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장하나의 눈 공적 돌봄 체계를 위한 캠페인

[장하나의 눈]공적 돌봄 체계를 위한 캠페인

2020.06.05 16:48

배운 게 도둑질이라던가. 나는 내가 임신·출산·육아 과정에서 겪고 있는 모든 차별과 부조리가 다 정치적인 문제로 보인다. 정치적인 문제엔 정치적인 해법이 필요하기에, 나는 자연히 정치세력화를 모색했다. 그래서 ‘정치하는엄마들’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한 일간지에 “엄마들이 정치에 나서야만 ‘독박육아’ 끝장낸다!”라는 글을 썼다.

 

2017년 4월 22일 첫 오프라인 모임에서 만난 생면부지의 얼굴들, 낯선 목소리로 듣는 그들의 이야기는 다 내 얘기 같았다. 우리는 다들 사라진 그들이었다. 세상은 무심코 우리를 ‘경단녀’라 부르지만, 그 이름은 잔인하고 비참하다. 집에서도 일터에서도 남성들은 그런 위협을 느끼지 않는다. 같은 시공 안에서 나만 살얼음판이고, 외줄 타기다. 다만 아이를 낳았을 뿐인데….

 

나 역시 마흔 가까이 돼 첫 출산을 하기 전에는 이 문제를 알지 못했다. 내 친구들이 엄마가 되고 일을 관두는 걸 보면서도 문제라고 느끼지 못했고, 그들이 선택한 삶인 줄 알았다. 나 자신이 사라질 위기에 처하기 전까지는 모든 일터에서 소리 없이 사라져 간 여성들을 인식하지 못했다. 우리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다. 그래서 고용단절은 국가에 의한 부당해고다.

 

고용단절을 방치하면서 저출산 예산을 매년 20조원 이상 지출하고 아동수당을 주면 출생률이 올라갈 것으로 생각하는 정부의 공식은 틀렸다. 정권이 바뀌어도 바로 잡히지 않고 있는 오류다. 출산하지 않으면 고용단절이라는 지독한 성차별을 회피할 수 있다. 아이를 낳으면 돈이 더 많이 필요한데, 거꾸로 돈벌이를 잃는 구조이기 때문에 돈을 모아둔 사람이 아니라면 출산을 선택하기 어렵다. 출생률을 올리고 싶다면 정부는 성평등에 집중해야 한다.

 

지난 3년간 정치하는엄마들은 고용단절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루지 못했다. 그런데 사건이 벌어졌다. 지난 5월 19일 교육부가 초등학교 저학년 돌봄교실에 대한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을 3일 만에 철회한 것이다. 교원단체들로부터 항의가 빗발치자 교육부는 꼬리를 내렸다. 대다수 여성노동자들은 교사·공무원처럼 3년의 육아휴직을 보장받지 못하고, 법으로 정해진 1년의 육아휴직도 감히 쓰지 못한다. 실제로 첫 출산 당시 취업 중이던 여성노동자의 경력단절 경험률은 교사·공무원이 11.2%인 반면 일반회사 종사자의 경우 49.8%에 이른다. 육아휴직 사용률도 교사·공무원 75%, 일반회사 종사자 34.5%로 두 배 이상 차이가 난다.

 

교원단체들은 돌봄(보육)은 교육이 아니므로 학교의 고유 업무가 되어서는 안 된다 하고, 초등돌봄 관련 행정업무가 과도하다는 주장도 한다. 그러나 교사에게 아이들을 직접 돌보라는 것이 아니고, 학교라는 공간에서 돌봄이 이뤄지길 바라는 것이다. 행정업무가 과도한 것은 행정 전담 인력을 뽑으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다. 교육부의 입법예고 철회는 국가가 다시금 고용단절 문제를 방치하겠다는 선언과 다름없다. 더 비참한 것은 이 사태가 별로 기사화되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정치하는엄마들은 공적 돌봄 체계를 만들기 위한 새로운 캠페인에 드디어 착수했다. 설렌다. 가슴이 뜨겁다.

 

<장하나 정치하는엄마들 활동가>

 

출처: http://m.weekly.khan.co.kr/view.html?med_id=weekly&artid=20200605164856…

 

날짜
종료 날짜

댓글 달기