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아이들의 행복에서 새롭게 출발하자 (장하나)
[창간20주년 특별기획] 아이들의 행복에서 새롭게 출발하자
릴레이 기고 ‘코로나 너머’ ⑤
지난 4일 교육부가 전국 초중고 및 유치원 학생들의 순차 등교 일정을 발표했다. 밀착 돌봄이 필요한 영유아 및 초등학교 저학년은 5월 20일부터 정상 등교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이태원 소재 클럽에서 코로나19 집단 감염이 발생해 지역 사회 확산 가능성이 높아지자, 11일 정부는 등교 개학 일정을 1주일 연기했다. 이제 초1~2·유치원생은 27일이 되어서야 등교할 수 있다.
지역 사회 감염이 재차 시작됐고, 아이들이 학교에 가지 않은 시점에서 ‘코로나19 너머’를 논하기란 쉽지 않다. 그렇지만 코로나19 확산 이후, 엄마 아빠들이 겪고 있는 고충과 시행중인 관련 정책을 짚어보며, 미래를 위해 우리가 무엇부터 바꿔나가야 할 지 이야기해 볼 참이다.
코로나19가 확산된 이후 정부는 긴급돌봄, 가족돌봄휴가 지원금 지급 등 10세 이하 피양육자를 둔 가정을 위한 정책을 실시됐지만 정책 효능감은 높지 않았다.
긴급돌봄은 양육자들에게 ‘알아서 출근’하라는 신호가 되었고, 연차수당(각종 수당 및 상여금 없이 최저임금만 받은 노동자가 주 40시간 근무 시 1일 82,464원)보다 낮은 가족돌봄휴가 지원금(1일 5만원 * 최대 10일)은 일단 연차부터 소진하고 보게 만들었다. 물론 가족돌봄휴가 지원금이 연차수당보다 높다 한들 가족돌봄휴가 사용이 법대로 될 리는 만무하다.
알다시피 대한민국 노동자들은 아이를 낳고 키우는 ‘개인 사정’을 일터에서 결코 티내선 안 된다. 애 키우는 티 좀 냈다가는 ‘당신 너무하다’는 소리를 듣는다. 티내느니 직장을 때려치워야 한다.
지난 2월 27일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2019 경력단절여성 등의 경제활동 실태조사>에 따르면 만 25~49세 여성 중 결혼, 임신·출산, 양육, 가족돌봄 등으로 경력단절을 경험한 여성의 비율은 35.0%로 2016년(40.6%) 대비 5.6% 감소했다고 한다. 돌봄노동을 겸하는 여성노동자의 인권이 다소 신장됐을수도 있지만, 나는 출생율이 급감한 영향이 훨씬 더 크다고 본다. 또 이 실태조사는 조사대상을 기혼여성 또는 유자녀 여성에 한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출생율과 더불어 혼인율이 급감하는 한국 사회의 여성 고용단절율을 낮춰 보게 하는 착시현상을 유발한다고 본다.
2016년 6월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표한 보고서 <취업여성의 일·가정양립 실태와 정책적 함의>는 조사 대상을 ‘결혼 또는 출산 전후 취업 중이었던 만 15~49세 기혼여성’으로 한정했다. 위 보고서에 따르면 일반회사에 다니는 기혼여성의 경력단절 경험률은 44.8%로 둘 중 한 명이 사회적 해고(고용단절)를 당하고 있고, 이는 공무원(13.6%)의 3배가 넘는 수치다.
여러모로 참담하다. 지금까지 시도된 바 없지만, 여성가족부가 남성의 경력단절비율을 조사해서 여성과 비교한다면 썩은 미소(?)를 아니 지을 수 없으리라.
존재가 소거되는 차별만큼 심한 게 없다. 과거에 장애인과 성소수자가 그러했듯, 있는데 없는 것처럼 투명인간 취급 받는 존재……. ‘엄마’가 그러하다.
아이를 낳으면 일을 관두거나, 티를 내지 말거나 둘 중 하나를 해야 한다. 그래서 어린이집·유치원은 07:30부터 19:30까지 운영하도록 되어있다. 이런 온종일 돌봄 제도는 ‘그러니까 티 내지 말라’는 강력한 신호로 작용한다.
정부가 영유아 및 초등 저학년 자녀를 기관에 1일 12시간씩 맡기도록 기본정책을 설계한 것은 아동 이익 최우선의 원칙(DEVOTION TO BEST INTERESTS OF THE CHILD, 유엔아동권리협약)에 위배 된다고 볼 수 있다. 정책 수요자가 불가피한 경우 장시간의 공적 돌봄 서비스를 요구할 수는 있겠지만, 정부의 원칙은 고용단절 방지·육아휴직 의무화(소득보전)·유연근무 보장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어린이집·유치원이 12시간씩 문을 여는데 왜 고용단절은 줄지 않을까? 안 겪어본 사람은 의아할 것이다. 실제 그런 기관은 거의 없고, 그런 양육자도 거의 없다. 아이들이 많이 힘들어 한다. 아빠엄마가 보고 싶어서, 집에 가고 싶어서 그리고 배가 고파서 그렇다. 온종일 돌봄을 해도 기관은 아침식사·저녁식사를 제공할 의무가 없다. 원칙 상 외부음식을 먹일 수도 없고, 점심 때 만든 음식을 먹여도 안 된다. 기관 내 장시간 돌봄도 문제지만, 아이들 배 좀 곯아도 괜찮다는 정부 정책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이해할 일이 아니라서, 정치하는엄마들은 이 사안을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할 예정이다.
