙이 있다. 스쿨존 내 어린이 교통사고에 대한 처벌이 점차 강화되고 있으므로 ‘규율 대상자(운전자)’에게는 무엇이 금지되는 행위이고, 무엇이 허용되는 행위인지 미리 알 수 있도록 해야 하고, ‘법집행자’에게는 객관적 판단지침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도록 하여 자의적 해석의 소지를 없애야 한다. 개정해야 할 것은 민식이법이 아니고 도로교통법이다.

민식이법은 악법도 떼법도 아니다. 대체 누가 무슨 이유로 민식이법이 악법이라는 여론을 조장하고, 스쿨존에서 사고 나면 ‘무조건’ 처벌 받는다는 유언비어로 공포를 조성했을까? 이득을 본 건 보험을 파는 회사나 한문철 변호사 같은 교통사고 전문 변호사가 아닐까? 민식이의 이름을 함부로 입에 올린 사람들이 설마 법체계의 정합성을 추구하기 위해서 그랬다고 생각지 않는다. 단지 돈벌이 때문에 아이의 고운 이름에 먹칠을 하고 유가족들에게 말할 수 없는 고통을 안겼다고 생각하니 분노가 치민다.   
 
민식이법이 시행된 후 지난 한 달 간 스쿨존 내 과속 적발 건수가 전북 7,156건, 인천 6,777건, 충북 2,362건... 스쿨존 과속운전이 여전하다는 언론보도에 허탈하다. 민식이법에 반대하는 35만명 외에 민식이법을 의식하는 운전자는 없는 것인가? 아니다. 바로 내가 변했다. 나에게 민식이법이 필요하다.

 

주간경향 기고문 http://weekly.khan.co.kr/khnm.html?mode=view&code=124&artid=20200424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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