코로나19 국면을 맞아 엄밍아웃, 빠밍아웃 한 노동자들이 적지 않다. 물론 빠밍아웃보다 엄밍아웃이 월등히 많았겠지만, 소리 소문 없이 아이들을 키워내던 노동자들의 존재가 수면 위로 드러났다는 말이다. 코로나19 넘어 다음 장(章)에서 다시 우리를 유령 취급할 것인가? 아이를 행복하게, 안전하게, 건강하게 키우는 우리의 노동을 다시 외면할 것인가?
일터에서 차질을 빚지 않기 위해, 민폐가 되지 않기 위해, 아이들은 주 40시간 이상 기관에 머물러야 했고 엄마는 사직서를 내야 했다. 아이가 태어나면 수입이 늘어도 시원찮을 판에 고용단절이라니 출생율이 올라가면 기적이다. 일반 회사 종사자의 고용단절 비율·육아휴직 사용률을 공무원 수준으로 제고하지 않으면, 아무리 아동수당을 확대해봐야 출생율은 절대 올라가지 않을 것이다.
코로나19 재유행 전에 정부가 해야 할 조치들
‘사회적 거리두기’ 시행되면 가능한 한 재택근무를
가족돌봄휴가와는 별도로 ‘방역돌봄휴가’ 도입하자
가을철 코로나19 재유행에 대한 경고의 목소리가 높다. 지역사회의 건강과 안전도 걱정이지만 아이 키우는 집들은 ‘물리적 거리두기’가 마냥 걱정이다. 그래서 가을이 오기 전에 꼭 바꿔야 할 게 뭐가 있을지, 정치하는엄마들 회원들에게 물었다.
첫째, 정부는 고강도 거리두기를 시행할 때 가능한 직종은 반드시 재택근무를 실시하도록 하고, 특별한 사유 없이 출퇴근을 고수하는 사업장에 대한 단속, 벌칙도 마련해야 한다. 돌봐야 할 가족이 있건 없건 간에 모든 노동자는 코로나19로부터 안전할 권리가 있다. 그런데 양육자들한테만 가족돌봄휴가를 쓰라고 하니 내가 단지 아이 보러 가는 건지, 아니면 방역의 일환인지 일터에서 양육자들 입장이 애매해지는 거다. 재택근무가 전면 확대 되어야만 가족돌봄휴가 사용자도 늘어나고, 긴급돌봄 수요는 줄어들고, 거리두기 기간도 줄어들 것이다.
둘째, 가족돌봄휴가가 아닌 방역돌봄휴가가 별도로 마련되어야 한다. 가족돌봄휴가는 코로나19 직전에 만들어진 법으로 지금과 같은 재난 상황과 무관한 제도다. 재난 상황이 얼마나 지속될지 예측할 수 없는데 연간 10일로 한정된 제도를 갖다 쓰는 것부터 앞뒤가 맞지 않는다. 즉 재난 시 노동자가 가족을 돌볼 권리를 기간의 제한 없이 보장하는 법제도가 필요하고, 1일 5만원 수준이 아니라 소득을 제대로 보전해줘야 한다.
대만의 경우 12세 이하 자녀를 키우는 가정의 경우 방역돌봄휴가를 반드시 사용하도록 했고, 학교나 유치원에서 긴급돌봄은 제공하지 않았다. 방역돌봄휴가가 유급일 경우 국가는 사업주에 소득세 감면 혜택을 주고, 무급일 경우 노동자가 정부에 보상금을 신청하는 방식으로 소득을 보전했다. 그리고 방역돌봄휴가를 보내주지 않은 고용주에게는 최소 5만~최대 100만 대만달러(한화 200~4000만원)의 벌금을 부과했다. 대만은 당초 2월 11일로 예정됐던 개학을 2주 미뤄 2월 25일에 개학했고, 인구 2500만명(한국의 절반) 중 확진자 438명, 사망자 6명에 그치고 있으니 고강도 거리두기를 굵고 짧게 마친 모범사례다.
코로나19 너머를 생각한다. 내 6살 딸의 행복은 놀이터에서 두 시간이고 세 시간이고 하염없이 뛰노는 것이다. 즉 아빠나 엄마의 시간이 그만큼 필요하다. 아이를 키우는 데 돈이 꼭 필요하고 중요하지만, 돈 만으로 아이들을 잘 키울 수는 없다. 왜냐면 아이에게 돈을 주면서 ‘알아서 잘 크렴’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아이를 행복하게 키우려면 양육자들에게 시간이 더 필요하다. 아이들에게 엄마, 아빠가 돈 벌어야 되니까, 어린이집·유치원에서 하루 12시간씩 지내고, 아침 저녁으로 배고파도 좀 참으라고 하는 나라는 더 이상 없어야 한다. 이제는 아이들의 행복에서 새롭게 출발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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